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20화 (769/1,000)

00820  91. 1612년  =========================================================================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 파병된 원정군의 작전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해군이 바다를 청소하고 육군과 해병대가 해적 본거지였던 바닷가 마을 여러 곳을 점령했어도 홍해와 아덴만에는 여전히 해적들이 출몰했다.

지상에서도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조직을 갖춘 적군을 만난 경우는 전혀 없었으며 원정군이 해적 마을을 점령하고 나서야 사상자가 조금씩 발생하는 식이었다. 적은 어디에나 있었다. 이런 현상을 파병 전에 미리 예상했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작전이 지지부진하자 결국 국왕 친정 이야기가 나왔다.

병력을 증강해서 직접 에티오피아로 가려는 이민호를 막은 집단은 참모본부나 후궁들이 아니라 의사들이었다. 의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각종 풍토병이 만연한 아프리카에 국왕을 보낼 수 없다면서 왕실 주치의가 강력하게 제지했다. 그래도 가려 했으나 이제 환갑이 다 된 주치의의 부인 여의사가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이민호의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소말리아의 군대가 그렇게 강한가요?”

“아니야. 정규군이 있었다면 벌써 원정이 끝났겠지.”

군사는 잘 모르는 혜영의 질문에 이민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절대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근대적이다 못해 일부는 현대적인 고산국 군대는 적이 정규전을 걸어올 것에 대비해 특화돼 있었다. 이 시대에 아무리 근대적인 군대라 해도, 그것도 고산국 군대보다 수십 배나 많은 병력이 몰려와도 시대를 앞서가는 화기와 장갑차, 비행기 등을 당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미군이 베트남과 소말리아에서 그랬듯이,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체첸에서 겪었듯이 원정은 지지부진하고 계속해서 깊숙한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의 원인은 소말리아 북쪽을 영토로 두고 있던 아달 술탄국이 멸망한 것에 있었다. 한때 아비시니아 정복 전쟁을 벌이며 잘 나가던 아달 술탄국은 16세기 전반에 이맘이 황제를 죽게 만든 다음 내전이 길어지면서 지금까지 그 지역에 제대로 된 정부 조직이 없었다. 그래서 고산국 군대 입장에서 매우 만만한 정규군은 만날 일이 없는 반면에 마을에 들어가면 사방에 온통 저격수와 암살자가 우글거렸다.

인세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북 소말리아에 비해 남동쪽 모가디슈 방향에 자리 잡은 와르상갈리 제국은 이집트부터 인도까지 사방에서 상인들이 몰려와서 무역으로 번창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드문 4~5층 석조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모가디슈 항에서 소말리 상인들이 베네치아에 향료를 수출하고 중국에 기린과 얼룩말, 상아를 수출했다. 그 정보를 접한 이민호는 옛 그림에 등장한 기린이 정화의 원정대가 직접 잡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와르상갈리 제국 황제가 해적 토벌 작전에 도움이 되겠다면서 고산국 원정군에 화승총으로 무장한 병력과 대포를 보태주기도 했다. 와르상갈리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맹방으로서 아프리카 남동 해안에 요새도시를 쌓고 지키던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낸 적이 있었다. 덕택에 므부투가 이끄는 아프리카 왕국이 포르투갈과 충돌하는 일이 없이 아프리카 동해안 지대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원정군에서 사상자가 꾸준히 늘어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계복 오라버니까지 부상을 입을 줄은 몰랐어요. 전투 중에 부상 입은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죠? 다리를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이 아파요.”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사실 조심해도 별 수 없었을 거야.”

이민호와 혜영은 군 병원에 입원한 원정군 총사령관 계복의 문병을 가고 있었다. 현지에서 수술을 받은 후에 어제 수송기 편으로 왕도에 위치한 병원으로 긴급 호송돼서 다시 수술에 들어간 것을 알고 혜영이 많이 놀랐다.

병실에 들어가자 계복의 아내들이 놀라 얼른 자리를 피해주었다. 군사작전에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던 계복이 이번에는 풀이 잔뜩 죽어 있어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무척 신기했다.

“부상은 어때?”

“별 것 아닙니다. 총탄이 다리뼈에 박혔을 뿐입니다.”

“많이 아프겠다. 쯧쯧! 과일 좀 사왔어. 입원한 동안 잘 먹고 편히 지내도록 해.”

탄알과 파편, 부서진 뼛조각을 끄집어내고 경과를 봐서 다리뼈를 철심으로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이미 의사로부터 들었다. 이민호 입장에서야 계복이 목숨만 붙어있으면 상관없었지만 원정군을 적지에 남겨두고 혼자 돌아온 계복은 꽤나 심란한 듯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도련님.”

“계복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힘 내!”

“출발 전에 도련님이 그렇게 주의를 주셨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방심 안 해도 당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 전쟁은 원래 그래.”

소말리아 작전은 부사령관으로 참전한 감동이 지휘권을 이어받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감동이 강온 양면책을 구사해서 저항이 심한 몇 곳은 대대적인 포격과 폭격으로 아예 초토화시켰다.

