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45화 (794/1,000)

00845  94. 1615년~1617년  =========================================================================

프랑스 국왕 앙리 4세가 어린 아들과 외국 출신 왕비를 남기고 1610년에 서거하자 필연적으로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났다. 한 편은 미성년인 아들 루이 13세의 섭정권을 장악한 마리아 데 메디치, 즉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였고 총신 당크레 후작 콘치노 콘치니가 군대를 이끌었다. 다른 쪽은 앙리 4세의 조카인 콩데 공 앙리 드 부르봉, 통칭 앙리 2세였으며 위그노 계열의 영주들이 가담해 내란 규모가 커졌다.

내란을 평화적으로 끝내기 위해 1616년 5월 3일에 루당 조약이 맺어졌다. 앙리 2세는 루이 13세의 왕위계승을 승인하고 마리 드 메디시스는 반란을 일으킨 앙리 2세와 그 지지자들을 사면하면서 배상금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조약 체결 이후에도 왕비의 총신 콘치니가 이탈리아 플로렌스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귀족들이 계속해서 반란을 시도했다. 외국 출신 왕비가 섭정을 맡고 실무자인 총신도 외국인이며, 왕비가 가톨릭과 신교도 사이를 분열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교도 귀족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삼부회 의장인 앙리 2세가 콘치니를 귀족들로부터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다고 선언하자, 마리 드 메디시스가 음모를 꾸미고 루이 13세도 이 음모에 가담했다. 루이 13세는 9월 1일에 앙리 2세를 왕궁에 초청한 다음 왕궁 근위대를 동원해 앙리 2세를 체포했다.

그러자 앙리 2세의 지지자들이 바로 그 날 파리를 탈출해서 군대를 모아 다시 파리로 진군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루이 13세가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콘치니를 처형하고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유폐할 때까지 내전이 지속됐다. 1619년에 유폐된 성에서 탈출한 마리 드 메디시스는 루이 13세의 동생 오를레앙 공 가스통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다.

“전대 국왕의 왕비로서 아들의 섭정을 맡은 분이 어쩌면 이렇게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 수가 있나요? 종교와 신분, 지역과 직업으로 프랑스 백성들을 분열시켜 서로 싸움을 시키고 있어요. 마치 나라가 망하든 말든 권력만 쥐면 된다는 식이에요.”

“프랑스의 대비께서는 사치와 권력욕의 화신입니다. 성인이 안 된 국왕 아들을 제거하고 여왕으로 등극하려고 나설까봐 걱정입니다. 지금도 하는 일이라곤 국가를 분열시키고 보석과 비싼 옷을 사들이는 것뿐입니다.”

“험! 험!”

프랑스 내전을 주제로 논의하던 국무회의에서 혜영을 비롯한 고관들이 마리 드 메디시스를 성토했다. 그러나 이민호 혼자서만 헛기침을 하면서 프랑스 왕비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다.

“국왕전하께서는 차마 고객을 비난할 수 없으신 거죠?”

“상도덕의 기본이오, 총리.”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는 낭비벽이 심했다. 앙리 4세에게 시집올 때 가져온 지참금 15만 파운드를 넘어 어디서 구했는지 30만 파운드나 동원해서 고산국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구매 물품 대부분이 보석과 비싼 의류 중심이라 고산국에 이익을 많이 남겨준 특급 구매 고객이었다.

“구매금액의 절반 이상은 프랑스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짠 돈이에요. 무역이 도덕관념과 상관없다지만 몹시 불쾌한 돈이라고요.”

“우리가 안 팔더라도 어차피 다른 나라를 통해 사치품을 사들일 것이오. 다른 나라에서 프랑스 왕실에 파는 사치품도 결국 고산국에서 생산한 것일 터, 우리에게 이익이 흘러들어오는 것은 마찬가지요.”

“전하께서 외국의 정치에 간섭을 자제하는 것은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내란이 격화될 경우 자칫 2천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인들이 큰 고통을 겪을 수 있어요.”

