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38화 (787/1,000)

00838  93. 1614년  =========================================================================

1614년의 추석은 양력 9월 18일 목요일이었다. 추석 앞뒤로 이틀이 공식 휴일이고 15일 월요일도 휴일로 지정돼 13일 토요일부터 21일 일요일까지 9일 동안 황금 연휴 기간이 되었다.

해군 총함장 이순신과 항공대장 이면은 아산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고 대원군 이응화와 계복은 수원 본가로, 예조 판서와 최 선생도 고향인 황해도로 떠났다. 그 외에도 조선에 본가나 선산을 두고 이민 왔던 백성들이 조선으로 향했다. 고산국 연락선이 기항하는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 그리고 남양과 마포나루가 고산국 백성인 귀성객들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연휴 기간에도 고산국 왕궁에서는 마르그레타를 시집보낼 준비가 한창이었다. 결혼식은 이미 10월 중순으로 잡아놓았고 외국 왕실들에 정식으로 초청장을 발부해 참가자 명단을 확보했다. 오스만 제국 등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는 축하 사절단을 벌써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시켰다.

“루스인들의 일 년 식량을 결혼 축제 기간인 단 보름 동안에 소비한다는 말이지? 그 식량을 전부 고산국에서 대고? 밀가루, 고기, 맥주, 설탕 등등 끝이 없군.”

“같은 밀가루라도 빵이 아니라 장기 보관이 가능한 과자를 만들어서 그래요. 그리고 루스인들이 집집마다 적당히 남기겠지요.”

“중간에 보야르들이 빼먹지 못하도록 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르겠어.”

“차르의 군대가 교회에 배달하고 정교회 사제들이 직접 가정마다 분배했어요.”

“그럼 믿을 만하지.”

어차피 남아서 쌓아둔 식량이 많아 일찌감치 기차 편으로 루스 차르국에 보냈다. 매년 식량 보관창고를 짓고 관리하는 일로 골치 썩이던 혜영이 속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부자 나라에서 공주를 시집보내려다 보니 최소한 식량만큼은 인심을 팍팍 써야 했다. 덕택에 모스크바에서는 개도 쇠갈비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마르그레타는 결혼식 전에 이미 루스인들에게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황후가 됐다.

“9월 말에 출발이에요. 이미 1개 기병 대대가 모스크바에 진주했고 서시베리아 기병연대의 나머지 부대는 10월 초순에 도착해요. 주인님은 직할 경호대, 의장대, 군악대와 함께 가시면 돼요.”

“휴우~”

“지금은 괜찮지만 결혼식장에서는 한숨 쉬거나 눈물 흘리지 마세요. 꼴사나워요.”

“알았어.”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살게 될 마르그레타도 요즘 몹시 우울하다고 해서 이민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자꾸 한탄만 할 수 없어 심기일전하고 금방 일어났다.

이민호는 궁성에 남아있는 공주들에게 아버지로서 더욱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 어린 자식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했다.

- 삐이익~ 칙칙폭폭!

“넘는다! 넘는다! 넘었다아아~”

“와아~”

건전지로 달리는 장난감 기차가 언덕을 힘겹게 넘더니 다시 속도를 올렸다. 대여섯 살짜리 왕자와 공주들이 일제히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성을 질렀다.

이런 아이들 중에 이민호가 끼어있다 해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로서 억지로 함께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공대 출신답게 진짜로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는 후궁들이 고마워하거나 흉을 보거나 상관없이 이민호는 이때만큼은 정말 즐거웠다.

9월 하순, 헝가리에서 처녀의 피로 목욕을 했다는 바토리 에르제베트 백작부인이 사망한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소작농의 미성년 딸인 하녀와 시녀로서 성에 들어온 귀족 처녀들을 합해 650명을 죽였다는 등 말이 많았으나, 정식 재판에서는 희생자 숫자를 50명 이상 밝혀내지 못했다.

바토리 백작부인의 살인행각에 가담한 집사와 하녀들은 교수형 겸 화형을 당하고 그 중에 하녀 하나만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해서 종신형에 처해졌다. 바토리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하지 않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구금됐다가 이번에 죽었다.

“저도 어제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전하. 피부노화를 막기 위해 처녀들의 피를 짜내서 목욕을 하다니요, 참으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어우당께서 그 이야기를 줄거리로 야담을 지어보는 게 어떻겠소?”