대신 관개사업과 지하수 개발을 통해 소말리 사람들이 해적질을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게 해주는 일에 진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적질이 돈이 된다면 계속해서 바다로 나올 것이기에 오만 상선들의 무장을 강화하고 아덴만에 고산국 해군 분함대를 상주시키기로 했다. 이민호도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을 예상했기에 해군 파병 계획을 승인했다.

“치료를 마치더라도 다리가 불편해서 계속 군에 남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관학교 교수나 하고 싶은데 제 청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웃기지 마! 다리를 절든 사지가 다 사라지든 상관없이 계복이 너는 죽을 때까지 고산국 대원수야.”

“노동력 착취가 심하십니다. 저는 벌써 몇 십 년째 도련님께 봉사했습니다. 이제 좀 쉴 때도 됐습니다.”

“총함장님과 아버지는 그 연세에 지금도 현역이셔.”

계복이 피식 웃었다. 계복 이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드물었다. 감동과 감불도 훌륭한 장군이지만 대장은 언제나 계복이었다.

총함장 이순신은 의도적으로 지상군과 관련된 일을 회피했고, 해병대마저 다른 지휘관에게 전권을 떠넘겼다. 여전히 조선과 관계를 유지하는 이순신 입장에서는 무척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과 상관없이 대원수 경호부대를 좀 더 확대해야겠어.”

“그건 도련님 뜻대로 하시고, 바깥에 제 여자들 좀 위로해주십시오. 저보다 충격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알았어. 계복이 너만 믿는 여자들을 위해서라도 힘내도록 해.”

“도련님도요.”

서로 마주보고 씩 웃다가 병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주인과 노복 관계로 만났지만 평생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다진 관계였다.

계복이 거느린 여자는 12명이었다. 임진왜란 기간에 알게 된 조선 어느 무관의 서녀가 한 명, 자바 섬 동쪽 무역도시에서 보낸 공주가 두 명, 지중해에서 구해줬으나 갈 곳 없는 노예를 받아들인 것이 세 명, 여진족 귀족들이 보낸 딸이 두 명으로 다들 현모양처들이었다. 문제가 되는 여자들은 나머지 네 명으로, 계복이 처음 얻은 여자들이었다.

“국왕전하께 죄를 청합니다. 저희들이 자진할 수 있도록 윤허해주십시오.”

“계복은 뭐라고 했나?”

이민호가 병실에서 나오자 계복의 여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복이 처음에 받아들였던 일본 여자 네 명은 이민호의 호위들처럼 주인을 따라다니면서 경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면서 살아왔다.

“주인님께서 저희들은 사무라이가 아니기 때문에 자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여자들이지만 주인님을 모시는 가신이므로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계복이 말한 것처럼 너희들은 사무라이가 아니라서 자진할 필요가 없다.”

고개를 조아린 여자들 입에서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실망했나? 너희 둘은 고산국의 군인이고 너희 둘은 고산국 대원수의 아내다. 망해버린 일본의 사무라이 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저희들은 이번에 저격 사건을 막지 못했습니다.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출정 직전에 국왕전하께서 저희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임무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 원정군이 출정할 때 너희들에게 신신당부했었지. 그럼 누가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가도 마찬가지로 저격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기억나겠지?”

계복의 여자들이 대답하지 않았다. 정규전이 아닌 이런 전쟁에서는 온 사방이 적일 수밖에 없었다. 총사령관을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 해도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계복은 국왕인 나 대신에 총탄을 맞은 것이다. 계복이 일찍 회복할 수 있게 잘 보살피도록 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평소 같으면 어색하게 들렸을 말이 이번에 처음으로 진심으로 들렸다. 이들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임무에 실패했다 하나 암살 위험에 노출되고도 계복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특히 여군 장교인 둘이 몸으로 계복을 가림으로써 추가적인 공격을 막아냈다고 들었다.

“감동 장군이 강온양면책을 쓰는 것은 잘하고 있는 거겠죠? 배가 고파서 바다로 나온 해적들이니까 먹을 걱정이 사라지면 해적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 거여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아무리 배가 부르더라도 해적이란 것들은 남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는 것에 전혀 주저하지 않는 인간 말종들이거든.”

금액을 기준으로 17세기 이후 대해적시대에 약탈 금액 1위부터 20위까지 역대 해적 선장들의 말년을 추적한 연구가 있었다. 예상하다시피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아두고도 죄다 해적질하다가 잡혀 죽었다. 혼자서는 평생 쓰지도 못할 큰 재산을 모았어도 캡틴 드레이크처럼 살아서 해적질을 그만 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뜻이다.

“그럼 어째서 해적들에게 먹고 살 길을 마련해주고 계세요?”

