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44화 (793/1,000)

00844  94. 1615년~1617년  =========================================================================

민간에 자본이 꾸준히 축적되면서 좀 더 큰 사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얼마 전까지 단독 주택을 짓던 민간 건설업자가 10동 전후의 연립주택 단지를 지어 정부에 납품해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작은 식당을 경영하던 요리사가 제법 큰 외식업체를 차려 떼돈을 버는 식이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농민이 아닌 직장인 수가 급증하면서 요식업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났다. 번화가나 관광지뿐만 아니라 일반 주거지역에도 외식업체가 생겼고, 장사도 제법 잘 되는 편이었다. 세태의 변화에 부응해서 행정관청에서도 주택가로 건설된 지역 사거리에 식당이나 노천카페를 허가하는 경우가 늘었다.

변장한 채로 미행을 자주 하는 이민호가 이런 추세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가게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대신 다른 분야에 활용하려고 혜영과 협의했다.

“예? 주거지역 사거리에 위치해야 하고 가게든 식당이든 24시간 운영하면서 밤에도 남자 직원을 최소한 두 명 이상 둬서 범죄로부터 긴급 피난하는 곳으로 활용한다고요? 공중전화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 관광객이나 길을 찾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식당을 운영하면 이익이 나겠어요?”

“험! 적자가 나는 곳은 임대료를 내리거나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손실을 보전해줘야지. 물론 지금도 범죄율이 극히 낮지만 보다 안전한 밤거리를 만들 계획이야.”

“운동장이나 체육관 말고는 밤에 활동하는 사람 자체가 없어요. 천문대가 있긴 하군요.”

이민호는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24시간 편의점이 골목까지 들어와 영업하던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혜영은 그럴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했고, 이유가 있었다.

고산국에서는 관공서와 학교는 물론 공장과 기업들도 오후 다섯 시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대 유럽이나 미국처럼 해가 지면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야간 업소가 열려도 손님이 적을 거라는 뜻이었다.

“아리수 항이나 기차역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잡화점들이 있잖아. 큰 시장 주변에는 밤늦게까지, 아니면 새벽부터 영업하는 식당도 몇 군데 있어. 그런 가게들을 대형화, 일반화시키려는 거야.”

“수지 타산이 맞을지 모르겠어요. 파산할 위험이 있으니까 일단 몇 군데에서 국영으로 운영해보고 나서 안정적일 경우에 한해 가게를 민간에게 불하해주는 게 어때요?”

“또 그런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 죄다 국영기업이 됐어. 이익이 나는 가게가 싸게 불하될 리가 없잖아. 국영기업들이 이익을 충분히 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민간 부문을 키워줄 때가 된 것 같아. 위험도 민간이 감수하고, 이익도 민간이 독차지하는 거야.”

사회간접자본이나 기간 시설이라면 몰라도 패스트푸드와 편의점까지 국영으로 운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민호에게 그런 분야는 당연히 민간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만약 치킨 배달하러 온 사람이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국영기업 직원이라면 손님 입장에서 아무래도 껄끄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대 유럽처럼 고산국에서도 중앙정부 관리 신분인 우체부가 우편업무에 한해서 수사권과 체포권을 보유했다. 일부 원주민들이 아직 고산국의 정식 백성이 되지 않은 북미 중앙평원이나 로키 산맥, 즉 서부 산맥 인근에서는 우체부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적대적인 원주민들과 심심찮게 총격전도 벌였다. 물론 그런 사건이 생긴 직후에 여진 기병대가 출동해 원주민 부족을 쑥밭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시청의 하급 관리인 청소부가 단독주택 거주자들에게 집 안팎의 청소를 지도 감독하고 규칙에 어긋나면 벌금을 매겼다. 북미 원주민들이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에서 시행한 제도였는데 효과가 좋아 어느덧 왕도에 역수입됐다.

“어차피 대형 기업의 주식 절반을 국가 소유로 할 거라면 마찬가지에요.”

