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69화 (818/1,000)

00869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이민호는 교육국장 최 선생 등과 함께 초등학교 6학년 수업을 참관했다. 오늘 수업은 학생들이 식당 직원과 손님 역할을 서로 바꿔가며 진행하는 상황극이었으며, 주제는 진상 손님 대처법이었다. 업소 직원일 때 대처법을 숙지해 제대로 활용하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손님일 때 공공장소나 업소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상황극 수업의 진짜 교육 목적이었다.

고산국에서 학교는 교과과목과 체육, 예술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배우는 장소였다. 포유류의 새끼들이 서로 장난치고 놀면서 사냥과 위험 회피 행동을 배우듯이 인간 청소년에게도 또래 집단의 놀이가 가장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담당했기에 놀이와 비슷한 수업도 많았다. 그 외에 기본적인 성교육과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을 주면서 같이 가자고 할 때 거부하는 것’ 등을 배웠다.

상황극에서 설정한 장소는 일반적인 식당이었다. 진상 손님 역할을 맡은 남학생이 식탁에 다리 한 짝을 올린 채로 여급 역할을 맡은 여학생을 손으로 까딱까딱하면서 불렀다. 여학생이 방긋 웃으며 주문을 받으려 했다.

“손님! 어떤 음식을 주문하시겠어요? 다리는 내려주시겠어요?”

“뭐야? 주문 받는 여직원이 너무 못 생겨서 밥맛이 떨어질 것 같아.”

이제 보니 상황만 부여하고 대본 없이 진행되는 상황극이었다. 참관하러 온 이민호가 배꼽을 잡고 웃었고, 여진족 출신 호위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급 역할을 맡은 여학생이 울먹거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방장 겸 식당 주인 역할을 맡은 남학생이 허둥지둥 손님에게 달려왔다.

“손님!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손님께서 반말을 하셨으니 저희 직원에게 보상금을 내셔야 합니다.”

“주방장도 더럽게 못 생겼군. 기분이 나빠서 오히려 내가 보상을 받아야겠다. 사장 나오라고 해!”

“제가 사장입니다. 손님께서는 저희 직원과 저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셨습니다. 방금 경찰에 신고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웃기지 마!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가면 돼!”

손님 역할을 맡은 장난꾸러기 꼬마가 교실에서 뛰쳐나가려는 순간에 공영마차 마부와 시청 소속 청소부가 문을 막아섰다. 이들은 치안 보조 인력으로서 경찰이 올 때까지 범죄자의 도주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직무의 하나였다.

업소나 일반 가정집에서 빨간 깃발을 세우면 치안 인력이나 이웃들이 즉시 도와주러 오게 돼 있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위치를 알리는 일은 전화국 교환원이 대신 해줬다.

잠시 후 경찰들이 출동해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으로 상황극은 끝났다. 이어서 담임교사가 평가를 할 차례였다.

“김준태 학생! 아무리 상황극이라지만 너무했어요. 민혜정 학생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세요.”

“상황극이라서 그냥 해본 것입니다, 선생님. 하지만 지나친 것 같으니 사과하겠습니다. 혜정아! 미안하다. 사실 네가 우리 반에서 제일 예뻐! 내 사과를 받아주겠니?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

“준태가 흑심을 드러냈다! 얼레리꼴레리!”

같은 반 아이들이 놀려댔고, 어느새 준비했는지 남학생이 꽃다발을 여학생에게 바쳤다. 아이들은 국왕이 수업을 참관한다 해서 겁을 먹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던 여학생이 빨개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싫어! 네가 제일 미워!”

“우와! 준태가 퇴짜 맞았다!”

두 사람 사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진진했지만 호위들의 말을 들어보면 잘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여자를 못 살게 굴어서 관심을 끌려는 것은 어린아이의 수작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업은 집이나 학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소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안전하게 대피하는 훈련이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진지하게 훈련에 임해서 이민호가 조금 안심했다.

“개인 소유 별장이라. 흐음.”

“경관이 훌륭한 도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2층 단독 주택을 요구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백성들이 고가의 개인 별장을 구매할 만큼 충분히 부유해졌다는 뜻입니다.”

호조와 공조에서 공동 제출한 기획안을 받은 이민호는 고민이 많았다. 경치가 좋은 곳에 실용성은 떨어지더라도 예쁜 집들이 모여 있다면 현대 스위스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도심지의 직장에 출퇴근하는 직업인이 아니라면 휴가 기간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한적한 교외 별장에서 사는 것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건설 분야는 내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고용효과도 큰 편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고민하는 것은 건설 경기가 과열될 경우 여차하면 부동산 투기 광풍과 그에 이은 거품 붕괴 현상을 불러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 부자와 기성세대가 서민과 젊은 세대에게 대놓고 빨대를 꼽는 끔찍한 주거 환경을 겪은 이민호는 한국과 같은 방식의 부동산 개발은 절대 반대였다.

