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60화 (809/1,000)

00860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이민호가 지휘하는 동로군은 산과 숲에서 저항하는 후금군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우모령을 돌파했다. 고개 북쪽 산자락 아래 우모채는 이미 텅 비었고, 명군을 보내 30채 정도 되는 민가를 수색하게 했다. 군량이 부족한 명군이 민가를 샅샅이 뒤져 약간의 쌀과 잡곡을 찾아냈다.

다음 날인 음력 3월 2일, 양력으로 4월 15일에 부차(富察, 富車)에 도착했다. 현대 환인 만족 자치현 바로 북쪽이며 고구려 오녀산성 서쪽에 위치한 육도하였다. 산지만 지나다가 오랜만에 널따란 평원 지역에 나온 동로군은 기본적인 주둔지를 만들면서 압록강 건너 창성과 이어지는 후방 병참선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그리고 다른 부대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했으나 서로군과 남로군은 물론 요양으로부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총병 유정이 초조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경략이 그토록 자주 전령을 보내 전진하라고 독촉하더니 갑자기 뚝 끊겼습니다. 아무래도 연락로가 차단됐다고 봐야겠습니다.”

“아마도 북로군과 서로군은 전멸하고 천천히 기동하던 남로군은 도주한 것 같소.”

“제독 대인께서는 어찌 그리 정확히 아십니까?”

이민호가 하늘을 가리켰다. 북쪽 하늘에서 자그마한 점이 점점 커지더니 비행기가 되어 굉음을 울리며 주둔지 상공을 지나갔다. 그리고 76밀리미터 구경의 보온병 같은 것을 떨어뜨렸고, 그 안에 정찰 보고서와 연락문이 들어있었다. 호위가 보고서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어제, 그러니까 3월 1일에 서로군이 전멸하고 오늘 한 시간 전에 북로군이 패주했다고 하오. 북로군에 합세하기로 했던 예허부의 기병 1만은 패전 소식을 듣고 즉시 본거지로 돌아갔다고 하오.”

총병 유정이 한동안 말을 잃었다. 특히 이번 원정의 주력인 서로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유정은 이민호가 읽어준 보고서 요약본을 믿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날래다고 소문 난 후금 기병이라 해도 이틀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아군 병력 2, 3만씩을 전멸시키면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전군이 기병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소? 우리 원정군이 대략 하루거리씩 떨어져 있으니 빠르면 이틀 후에 적 주력 기병이 이쪽으로 올지도 모르오.”

현재 후금의 전체 병력은 300명 정원인 니루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12만 정도로 추산됐다. 그 중에서 팔기는 이 시기에 각각 25개 니루, 5개 잘란, 1개 구사 7,500명 정원이므로 총 6만이었다. 팔기를 중심으로 한 기병 6만이 짧은 내선을 이용해 명나라 원정군을 상대로 기동 방어를 수행하는 사이 나머지 병력이 허투알라를 방어하거나 정탐과 병참 등에 동원됐다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1621년 조선 조정의 명으로 허투알라를 방문했던 만포 첨사 정충신은 1개 니루가 300명이 아닌 400명으로 구성됐다고 보고한다. 1개 니루는 장갑, 단갑, 양중갑 각각 1백인에 수은갑을 입은 중기병 1백인으로 구성됐고 1기는 1만 2천명, 8기 총병력은 9만 6천기라는 것이 정충신의 판단이었다. 팔기 총 병력이 6만이든 9만 6천이든 누르하치는 항상 병력을 집결시켜 싸웠고 명나라 원정군은 분산됐으니 전투는 매번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날 수밖에 없었다.

“국왕전하! 경략과 약속한 대로 허투알라로 전진하지 않습니까?”

“서로군이 전멸하고 북로군이 패주하면서 약속이란 이미 의미가 없어졌소. 상황이 명확하게 판명될 때까지 여기서 대기합시다. 적 주력이 몰려오면 더 좋소.”

조선군 도원수 강홍립에게 대답하는 중에 이민호의 시선이 종사관 정호서와 마주쳤다. 정호서는 삭주 동쪽 창성에 위치한 원수부와 원정군 사이를 왕복하며 보급 문제를 담당하고 있었다.

창성부에서 허투알라까지 직선거리는 겨우 100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꼬불꼬불하고 눈 때문에 진창으로 변한 산길을 후금군의 방해를 뚫고 무거운 군량을 수송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종사관! 조선군이 계속 군량 부족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보급하기가 그리 어렵나?”

“그렇습니다, 국왕 전하. 창성부 관아에는 군량과 건초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원정군 병력이 1만 3천인데 반해 치중대는 겨우 5천에 불과합니다. 병참선 중간 중간에 군량과 건초를 쌓아두는 보급기지를 건설했기에 이를 지킬 병력도 필요합니다.”

