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47화 (796/1,000)

00847  94. 1615년~1617년  =========================================================================

1617년의 새해가 밝았다. 매년 그랬듯이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멀리 유럽 여러 나라와 루스 차르국에서 보낸 신년 축하 사절들이 왕궁의 대전을 가득 채웠다. 이들 중에서 특별히 화려한 복장을 한 외교 사절이 이민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모든 루스인들의 차르를 대리하여 신년 축하 사절 미하일 로마노프가 고산국 국왕전하께 신년 하례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네, 미하일 표도로비치. 공이 모친과 함께 모스크바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네.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외교부에서 일하는 줄은 몰랐어.”

이민호는 갓 스무 살이 된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를 자세히 살폈다. 고산국이 동란의 시대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실제 역사처럼 표도르가 반란군에 의해 죽었더라면 차르가 됐을 미하일 로마노프가 루스 차르국의 신년 사절 대표로 고산국에 방문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차르로 추대해도 내키지 않아 망설였던 미하일 로마노프였지만 외교관은 적성에 맞는 모양인지 열정적으로 일했다. 차르 표도르와 미하일 로마노프는 정치적 경쟁자라기보다 후원자와 지지자에 가까운 관계였다.

“제게 관심을 기울여주시는 고산국 국왕전하의 은혜가 한량없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차르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저와 불쌍한 모친이 국가반역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차르께서는 병든 모친을 위해 어의를 보내주셨고 어리석은 저를 위해 학자들을 보내 교육을 시켜주셨습니다.”

미하일 로마노프와 그의 모친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르로 있을 때 부친의 반역죄 혐의로 인해 1600년에 모스크바에서 추방됐다.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귀족의 가족들이 항상 그렇듯 로마노프 모자도 벨로체로의 수도원에 갇혀 살다가 표도르가 차르로 즉위하면서 얼마 후에 사면을 받았다.

차르 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정적에게 은혜를 베풀 정도로 차르 표도르는 대범한 인물이었다. 바로 그 차르가 이민호의 옥좌 옆에 앉아 있다가 미하일 로마노프에게 말을 걸었다.

“미샤! 설마 내가 듣는 자리라고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차르께서는 제발 좀 가만히 계십시오. 아무리 차르라지만 신년 축하 사절단은 제가 대표입니다.”

미하일 로마노프가 당차게 군주의 질문에 대꾸했다. 풀이 죽은 표도르는 괜히 이민호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쳇! 알았어. 힘드실 테니 이반은 이만 제게 주십시오, 전하.”

“이봐, 차르. 고산국이나 조선에서는 말일세. 남자가 일정 기간 동안 처가살이를 하면서 그 자식도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네. 외가인 강릉에서 유년을 보낸 율곡 이이도 태백산맥과 동해바다를 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더 큰 사람이 됐지.”

“그래도 이반은 루스 차르국의 후계자입니다. 어서 제게 넘기십시오.”

“고산국이 의료와 교육 수준이 높으니 이곳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딱 열두 살까지만 고산국 왕궁에서 기르세. 어떤가?”

품에 안긴 아기가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이민호가 강보를 안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아기가 앙증맞도록 작은 손을 뻗어 별로 길지도 않은 턱수염을 잡아당기는데도 이민호는 입을 헤벌쭉 벌리며 좋아했다.

“아바마마!”

“에에. 마르그레타. 잠시만 더 안고 있으면 안 될까?”

“주인님!”

“알았어.”

마르그레타가 두 손을 뻗고 혜영이 다그치자 이민호가 두 말 않고 아기를 넘겼다. 그리고 이민호와 표도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고산국 왕실의 권력 서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산국과 루스 차르국의 우호 관계는 차르의 혈통에 남아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그럼 좋겠지.”

미하일 로마노프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고, 이민호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정략결혼은 아닐지라도 차르 표도르의 권력이 고산국에 크게 의존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잉그리아를 두고 스웨덴과 싸우지는 않나?”

