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32화 (781/1,000)

00832  93. 1614년  =========================================================================

93. 1614년

1613년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간 편이었다. 새해를 맞아 고산국 왕도에서는 한 해를 차분히 준비했다. 유럽에서는 율리히-클레베스-베르크 공작령 연합을 두고 승계 전쟁이 한창이었으나 최근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여러 나라가 참가한 조약 체결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별 일 없이 한 해가 지나간 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역사 그대로 진행됐다면 1613년에 계축옥사가 일어나 김제남이 사사되고 영창대군이 강화도로 유배돼야 하나, 영창대군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인목대비가 되어야 했을 김제남의 딸은 민다나오에서 술탄의 왕비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로닝겐에 대학을 세우는 사업은 잘 되가나?”

“그로닝겐이 아니라 흐로닝언이에요, 코미뉴 대왕님!”

“알아들었으면 됐지 화를 내기는.”

“흥!”

네덜란드 여류화가 출신으로서 그 동안 궁정 화가 겸 사진작가로 일했던 마하레트가 가족이 보고 싶다며 고향에 돌아가기로 했다. 마하레트가 당연히 이민호의 후궁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한동안 큰 충격에 빠졌다.

이민호가 오랫동안 곁에 두고 있던 여자인데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더 놀랐다. 마하레트가 키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워했다는 둥, 못 생겨서 싫어했다는 둥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민호가 보기에 마하레트는 키 크고 늘씬한 현대적인 패션모델과 판박이였다.

마침 독일, 정확히는 프리지아의 역사학자이며 지리학자인 우보 에미우스가 흐로닝언에 지역 기반의 작은 단과대학을 세울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매년 입학생 100명 수준의 이 작은 대학을 종합대학으로 확대하는 조건으로 고산국 왕실에서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마하레트를 대학 설립위원회 고산국 재정기획관으로 임명해 파견하는 형식으로 고용을 계속 유지했다.

“현재 개설 준비가 끝난 학과가 신학, 법학, 약학, 철학뿐이야. 마하레트는 에미우스 학장, 아니 총장을 설득해서 학과를 단과대학으로 확장시키고 다른 단과대학들도 설립해서 고산국 왕립대학교처럼 종합대학 체제를 만들도록 해. 교수진과 학생들 영입계획은 세웠나?”

“예. 흐로닝언이 강을 통해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해서 교수진과 학생의 최소 절반은 외국인이 될 거여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이민호는 군사 분야를 제외하고 네덜란드에 기부 목적으로 투자할 곳을 찾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버는 돈 중에서 적당한 비율로 돈을 풀어야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이라면 목적에 정확히 부합되는 투자 대상이었다.

“무역국가인 네덜란드에 잘 어울리는 대학교가 되길 기대한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교육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줘.”

“물론이에요. 고산국 왕립대학교만큼은 아니겠지만 네덜란드에서 제일가는 대학교로 만들게요.”

새로운 일을 앞두고 의욕이 넘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마하레트는 새롭고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려던 시도가 자꾸 실패해, 잠시 머리를 쉬는 셈치고 대학교를 설립하는 일을 맡았다.

화가의 특성상 사진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마하레트는 사진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드문 경우였다. 이민호는 마하레트가 화가로서 크게 대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섭섭해서 어떡하지? 그 동안 밀린 급료는 없을 테고, 업무 인수인계가 끝나면 국립은행에서 퇴직금을 받아가도록 해. 참! 유럽 은행에 이체시키는 편이 안전할 거야. 그리고 마하레트가 그린 작품을 전문가들에게 재평가하게 해서 추가로 작품료를 지급해주지. 아마 평생 부족함 없이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전하. 그 동안 몹시 즐거웠어요.”

마하레트가 옥좌로 다가오더니 이민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마하레트와의 육체적 접촉이었다.

고산국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고산국이 새로 건국된 나라라 당연히 찾아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저희 같은 서얼들을 따뜻이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자네들 같은 인재라면 언제든 환영해야지. 고산국은 신분에 얽매이는 나라가 아니니 자네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보게. 아직 건국 초라서 뭘 하든지 꽤나 재미있을 거야.”

“저희들이 너무 늦게 오지는 않았는지요. 좀 더 젊었을 적에 왔더라면 고산국을 위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늦게 왔으면 어떤가? 자네들처럼 유능한 인물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걸세.”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박치의, 이경준, 허홍인, 김경손 등 조선에서 명문가나 고관대작의 서출로 태어난 젊은이들이 고산국으로 한꺼번에 이민 왔다. 적서차별을 폐지해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조정에서 거부하자 눈물을 머금고 조선을 떠났다고 한다.

강변칠우라 자칭하는 문무 양쪽으로 뛰어난 이들을 위해 예조에 지시해 특별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능력이 뛰어난 만큼 단기간의 교육만으로 고산국에 완벽히 적응할 것으로 기대했다.

