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59화 (808/1,000)

00859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96. 1619년 사르후 전투

“도원수와 원정군이 이미 도강을 마쳤다고요?”

“그렇습니다, 국왕전하. 경략이 보낸 헌패를 받고 황급히 강을 건넜습니다. 총병 유정과 유격 교일기가 본진에서 도원수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고산국 원정군을 이끌고 의주에 상륙한 이민호는 창성에서 순변사 우치적을 만나 조선군이 이미 출발했음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조선군 원정군의 지휘는 이민호가 맡기로 했으나 전체 병력 이동 상황의 조정은 여전히 경략 양호가 맡았다. 그리고 이민호가 조선과 명나라의 장수들을 직접 만나 지휘권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경략 양호가 동로군을 지휘하도록 합의가 돼 있었다.

명나라 관료들의 빨리빨리 병이 깊어서 그런지 경략은 예정일보다 며칠 일찍 조선군 병력을 이동시켰다. 명군과 같이 일하다 보면 느긋하다가도 갑자기 빗발치듯 독촉을 해대서 동맹군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흔했다. 조선 원정군은 압록강변에서 몇 달 동안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갑자기 경략의 명령을 받고 10일치 양식만 지고 서둘러 강을 건넜다면서 우치적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순변사도 아시겠지만 명나라 장수에게 휘둘려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소. 작전이 시작되면 조선군도 본작이 직접 지휘할 테니 순변사는 걱정하지 마시오.”

“국왕전하만 믿겠습니다.”

“그런데 척후나 군량 운송은 누가 담당하지요? 그리고 조선군이 사용할 군량은 지금까지 얼마나 운송했소?”

“강 건너부터는 전 부사 이찬이 영장으로서 기병과 치중대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분호조에서 군량 1만 2천 석을 강 건너까지 운반했습니다. 눈이 내려 땅이 질고 강에는 얼음이 덜 녹아서 수로를 이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조선 도량형에서 백미 1석은 군졸 1인의 40일치 군량으로 계산된다. 군량에 한해서 백미 1석은 장정 한 명이 일 년 동안 먹는 양식이라는 기준에서 멀리 벗어났다.

그런데 <북도 제승방략>에 따르면 군졸 1인은 기마 1필과 복마 1필, 그리고 종인(從人) 2인을 대동한다. 조선군은 군졸 1인이 세 사람과 말 2필로 구성돼 중세 유럽 기사와 비교할 만한, 유지비가 비싼 군대였다.

군졸 1인에게 매일 쌀 3승, 기마에게 죽미 큰되로 1승, 종인 2인에게 쌀 4승과 콩 3승, 복마는 콩 2승을 지급하므로 군졸 1인을 기준으로 매일 쌀 8승과 콩 5승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서 군졸 1인당 지급하는 10일치 군량이 쌀 1석 1두와 콩 10두에 달한다. 조선군 원정군이 1만 3천이므로 군량 1만 2천 석이라면 아직 10일치 군량밖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군량 운송이 늦어서 걱정이오. 우리도 바로 출발하겠소. 후금 기병이 압록강을 건너 보급로를 위협할지도 모르니 후방을 잘 부탁하겠소.”

“후방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무운을 빕니다, 전하.”

우치적이라면 임진년에 경상우수영 소속 만호로서 전공을 세웠던 장수였다. 실록이나 TV 드라마에서 맹장으로 묘사됐지만 1597년에 순천부사로서 삼도수군 연합함대의 중군장을 맡은 것으로 보아 최소한의 지휘 능력은 갖췄다고 봐야 했다. 물론 이때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었다.

고산국 원정군이 공병여단이 설치한 부교를 통해 빠르게 강을 건넜다. 선두에 기병 제1 여단과 구르카 여단, 그리고 공병여단을 앞세워 조선군 본진을 따라잡기로 했다.

제1 보병사단과 제3 보병사단, 그리고 스위스 용병 2연대와 큐슈 기리시탄군 2개 연대가 행군로를 따라 빠르게 북상했다. 구르카 제1 여단은 예하 대대에게 교대로 진격로 주변을 수색시키면서 전진했다.

“파발이오! 길을 비키시오!”

말을 탄 조선 파발꾼이 진창길을 달리며 외쳤다. 하얀 동계 위장복을 입은 고산국 원정군 병사들이 급히 길을 비워주었다.