“일부 영토를 남겨두고는 대부분 수복했습니다. 고산국에서 넘겨준 소총의 화력도 강했지만, 스웨덴이 적극성을 띄지 않아 영토 수복 작전을 의외로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스톨보보에서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해 실무자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루스 차르국이 소규모 군사작전을 여러 번 전개했다. 동란의 시대에 스웨덴이 점령한 지역들을 수복하는 작전으로서, 명백히 전쟁인데도 뜻밖에 차분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스웨덴은 카를 9세 시절부터 루스 차르국 서부 영토를 획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였다. 루스 차르국과 유럽 사이의 교역로를 차단해 경제적 이득을 독차지하기 위한 시도였다. 보리스 고두노프 사후 차르를 새로 선출할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의 아들뿐만 아니라 스웨덴 왕자들도 차르 후보에 올랐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라도가 호수부터 핀란드 만을 거쳐 리투아니아까지 17세기 내내 스웨덴에 의해 루스 차르국의 교역로가 차단됐다. 그러나 이민호가 스톡홀름까지 가서 연말연시를 보내며 차분히 설득한 결과 루스 차르국의 숨통을 터줄 수 있었다.

“덴마크뿐만 아니라 스웨덴과도 잘 지내도록 하게. 교역으로 인해 얻은 이득을 외국에 나눠주는 게 아까운 것만이 아니야. 그 이익 때문에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그렇지 않아도 유럽과의 교역에 스웨덴 상선을 주로 고용하는 편입니다. 모피와 소금도 덴마크와 스웨덴에는 조금 더 싸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미하일 자네가 차르보다 믿음직하군.”

“황공하오나 방금 그 말씀은 저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제 목줄을 죄는 말씀 같습니다.”

“자넨 이미 훌륭한 외교관이며 정치가로군. 안심이 되네. 앞으로도 차르를 도와주도록 하게.”

“예, 전하.”

고산국과 차르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루스 차르국에 정치적 격변이 생길 확률은 낮았다. 마르그레타의 주도로 갖가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루스 차르국 민중들 사이에서 표도르와 마르그레타뿐만 아니라 아들 이반의 인기도 한없이 높아졌다.

“다음은 프랑스 국왕의 모후이시며 섭정인 마리아 드 메디시스 왕비전하께서 보낸 신년 축하 사절입니다.”

호위 1부장이 크게 소리친 다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인사를 하지 못한 외국 축하 사절들이 절반도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새해를 축하드리며 고산국 국왕전하의 만수무강을 비옵니다.”

“자네 자주 보는군. 이제 멀미는 안 하나?”

“국왕전하의 은덕으로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 땅에서 보낸 시간보다 고산국 여객선에 탑승한 시간이 더 긴 것 같습니다.”

프랑스 외교관이 은 접시에 친서를 올려서 이민호에게 바쳤다. 내용은 안 봐도 뻔해서, 더 좋은 보석과 옷을 사겠다는 구매의사가 분명했다. 지난번에 시베리아에서 얻은 다이아몬드 중에서 하나를 왕비에게 아주 비싸게 팔아먹었다.

그러나 마리아 드 메디시스는 겨우 몇 달 뒤인 4월 하순에 국왕 루이 13세가 일으킨 궁정 쿠데타에 의해 연금된다. 고산국 입장에서는 VIP 고객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었다. 법적으로 미성년 국왕은 국가의 주권을 섭정에게 일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섭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연금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사가 아닌 쿠데타에 해당한다.

3월 말부터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배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했더니 함대를 결성해 4월 초순에 필리핀 마닐라를 공략하러 나섰다. 실제 역사에서 4월 14일 마닐라 북서쪽 바다에서 2차 플라야 혼다 해전이 발생한다. 그리고 에스파냐 해군이 승리해 네덜란드 함대를 쫓아낸다.

하지만 이 해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고산국의 해상세력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해전에 참가하려던 네덜란드 상선들은 고산국 해군도 아니고 해안경비대 경비정들에 의해 나포됐고, 선장들이 포박을 당한 채 왕도로 끌려와 알현실에서 무릎을 꿇었다.

“고산국 앞마당에서 감히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다니, 네놈들의 배포가 꽤나 두둑하구나.”

“국왕전하! 홀란드는 강대국 에스파냐를 상대로 수십 년 동안 독립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약소국 홀란드를 도와주기는커녕 강대국의 횡포를 용납하시렵니까?”

이민호의 뇌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항일독립군이 언뜻 떠올랐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공식 명칭 ‘지방 연합’은 네덜란드 북부에 근거지를 두고 항일독립군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네덜란드가 전통적인 해상 강국인 만큼 ‘바다의 거지 떼’를 비롯해 해상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상선과 선원들이 언제든 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했다.

