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16 91. 1612년 =========================================================================
고산국 국왕 호위함대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중이던 1월 하순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아돌프 2세의 부고를 접했다. 아돌프의 동생 마티아스가 형의 모든 권력을 이어받겠지만 그는 이미 각종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마티아스도 몇 년 안에, 그것도 하필 30년 전쟁 초반에 죽는다.
“자그마치 황제나 되는 사람이 한창 나이에 죽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권력을 빼앗긴 데 대한 분노와 상실감 때문이겠지. 이제 보니 합스부르크 가문의 군주들이 고산국 출신 주치의를 고용하지 않아.”
민지가 눈을 크게 뜨고 이민호에게 물었다. 여진족 호위들이 유럽을 얼마나 야만스럽게 보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럼 설마 무당을 불러 굿이라도 하는 건가요?”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겠지. 농담이고, 거기에도 황실 주치의 제도가 있어. 암살이나 기밀 유출을 우려해서 다른 나라 의사를 고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모양이야. 고산국 의대 출신 의사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실제로는 이민호의 주도 아래, 표면적으로는 마카오에 체류하는 선교사들과 협력하면서 급격히 발전한 고산국의 의학은 서양 의학과 뿌리가 같으면서도 훨씬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그리고 매년 고산국 의대에서 쏟아내는 논문 내용에 자극을 받아 이탈리아 대학들이 중심이 되어 유럽 의학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어느 나라도 국가에서 집중 지원하는 고산국 의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숫자가 차원이 달랐다. 당시 유럽에서는 대학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귀족 자제이거나 고위 귀족이 후원하는 수재가 아니면 의대 교육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통 수도원 수사들의 부업인 필경사들이 일일이 손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만드는 책값도 무척 비쌌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고산국과 활발히 무역을 하는 유럽 국가 왕실에서는 고산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을 주치의로 초빙했다. 고산국의 의료 기술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황제가 죽었다지만 말년에 허수아비였으니까 별 일은 없겠지요?”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30년 전쟁이 머지않았다. 실제 역사에서는 1618년에 시작되는데 고산국이 동유럽과 종교에 대한 영향력이 적었으므로 시대 흐름이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전쟁에 휘말리고 특히 독일은 흑사병까지 겹쳐서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지옥으로 변한다.
병참이란 현대에 들어와서도 몹시 힘겨운 일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군대가 식량과 장비를 휴대하고 원정을 갈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병력이 늘어날수록, 혹은 거리가 늘어날수록 병참 소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임진왜란 초기에 고니시 군이 세창이나 고을에 비축된 양곡을 노획하지 못했다면 그토록 급속히 행군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0년 전쟁에서 전쟁터가 된 독일이 황폐화된 것은 양쪽 정규군이나 용병 군대의 군인들이 보급을 약탈을 의존했기 때문이다. 고용 비용을 아끼려는 고용주가 용병들에게 약탈할 권리를 준 것은 족제비를 닭장에 풀어놓은 것과 같았다. 용병들은 전쟁에서 전리품을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민가 약탈에서 한 몫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독일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북미에서 일을 처리하다가 2월 초순에 왕도로 급히 귀환했다. 드디어 홍콩 개발에 대한 명나라 내부의 행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났다는 급보가 왔기 때문이다.
명나라 황제가 태정을 하는 것에 비하면 홍콩 개발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황제가 돈 냄새를 맡은 모양이라고 혜영이 코웃음 쳤다.
“물류 때문에 거대 항구도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해요. 하지만 본토의 고중이나 고남이 아니라 홍콩에 도시를 세운 것에 대해 말이 많아요.”
“설마 내가 명나라 땅에 욕심을 드러낸 것으로 비쳐졌나?”
“그건 전혀 아니에요. 앞으로 본토를 외부로부터 폐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이민호가 건국 이후 영토를 그토록 심하게 많이 넓힌 사람인데도 명나라 영토에 욕심낼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리둥절해진 이민호가 혜영에게 물었다.
“내가 명나라 땅을 정복해서 황제가 되려는 욕심을 낼 수도 있잖아. 내 야망을 무시하는 거야?”
“주인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잖아요. 그 많은 명나라 인구를 먹여 살릴 자신 있으세요?”