“적지에서 작전하는데 민간인을 보급에 동원할 수는 없겠지. 군령이다! 조선군은 오늘부터 당장 군량 지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하라.”

강홍립과 정호서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순식간에 의사를 교환했다. 그리고 정호서가 읍을 한 다음 이민호에게 고했다.

“군령이라면 받들겠습니다. 다만 군량 지급을 절반으로 줄이면 군졸들이 불만을 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아뢰옵니다.”

“고산국 원정군이 보유한 보급품 일부를 넘겨주겠다. 군졸들에게 매 끼니에 먹는 밥의 양을 반으로 줄이는 대신 고기와 생선을 먹도록 명하라.”

“그렇다면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전하.”

이민호의 지시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말과 비슷했지만, 고산국 원정군은 고기와 생선을 비롯해 쌀을 대체할 보급품이 풍족해서 나눠줄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밥과 장 위주의 식사를 하던 조선군에게 식단을 바꾸라는 명령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전쟁 중에 보급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군졸들이 큰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전하! 듣자하니 적 기병 주력이 명군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동로군이 빠르게 이동해서 후금의 수도를 치는 것이 어떨지요?”

“도원수! 동로군은 보병이 주력이라 길게 늘어진 채로 이동하는 중에 적에게 습격을 받으면 방어하기 곤란하오. 그리고 여진족에게 수도란 별 의미 없는 곳이오. 후금은 수도를 미끼로 우리 원정군을 끌어들이려 했고, 그 의도는 성공했소.”

“알겠습니다. 전세가 확실해지거나 적이 몰려올 때까지 국왕전하께서 지시한 대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진채를 강화하겠습니다.”

매우 신중한 성격의 강홍립이 빠른 기동과 공세 유지를 제안한 것이 특이했다. 그러나 후금은 척후를 사방에 흩어놓아서 동로군의 움직임을 손금 보듯이 세세히 알고 있었다. 만약 동로군이 허투알라를 치려고 섣불리 움직였다간 옆구리부터 뜯겨 나가게 될 것이다.

현재 산과 숲을 돌아다니며 동로군의 전진 속도를 늦추려고 시도하는 여진족 전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말을 타고 다녔다. 눈 쌓인 숲 속의 전투에서 구르카 용병들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것은 후금군의 기동력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총병은 내게 할 말이 있소?”

“아닙니다. 지당하신 분부이십니다, 대인. 허투알라에 후금 추장의 집이 있지만 목책 안팎에 겨우 4, 5천 명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말이 수도지 여진족들이 언제든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번 원정에서 허투알라가 전략적 목적이란 말이오.”

“물론 경략도 여진족에게 수도가 의미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적 수도를 점령해야 원정군이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중요한 목표입니다.”

원정군 입장에서는 후금군의 주력인 팔기를 격파하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누르하치가 기병으로 이뤄진 팔기의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전투를 회피하고 도주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보병으로 이뤄진 동로군이 추격할 수 없으므로 허투알라를 점령하는 것이 동로군이 기대할 만한 유일한 전공일 수 있었다.

- 타타탕!

먼 곳에서 총성이 연속 울렸다. 동로군의 행군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투입된 후금군과 이에 맞서는 구르카 용병들이 숲에서 전투를 벌이는 소리였다. 지난 10여 일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이제는 군량을 옮기는 조선군 치중병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명군도 보급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소. 당분간은 고산국 원정군에 보급 일부를 의존하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헌데 고기나 생선보다는 혹시 두부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조선군에 부탁해보시오. 말먹이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들어줄 것이오.”

어찌 된 셈인지 고기와 생선이 장과 두부보다 인기가 없었다. 중국인과 조선인들은 문화인이라서 그런지 천연식품보다는 가공식품을 선호하는 듯했다. 명군과 조선군은 부족한 보급품을 나눠 쓰면서 후금의 공세에 대비하기로 했다.

지난 며칠 동안 후금군이 밤마다 끊임없이 야습을 가해왔으나, 구르카 용병이 외곽에서 요격하고 병참선을 지키는 임무에 투입된 큐슈 기리시탄군이 야습을 막아내면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후금의 지연 부대가 소수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북로군과 서로군이 패했더라도 적 병력을 최대한 줄여줬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북로군과 서로군은 후금 팔기 6만기를 상대하다가 패했지만 우리는 보병을 포함해 10만이 넘는 대군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오. 허투알라가 여기서 가깝고 원정군 중에서 우리만 남았으니 후금이 최대한의 병력을 동원할 것이오.”

유정이 기대한 것과 달리 북로군과 서로군을 섬멸한 후금 팔기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6만에 달하는 기병이 지금도 지축을 울리며 남하하고 있을 것으로 이민호는 예상했다.

