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22 92. 1613년 =========================================================================
“뭘 그리 주저하나, 시몬? 고산국은 천문학자들의 천국이라네. 내가 여기 와서 얼마나 많은 천체를 발견했는지 자네도 부러워하지 않았나?”
갈릴레오까지 거들어서 거의 넘어올 뻔했던 마리우스가 한숨을 팍 내쉬었다.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믿는 마리우스와 행성 궤도를 타원이 아닌 원이라 믿는 갈릴레오지만 이 시대 천문학계에서 케플러와 함께 가장 열정적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럽과 중동의 천문학자들에게 고산국이 꿈의 나라라는 인식이 이때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가 그랬듯이 이민을 가는 중요한 문제는 아무리 가장이라도 혼자서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제 가족들이 떠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 동료들 몇몇이 고산국 왕도에서 일하는 것으로 압니다. 만나보고 갈까 합니다.”
30년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지옥으로 변한 독일 땅을 누구나 떠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대학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중에 고산국에서 천문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고산국에서 천체망원경의 배율과 성능을 계속 향상시키면서 후대 천문학자들이 새로 발견할 천체를 이때 미리 발견하고 있었다. 특히 일정 기간을 두고 특정 공간의 사진을 연속 찍어서 이동하는 천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천체의 발견 가능성이 대폭 높아졌다.
“할 수 없지. 그럼 케플러처럼 자네도 고산국에서 지급하는 연구비를 받도록 하게. 이제부터는 생계를 위해 왕실이나 귀족들이 의뢰하는 점성술에서 손을 떼어도 될 거야. 이번에 귀국할 때 새로 만든 천체망원경과 사진기를 갖고 가도록 하게.”
“못난 저를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하.”
천문학은 점성술이라는 딸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문학자들이 생계를 위해 점성술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오히려 점성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천문학을 도구로써 발전시킨 면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케플러나 갈릴레오 등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들마저 죄다 실제 직업은 점성술사였다.
“좋아! 자네 친구들에게 며칠 휴가를 내줄 테니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하면서 실컷 회포를 풀게나.”
“저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전하. 그리고 천문학자들에게 며칠 쉬라고 어명을 내리셔도 그들이 제대로 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럼 갈릴레오 백작이 안내해줄 걸세.”
“어? 저는 요즘 초신성 잔해를 조사하느라 바쁜데요? 다른 교수에게 안내를 부탁하겠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다들 일에 미칠 때였다. 때로는 지독한 경쟁이 학문의 발전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바로 이 시기였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말에 마리우스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뭐라고요? 설마 티코 브라헤가 1572년에 발견한 초신성의 잔해 말입니까? 저도 요즘 그곳을 관측하고 있습니다만.”
“자네하고는 매번 여러 가지가 겹치는구먼. 그냥 고산국에 이민 오게. 나눠서 일하면 되니까. 우리가 관측하고 분석하면 전하께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실 거야.”
“천문학은 국왕전하의 취미 수준이 아니셨습니까?”
“관측은 내가 하지만 이론은 전하께서 세우시고 내 이름으로 논문이 발표된다네.”
“아부하지 말게. 나는 혹시나 해서 이견만 낸다네. 그리고 직접 관측하고 발견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
최근 갈릴레오가 발표한 논문들 중 일부는 이민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서 결론이 약간 다른 방향으로 작성됐다. 해왕성도 갈릴레오가 판단한 항성이 아니라 이민호가 지적한 대로 태양계의 여덟 번째 행성임이 확인됐다.
그리고 어째서 천왕성의 궤도에 오차가 생기는지 그 동안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는데 궤도 변동의 원인을 더 바깥쪽 궤도를 도는 해왕성의 존재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중력의 작용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은 따로 논문을 발표하지 않고도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는 천문학자들에게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해왕성의 궤도에도 오차가 생김으로써 그 바깥에 다른 행성의 존재를 예측한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행성 발견을 위해 고심했다. 결국 해왕성과 가까운 궤도를 지나던 명왕성을 실제 역사보다 300여 년 일찍 발견해냈다. 이번에도 사진의 힘이 컸고, 이름은 이민호가 아는 이름 그대로 명왕성으로 지었다.
그러나 가장 먼 명왕성을 발견한 이후 과연 이것을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천문학계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여기에 국왕이며 후원자인 이민호까지 토론에 참가해서 행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민호는 첫째로 행성 궤도면이 다른 행성들과 다르고, 둘째로 명왕성 같은 작은 천체는 앞으로 더 많이 발견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왕성 근처에서 카론이 발견돼, 이것이 명왕성의 위성인지 아니면 명왕성과 함께 이중행성을 구성하는지를 두고 또 다시 격론이 촉발됐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마리우스 씨는 어떻게 왕도를 방문하게 된 건가? 천문학자들이 다들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면서.”
