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36화 (785/1,000)

00836  93. 1614년  =========================================================================

“개똥이 너 거의 매일 왕궁에 오는 것 같다. 사관학교에서 외박 허가를 이렇게 자주 내주나? 설마 왕족이라고 비리를 저지르거나 학교에서 특별히 봐주는 것은 아니겠지?”

이민호가 마치 현대 한국에서 공군에 입대했다가 줄기차게 외박 나오는 동기에게 말하는 것처럼 핀잔을 주었다. 이래서야 개똥이가 기숙사 생활이 기본인 사관학교에 간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장남의 의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걱정했는데 답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동생의 생일 연회에 빠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관학교에서 기숙생활을 중시하지만 가족의 생일에는 외박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험! 험! 그렇구나. 우리 왕실 가족들이 다들 머리가 좋은 이유가 있어. 어렸을 때부터 이 많은 가족들의 이름을 다 외워야 하니까.”

“아바마마께서 말씀을 잘 돌리십니다. 문제는 제 형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야 좋지만 말입니다.”

후궁과 자식들이 많다 보니 하루걸러 생일 연회가 열렸다. 조선 관료들이 역대 국왕과 왕비의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몇 배나 많았다.

생일을 맞은 자식들을 섭섭하게 만들 수 없어서 거의 매일 커다란 생일케이크를 만들었고, 이민호가 한 입이라도 먹어야 했다. 나중에는 너무 느끼한 나머지 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넌 장가 안 가? 과제가 너무 많아서 사관학교에서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잖아. 나눠서 하라고.”

“그래서 사관생도가 배우자감으로 인기가 없습니다. 신혼 생활이 아예 사라지고 졸업할 때까지 배우자도 지독히 공부해야 하니까요. 배우자에게 학위를 주면 뭐하겠습니까?”

“저번에 그 사관학교 여선배하고는 어떻게 지내?”

“그 선배를 두고 다른 남자 선배하고 결투까지 했습니다만, 여선배는 제가 어려서 싫답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봐야겠습니다.”

“아! 며칠 전에 눈탱이...... 아니다. 이겼냐?”

조선에서는 왕족의 몸에 실수로 생채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대역죄인 취급을 받겠지만 여기는 고산국이었다. 합의하고 시작한 결투에서 상처가 나는 것쯤은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지난번에는 구르카 용병에게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으나 개똥이가 잘못했기에 나중에 개똥이가 사과해야 했다.

“27회까지 가서 간신히 이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해온 덕택에 밖에 나가서 맞고 지내지는 않습니다.”

“역시 내 아들이다.”

사관학교에서 생도끼리 결투할 때는 교수의 지도 아래 권투로 결판을 내게 돼 있었다. 운동경기로서의 권투는 3분 15회 이내에 마쳐야 하는데 결투에 한해서는 특별히 한쪽이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무제한이었다.

권투는 평화에 젖어 전사의 혼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북미 원주민들에게 이민호가 소개한 원초적인 남자의 운동경기였다. 부족이나 개인 간의 갈등을 전투가 아닌 권투로 풀게 해서 현재 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부자간에 무슨 말씀을 그리 정답게 나누세요? 오늘 생일을 맞은 주인공들에게 먼저 좋은 말씀을 해주셔야죠.”

“아! 그렇지.”

혜영이 들이민 확성기를 잡고 일어섰다. 거의 매일 같이 저녁에 연회장에서 식사를 해야 해서 피치 못하게 주지육림 속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평상시 식사에서 생일케이크가 추가된 것뿐이었다.

왕실 주방에서 준비하는 식단도 일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요리사들이 최고 수준이었다.

“오늘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한 미혜, 그리고 열두 번째 생일을 맞은 철수. 두 사람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먼저, 미혜!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조언을 심사숙고하되, 네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라.”

“정말이죠, 아바마마? 그러니까 동물학을 연구하기 위해 남미나 아프리카에 가도 되죠?”

미혜가 반색을 하자 이민호가 움찔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왕족이 오지로 떠나면 경호원이나 수행원 등 다른 사람들이 생고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호원들과 함께 간다면 야생동물이나 원주민의 공격으로 인한 위험은 없겠지만 고산국 의학계에서 아직 파악하지 못한 풍토병이 가장 걱정됐다.

