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25 92. 1613년 =========================================================================
이민호는 아이슬란드에 올 때마다 야외 온천을 즐겼다. 물론 헤드비히 여왕을 비롯한 덴마크 여기사들과 여자 문관들, 그리고 비번인 여진 호위들과 함께였다.
황량한 화산섬의 황무지 가운데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은 추운 날일수록 더 자주 찾게 됐다. 아이슬란드에는 이런 자연 온천이 780곳이나 흩어져 있었으나 레이캬비크나 마을에 가까운 곳 일부만 사람들에 의해 이용됐다. 그래서 레이캬비크에서 살짝 남동쪽에 위치한 파란 색 물의 온천, 나중에 블루 라군으로 불릴 거대한 온천에는 이민호 일행 외에 아무도 없었다.
“겉보기와 달리 아이슬란드는 참으로 풍요로운 곳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전하?”
“물론이오, 비키. 넘쳐나는 전기와 온수로 무언들 못하겠소?”
“유럽에서 아무리 부유한 왕실이라도 유리 온실에서 화초를 키우는 곳은 있어도 채소를 키울 생각은 절대 못할 거여요.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는 집집마다 온실을 두고 채소를 키워요.”
물론 이민호의 눈은 함께 온천욕을 하는 여자들의 풍요로운 가슴으로 먼저 향했지만 헤드비히가 말하는 것을 금방 알아들었다. 항상 그렇듯이 온천에 올 때마다 눈이 몹시 즐거웠다.
땅 밑에 매설한 배관을 통해 뜨거운 온수가 흐르고 천장에 강력한 조명이 비추는 이 시대 기준으로 호사스런 유리 온실은 아이슬란드를 위해 이민호가 만들어준 농경시설이었다. 상추와 양배추 등 예전에는 아이슬란드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던 채소가 집집마다 세운 온실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온실은 겨울에 레이캬비크에 입항한 외국인 선원들이 몸을 녹이는 곳이기도 했다.
유리 온실은 가축을 기르는 용도로도 활용됐다. 먼저 덴마크에서 젖소를 도입해서 온실에서 기르는 채소에 비해 훨씬 싼 곡물을 먹여 키웠다. 이 젖소들에서 짠 우유 덕택에 아이슬란드의 아기들이 더 이상 영양부족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 또한 양계장도 온실로 만들어서 싱싱한 달걀을 아이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됐다.
“돌고래 고기와 물고기만 먹던 페로 제도 사람들도 이제는 다양한 음식을 알게 됐어요.”
“여왕이 백성들을 훌륭하게 잘 다스리고 있소. 분리형 숙소도 외장 공사가 거의 다 끝나가는구려.”
레이캬비크에는 현대식 숙박시설이 건설되고 있었다. 어부들 숙소는 항구에 따로 있었고, 공사 인부들이 콘도미니엄과 비슷한 5층짜리 건물의 외벽에 마감재를 붙이고 있었다. 이 콘도미니엄은 시원한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려는 북미 동해안 주민들이 영업 대상이었다.
“여행객들이 이 춥고 먼 곳까지 찾아올까요?”
“추위도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소. 열대지방이나 여름에 더운 지역 사람들에게 아이슬란드를 알려야겠소.”
뱃길이든 육로든 목숨 걸고 다녀야 하는 이 시대에 관광산업이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관광이라는 용어 자체도 만들어지지 않아 tourist는 18세기 후반에, tourism은 19세기 전반에 등장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도 쫄쫄 굶거나 외국에 팔려가 용병 일이나 하고 있으며 파리 사람들은 똥이 둥둥 떠다니는 센 강의 더러운 석회수 물을 마시고 있었다. 스위스의 험악한 산이나 파리의 낡은 건물을 보자고 관광객이 몰려들 이유가 없었다. 오직 이탈리아 정도만 외국 유학생들과 학자들이 몰려오는 대학 주변에서 관광 비슷한 산업이 초기 형태를 유지했다.
“관광산업이 발달하면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많이 생기길 바라야겠어요. 지금은 마부 몇 명 외에는 죄다 어부밖에 할 일이 없어요.”
“넓고 큰 온실이 많이 생긴 다음에는 농민이나 축산업자, 유통업자라는 직업도 생길 것이오. 그리고 고산국 학생들이 매년 떠나는 수학여행을 전염병이 넘쳐나는 유럽이나 중동으로 보내느니 한 해 정도는 이곳에서 며칠 푹 쉬게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드오.”