“끔찍한 이야기라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집니다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한성 좌윤을 역임한 유몽인이 잠시 벼슬을 쉬면서 고산국 왕도를 방문했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명사를 초빙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민호의 취미라서 당연히 유몽인도 왕궁으로 초청했다.

“비슷한 이야기로 루마니아에 블라드 체페슈라는 사람이 있소.”

“아! 왈라키아의 가시공이라는 사람의 잔인함과 악행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왈라키아에서 쫓겨난 독일 상인들이 나쁜 소문을 과장해서 퍼뜨렸다고 합니다.”

고산국에서 발행한 한글 서적이 조선에도 그대로 유통되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세계사의 흐름에 무지하지 않았다. 특이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좋아하는 유몽인이 이런 책을 놓치지 않고 수집했다.

“그 두 사람의 악행을 합하고, 사실은 아니지만 흡혈귀라는 인상을 뒤집어씌우면 어떻겠소? 더운 여름에 그런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여름밤을 아주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오.”

“왈라키아 공작이 용이라 불린 드라쿨의 아들이라서 드라쿨레아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드라쿨레아 공작이라는 제목으로 이국적이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지식인들보다는 일반 백성이나 여자들이 많이 읽을 것 같으니 저도 누구처럼 언문으로 쓰겠습니다.”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라는 사실을 기록한 사람이 유몽인이었다. 유몽인뿐만 아니라 조선의 고위 관료들과 양반들은 한글 소설의 정치적 영향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반들이 더더욱 허균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캐나다 문화비평가 맥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보다 매체 그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당대의 새로운 혁신과 엮이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인류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었다. 독일에서 활자 인쇄술이 발달한 덕택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주장이 더욱 빨리 퍼질 수 있었고 현대 사회는 전파 매체를 통해 전 세계의 소식을 비행기 속도보다 더 빨리 전해들을 수 있게 됐다.

TV는 영상으로 찍힌 내용이 있어야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고 영향력을 갖는다. 그래서 책표지 외에 영상으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소설이나 신간 경제서적보다는 노래하고 춤추는 걸 그룹이 TV화면에 훨씬 자주 등장한다. 기사거리가 정 없더라도 차라리 아이나 동물이 뛰어노는 모습을 화면에 띄우지, 따분한 철학 서적 한 페이지를 읽어줄 일은 절대로 없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역시 어우당 대감답소.”

한글 소설책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매체가 반드시 적서차별 타파 등 혁신적인 내용만 담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떤 혁신이든 보수의 반동이 따르듯이 홍길동이라는 혁명적인 한글소설이 나왔다면 그에 대한 반발로 대중적인 흥미를 끄는 한글소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유몽인은 작가로서 홍길동과 정반대되는 소설을 발표하기로 작정했고, 이민호가 부채질했다. 이 시기에 맞지 않게 다소 엉뚱한 괴기 소설을 집필하거나 발행하는 것이 정치적인 행위라는 사실은 이민호도 알고 유몽인도 알았다.

“드라쿨레아가 악행을 저지르는 원인이 된 어렸을 때의 환경을 서술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고, 그럼에도 악의 진수가 되어버린 드라쿨레아에 대항하는 주인공들을 순수 선으로 설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본능과 이성, 전통과 과학,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면 그럴 듯한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기대가 되오. 출판은 고산국 왕립출판사에서 도와줄 것이오. 출간계약을 하고 귀국하도록 하시오.”

브람 스토커보다 몇 백 년 앞서서 유몽인이 흡혈귀 이야기를 쓰게 됐다. 유몽인은 나중에 <어우야담>을 완성시킬 사람이었고, 문장력은 어떤 독자라도 이야기에 몰입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뛰어났다.

그 동안 고산국에서 발간한 한글 소설은 옛날이야기나 위인전 수준에 불과했다. 건국 초기에 계몽 위주의 출판 사업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런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조선에서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을 시초로, 그리고 유몽인의 괴기 소설로 시작해 고산국에도 본격적인 한글 소설 시대가 열리게 됐다. 장르는 다양할수록 좋았다.

“제가 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고산국에서 강조하는 사상과 정반대가 될지도 모르는데 상관없겠습니까?”