“그래도 백성들이 창의력과 근면성을 발휘할 기회를 줘보자. 요즘 젊은이들 똑똑하고 기발한 생각도 많이 하잖아.”

“그럼 실제 가게 소유주인 가맹점은 민간에게 맡기고 본점은 국영으로 하면 어때요? 가맹점들이 본점에게 사기 당할 염려가 없어서 좋잖아요.”

“일단 그렇게 해보자. 매출과 이익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본점도 주식 매각을 통해 민간에 경영권을 넘길 수 있어.”

“그 문제는 그때 가서 논의해 봐요.”

그러나 문제는 혜영이 손안에 든 것을 절대 놓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이익이 나는 사업을 혜영이 포기할 리가 없었다.

먼저 주택가 사거리에 개설할 가게 종류와 상품을 골랐다. 닭튀김과 햄버거 비슷한 고기빵, 감자튀김과 탄산음료를 파는 가게, 샌드위치나 죽 같은 간단한 식사와 커피 등 음료를 파는 가게, 본격적인 24시 식당, 다양한 물건을 개방적으로 진열하는 잡화점, 그리고 올빼미형 인간들이 노닥거릴 만한 야간 찻집을 골랐다. 이런 주택가 속의 작은 상업 지구에 경찰 지소나 소방서 파견대, 동사무소가 같이 있을 수도 있었다.

“백성들이 밤에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주려는 거야. 그러니까 인구가 저밀한 지역에 개설될 가게는 손해를 볼지도 몰라. 웬만한 손해는 정부재정으로 보전해주자.”

“그래도 영업하는 가게인데 당연히 이익이 나야죠.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적자가 난다고 세금을 들이면 아깝잖아요. 여러 가게를 통합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손해를 안 보도록 해볼게요.”

“그래, 그래. 혜영이가 이 나라의 살림꾼이다.”

국가가 부유해졌어도 혜영이 여전히 구두쇠 짓을 하는 덕택에 국가재정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지방의회나 추밀원이 아니라 혜영 한 사람 때문에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멕시코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요?”

“그렇습니다, 전하. 테페완이라는 부족이 산악 지형을 이용해 예상 밖으로 반란을 오래 끌고 있습니다. 에스파냐 군인과 엔코멘데로스들의 인명 피해가 극심하다고 합니다.”

정보국이나 북미 국경경비대가 아니라 예조에서 멕시코의 반란을 파악해 보고했다.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청에서는 감추려 했으나 멕시코시티에 주재한 고산국 외교관과 상인들이 에스파냐 부왕의 군대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에 관심을 두다가 알아냈다고 한다.

테페완은 멕시코 북서쪽 산기슭에 살던 농경 부족인데 테페완이라는 말은 유타-아스텍 언어로 산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는 주변의 다른 종족들과 달리 이들은 농경을 하면서 문화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1616년에 시작된 반란은 원주민에 4천, 에스파냐에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에스파냐에 100만 페소 이상의 재산상 손실을 안긴 다음 1620년에 진압됐다.

원주민들이 백인들과 접촉한 다음부터 여러 가지 전염병이 부족을 휩쓸어 인구가 대폭 감소한 것이 반란의 원인이 됐다. 원래 테페완 족은 마을이 산맥의 산사면에 넓게 분산돼 분권적인 권력 구조라서 군사행동에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족 전체의 종교 지도자로 떠오른 자가 전염병의 원인을 백인으로 지목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매우 조직적인 저항이 가능했다.

도시의 문명생활과 고등종교, 곡식과 가축을 도입해 원주민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선사했다고 착각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무척이나 억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야만적인 미신을 신봉한 테페완 부족을 비난했지만 알고 보면 그 미신이란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웠다.