“내란이 곧 그칠 것 같으니 좀 더 기다려보시오. 그리고 프랑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우리가 군사적 개입을 할 권리는 없지 않소?”

유럽에서 종교 전쟁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는 시점이었다. 1613년에 끝난 율리히-클레베스-베르크 공작령 연합 계승전쟁을 30년 전쟁의 전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산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 통상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의 수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프랑스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고산국의 이익을 위해 내전에 개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위험한 발상인 것 같소, 총리.”

고산국이 강하다 하나 이민호는 제국주의 흉내를 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세계 정복이 알렉산더와 칭기즈칸을 잇는 사나이의 로망이라지만,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를 정복해서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고산국의 영역이 세계에서 가장 넓다 해도 대부분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었다. 중국과 인도, 오스만제국을 정복해 세계 통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곳곳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 명백하기에 세계 통일 제국을 유지하기 벅찰 것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다.

“덴마크가 침공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간신히 유럽에 만든 거점이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동맹을 체결한 만큼 당연히 군대를 파병해서라도 지켜줘야 할 것이오. 하지만 다른 나라가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개입할 이유도, 명분도 없소.”

덴마크 외에 다른 나라와 관련된 문제는 아직 결정된 바 없었다. 조만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겠지만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판에 섣불리 미리 결정해놓을 수는 없었다. 유럽에 전쟁이 날 경우에 대한 개입 여부는 상황 변화에 따라 결정하기로 미뤄두었다.

“국왕전하의 어지를 존중하겠어요. 전하께서는 지금까지 판단이 틀리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니까요. 혹여나 나중에 판단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저는 전하의 뜻을 믿고 따르겠어요.”

“믿어줘서 고맙소, 총리.”

국왕 이민호 외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진 혜영이 이민호의 판단을 전폭 지지했다. 항상 이런 식이라서 어떤 정책이든 국무회의를 하거나 식사 중에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하더라도 이민호의 뜻대로 결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음 주제는 임신하거나 출산한 여고생을 위한 학교 시설 개선 문제에요.”

“헉! 아! 아니오.”

현대에서 살다 온 이민호는 청소년들의 성적 문란과 방종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주변국들에 맞춰 고산국도 성인 연령이 16세이다 보니 이 나이 이후에 임신하거나 출산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었다. 젊은 날 한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16세가 넘어서 정식으로 결혼하고 나서 임신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 여고생이 임신하거나 출산하면 못된 사고를 쳤다는 이유로 자의든 타의든 예외 없이 학교를 그만 두게 된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여학생들이 결혼하고도 고등학교에 계속 다녔다.

“정부에서는 국왕전하의 뜻을 받들어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가급적 19세 이후에 임신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사자들이나 그 부모들은 여자 나이 16세면 충분히 자랐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현실이 이러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임부, 그리고 산모와 아기를 위한 지원을 해줘야 해요.”

“맞습니다. 현재 학교마다 설치 완료된 수유실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임신하고도 학교에 다니다가 출산일 즈음에는 휴학을 하고 일정 기간 육아를 한 다음 복학했기에, 20세 넘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꽤 많았다. 교복이나 사복을 입은 앳된 여고생이 배가 남산만큼 부르거나, 여고생이 아기를 포대기에 업거나 유모차를 밀고 학교에 다닌다 해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그리고 만약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되는 성교육 시간에 낙태수술에 관련된 끔찍한 사진을 봤기에 낙태 결정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조선에 있을 때처럼 임신한 여성이 독한 약을 먹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건강과 목숨을 위협받는 경우는 대폭 줄어들었다.

“동네마다 탁아 시설이 있더라도 수유가 필요한 유아는 아무래도 산모와 함께 있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유아를 데리고 수업에 참가하면 수업 분위기를 해치거나 진도를 못 따라갈 우려가 있으니 산모 여학생들만 모아서 따로 반을 편성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산모 여학생이 한 학교에 20명도 안 되는데 학년마다 한 반을 편성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임신한 여학생까지 합하면 평균 30명은 됩니다. 물론 임부들은 출산일이 다가오면 중간에 휴학하겠지만 임산부들이 서로 도움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반에서 수업을 맡을 교사는 가급적 여성이 좋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아기와 교육은 국가의 미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산모가 교육받을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세요. 학교에 추가로 필요한 시설과 교사 증원은 중앙정부의 재정으로 처리하겠어요.”