“아차! 제가 할 일을 잊어먹고 있었습니다. 교황청에서 국제 천문학회에 서류를 보냈습니다.”
이민호가 묻자 마리우스가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던 고산국 왕도 방문 목적을 기억해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꺼낸 마리우스가 그것을 갈릴레오에게 내밀었고, 표지를 읽은 갈릴레오의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이단심문소 출두 명령서?”
“이것들이! 비서관!”
갈릴레오의 비명에 이어 이민호의 격노가 터져 나왔다. 야간 당직 비서관이 놀라서 헐레벌떡 알현실로 뛰어 들어왔다.
“당장 교황청 대사를 초치해! 성 베드로 대성당이 누구 덕택에 예정보다 몇 년 앞서서 완공됐는지 잊었나?”
“이 한밤중에 말입니까?”
“기도 중이든 미사 진행 중이든 상관없어! 국가 대사다. 당장 데려와!”
교황 대사는 추기경을 제외한 주교급 사제들 중 한 명이었다. 교황청에서 파견한 외교관이므로 국적이나 주재국에서 사제직을 수행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했다.
고산국이 역사가 짧아 고산국 국적을 가진 사제들 중에서 아직 주교를 배출하지 못했다. 고산국 가톨릭계 인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전쟁터의 성녀로 알려진 줄리아로서, 다른 수녀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저, 전하! 제가 서류를 받자마자 배를 타고 왔으니 고산국 주재 교황 대사는 아직 아무런 소식을 못 들었을 것입니다.”
“마리우스 씨! 고산국이 갈릴레오 백작을 후원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럼에도 이단심문소에 출두하라고 명령한 것은 교황청이 고산국에 도전한 것이나 다름없어. 특히 이번 교황은 재위 기간 내내 사사건건 고산국과 충돌했네.”
“이번 사안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 교황 바오로 5세도 학자 출신으로서 갈릴레오 백작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결국 교황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단심문소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재판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단심문소도 교황청 소속인 만큼 교황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봐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한 다음 1611년 갈릴레오가 로마를 방문해 교황 바오로 5세를 접견했을 때 큰 환영을 받았다. 예수회에서도 이때는 목성의 위성들이 목성 주위를 도는 것처럼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둘이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갈릴레오의 학설을 지지했다.
“조르다노 브루노가 7년 동안 재판을 받고 나서 화형에 처해졌을 때가 1600년 2월입니다, 전하.”
“1600년이라면 내가 가장 존경하던 클레멘스 8세 교황이 재위할 때가 맞아.”
조르다노 브루노는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수사로서 태양도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항성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혁신적인 우주관으로 인해 이단 처분을 받았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동설이 태양중심설, 즉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라는 학설이며 고정된 천구라는 한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브루노의 주장이 훨씬 진보적이며 사실에 근접한 학설이었다.
당시까지 무슬림이 즐기던 악마의 음료라는 악명을 얻고 있던 커피를 즐겨 마셔서 합리성을 추구하던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재위 기간에도 이단심문은 계속됐다. 거꾸로 말해서 보수적인 바오로 5세가 교황으로 재위 중인 때라 해서 특별히 이단심문소의 활동이 강화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검사성성 사제들이나 이단심문소 재판관들도 양심과 교리에 따라 판단하므로 교황 개인의 탓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결정을 뒤바꾸거나 늦출 수는 있겠지. 일단 갈릴레오 백작 자네가 이단심문소에 기소됐다면 재판 진행을 가로막을 도리가 없을 거야. 하지만 선고를 유야무야하게 만들 수는 있을 테니 기다려보게.”
“저를 위해 전하께서 직접 나서주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오나, 전하! 교황청에서 저를 소환한다면 저는 재판에 나가 제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싶습니다. 저는 배교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갈릴레오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현대 과학자들 중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이상할 이유가 없지만, 이 시대에는 교리와 어긋나면 이단으로 지탄받고 심지어 화형을 당하던 시대였다.
“주교들이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알고도 자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위험이 있어서 그런 거야.”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제 국적은 이미 고산국으로 옮겼습니다.”
“어? 그렇지. 하지만 고산국을 제외하면 국적법이라는 게 따로 없으니까 갈릴레오 자네가 고산국 귀족이라는 사실을 교황청에 강력하게 주장해야겠어.”