고산국에서는 가계 수입에 비해 지출이 적어서 자연스레 저축률이 높았다. 국민의 저축률이란 높으나 낮으나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지표였으나, 고산국에서는 은행 이자율이 낮고 기업 대출액이 적으며 백성들이 살면서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어서 고스란히 백성들의 재산으로 축적됐다.

자식들의 분가나 노후에 대비해 재산을 모을 필요가 없는 고산국에서는 적당한 수준에서 사치를 하더라도 소비에는 한계가 있었다. 백성들이 돈을 벌 일자리뿐만 아니라 돈을 쓸 곳을 마련해주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었다.

“공판! 현재 공공건설청뿐만 아니라 대다수 민간 건축회사들이 공동 주택을 재건축하는 사업 중이라고 알고 있소. 다른 분야에 투입할 여유가 있겠소?”

“물론입니다, 전하. 아국은 국초부터 지금까지 인구 증가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건설 역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공공건설사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민간 건축회사 창업도 꾸준히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지시하신 다양한 건축 설계가 주택에 적용되게 하려면 획일화된 대규모 공공 건설보다는 민간 건설 분야가 낫습니다.”

“기업들에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유독 건설과 토목 분야에서는 공적 책임을 강조했었소. 부실시공과 인허가 비리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건설 분야도 민간에 더욱 많이 개방해야 할 것 같소. 별장 건축비는 어느 정도 들 것 같소?”

왕도는 물론 지방도시에도 30년 가까이 된 낡은 공동주택이 많아져서 현재 활발하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국초에 설정된 철근 콘크리트 공동주택의 설계 수명은 30년에서 50년 사이였다. 그러나 그 동안 개량 온돌, 즉 바닥 온수 난방시설이 인기를 끌고 층간 소음 억제, 화재 대비 강화 등 건축 설계 사상이 변하면서 사용연한이 되기도 전에 공동주택의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다. 외관이 낡아 도시미관에 악영향을 끼치며 기존 공동주택의 입주자들에게 더 이상 불편을 강요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부동산 제도 아래에서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재건축이 거의 불가능했으나 고산국은 토지 공영제와 공동주택은 정부 소유인 제도 덕택에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했다. 다만 고산국의 위치상 습도가 높기 때문에 층을 올릴 때마다 시멘트가 굳기를 기다리는 양생 기간이 한 달 이상으로 길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물론 한국 같으면 겨울이나 장마철에 시멘트가 미처 굳기도 전에 거푸집을 해체하고 금방금방 층을 올려버려 세월이 흐르면서 건축 강도에 큰 문제가 생겼다.

“설계나 가옥 규모에 따라 다양합니다만, 토지를 제외한 별장 건축비와 인입도로 건설비용, 공원과 공용 마구간, 상가 건물 등 공동시설 건설비를 분담하면 4천원 선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공판이 말한 4천원은 민간 건축회사의 이익을 포함한 건축 원가입니다. 정부 주도로 발주해서 5천원 또는 그 이상에 분양해서 민간에 과도하게 풀린 금화를 거둬들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전하.”

호조와 공조가 공동으로 정책 제안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호조 입장에서는 돈이 집에 쌓여 있는 것보다는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는 편이 훨씬 좋았다. 백성들이 돈을 쓸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강조한 이민호는 괜찮은 정책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인허가 비리 적발이나 부실공사 억제는 정부에서 할 일이오. 그리고 투기를 방지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상실감을 완화할 방법은 준비해뒀소?”

“민간 소유 주택이라도 부동산 거래는 무조건 관공서를 통해야 하며 별장을 건설할 부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기가 발생할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가지지 못한 백성들의 상실감은 황송하오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별장 건물들이 대대적으로 지어질 경우 그런 예쁜 집에서 다만 며칠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웠다. 특히 아이가 그런 소망을 내비칠 때 젊은 부모가 들어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별장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요금을 내고 며칠 이용할 수 있도록 별장식 숙박시설을 일정 비율로 건설하시오. 공동 별장은 정부에서 직접 건설과 운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민간 회사를 참여시켜도 좋소.”

“실로 묘안입니다, 전하.”

이민호는 현대의 콘도미니엄 방식으로 이용 시간뿐만 아니라 소유권도 분할할까 하다가 사기꾼이나 투기꾼들이 설칠 가능성이 높아서 제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택이나 별장 같은 주거지는 가급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현재 고산국 백성들의 주거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공동주택이나 개인주택이 편하고 이용료가 낮기도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마음대로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어서 과도한 빈부격차에 의한 상실감을 백성들에게 느끼지 않게 한 것도 큰 이유였다. 백성들 사이에 소득과 재산에 차이가 생기면서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이 요즘 이민호가 고민하는 사회 현안이었다.

“아국에는 혈통에 의한 신분 차별은 없어도 경제력 격차에 의한 계층 갈등이 나타날 소지가 조선보다 더 큰 것 같소. 부자들이 돈을 버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가난한 자들이 신세 한탄을 해서야 되겠소? 소외 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오.”