“저희들의 능력을 반드시 증명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네. 자네들이 와서 새해 벽두부터 기분이 아주 좋군.”

원래 역사에서 이들은 팔도를 돌아다니며 화적질을 하고 남한강변에 판 토굴에서 기거하면서 무륜당(無倫黨)이라 자처한다. 이때 박응서가 한성과 왜관을 오가던 은상(銀商)을 죽령에서 죽여 은 수백 냥을 탈취했다가 체포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이첨 등 대북에 의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역모 조작 사건인 계축옥사에 이용된다. 역모 조작이 아니더라도 조선을 뒤집어엎을 반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상을 노려서 죽였다는 설도 있었다.

이들의 행적은 <수호지>의 등장인물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인물들이 양산박의 두령이 된 것과 비슷했다. 아주 좋게 봐서는 일종의 폭력적인 사회변혁운동이었으나, 일반적인 평가로는 대갓집 서출들이 홧김에 떼강도질을 한 것에 불과했다. 이들과 교류했던 허균이 <수호지>에서 영감을 받아 1612년에 <홍길동전>을 필명으로 썼으므로, 강변칠우 혹은 7서는 두 가지 책 내용을 따라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서얼들은 조선이 아니면 고산국을 택할 수 있기에 화적질 같은 저열한 짓을 할 필요가 사라졌다. 이민호는 이들이 그런 자들인 줄 모르고 받아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인조반정은 알아도 그 사건의 원인이라고 할 계축옥사의 진행 과정이나 강변칠우 같은 인간들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민호는 이들이 그저 서얼이라서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것으로 이해했다. 고산국 정부나 군대에서 서얼과 중인 출신들이 가장 의욕적으로 일했기에 유능한 서얼들의 이민은 언제든 환영했다.

“조선은 요즘 어떤가? 백사나 한음 대감은 잘 지내시나?”

“예. 백사 이 대감은 여전히 농담으로 백성들을 즐겁게 해주십니다. 다만 한음 이 대감께서는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저런! 급히 의사를 보내야겠어. 성소 허 대감은 어떠신가? 자네들도 잘 아는 분이라지?”

대북파에서 능양군과 능창군을 비롯한 정원군의 아들 3형제 등 역모의 주축이 될 만한 다른 왕족들을 제거하기 위해 계속 공작 중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사건과 엮을 수 없어서 기존 정치 구도는 그대로였다. 이항복과 이덕형을 비롯해 남인과 서인들이 몰락하지 않고 그대로 조정 대신으로 일하고 있었다.

“저희들을 후원해주신 분입니다. 재작년 진주사로 명나라에 가셨다가 작년 5월에 돌아오셨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태안에서 맹렬히 집필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조선에는 인재가 끝없이 나오는 것 같아. 자네들이 허 대감과 교류가 있었다니 그 분을 본받아 명문을 짓고 현실에도 열심히 참가하게나.”

심우영은 심전의 서자이고, 허균의 부인은 심전의 외손녀였다. 항렬로 따지면 심우영이 삼촌뻘로 더 높다. 다른 이들도 허균과 호형호제하며 친밀한 사이였다.

허균은 사림의 중조 김종직을 비판했다가 사림들로부터 엄청나게 까였다. 허균은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걸핏하면 불교 신봉이나 기생첩 문제로 탄핵을 받아 파직 당했는데 실제 이유는 김종직을 비판한 탓에 사림들에게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세조 때 오래도록 벼슬을 한 사람으로서 자연사했으나, 단종을 의식하고 지은 조의제문을 연산군 때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언급하는 바람에 부관참시당한 인물이었다. 모든 사림들이 그의 충절을 기렸으나 허균이 보는 관점은 달랐다. 허균은 김종직이 서슬 퍼런 세조 시대에 벼슬은 벼슬대로 받아 출세하고 조의제문을 통해 단종을 위한 것처럼 해서 명예는 명예대로 챙긴 사람이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홍길동전은 아마도 허 대감 그분이 지으신 것 같습니다. 고산국 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허 대감이라고? 그거야 모를 일이지. 출간계약을 할 때 계약 당사자나 인세를 받는 사람 이름은 다르던데?”

도적떼를 이끌고 탐관오리를 혼내주며 조선의 신분제도 타파를 부르짖는 소설을 당당히 실명으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또한 한글로 지은 것은 일반 백성에게 읽히기 위함이었다.

현대에서야 홍길동전이 애들이나 읽을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시대상황으로서는 무지막지하게 급진적인 내용이며 또한 소설 저술 자체가 아주 특이한 사건이었다.

“당연히 심부름꾼을 보내 필명으로 계약했겠지요. 주인공 홍길동은 고산국 국왕전하를 보고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하! 설마 그럴 리가.”