성직자가 세례 의식을 베푼 다음 날 세례를 받은 자들이 앓기 시작하고 곧이어 죽어나갔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세례를 죽음의 의식으로 인식했다. 20년 남짓에 불과한 단기간에 인구가 5분의 1로 줄어들면 아무리 소식 전파가 느린 원주민 사회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예판! 멕시코 원주민들이 백인들과 접촉한 지 오래 되지 않았나요? 멕시코 원주민들은 이미 면역이 된 줄 알고 지금은 북미 중앙평원이나 남미 아마존 원주민들에게만 예방 접종 사업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에스파냐 탐험대가 부족 거주지 근처를 지나가거나 간접적으로 세금을 징수했을 뿐, 요즘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지배가 시작됐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멕시코 국경을 좀 더 남쪽으로 내릴 걸 그랬소.”

“하하! 그때야 에스파냐 탐험대를 리오그란데 강에서 막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1540년부터 1590년까지 이어진 치치메카 전쟁은 에스파냐 식민 개척지의 확대에 반발한 원주민들이 연합해서 싸운 전쟁이었다. 그러나 테페완 부족은 치치메카 부족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고 그 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다.

오랜 전쟁에 질리고 무력 진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에스파냐 식민 개척자들은 기존의 원주민 축출과 강제노동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교역을 통한 평화’라는 새로운 정책이 입안되고 로마가톨릭의 예수회 수사들이 전면에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 이들 수사들은 작은 지주 겸 군인 역할을 하는 엔코멘데로스들과 협력해 원주민들을 개종시켰다.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한동안 전쟁이 사라지고 원주민에 대한 선교와 개종도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 콰우틀라타스가 부러진 십자가를 상징처럼 끌고 다니면서 산맥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을 선동했다. 구세주 같은 그의 모습에 기독교를 살짝 맛본 원주민들이 열광했다.

콰우틀라타스는 마치 유럽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 성인들의 모습처럼 목숨을 걸고 원주민들에게 설교를 했으나 내용은 천년왕국 식의 종말론이었다. 에스파냐 침략자들을 다 죽이거나 몰아내면 그 동안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고 이 땅의 신들이 곡식과 가축들을 풍성하게 자라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전염병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쳤겠군요.”

“그렇습니다, 전하. 의식으로서 전쟁과 식인 행위를 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에스파냐 사람들의 마음에 안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강제로 선교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전통 종교 의식과 충돌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전염병과 식민 지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큰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식인 행위에 대한 혐오감은 물론 우상 숭배는 에스파냐 성직자들이 기겁하는 행위였으므로 에스파냐 군대가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원주민들의 당연한 대응은 반란뿐이었다.

아무리 교역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고 예수회 선교사들을 앞세웠다지만 에스파냐의 정책이란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정책 그 이상이 아니었다. 고산국처럼 원주민들을 아예 백성으로 받아들여도 반발하는 마당에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명확히 가르는 식민 정책을 원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물론 식민 지배를 통해 이득을 얻는 원주민들은 에스파냐에 붙어서 원주민 학살에 동원됐다.

“에스파냐의 대응이 과한 면이 확실히 있습니다. 혹시 전하께서 개입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멕시코를 고산국 영토로 편입하는 물밑 작업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스파냐는 중요한 동맹이니까요. 다만 압력을 행사해서 무력 진압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기 어렵소. 멕시코 부왕청과 접촉해서 원주민들에게 예방 접종을 해주겠다고 제의하시오. 물론 원주민들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소만.”

현대 민주주의 시대라면 인종 청소에 대한 외교적 비난은 물론 개별 국가, 혹은 국가들이 연합해 에스파냐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그런 이유로 군사 개입은 물론 도덕적 비난만 해도 주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됐다.

“그보다는 멕시코 국경에 거주하는 원주민 부족을 통해 테페완 원주민들의 예방 접종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게 좋겠소. 솔직히 말해서 식인 습성을 가진 자들에게 우리 의료진이나 탐사대원들을 한 끼 식사로 바치고 싶지 않소. 아무리 의식을 통한 식인이라서 그럴 위험이 적다 해도 말이오.”