“다만 열여섯 생일이 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다양한 공부를 더 해보는 것이 좋겠다. 인생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할 필요는 없단다. 보통 백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스무 살 정도까지 좀 더 놀고, 좀 더 다양한 것을 접해서 무엇이 더 재미있을지 확인한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히잉~”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남자보다 대학진학률이 높은 여자들도 1, 2년 놀다가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공부에 치여 죽지 못해 살았다.

“그리고 철수야!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알겠다만 공부도 좀 해라. 운동경기는 체력과 기술이 기본이지만 머리싸움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수도 많단다. 축구 전술을 설명한 책과 동서양의 전술전략 서적을 구해서 읽는 게 좋겠다.”

“공부는 따분한데요.”

“바로 그게 네가 뛰어난 실력에 비해 주장이 되지 못하는 이유야. 반드시 주장이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장을 해봐야 전체 국면을 파악하는 시야가 넓어진단다. 그럼 네 역할을 더 잘해낼 수 있겠지?”

“그게 문제였군요. 시간이 나면 좀 읽어보겠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어서 아이 어머니와 혜영, 그리고 최 선생에게 맡겨두는 편이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에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식들이 천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천재교육법의 하나임을 이민호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잔소리로 흐르기 마련인 밥상머리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갖는 대화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달랐다.

“오늘 저녁시간을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다섯 시에 시작한 것은, 예상했겠지만 밤에 왕립극장에서 공연이 있기 때문이에요. 멀리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 유명한 가수가 방문했으니 오늘밤 공연에서 인도의 정취를 흠뻑 느껴보세요. 일곱 살 이상 열여섯 이하의 왕자와 공주는 반드시 공연 관람에 참가하도록 해요.”

생일 연회가 끝나면서 혜영이 공지를 발표했다. 이민호가 자식들에게 말하는 것은 권고에 불과했지만 혜영이 말한 것은 명령이라 무게감이 아예 달랐다. 밤늦게까지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경우는 없지만 이렇게 해외 문화인의 방문공연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시켰다.

공연에서는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쓴 배 나온 40대 아저씨가 몸을 흔들며 아주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펀자브 지방의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두면서도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이 노래는 이민호가 21세기 초반에 들었던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엽기적인 노래로 알려졌을 뿐이지만 당시 유튜브가 없던 때인데도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던 곡. <뜨늑 뜨늑 뚠>이었다.

공연 며칠 전에 이민호가 일명 뚫훍송의 곡조 일부와 후렴구만 던져줬는데도 가수와 공연단이 가사를 붙이고 민속악기 반주에 맞춰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노래의 작곡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 노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진짜 주인이었다.

좌중을 휘어잡는 가수의 노래에 왕립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물론 왕자와 공주들도 문화적 충격을 받아 얼떨떨했다. 공연 마지막 시간에 앙코르를 받아 다시 한 번 그 노래를 불렀을 때는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춤을 따라 추었다.

“아주 흥겨우면서도 뭔가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에요.”

“인도 땅이 넓어 여러 문화권으로 나뉘었다더니 펀자브는 음악에서 앞서가는 지역인 것 같아요.”

왕자와 공주들의 평가처럼 첫날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신문과 잡지에 대대적으로 호평이 이어지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왕립극장 앞에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섰다. 장기간 공연이 이어지며 음반이 발매되고 방송에서 매 시간 틀어주면서 고산국 전 영토에서 그 해에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됐다. 북미와 호주 등에 순회공연도 다녀왔다.

특정 외국의 문화를 존중하면 그 나라 사람도 존중하게 된다. 말로 애써서 설득할 필요 없이 노래 하나 틀어주는 것만으로 간단히 설득이 끝났다. 그 동안 고산국이 뭐든지 세계 최고라는 믿음을 갖고 은근히 다른 나라 사람들을 깔보던 왕자와 공주들은 물론, 고산국에서 활동하는 세계 여러 지역 출신 문화계 종사자들도 한동안 충격 속에서 헤맸다.

외국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 장르가 들어오면 이를 접한 국내 문화 전체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 다양성 속에서 명작이 나오고 또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문화계에서 꾸준한 외국 문화의 유입은 백성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그 담에 뭐였더라? 에이! 기억력이 좋아야 표절이라도 해먹지.”