진격로는 고산국 원정군 외에도 조선군 치중대와 척후 기병, 한성을 오가는 파발로 몹시 붐볐다. 조선군 치중대가 곳곳에서 진창에 빠진 수레를 끌어내느라 온몸이 흙투성이로 변했다.

이런 식이라면 압록강 건너 후금의 영토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기병여단과 함께 선두에 선 공병여단이 중장비를 동원해 험로 지대를 개척했기에 길이 험하고 보병 다수를 대동했어도 진군이 빠른 편이었다.

“명군이 요양을 출발했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원래 기동 계획이긴 하지만 병력을 지나치게 분산시킨 것 같습니다.”

“진격로를 나눠 행군시켜서 약속한 날짜에 전장에 동시에 도착토록 하겠다는 작전이야. 잘 되면 이상적이겠지만 기동성이 높은 후금 기병에게 각개 격파당할 우려가 있어.”

이민호는 행군 대열이 쉴 때마다 참모들과 함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향후 작전을 논의했다. 그런데 이민호가 보기에도 명군의 부대 기동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략 양호는 명군 부대를 북로군과 서로군, 남로군과 동로군의 넷으로 나눠, 고산국 원정군과 조선군이 포함된 동로군을 제외한 삼군을 요양성과 허투알라 중간 사르후에서 집결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하 부대의 진격 속도가 제각각인 것이 가장 우려스러웠다. 그리고 조선군과 고산국 군대, 총병 유정의 1만 이하 병력으로 구성된 동로군은 사르후에서 집결하지 않고 직접 허투알라 방향으로 진공하는 중이었다. 만약 누르하치가 지도상으로 본다면 동로군이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후금이 산해관 총병 두송이 지휘하는 서로군을 사르후 전투를 통해 격멸하고, 다음 날 상간하다 전투에서 개원 총병 마림이 지휘하는 북로군을 패주시킨다. 그리고 이틀 후에 요양 총병 유정이 이끄는 동로군을 아부달리 전투에서 전멸시킨다. 요동 총병 이여백이 지휘하는 남로군은 그 사이에 도주하고, 마지막 전투가 조선군과 벌인 부차 전투 혹은 심하 전투였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병으로 기병이 주력인 후금군을 포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신경 쓸 것 없어. 우리는 제 날짜에 허투알라에 도착하면 돼.”

진군 도중에 큰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양마전을 지나 계속 북상해 전두산에 도착하기 직전에 고산국 원정군 본진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왕전하!”

“오! 도원수! 어서 오시오.”

조선국 원정군 총지휘관인 도원수 강홍립과 부원수 김경서가 말에서 내려 이민호에게 예를 갖췄다. 부원수 김경서는 임진왜란 때 경상도에서 활약한 장수 김응서였다.

“경략 대인이 몹시 독촉하는 바람에 국왕전하를 기다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상관없소. 선두 부대의 상황은 어떻소?”

“계곡이나 험로마다 후금군이 거대한 나무들을 쓰러뜨려 놓아 일일이 치우고 가느라 진격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아직 적은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소. 오늘은 이미 늦었고, 내일부터는 고산국 군대에 선봉을 맡기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전하.”

임진왜란과 일본 정벌 때 이민호를 제독 총병관 대인이라고 불렀던 조선 관료들이 이제는 대놓고 전하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이에 우호관계가 지속되면서 한 편으로는 안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고산국과 조선이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분리되고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다.

- 타탕! 타앙~

갑작스런 총소리에 이민호와 조선 장수들이 동쪽 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성은 아주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강홍립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산에 적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만, 후금군도 조총을 갖춘 모양입니다.”

“구르카 용병이 쏜 총소리요. 후금군이 치중대를 습격하려고 산에 숨어있었던 모양이오. 그런데 도원수와 구면인가요? 낯이 익은 것 같소.”

“전하께서 평안도에서 선묘 대왕을 알현하셨을 때 제가 가주서로서 사초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때 정식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소.”

조선군 도원수 강홍립이나 경략 양호나, 조금 나중에 활약할 원숭환이나 명나라와 조선의 최고 지휘관은 항상 문관들이었다. 무관에 대한 경계와 통제의 필요성은 예나 현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진사 출신인 양호와 원숭환은 군직을 맡기 전에 군을 지휘한 경력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강홍립은 이전에 함경북병사로서 군과 민을 잘 다스렸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도원수로 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조선에서 문관이 병마절도사가 된 사례는 드물지 않은 편이었고, 임진왜란 개전 직후에 김성일이 잠시 경상우병사를 제수 받은 적이 있었으나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일종의 벌칙이었다.