“그 해적들을 처치하는 우리 원정군과 해군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야. 해적은 현장에서 사살하는 것이 원칙인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해적이라도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이 많이 들잖아? 하지만 해적들은 배가 고파서 해적질에 나선 것이 아니라 그저 살육과 약탈, 피에 취한 악귀들이니 마음껏 쏘아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악마를 상대하는 방법은 그 악마보다 잔혹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인 해군이 악마보다 잔혹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해군이 해적에 강력한 대응을 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변명할 기회를 만들도록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정치가가 할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북부 소말리아에서 강온양면책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러나 고산국 원정군의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에티오피아와 와르상갈리 제국에서 파병한 군대가 귀국하고 나서의 일이었다. 북부 소말리아인들은 자기네 땅을 영구 점령할 가능성이 적은 고산국 군대에 적대하는 경우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고산국 해군에 의한 해적 소탕 작전이 높은 강도로 진행됐다. 바다로 나온 소말리아 해적선의 절반 이상이 다시는 땅을 밟지 못하게 되자 아무리 피를 즐기는 해적이라도 감히 배를 바다로 띄우지 못했다.

새로 선출된 이맘이 지도력을 발휘하고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북부 소말리아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고산국 원정군도 연대 단위로 순차적으로 귀환시켰다.

원정군이 북부 소말리아에 남긴 것은 여러 도시와 마을에 건설한 모스크 36곳과 매년 밀 1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관개 농지였다. 먹을 게 없어서 해적질을 한다는 변명을 하지 못하게 됐다.

11월 20일에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 사이에 1603년에 시작됐던 오랜 전쟁을 끝내는 휴전 조약이 체결됐다.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 이름을 딴 나슈 파샤 조약에서는 페르시아의 승리를 명백히 하는 코카서스 산맥 영유권 조항이 들어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이 1590년 이스탄불 조약에서 획득한 영토를 모두 내놓고 국경선은 1555년의 아마샤 조약 당시로 돌아갔다.

승전국 페르시아는 그 대신 매년 5만 9천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단을 오스만 제국에 공물로 바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아바스 대제가 공물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1615년에 두 나라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

“국왕전하! 제가 목성을 관측하는 도중에 태양계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새로운 항성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예쁜 파란 색입니다.”

“갈릴레오! 정말 축하할 일일세. 그런데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인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새벽 같이 왕궁을 방문했다. 그러나 밤새 일하는 갈릴레오 입장에서는 잠자리에 들고도 남을 늦은 시간이었다. 이민호를 위해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알현을 신청한 셈이라서 뭐라 불만을 표하지도 못했다.

표면 온도에 따라 항성이 파란 색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이민호는 가까운 거리라는 말에 특히 주목했다. 이민호가 가진 상식으로 태양계 바깥 행성은 최소한 몇 광년 단위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가까운 거리이긴 해도 천문학에서는 단위가 아예 다릅니다. 자그마치 태양과 지구 거리의 30.1배나 됩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며칠에 걸친 관측을 통해 그 천체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위치가 고정된 항성이 분명합니다.”

“갈릴레오! 천문학적 단위는 거리와 질량뿐만이 아니라 시간에도 적용된다네. 겨우 며칠 관측한 것으로 항성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말게.”

“하지만 다른 행성들은 매일 같이 위치가 변합니다. 행성일 리가 없습니다.”

“내 말을 믿고 단 며칠만 더 관측을 해주겠나? 어쩌면 그 천체는 태양의 여덟 번째 행성일 가능성이 있어.”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새로운 발견에 흥분한 것 같습니다. 조언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하!”

갈릴레오는 왔을 때와 같이 바람처럼 돌아갔다. 실제 역사에서 갈릴레오가 해왕성을 발견한 것은 1612년 12월 말의 일이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거리가 멀고 관측 기간 동안 거의 이동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해왕성을 태양과 같은 항성으로 추측하는 실수를 했다. 그래서 해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진 시기는 관측 후 200여 년이 지난 1846년이었다.

갈릴레오가 집안 문제와 연구비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관측과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이 이민호가 보기에 좋았다. 유럽 귀족들이 천문학자들에게 후원을 약속하고도 제대로 연구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어서 고산국으로 이민 오는 유럽 천문학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들은 고성능 천체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고 세계 각국에 논문을 동시에 발표함으로써 명성도 쌓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천문학은 근대 휴머니즘을 낳은 학문이었다. 여러 가지 천체 관측 결과는 성서에 기록된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밝혀 기독교에 꾸준하게 타격을 주었다. 이로써 정치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지배했던 기독교가 현실에서 물러나 종교적 영역으로 점차 축소됐다. 이런 결정적 역할을 다른 학문이 아닌 천문학이 해냄으로써 신이 아닌 인간의 시대를 열었다.

종교개혁을 통해 구교와 분리되어 성서 지상주의로 흐른 신교가 지동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였다. 이렇게 천문학은 신교와 구교를 가리지 않고 종교를 현실에서 물러나게 만든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민호가 천문학을 후원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종교의 영향력을 제한할 목적으로 종교를 적으로 삼아 싸울 필요가 없었다. 단지 천문학을 후원하면서 훨씬 적은 비용으로, 종교계의 반발을 사지 않고도 차근차근 종교를 무력화시키는 일을 진행했다. 이민호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천문학 후원이 국왕 개인의 취미로 알려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친정이 아니라서 길게 쓰지 못하고 이 정도 선으로 서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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