“물론이오. 주자의 책도 고산국 왕립출판사에서 번역해서 냈다오.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데 보수든 진보든 사상이 무슨 상관이 있겠소? 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충분할 만큼 훌륭한 내용이면 그것으로 족하오.”

“그렇긴 합니다만.”

“사상이란 것도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는 것에 불과하오. 나는 보다 다양한 사상을 독서시장에 내놓아 소비자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싶소.”

이민호는 여러 신문에 필명으로 논설을 쓰는 사상가인 동시에, 외설과 예술의 경계선을 오가는 남성 잡지의 대주주이기도 했다. 백성들에게 한 가지 사상을 강요한다고 해서 들어먹는 것도 아니었다.

<홍길동전>이 고산국에서 크게 유명해진 것처럼 <드라쿨레아 공작>이 독자들의 인기를 끌 수도 있었다. 이런 다양성을 방해할 생각은 이민호에게 추호도 없었다.

“전하! 부유한 자들이나 양반이 고산국에 이민 오지 않거나, 고산국 백성이 됐던 자가 나이 들어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현상의 중심에 고산국의 상속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원래 끝이 없지 않습니까?”

“국가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불려서 자식들에게 나눠줄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지요. 사람의 수명은 유한한 것, 어떤 사람이 살아왔던 증거가 자식이라는 혈통이나 문집, 그리고 정치적 행적을 통해 후대에 전해지면 그뿐이오. 재산으로 이어질 필요는 전혀 없고, 그 재산도 유한한 것에 불과하오.”

국가는 유한해도 재산은 영원하다는 가족 위주의 개념은 유대인이나 중국인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국가를 아예 세우지 못한 유대인이나 유목민족의 정복에 의해 민족국가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키지 못하는 중국인들이나 하는 소리일 뿐이었다.

유대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현지 주민들에게 약탈당하고 중국인들도 역사의 전환기마다 정복자 군대에게 학살당했다. 금을 벽돌처럼 만들어 벽으로 위장하거나 비밀 지하실을 파서 숨기더라도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부가 안전하게 후대로 전해지는 것은 국가의 존속을 전제로 했을 때나 가능했다.

“확실히 고산국에 사는 사람들이 조선이나 명나라에 비해 전반적으로 부유합니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로 과거에 합격하거나 재산을 늘림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산국에서는 바로 그런 뿌듯함을 주지 못해 실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용꼬리보다 뱀머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있는 법이오. 그렇다고 고산국이 용, 조선이 뱀이라는 뜻은 아니오.”

“재산이나 군사력만으로 따지면 충분히 그렇게 비유되고도 남습니다. 조선이 고산국보다 뒤떨어진 것이라서 전직 관료인 저도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고산국에서 기본 소득을 모으거나 농사를 지어 재산을 모은 다음 조선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이 매년 일정한 비율로 있었다. 조선에서는 아직도 은 가치가 높아 넓은 농지와 노비들을 사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고을 원님에게 상납하고 양반이나 아전들에게 굽실거리다가 성질이 나서 다시 고산국으로 돌아온 자들도 꽤 많았다. 조선에서 버티려고 해도 환갑 넘어서 잡다한 부역에 동원돼 자질구레한 일을 강제로 하거나 자식들이 군에 징집되어 고생하는 꼴을 보다가 후회하는 자들도 흔했다. 결국 농지를 헐값에 팔아 고산국 이민 기준에 맞춘 다음 다시 고산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재산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오. 다만 재산은 그 재산을 모은 자의 것이지 그 자식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가족이나 가문 위주가 아니라 백성 개개인 위주로 본다면 그게 훨씬 낫겠습니다.”

자본 수익률은 항상 경제 성장률을 앞선다. 그래서 소득 분배가 갈수록 악화되고 상속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확대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득세 인상과 글로벌 부유세를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학설이었다. 더욱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전제들을 부정했기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유럽에서도 소유권 절대의 원칙이 등장하지 않았을 시기라서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제한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20세기 대공황 이후 수정자본주의 시대에 들어가면 소유권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국민의 권리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개념이 된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그린벨트 제도가 등장해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 그것이 공산주의 정책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며칠 고민해봤는데 마르그레타는 지금처럼 1594년생으로 하겠습니다. 스토리 전체를 몇년 뒤로 미룰 수는 없고 다른 공주를 내세우기도 어려우니 탄생 시기를 중심으로 약간 수정하겠습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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