“네덜란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겠어. 그래도 유럽에서나 싸우지 왜 아시아까지 와서 그러는데?”

“마닐라는 고산국 및 중국과 교역을 하는 에스파냐의 핵심적인 돈줄입니다. 마닐라에 타격을 입혀야 에스파냐의 전쟁 수행 능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너희들은 상선을 타고 교역하러 다니는 선장과 선원, 그리고 상인들이다. 네덜란드 독립을 위한 군사 전략이라고? 여기 정규군이 어디 있나? 너희들이 마닐라를 점령해서 약탈밖에 더 하겠어?”

마닐라의 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워낙 유명해서 오랫동안 많은 적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명나라 해적 리마홍이나 중국 상인들의 여러 차례에 걸친 반란을 비롯해 브루나이나 홀로 섬 해적들도 걸핏하면 함대를 몰고 와서 마닐라를 약탈하려 했다. 에스파냐 인들이 괜히 마닐라 항구 바로 옆에 성벽 도시 인트라무로스를 쌓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 마닐라를 1610년부터 네덜란드 상선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물론 독립전쟁이라기보다는 동남아시아 전체의 교역권을 두고 두 나라가 다투는 전쟁이었다. 특히 마닐라를 점령했을 때 얻을 전리품이 선원들을 독립군을 빙자한 해적으로 변신시켰다.

“약탈은 군자금 마련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입니다. 전하께서 저희들에게 어떤 협박을 가하더라도 홀란드 독립을 위한 저희 선장과 선원들의 뜨거운 마음은 결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알았다. 그럼 여기서 선택을 해. 계속 싸우겠다는 놈들은 광산에 보내 강제 노동을 시키겠다. 상업에만 전념한다면 이번 일은 눈감아주지.”

“저희들은 생업이 상인과 선원들이니 앞으로 상업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만 나가. 다시 한 번만 더 걸리면 광산이 아니라 참수형이다.”

왕도에 붙잡혀온 네덜란드 선장들과 선원들의 사진을 찍고 지문과 인적사항을 등록한 다음 석방해주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강제로 수염을 깎았는데, 차라리 목을 베라는 식으로 반발이 몹시 심했다고 한다.

1617년 봄에 절강에서 다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마침 후금의 사주를 받은 동몽골 남부 지역 부족들, 현대 지명으로 내몽골 동부 지역의 몽골족들이 만리장성과 오르도스 지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바람에 명나라가 충분한 병력을 반란 진압에 동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주 그랬듯이 고산국에서 2개 사단을 동원해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다. 이민호도 모처럼 반란 진압 현장에서 명목상 지휘권을 행사했다. 명나라 장수가 고산국 군대를 포함한 전체 진압군의 지휘권을 맡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에서 조선 정승과 판서들이 접반사나 사후대신으로 명나라 장수들을 따라다녔듯이 남경의 고위 관리들이 이민호와 군단장 감불의 접반사를 맡았다. 남경 병부시랑이라는 사람이 이민호의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남경 병부상서는 3년 전에 노환으로 별세했지만 황제는 빈자리가 된 병부상서를 새로 임명하지도, 기존 관리를 승진시켜주지도 않아 병부시랑이 병부의 최고 책임자였다.

“황상께서는 참 구두쇠이신 것 같소. 그렇지 않소?”

“험! 험! 대인께서는 전비 때문에 불만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절강에 널리 분포한 대인 소유 차밭에서 세금을 면제해주신 게 어딥니까?”

“당연히 황상의 은혜이지요. 하하!”

고산국이 여전히 명나라 부마국의 위치였지만 군대를 동원할 때 공짜는 없었다. 이민호는 홍콩을 운영하면서 나오는 이익에서 일부를 고산국으로 넘겨주길 바랐다. 그러나 명나라 황제는 누적 금액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지만 홍콩이 아닌 절강의 이민호 소유 차밭에 면세 칙허를 내렸다.

차밭에 부과되는 세금은 명나라의 국세로 징수되던 것이었고 홍콩에서 나오는 이익은 황제의 내탕금으로 들어갔다. 황제부터 이익의 사유화, 손해의 사회화를 하는 마당에 고관대작들이 부정부패를 멀리할 리가 없었다. 이로 인해 고산국 군대가 명나라에서 작전하는 것이 보급과 정보 문제 등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버거워졌다.

============================ 작품 후기 ============================

또 늦었습니다. 1618년부터 여러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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