실제 역사에서 교황청의 검사성성은 이탈리아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만 취급하고 국외에는 금서 목록을 송부하는 일에만 관여했다. 에스파냐나 독일에서 벌어진 참혹하고 야만적인 종교재판은 사실 교황청과 무관한 일이었으나 결국 모든 책임과 비난을 뒤집어썼다.
현재 갈릴레오가 이단심판에 기소된 것은 이탈리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이탈리아인으로 규정된 탓이었다. 근대 이전에도 이민의 사례가 있기에 교황청에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하기로 했다.
“전하!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교황 대사가 헐레벌떡 왕궁에 뛰어 들어왔다. 이민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교황 대사를 한참 꾸짖은 다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교황청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갈릴레오 백작은 고산국 귀족이며 이미 고산국 단일 국적만 보유한 지 10년이 넘었소. 검사성성이 고산국 귀족을 종교재판에 회부한 것은 명백한 월권이오!”
“말씀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단심문소에 갈릴레오 백작을 기소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황청에 문의하여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교황 대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했다. 그러나 금서 목록에 갈릴레오가 출간한 몇몇 책들의 이름이 명백히 들어 있었다.
“하오나 갈릴레오 백작이 낸 <황금 측량자>와 <천문학 대화>라는 책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명백한 교리 위반입니다. 그래서 갈릴레오 백작을 피고로 두고 고산국에서 종교재판을 진행해야 하지만 고산국의 군주이신 국왕전하께서 종교재판을 용인하지 않으실 줄로 압니다.”
“대사! 지구가 태양을 돌던 태양이 지구를 돌던 진실이 중요하지 도대체 교리와 무슨 상관이 있소?”
“구약의 몇몇 구절과 전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지동설은 신학에서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신교 쪽에서 워낙 강력하게 갈릴레오 백작을 규탄하고 있어서 교황청에서 옹호해주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마시오. 나중에 지동설이 진실로 밝혀지고 널리 받아들이게 되면 교황청은 진실을 억압하고 과학자를 탄압했다는 불명예를 영원히 떠안게 될 것이오. 신교도들이 말하는 것처럼 교황청이 진실이 아닌 거짓된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서야 되겠소?”
갈릴레오의 이단심판 문제는 국적으로 인해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민호는 갈릴레오의 후원자로서 신교와 구교 양쪽 모두에게 찍힌 셈이 되었다.
“사실 저도 그게 두렵습니다. 작은 진실 하나를 왜곡했던 일이 나중에 폭로될 경우 자칫 사람들에게 신앙 전체가 거짓으로 규탄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로마가톨릭의 문제만이 아닌 기독교 전체의 문제입니다.”
“나도 그게 걱정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교황청에서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다음 진실을 인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오.”
“그럼 성경 구절을 부인하게 됩니다. 바로 그게 교황청의 고민입니다.”
사실 이때 천체 움직임의 정밀한 계산으로 인해 이미 대세는 어느 정도 지동설로 기울어져 있었다. 교황도 알고 교리에 완고한 주교나 추기경들도 어렴풋이 인정했다.
벨라르민 추기경은 지동설에 합리적인 증거가 있다면 성경에 근거하여 지동설을 부정하지 말고 성경을 신중히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역사에서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고령을 이유로 자택에 연금하는 것으로 처벌을 완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성경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신교의 경직성이 문제였다. 신교로부터 공격받을 구실을 만들어주기 싫은 로마가톨릭에서 쉽사리 지동설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하지 않았소? 교황청이 신앙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진리와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라겠소.”
“과학 문제를 두고 교황청이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겠습니다.”
교황 대사가 약속한 것처럼 일단은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흘러갔다. 로마교황청 재정의 절반 이상을 감당하는 고산국의 힘은 컸다. 고산국 왕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들인 교황청에서는 갈릴레오에 대한 기소를 중지했다.
사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때만 해도 갈릴레오에 대한 기소는 무혐의로 판결이 났다. 괜히 이민호만 흥분해서 난리 친 꼴이었다.
그러나 추기경이었을 때부터 갈릴레오와 친분이 있었고 한때 그를 변호했던 우르바노 8세가 교황이 된 이후 1633년에 다시 종교재판이 열린다. 바로 이때 갈릴레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교황 개인과의 친분이나 지동설에 대한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시대의 요청에 따라 교황청 조직이 다른 정치적 판단을 내리게 될 수도 있었다. 이민호가 매우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다른 목적을 위해 거짓이 승리하는 것을 용납하는 잘못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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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8월이었습니다. 이제 30년 전쟁과 병자호란이 멀지 않았습니다.
성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