“아니. 그런데 외부로부터 폐쇄하다니?”
이제는 명나라 사람들도 잘 알았다. 고산국이 영토와 주민을 정복한 다음 쥐어짜서 이익을 내는 것이 결코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산국은 보통 인구 밀도가 극도로 희박한 지역을 평화적으로 획득한 다음 개발을 통해 부를 창출하고 인구를 유치했다. 그래서 명나라 백성들 중에 은근히 고산국이 명나라의 영토 일부라도 병탄하길 바라는 자들이 있었다.
“왕도의 외항으로 바다 건너 홍콩을 개발하는 것을 두고 고산국이 더 이상 이민을 받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그런 목적도 좀 있지. 아리수 항의 이민국 사무소를 폐쇄하고 홍콩에 개설할 예정이니까. 홍콩은 명나라는 물론 고산국에게도 관문 도시가 될 거야.”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아리수 항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물품 하역과 선적을 위해 대기하는 국내외 상선들이 아리수 항 바깥에까지 진을 쳤다.
그리고 수도 이외에 따로 대규모 외항이 필요하긴 했다. 수도 바로 바깥의 항구는 편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안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바다와 통하면서도 방어를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 곳, 서울과 인천만큼 이상적인 수도와 외항 도시의 입지도 드물었다.
가장 큰 문제는 명나라에서 고산국 본토로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들이었다. 이민 과정에서 이미 명나라 법률을 어긴 사람들이 명목상 제후국인 고산국 법률을 존중해줄 리도 없었다. 이주민이라는 자들 중에 그저 기본소득만 받아먹고 놀면서 주변에 민폐나 끼치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이들을 본토에 받아들이지 않고 바다 건너편에 수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도시 설계는 끝났겠지?”
“물론이에요. 그 비좁은 섬과 반도에 억지로 공항을 하나씩 만드느라 고생했지만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두지.”
화물은 배로 실어 나르더라도 승객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 경제적인 시대가 곧 올 예정이었다. 국방연구소는 수송기의 크기를 늘리는 일에 대규모 자금과 인원을 투입하고 있었다. 지금도 30명 단위는 한 번에 태우고 비행할 수 있었지만 민간인 승객이 비행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더 낮춰야 했다.
“난징에서 선발한 인원만 건설 노무자로 고용하는 것은 원활한 노동력 수급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선발 과정에서 당연하게 비리가 생길 거여요.”
“그렇다고 우리가 명나라 노동자들을 선발할 수는 없잖아? 조차지 경계선은 명나라에서 지키기로 했으니까 노동력 수급도 아예 그쪽에 맡겨. 만약 명나라에서 전란이 일어나면 피난민들이 몰려올 수도 있어. 우리는 장사나 하고 이익만 보면 되니까 복잡한 일에 얽히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예 우리 땅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어허! 다른 데서는 절대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이민호는 새로 건설될 항구도시가 20세기 중후반의 홍콩 정도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고 바랬다. 물론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늘어선 화려한 홍콩의 밤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
초대 홍콩 행정청장은 명나라 대신이 겸임하기로 했다. 홍콩도 명나라 영토이므로 지방 행정관에 황제의 인사권이 미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행정청장에게 실권은 거의 없었고 고산국 4명에 명나라 3명으로 구성된 행정위원회에 전권을 맡겼다. 명분은 명나라가, 실리는 고산국이 챙기는 전형적인 두 나라 관계가 이곳에도 적용됐다.
“도시와 항만 설계 과정에서 마르그레타 님의 통찰력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요. 마르그레타 님이 제안한 설계안을 저도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교통 소요를 최소화하는 더욱 효율적인 구획 배치를 하면서도 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배려가 가득해요.”
“뭐, 어린 애가 알면 얼마나 알겠소?”
“주인님 입 찢어지겠어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무척 좋죠?”
“험! 험! 그저 그렇지 뭐.”
음악이나 학문, 운동에 재능을 가진 왕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인 후궁들이 이민호의 눈치를 극도로 살피면서 정치나 행정은 암암리에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루스 차르국에 황후로 시집갈지도 모를 마르그레타만 예외에 해당했다.
“정치학이든 법학이든 애들이 하고 싶은 걸 공부하라고 해. 괜히 억지로 재능을 억누를 필요는 없어.”