“뭐하세요, 전하? 시 쓰세요?”

“혜영이, 비올레타 어서 오시오. 마르그레타가 곧 시집가잖아.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로서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잠시 주접을 떨어봤어.”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어제시(御製詩) 다수를 지어 고산국뿐만 아니라 조선 백성들까지 시를 암송하게 만든 시인이기도 했다. 물론 이민호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표절도 아니고 베낀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자유시라는 면에서 조선의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으로서 몇 가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차르에게 시집가지 않고 국내에 남는 것이 좋았을 텐데요.”

“아니오, 비올레타. 시집가면 아버지 따위는 생각도 안 날 것이오. 마르그레타가 남편과 함께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소원이오.”

“당신은 좋은 아버지에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했으니 별로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 안타깝소.”

그러나 결혼이 현실인 것은 신랑 신부뿐만 아니라 시집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르그레타가 거주할 모스크바의 궁전을 개축하고 차르 가문의 친척들에게 돌릴 선물, 결혼식 비용 분담, 신부 지참금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혜영, 비올레타와 함께 논의했다.

“마르그레타의 개인 재산은 20년간 받은 기본 소득과 이자 약간을 합해서 4천 원, 생일 선물로 받은 보석 장신구 약간, 옷가지와 책뿐이에요. 전하의 엄명에 의해 주식 매입 같은 경제활동에 참가하지는 않았어요.”

“보석 장신구를 빼면 고산국의 20대 초반 일반 백성들과 비슷한 재산이구려. 지참금으로는 당연히 부족하겠지요?”

양육비용을 비롯해 모든 것을 왕실 비용으로 처리하는 대신 왕실 가족으로서 수입이 따로 없었기에 공주나 왕자들의 재산이 늘어날 일은 없었다. 일반 백성이라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면서 사업체를 차리고 몇 년 운영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금이나 은, 쌀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4천 원은 현대 한국 돈으로 대략 1억에서 20억 원 사이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외국 왕실로 공주를 시집보내기에 4천 원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먼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모든 백성들이 기본 소득을 받는 고산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본에서 아일랜드까지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문화권에 갖가지 명목의 지참금 제도가 있어요. 문제는 지참금이 부모 생전에 남녀를 불문하고 자식들에게 미리 상속하는 제도라는 것이에요.”

혜영의 설명에 이민호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에스파냐나 독일에서 부부가 이혼할 경우 신부가 결혼 때 가져왔던 지참금을 따로 챙겨서 갖고 돌아갈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시집갈 때 가져간 도자기나 천 같은 물건들을 결혼생활 중에도 아예 다른 장롱에 따로 보관했다.

조선 같은 경우 신부 지참금이 아니라 아예 신부의 재산으로써 결혼생활 동안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가장과 따로 자식들에게 상속됐다. 임진왜란 전후에 작성된 분재기(分財記)에서는 결혼한 딸들도 미혼 딸이나 아들과 균등하게 부모 재산, 즉 논밭이나 노비를 상속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참금이 그런 거였어? 혹시 혜영이가 잘못 조사한 것 아냐? 아프리카에서는 신랑 가족이 신부 값을 신부 부모에게 지불해야 하잖아. 인도 여러 지방에서는 남자가 성인 역할을 하도록 만들면서 들어간 비용을 신부 측이 분담하는 차원에서 여자가 준비하는 거야. 지참금 살인 같은 악습으로 변질됐지만.”

“사하라 이남과 인도 북부는 지참금 제도가 정반대 방향으로 심하게 변형된 거여요. 그리고 그 지역에서도 예전에는 일반적인 지참금 제도와 비슷했어요. 다만 요즘 들어와서 여자나 남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돈을 준비해야 하는 제도로 바뀌고 있는 것뿐이에요.”

다른 나라들이야 어떻든 지금 중요한 것은 고산국과 루스 차르국의 지참금 제도를 조화시켜 적당한 금액을 정하고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민호는 마르그레타 개인의 재산에 부모가 결혼 축하 및 신혼 자금으로 적당히 주는 것을 합한 금액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현대의 한국적인 개념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이 있습니다.

딸 하나 시집보내기 어렵군요. 나머지는 대충 생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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