흰 피부에 푸른 눈의 아이슬란드 처녀들이 메이드 복장을 하고 방을 청소해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민호에게는 몹시 흐뭇한 장면이었지만 고산국 학생들은 도깨비라고 놀라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고산국에 비교적 흔한 아일랜드나 프랑스 이주민들과 또 다르게 생겨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많이 놀랐다.
“어머나! 수학여행이 교육의 일환이라 했으니까 박물관 같은 곳을 차려야겠어요. 해양 박물관, 아니 바이킹 박물관은 어때요?”
“빙하와 화산, 그리고 오로라만으로 이미 충분하지만 그것도 참 좋은 생각이오. 바이킹이 해적처럼 부정적인 인상만 있는데, 자그마한 배를 타고 거대한 바다에 도전하고 새로운 땅을 찾는 인류의 역사라는 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봅시다.”
바이킹과 비슷하거나 더 빠른 시기에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더 훌륭한 항해술로 대서양보다 더 넓은 태평양에서 더 많은 섬을 발견해서 정착해 살았다.
그러나 약탈과 학살이나 일삼던 바이킹들은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에게 현대에도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았다. 그에 반해 폴리네시아인들은 정복자가 아닌 피지배 원주민으로 남거나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소멸했다.
“왕도에 해양 박물관이 있죠? 참조해야겠어요.”
“박물관 직원을 이곳에 보내겠소. 협조해서 잘 만들어보시오.”
“학생들에게 진취적인 바이킹들의 해양 진출 역사를 보여주겠어요.”
고산국 본토에 사는 고산족 원주민들과 태평양 여러 섬에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의 언어 사이에 높은 연관성이 발견된 것은 이미 건국 초기의 일이었다. 그래서 태평양에서 새로운 섬을 발견하면 고산족들이 섬 원주민 언어를 금방 배워서 통역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폴리네시아인들은 고산족 통역뿐만 아니라 고산국 항해자나 어부들까지 동족 내지는 옛 조상들의 같은 후손으로 대접했다. 미크로네시아에 속한 섬들에서는 탐사전단과의 접촉 과정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진 반면 폴리네시아는 선물 교환으로 시작해서 매우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뭐요?”
“아이슬란드 귀족 여식들이에요. 다들 예쁘죠? 새강릉 왕립 여자대학에서 자유과 공부를 마치고 올해부터 저를 도와 일을 배우려 해요.”
영어로 리버럴 아츠, 라틴어로 아르테스 리베랄레스는 직업 교육과 상관없는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닦기 위한 학문들이었다. 흔히 자유 7과라 해서 삼학은 문법, 수사학, 변증법, 사과는 산술, 기하학, 점성술, 음악이었다.
현대 미국과 유럽에도 자유과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 일부 리버럴 아츠 칼리지 혹은 종합대학에서는 학부 기간 내내 리버럴 아츠에 중심을 두고 가르친다. 고산국 본토와 북미 동해안에도 주로 외국 왕족이나 귀족 출신 유학생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자유과 대학을 세웠다.
“그런데 왜 우리와 함께 온천에 들어와 있느냐는 뜻이오.”
“그야 앞으로 아이슬란드 행정청에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를 맡을 예정이니까요. 이런 인재들은 전하께서 직접 관리해주셔야 해요.”
지난번에 무조건 가슴 크기 순서로 뽑은 아이슬란드 귀족 여식들과 달리 이번에 뽑힌 여자들은 제법 총명해 보였다. 헤드비히가 북미와 덴마크를 오가느라 바빠 정작 아이슬란드에 체류할 기간이 적어 아이슬란드 출신 여성 행정관들이 더 필요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호도 어느덧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다. 예전에 비해 자신감이 좀 떨어졌다.
“음. 지금까지야 일할 사람들을 여자들 중에서 뽑아서 그런데 앞으로는 달라져야 할 것이오. 남녀 상관없이 시험과 면접을 통해 관리를 뽑아야겠소.”
“어머! 설마 전하께서 남자에게도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농담 마시오.”
“그럼 이 아이들을 안지 않을 건가요? 전하의 후궁이 된다는 기대감에 멀리 새강릉까지 가서 공부했던 아이들인데요.”
이 자리에는 세 명뿐인데 아직도 새강릉에서 공부를 하는 처녀들까지 포함해 열 명이 좀 넘는다고 했다. 고산국의 내명부는 최근에도 여전히 확장일로라서 아이슬란드 출신만 거부하기도 애매했다.
“그럼 딱 여기까지만 받아들이겠소. 대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까지 말이오.”
“호호! 그러세요.”