“어머! 그런 일이 있었나요?”
“모른 척하긴? 개똥이 이야기야.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금방 친해지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남을 설득도 잘해. 산악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의지도 누구보다 강하지. 괜히 재능을 꺾으려고 하지 마.”
“하지만 전통적으로 말이 많은 군주와 후계자의 문제에요. 개똥이가 어린 나이에 후계자로 부상해서 괜히 주인님의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가만히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개똥이에게도 몹시 고통스러울 거여요.”
혜영이 개똥이의 재능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이해는 하겠지만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민호와 2세들의 나이 차이가 너무 적었다. 개똥이가 세자로 책봉된다 해도 즉위하려면 앞으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에 입지가 취약한 세자로서 온갖 풍파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애비가 죽기를 줄기차게 기다리던 후계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그럴 의향은 없어도 반란 음모에 연루되는 수도 있었다. 이렇게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는 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민호의 아들 대가 아니라 손자 대에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다.
“알았어. 하지만 개똥이가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줘.”
“그렇게 할게요. 사실 이 문제로 주인님이나 저나, 개똥이나 다 힘들어요.”
이민호는 국방연구소 임원들과 함께 해군 건조창을 방문했다. 웬만한 마을 뒷동산만큼 거대한 배가 부두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수를 마친 전함 옥산은 시험 항해중인 6만 톤 급의 대형 함으로서 새로운 급의 1번함이 그렇듯 시험적 성격이 많이 가미된 함이었다. 그래서 해군 소속도 아니고 국방연구소 소속이었으며, 해군에 정식 취역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하고 비싼 배는 당연히 해군에 취역해야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전하.”
“글쎄요. 아직 더 생각해봅시다. 승조원을 아무리 적게 잡아도 2천 명 이상이 필요하오. 순양함 7척을 운용할 승조원 숫자보다 적은 게 아니오.”
길게 보면 전함이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 시대에는 기존의 순양함만으로도 이미 과잉 화력이었다. 비록 철골재를 사용하긴 했어도 주요 재료가 나무인 경순양함 시절에도 이미 전 세계의 바다와 해안에서 상대할 자가 없었다. 사실 자그마한 외륜선을 몰고 다닐 때도 전투력만큼은 세계 최강이었다.
그러나 군함은 군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군함은 그 시대 조선 기술의 총아로서 건조와 운용을 통해 새로운 기술 개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특히 일반 군함과 확연히 다른 전함의 유선형 함체는 대형 선박을 건조할 때 지향할 선형을 알려준다.
이차대전 전후에는 전함 승조원들은 적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를 빠른 속도와 선회력으로 회피하는 훈련을 받았다. 현대 핵잠수함이 적 항공기나 군함에서 발사한 어뢰를 속도만으로 피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전함이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간다면 에티오피아에서 작전 중인 원정군이 무척 든든하게 여길 것입니다.”
“순양함만으로 충분하오. 아니, 순양함보다는 수송선을 더 반갑게 여길 것이오.”
3월 중순인 현재 원정군이 에티오피아로 이미 출정했다. 해군이 홍해를 깨끗이 청소하고 해병대가 상륙 교두보를 마련한 다음 육군 각 부대가 후속 상륙을 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이번 원정은 적과의 전투력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보급과의 싸움이었다. 보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작전이 성공할 것이고, 여러 가지 문제로 보급이 시원찮으면 아군이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차라리 얼른 퇴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럼 전하께서는 이 크고 아름다운 전함을 아리수 항에 전시용으로 건조를 명하셨습니까?”
“화내지 마시오, 소장. 거대한 전함의 건조 경험과 운영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건함이었소.”
항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가끔 외해를 돌아다니고 평소에는 아리수 항에 정박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거대한 포를 탑재한 전함은 그 존재만으로도 적 해군이나 해적의 발호를 억제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동래 왜관을 다시 찾은 왜인들이 일본에 전설로 남은 조선의 거북선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 사실을 안 조선 조정에서는 거북선 다수를 왜관과 가까운 동래 포구에 배치해 혹시 모를 왜군의 침공을 경계하고 왜관에서 상거래를 하는 왜인들의 발호를 억제했다. 19세기에 그 풍경을 그린 그림이 미국에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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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다가 또 늦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