- 타탕! 탕!

“어쩐지 총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허투알라를 향해 북진하면서 고산국 원정군 지휘부는 구르카 용병을 소대나 분대 단위로 분산시켜 임무 구역을 할당했다. 후금 지연부대가 비슷하게 소규모 병력을 운용했기에 이에 맞춘 것이었다. 구르카 용병들은 비슷한 숫자의 후금 기병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나, 분산된 탓에 감당할 수 있는 적 병력에 한계가 있었다.

“전하! 적의 기습입니다! 적 기병 600기가 구르카 용병들의 경계망을 뚫고 조선군 진영으로 돌입합니다!”

여진족 기병 600기가 북쪽에서 나타나 좌측에 배치된 조선군을 향해 말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주둔지 건설을 지휘하던 조선 원정군 좌영장, 선천 군수 김응하가 사수와 살수를 급히 배치시키는 사이 포수들이 먼저 사격자세를 잡았다. 사수와 살수의 배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김응하가 사격 명령을 내렸다.

“포를 놓아라!”

- 타타타탕!

조선군 좌영이 허연 연기로 뒤덮이는 순간 후금 기병의 선두에서 달려오던 말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쓰러졌다. 쓰러지는 말에서 후금 기병들이 서둘러 벗어나는 순간 화살 천여 발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말과 갑옷 입은 기병을 가리지 않고 화살이 날아가 박혔다.

“의외로 반응속도가 빠르네? 전령! 조선군 좌영 지휘관에게 가서 후금 포로가 몇 명 필요하다고 전해라.”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가 전투 지휘 중인 김응하에게 이민호의 명령을 전했다. 김응하가 이쪽을 잠깐 쳐다보더니 직접 활을 들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매달린 시복에서 화살을 연속 뽑아 날렸다. 총탄이나 화살에 맞은 말을 잃고 뒤돌아 뛰던 후금 기병 세 명의 허벅지에 거의 동시에 화살이 꽂혔다.

“명궁이다!”

- 두두두두두~

이민호가 감탄하는 순간 후금 기병 수백 기가 좌영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살수들이 장창을 앞으로 뻗는 순간 선두에서 달리던 후금 기병의 말들이 놀라서 달리기를 멈췄다. 몇몇 후금 기병이 활을 쏘았으나 좌영에서 훨씬 많은 화살을 날려 후금 기병에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 타타타타탕~

그 사이 재장전을 마친 포수들이 앞으로 나가 조총을 발사했다. 조선군 살수들이 들이민 장창에 막혀 전진도 후퇴도 못하고 있던 후금 기병들이 다시 우수수 낙마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후금 기병이 북쪽으로 도주했다.

“전하! 좌영장이 바친 포로 세 명을 끌고 왔습니다.”

“아주 단단히 묶었군 그래.”

전령이 데려온 포로들은 저마다 허벅지에 화살이 꽂혀 있었다. 과다 출혈로 인해 포로들이 대답도 못하고 죽을까봐 군의관에게 치료를 시키면서 심문했다. 통역은 호위대장 선영이 맡았다.

“너희 지휘관 이름은 뭐냐?”

“어, 그게.”

- 타앙!

아주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후금 포로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픽 고꾸라졌다. 선영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다른 포로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이민호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순간 그 포로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니루어전은 토보오입니다!”

“니루어전은 니루의 어른, 주인, 대장을 뜻합니다, 주인님. 적 병력이 약 600기인 것으로 보아 2개 니루가 합류한 것 같습니다.”

“잘 알았다. 선영이 포로들에게 아는 것을 다 말해보라고 해.”

“칸은 허투알라에 도착한 즉시 저희들을 선발대로 삼아 먼저 이쪽으로 보냈습니다. 뒤이어 다르한 히야가 이끄는 선봉대 천여기와 암바 버일러 다이샨, 망굴다이 버일러, 아민 버일러, 홍타이지 버일러가 이끄는 구사가 먼저 이곳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심문을 하는 도중 니루어전 토보오는 병력 절반을 잃고 후퇴해서 팔기의 선발대 다르한 히야의 군세에 합류했다. 그러나 다르한 히야는 멀리서 이쪽을 견제하는 태세만 갖추었고, 이어서 누르하치의 아들 다이샨과 홍타이지가 병력을 이끌고 속속 도착했다.

“칸은 직접 움직이지 않을 예정인가?”

“칸은 승리를 축하하는 투우 우웨세메 행사를 지낸 다음 출정할 예정입니다.”

여진에도 조선이나 몽골처럼 군 승리를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둑제 비슷한 관습이 있었다. 원정군 사로군 중 2개 군을 격멸하고 1개 군을 후퇴시킨 후금은 완전한 승리를 위해 동로군을 노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큰 전투가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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