헤드비히가 몹시 즐거워했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이민호가 어찌 하는지 두고 보자는 의미가 담긴 것 같아 조금 무서웠다.
“기뻐요, 국왕전하. 저는 카타린이라고 해요. 그 동안 전하께서 새강릉 별궁에 들르실 때마다 먼발치에서 뵀어요.”
새로 아이슬란드의 행정을 맡게 될 여자들이 이민호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무슨 도티르라고 하는 부칭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증기에 가려서 잘 몰랐는데 새하얀 피부에 날씬한 몸, 그리고 커다란 가슴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새강릉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지만 아이슬란드의 교육제도가 정비 중이라서 중간 단계를 죄다 뛰어넘었다고 한다. 물론 귀족 여식들이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나 가정교사를 통해 배웠기에 대학에서 수학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 반갑다.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겠구나.”
“전하와 아이슬란드를 위해 조선말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잘했다. 너희들이 아이슬란드에서 마지막으로 뽑힌 ‘일하는 후궁’이 될 것이다. 그 동안 고산국이 규모가 커져서 후궁 제도와 관리 선발 제도가 앞으로 완전히 분리될 테니까.”
“저희들에게 행운이네요.”
헤드비히가 어련히 잘 뽑았는지 다들 착하고 예쁘고 총명한 듯했다. 온천에서 벌거벗은 채 상견례를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쑥스럽구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전하께서 많이 가르쳐주세요. 일도, 밤일도요.”
“쿨럭!”
“어머나! 설마 감기에 걸리신 것은 아니시죠?”
아이슬란드 귀족 영애 세 명은 아직 남자를 접해보지 못한 순진한 처녀들이었고, 이제부터 남편이 될 이민호에게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다가왔다. 어색해 하는 얼굴 표정과 달리 이민호의 손은 물속에서 바삐 움직였다. 가느다란 허리에 비해 풍만한 엉덩이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상 뜸 들일 필요는 없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득 담은 순진한 눈망울들과 마주친 이민호는 당장 레이캬비크 왕궁으로 돌아가 신방을 차리라고 지시했다.
물론 헤드비히가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헤드비히는 신방까지 따라 들어와 아무 것도 모르는 처녀들이 남편을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유격전에 이어 이제는 아일랜드 독립군에서도 대규모 정규 부대를 본격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의 생존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독립군은 잘해내고 있었다.
황무지라는 아일랜드 서쪽 지방을 현재 독립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원체 가난한 지역이라 비록 조금이지만 명목에 불과한 세금도 걷었다. 또한 북미 동해안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전쟁 공채를 판매해 군자금 일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화승총을 싣고 에스파냐에서 아일랜드로 향하는 배들과, 이 무기 밀수선들을 나포하기 위해 바다로 나온 잉글랜드 해군 함선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세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잉글랜드에서 파견한 토벌군 사령관이 세 번이나 교체된 다음 무력진압보다는 아일랜드 농민들에 대한 위무와 보호 위주로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면서 모든 땅이 전쟁터로 변한 아일랜드인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됐다.
“아일랜드 입장에서야 외국의 침략일지 몰라도 잉글랜드는 반란을 진압하는 입장이에요. 무조건 강하게 진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온화하게 대해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반란을 진압하겠어요?”
“따져보면 그 반대요. 유격부대와 민중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라고 했소. 유화정책은 아일랜드 농민들로부터 독립군을 분리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소.”
20세기 중반 대 게릴라전에서 가장 유능한 군대가 뜻밖에 한국군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과 베트남전에서 베트콩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보복 작전만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민간인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게릴라를 고립시키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도로를 닦아주고 농사를 거들며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는 것은 파병국인 자국민이나 해외 여론을 의식해 폭력성을 감추려는 기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은 특히 게릴라 토벌 작전에서 아주 효율적인 군사작전이었다.
어느 쪽이 진정으로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군대인지 판단을 주민들이 하기 때문이다. 그 지역 게릴라 협력자들을 반대로 돌려세우고 신병이 공급되는 루트를 끊으면 게릴라 조직은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그럼 문제잖아요.”
“독립전쟁에서 아일랜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독립군이 장악한 지역의 소득과 주거환경 수준을 올릴 필요가 있소. 서부 황무지에 아일랜드 출신 공작원들을 파견해야겠소. 술도가 주인과 건설현장 인부로 위장, 아니 원래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뽑아야겠소.”
헤드비히의 질문에 이민호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민호의 손은 아이슬란드 후궁들의 몸을 만지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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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늦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