홍길동처럼 서자 출신이거나 조선에서 도둑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멀리 바다 건너에 나라를 세운 이야기는 이민호 이야기와 흡사했다. 이민호도 작년에 <홍길동전>을 읽었는데 예전에 알던 줄거리와 조금 달리 건국 후의 이야기가 비교적 자세한 편이었다.

“그리고 내암 선생이 결국 우의정으로 출사하셨습니다.”

“정인홍 대감 말인가? 조선 국왕전하와 십년 동안 밀고 당기기를 하더니 결국 정승 벼슬을 얻어냈군.”

정인홍이 의병장들 중에서 드물게 전쟁 후에도 생존했기에 출세한 것이 아니라, 출세할 만한 학문과 인망이 있었기에 출세했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산림에 은거한 유학자는 초야에 묻혀 있는 동안에만 도덕성, 즉 정치적 무책임성에서 비롯된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괜히 어정쩡한 벼슬에 혹해 조정에 출사했다가는 얼마 못 버티고 밀려나고, 그 동안 쌓아놓았던 유명세도 잃어버리고 만다.

조정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유학자라도 과거시험을 보지 않은 산림 학자에게는 기량을 시험해본다는 명목으로 처음부터 높은 벼슬을 주지 않았다. 안방준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슨 종8품 봉사나 종9품 능참봉으로 시작해, 그 학자가 벼슬을 사양할 때마다 조금씩 벼슬을 올려주며 낚시질하는 경우가 흔했다.

학자는 벼슬을 사양하는 것으로 세속적 명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어 자기 가치를 올릴 수 있고, 조정에서는 덕이 높은 학자를 정파와 상관없이 초빙하는 척하며 문치주의의 이상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출사 요청이 끊길 수도 있으니 묘지명이나 행장에 기록할 그럴듯한 벼슬이라도 따놓으려면 선택 시기를 잘 정해야 했다.

“뜻밖에 올해 처음 조선의 주상과 알현했답니다.”

“그런가? 그 동안 명목상이라도 벼슬을 제수하는 와중에 당연히 만난 줄 알았는데 뜻밖이군.”

“병이 났느니 왕실 행사로 바쁘니 하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서로 의도적으로 알현을 회피한 것 같습니다.”

정인홍은 이미 대북의 영수로 알려져 있었다. 벼슬을 몇 번 받았고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는데도 실제 직무를 담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했다. 광해군과 정인홍이 서로 협력해서 함께 북인 정권을 이끌어갔다고 알려져 있지만 협력한 이상으로 서로 견제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하고 말이야. 정치가들은 다 그런 건가?”

“전하! 국왕전하께서도 정치가이십니다.”

“험! 고산국에서는 굳이 그렇게 체면 차리거나 서로 속이고 할 것도 없는데 말이야. 왕도를 돌아보니까 어떤가?”

“조선에서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특히, 아, 아닙니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 박응서가 얼굴을 붉혔다. 참고로 북미 새강릉에서 아일랜드 출신자들로 구성된 무용단이 바로 어제 왕도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열었다. 아이리시 탭댄스야 발동작을 통해 소리를 내는 것이 핵심이지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단원들이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거나 다리를 높이 차올리는 동작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복장이야 어떻게 입든 상관없지만 자네들이 옷을 가볍게 입더라도 여기서는 탓할 사람은 없을 걸세. 고산국 본토는 조선보다 훨씬 더운 지역이니 괜히 체면 차리다가 쪄 죽지 말게나.”

“하하! 예. 머리부터 깎을 생각입니다. 저희들이 그 동안 뭐하러 그 미운 양반들 흉내를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이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고산국에서 조선 양반 출신이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됐다. 일은 안 하는 주제에 안하무인에 꼬장꼬장 말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양반 복장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적극적으로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다.

서얼 출신 일곱 명이 감사를 표하고 알현실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들은 대학 예비학교를 석 달이라는 극히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에 마친 다음 맹렬히 공부해서 대학도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이들이 선택한 직업은 역시나 공무원, 조선에서 관리라 부르는 직종이었다. 조선에서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막혔던 관료의 길을 걷는 것은 평생소원을 푸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숙원을 이룬 사람들이 의욕이 일찍 떨어지듯이, 이들이 관료로 재직한 기간은 오래 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의 취향에 진짜로 맞는 평생 직업을 찾게 됐다. 한 명은 육군 장교가 됐고 두 명은 작가 중에서 소설가와 방송작가, 한 명은 교사, 한 명은 음악가,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백수로 평생 놀고먹었다. 고산국에서는 계축옥사의 원인이 됐던 무륜당을 조직하거나 강도질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7서 개인들이나 고산국이나, 그리고 조선에게나 다 잘 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밤에 올린 것은 참 오랜만입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