“어쨌든 좁은 길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진군에 방해를 받을 것이오. 빠른 시일 내에 부차나 심하에 도착해야겠소.”

“후금의 장기인 기병의 기동력이 극도로 발휘될 넓은 지역이 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본국이나 조선이나 총기 위주인데 들판이라고 겁날 게 뭐가 있겠소? 그런데 어째서 유독 동로군만 허투알라로 직접 진군하게 됐는지, 그리고 예정보다 빨리 진군하는지 도원수는 아시오?”

아무리 산악지대에 본거지가 있더라도 후금의 주력은 기병이었다. 그러나 나무를 넘어뜨려 길을 막고 멀리서 소리를 질러 긴장시키는 등 지금까지 한 짓을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조선군은 유능한 산악 보병과 유사하게 행동하는 후금군을 진격로 주변에서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바로 그 문제를 제가 유 총병 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유 총병과 양 경략은 예전부터 사이가 나빠서 양 경략이 유 총병이 죽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유 총병의 군대에는 대포가 한 문도 없고 무기도 허술한 편이었습니다.”

“군략에 개인감정을 결부시키다니. 양 경략을 그렇게 안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소.”

“외람되오나 혹시 명나라에서 국왕전하를 위기에 빠뜨리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걱정 마시오.”

“저도 다른 곳에서는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전두산을 지나고 압아하를 건너 배동갈령을 넘었다. 고산국 원정군은 빠르게 진군해 우모령을 앞두고 명나라 군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총병 유정이 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이민호를 마중 나왔다.

“요양 총병관 유 모가 제독 대인을 뵙습니다.”

“반갑소. 그런데 어찌 이리 급히 진군하는 게요? 병참선이 길게 늘어지는 바람에 조선군이 굶고 있다고 들었소.”

“요양에 계신 경략께서 이렇게 매일 같이 영전(令箭)을 보내 독촉하는데 소관이 어찌 하겠습니까?”

“유 총병! 우린 같은 배를 탔소. 그렇지 않소?”

작은 삼각 깃발이 달린 화살이 영전이었고, 명령 전달의 증표로 사용됐다. 경략이 유정이 죽기를 바라는 건지 이민호가 죽기를 바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로써 적지에서 고립된 동로군은 공동 운명체가 됐다. 북로군에 예허부 기병 1만이 참가한 외에 동로군만이 조선과 명나라, 고산국 3국 군대가 연합한 부대였다.

“그러하옵니다. 사실 고산국 원정군만으로 원정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로 그렇소.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동로군 전체를 지휘하겠소. 경략에게 유 총병이 그렇게 통보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제야 한 시름 놓겠습니다.”

총병 유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민호가 도착하면서 동로군 전체의 지휘권을 인수하기로 합의했었는데 경략 양호가 방해한 셈이 되었다. 그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인 후금보다 더 위협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경략이 우리를 미끼로 썼다면 우리도 경략이 지휘하는 군세를 미끼로 쓰면 될 것이오. 총병은 휘하 병력에게 진채를 내리도록 명하고 조선군이 당도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라고 하시오.”

“감사히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수레는 무엇이옵니까?”

“총병에게 주는 선물이오. 이번 원정에서 올린 전과는 고산국과 명군, 조선군이 공평하게 나눕시다. 3분의 1이오.”

명군이나 조선군과 공동작전을 수행하면 적의 수급을 모아야 했다. 유정이 수레에 가득 쌓인 수급을 보면서 마치 식인종처럼 입맛을 다셨다.

“감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후금군의 흔적만 봤지 얼굴은 구경도 못해봤는데 수급은 어찌 구하셨습니까?”

“주변 숲에 후금군이 잔뜩 숨어 있었소. 나는 숨어서 훔쳐보는 인간을 몹시 싫어해서 다 잡고 말았소.”

“건주 여진 놈들은 눈 덮인 산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잡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구르카 용병은 눈 덮인 고산준령에서도 날아다닌다오.”

스위스 용병들도 대부분 알프스 산맥 출신이라 산에서 기동이 빠른 편이었다. 고산국 군대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산악 행군 훈련을 해서 마찬가지로 산악전에 강했다.

다만 큐슈에서 데려온 기리시탄군 2개 연대는 산악전에도 약하고 추위에도 몹시 약해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심지어 이민호보다 추위에 약해서 괜히 데려왔다 싶은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진군 과정은 한 회로 간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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