그렇다 해도 전쟁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리오그란데 강에 가까운 다른 부족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시킨 다음 테페완 족의 예방 접종 사업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몇 달 후의 일이지만, 고산국이 에스파냐의 동맹이라는 사실을 원주민들도 다들 알고 있어서 초반에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멕시코 국경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이 직접 예방주사를 맞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야 두 말 않고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것이 효과가 커서 전염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대폭 줄어드는 경우가 사라졌다.

“그래도 에스파냐에서 도입한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하면서 식인 행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식인 의식을 주도하던 전통 종교가 붕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섬 원주민들과 확실히 다르군요.”

야만인은 아니지만 식인 습성이 있는 종족이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이런 저런 캐릭터 상품을 수집하지만 오타쿠가 아니라는 변명과 비슷했다. 중남미나 새섬의 주민들이 그럴 듯한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문명 수준이 높다 해도 식인종은 식인종이었다.

이민호가 생각하기에 인권 문제를 떠나서 타인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가장 기본적인 문명의 기준이었다. 종교가 다르다고 다른 종교의 사제를 화형에 처하거나 쿼터 형, 즉 오체분시하는 에스파냐나 잉글랜드의 행위도 마찬가지로 야만의 증거였다.

현대 지명이 뉴질랜드인 새섬에서 고산국 사람들의 인기가 마오리 원주민들 사이에서 매우 높았다. 원주민들은 고산국 관리나 군인, 탐험가들이 강하다는 이유로 특히 존경했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공격해서 살을 발라먹고 뼈를 고아먹으려 했다.

올 봄에는 원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도 군인들을 위해 종교 의식을 진행한 군종장교가 바로 그 날 밤에 실종됐다. 천둥번개를 부리는 그 강한 고산국 군인들이 군종장교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본 원주민들은 종군장교를 온몸이 마나로 가득 찬 강한 인간으로 오인한 탓이었다.

마오리 족에게 직접 총을 쥐어줘야 그런 오해가 줄어들겠지만, 체력이 강한 마오리 족에게 총까지 쥐어주면 어떤 사태가 생길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서 식인 사건이 생기면 철저한 보복으로 일관했다.

“새섬과 달리 파푸아 섬 원주민들은 식인 행위가 많이 줄었습니다.”

“예상과 정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파푸아 섬에서는 단지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했던 것뿐이니까요. 새섬 마오리 족은 오래 전부터 돼지를 사육했는데도 종교적인 이유로 식인을 하고 있습니다.”

파푸아 섬 산악지대에 야생화된 염소를 대량으로 방목하면서 식인행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무장한 이웃 마을 주민들보다는 염소를 사냥하는 편이 훨씬 덜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계속 웃는 증세를 조상신의 저주로 선전한 효과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 동안 잘 참으셨습니다, 전하.”

“예판께서 말리신 덕분이오.”

그 동안 이민호가 식인종 토벌 작전에 몇 번이나 서명을 하려했으나 예조판서가 설득해서 참고 넘어갔다. 그 사이 파푸아 원주민들이 농업과 목축을 통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식인행위가 많이 줄어들었다. 장례 의식으로서의 식인행위가 아직 일부 지역에 남아있었지만 최소한 식인을 위해 사람을 사냥하지 않게 됐다.

“전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새섬의 마오리 족들 사이에서도 식인행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고산국 군인이나 관리를 잡아먹어도 힘이 늘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나 봅니다.”

새섬에 주둔한 군인이나 지열발전소 직원이 실종될 때마다 주변 마오리 마을을 샅샅이 뒤져서 증거가 나오면 완전 초토화시켰다. 납치와 식인행위에 가담한 자들을 남김없이 총살시키고 마을을 불태워 나머지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식으로 강경 대응했다.

어쩐지 제국주의자들이 하는 짓과 흡사했지만 체격이 좋은 마오리 족을 상대로 목숨 걸고 하는 군사작전이었다. 그래도 납치와 식인 행위가 그치지 않아 나중에는 지열 발전소와 알루미늄 공장 주변을 철조망으로 완전히 차단시켰다. 강해지고 싶다는 마오리 전사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누르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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