“기본 소득을 올리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유효한 수단이겠습니다만, 10원 금화를 주조할 금이 너무 적어서 문제입니다. 금 생산량과 보유량이 경제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휴우! 그렇다고 원나라처럼 종이돈을 발행해서 법적으로 유통을 강제할 수도 없지 않소?”

“저화를 발행하면 물가가 폭등해서 나라가 망하는 줄로 알 것입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원나라에서 저화가 발행된 초기에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발행금액 자체가 적어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재상이 바뀌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이 저화를 무한정 발행하다가 결국 원나라가 무너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래서 명나라와 조선에서는 종이돈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고, 당연히 유통에 애로점이 많았다.

이 시기에 신용화폐 발행이 꿈에 불과한 반면 금 보유량은 너무 적었다. 만약 금이 충분하다면 금의 불변 가치로 환산해 고산국이 현대의 웬만한 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을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국방연구소에 갔더니 소장이 쇠꼬챙이 같은 것과 고리가 달린 단검을 이민호에게 바쳤다. 후금으로 원정을 떠나기 전에 제작하라고 지시한 파이크형 총창과 단검 손잡이에 고리를 달아 총에 부착되도록 만든 총검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에야 완성됐다.

“전하! 하명하신 대로 총구에 간단히 꽂고 사격에 방해되지 않도록 제작했습니다. 군인들에게 사용하게 해보니 총검의 날 길이는 30cm, 총창의 경우는 45cm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총검이나 총창을 꽂으면 총 길이와 합해서 단창 길이는 되는 것 같소. 크게 무겁지 않아 다행이오.”

실제 역사에서 17세기 유럽에 총검이 도입되고 나서 지난 몇 세대를 풍미했던 창병들이 급속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지대가 필요할 정도로 크고 무거웠던 머스킷이 경량화된 다음에야 총구에 총검 장착이 가능했다.

이상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다. 그러나 정확히는 장창방진을 활용해 기병 돌격을 저지하거나 백병전을 할 필요가 줄어들었기에 총병 비율을 늘리면서 총검으로 백병전에 최소한의 대비를 한 결과였다. 장창을 총검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총의 보유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창이 전장에서 물러난 셈이었다.

총기의 연사율이 높아지면 총검도 거의 필요 없게 된다. 연발총을 보유한 고산국 정규군이 총검을 사용할 일은 드물었으나 창병이 주력이며 단발총을 보유한 스위스 용병 부대의 편제를 개편하기 위해 총검을 도입했다.

“총창은 찌르기에 특화돼 있어서 상대방이 갑옷을 입거나 두꺼운 옷을 입는 북방 지역에서 효율적입니다. 총검은 총창보다 짧으나 찌르기 외에 베기 공격이 가능하고 철조망 절단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흐음. 단단하게 잘 만들었는데 고르기가 쉽지 않겠소.”

“스위스 용병 부대에서 창병 비율을 줄여 총병을 늘일 목적이라면 기후나 갑옷 여부를 불문하고 총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총병들이 단검이나 장검을 따로 휴대하고 있으니 총검은 오히려 필요가 없습니다.”

적 기병 돌격에 대비하려면 짧은 총검보다 긴 총창이 유리할 수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시대에 따라, 혹은 전술에 따라 총검에서 총창으로, 다시 총검으로 발전한다. 어떻게 보면 실제 활용 가능성이 극히 적은 상징적인 무기에 불과했다.

창을 대신하는 총검은 16세기 프랑스에서 발전해서 17세기에 유럽 전역에 전파됐다. 17세기 초반에 중국 무기 도감의 자모총 편에 총도(銃刀)가 그림까지 올라 있지만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는 못했다. 총검은 창이나 칼에 비해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총검은 창 형식으로 결정하겠소. 스위스 2연대가 이집트로 귀환하기 전까지 보급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전하. 예전과 달리 뭐든지 주문만 하면 제작은 금방입니다. 헌데 구르카 여단에는 총검을 보급하지 않습니까?”

“구르카 용병들은 단발총보다 쿠크리 단검을 더 신용하는 것 같소. 총검을 총에 끼울 이유가 없지요.”

스위스 2연대에 총검을 보급하고 창병 비율을 절반 이하로 줄인 다음 사격 훈련과 전술 훈련을 시켰다. 단발총 보유량이 올라가 화력이 훨씬 강해졌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언제든지 출전시킬 수 있으니 이집트에 돌아간 다음에도 계속 훈련을 시키라고 연대장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스위스 용병과 구르카 용병들의 급료를 고산국 정규군과 비슷해지도록 대폭 인상했다. 이전에도 유럽에서 활동하는 용병들에 비해 급료가 충분히 높아서 스위스 용병들이 빠져나갈 일은 없겠지만, 유럽 전쟁에 고산국이 참전할 수 있다는 신호를 유럽 국가들에 보낸 셈이었다. 30년 전쟁이 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가급적 참전할 생각은 없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렇게라도 대비했다.

============================ 작품 후기 ============================

특히 편의점 알바생들이 진상 손님을 많이 겪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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