이민호는 혜영과 대신들이 진지하게 토의하는 것을 그저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민호에게는 기상천외한 일이었으나 이 시대 상식에 비추어볼 때 합당한 정책 결정이었다.

“전하! 그 군용 고무 제품이 성병 예방뿐만 아니라 피임에도 효과가 탁월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것을 민간에 판매를 허용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군인들 중에서도 해외에 파병되는 원정군에 한해서 지급되는 성병 예방용 물품인데 말이오. 음. 백성들이 피임기구를 요구하던가요?”

적대적 지역은 물론 중립지역이나 우호적인 지역에서도 군인이 사창가에 드나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들떠서 사고를 칠 인간들이 반드시 있기에 부대 단위로 고무 제품을 나눠주었다. 일반적인 병사들은 지급받은 것으로 총구 마개 대용이나 바람을 불어넣은 다음 사격 표적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국가에서 출산을 적극 장려하는데도 일부 백성들이 피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조 판서가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앞선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임신을 기피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급적 19세 이후에 출산하라는 국가 시책에도 어울리기에 피임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19세 이후에 출산을 권장하는 시책 사이에 상충되는 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피임 기구의 도입이 절실한 것 같아요.”

혜영이 발언을 마치고 이민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민호는 먼저 강력한 인구 증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강간이나 간통, 근친상간 등 각종 성범죄를 합법화시키고 일부다처제를 의무화한 18세기 프로이센을 떠올렸다. 이민호도 건국 초기부터 인구 증가를 절실히 원했으나 고산국을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고무장화는 남성이 착용해야 하는 피임 기구이며, 동시에 남성의 성적 욕구를 제한하는 도구요. 도구 착용으로 성적 감각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소. 남성이 기피하기에 그것은 안전한 피임 기구가 결코 아니요.”

콘돔은 풍선 불듯이 불어서 장난감으로 사용할 때나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민호의 판단이었다. 아니면 사창가에서 성병을 옮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병원균이 아닌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성병도 있어서 콘돔을 착용하고서도 나중에 사타구니를 벅벅 긁는 경우도 있었다.

“김 박사! 보건국장이 예전의 그 발명품들을 설명하시오.”

“예, 전하. 이제 그것들이 필요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총리님과 대신분들께 설명하기 민망하오나 피임에 가장 적합한 도구가 있습니다.”

머리가 훌렁 벗겨진 보건국장이 T자 모양으로 생긴 자그마한 금속 도구를 내밀었다. 이것을 여성의 체내에 삽입하면 장기적인 피임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자궁 내 피임기구라고 설명하면서, 보건국장이 얼굴은 물론 머리까지 벌겋게 붉혔다.

“문제는 이것을 여성의 자궁 안에 삽입해야 하는데,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는 삽입 시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처녀에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은 부인에게도 시술하기 어려울 거여요.”

“험! 험!”

중요한 국사를 논의하는 중에도 곳곳에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삶은 문어처럼 머리가 빨갛게 변한 보건국장이 이번에는 알약 여러 개가 포장된 것을 내밀었다.

“이것은 경구 피임약입니다. 3년에 걸친 임상실험 결과 자궁 내 피임기구보다는 약간 낮더라도 다른 기구나 민간요법에 비해 월등히 높은 피임 성공률을 보였습니다. 단점으로는 복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약간의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고, 매일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용하는 부인에게 다른 문제는 없나요?”

“건강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복용자의 체질이 임신과 비슷한 상태가 되면서 여드름이 나거나 몸이 붓는 수가 있습니다만, 2, 3개월 복용한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왕실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약이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남성이 아닌 여성의 손에 쥐어주는 전환점이 되는 마법의 약이었다.

============================ 작품 후기 ============================

이틀 동안 못 올려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쉬어가는 편으로 생각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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