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15 91. 1612년 =========================================================================
91. 1612년
새해를 외국에서 맞이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비롯해 북유럽 정치가, 혹은 대리인들과 인사를 빙자한 협상을 마친 다음 왕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1월 6일에 스웨덴 내각의 대표인 대법관으로 새로 임명됐다는 젊은 귀족이 부임 인사를 겸해서 국왕좌승함으로 찾아왔다. 20대 후반의 젊은 귀족이 내각의 수장인 대법관이 된 것이 좀 이상했지만 스웨덴 내부 사정에 따라 알아서 결정한 것으로 믿었다.
사실 내각의 수장이 대법관인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를 포함한 북유럽에서 대법관이라는 직책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연결시키는 오묘한 직책이었다.
“이번에 내부 협의회의 대표이며 대법관이 된 쇠데르뫼데 백작, 악셀 욱센해나가 인사 올립니다.”
“혹시 액셀 옥센스티에르나 아니오?”
“외국인들은 흔히 그런 식으로 발음합니다.”
“표기법과 발성법이 나라마다 달라서 혼동했소.”
이름이 Axel Oxenstierna라고 기록돼 있었는데 발음을 스웨덴어로 하니까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나라마다 역사성을 가진 표기법을 국제적으로 표준화하기도 곤란했다.
내부 협의회는 1275년 마그누스 3세의 재위기간에 생겨 영구적인 기관이 된 다음 지금은 국왕의 내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참석자는 궁내부 장관, 치안판사, 재무상 등 스웨덴을 이끄는 주요 정치인들이었다. 원래는 스웨덴 정계의 실력자들(magnates)이 협의회에 참가해 국왕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었으나, 때로는 국왕과 함께 국가를 통치했다.
“백작은 독일에서 대학을 나왔다면서요?”
“알아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전하. 로스톡과 비텐베르크, 예나에서 여러 가지를 공부했습니다.”
유학파인 욱센해나의 입에서 독일의 유명한 대학도시들 이름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욱센해나는 저지 스코틀랜드어에도 능숙해서 당시에 스웨덴으로 이주한 스코트인 국적이탈자들을 관리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탐험가 겸 외교관 제임스 스펜스 경을 외교 파트너 삼아 오랫동안 스코트어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제임스 스펜스 경은 외교관 이전에 모험가였다. 루이스 섬을 비롯해 스코틀랜드 북서쪽의 외(外) 헤브라이즈 제도는 바이킹이 점령해서 오래도록 노르웨이 영토였다. 1266년 퍼스 조약에 의해 스코틀랜드 영토가 되었으나 바이킹과 게일어 사용자들이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고수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16세기 말에 스코틀랜드 중앙 정부의 식민 정책, 공식적 용어로 ‘문명화 정책’에 대한 섬사람들의 반발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1597년에 루이스 섬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1598년에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원정대를 보냈다. ‘퍼이프(Fife) 신사들의 모험’으로 알려진 원정에 참가한 스펜스 경은 한동안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스펜스 경은 30년 전쟁 기간에 스코틀랜드 용병들을 모집해서 유럽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스웨덴의 정정이 여전히 불안해서 아직 안심할 수 없소. 하지만 나는 외국 국왕이라 곧 떠날 것이오. 백작이 어린 국왕을 잘 도와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스웨덴 국왕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된 결정적인 사유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신임 국왕 구스타브와의 친분이 욱센해나가 대법관에 임명된 이유였다. 그러나 왕권이 불안한 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선택 조건이기도 했다.
“덴마크가 스웨덴을 침공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백작이 코벤하운에 가서 크리스티안을 열심히 설득했다고 들었소. 시간이 좀 지났지만 백작의 노고에 감사드리오.”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만 결국 설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전쟁 직전에 덴마크의 침공을 막아주신 두 분께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아이슬란드의 여왕은 평화를 사랑하신다오.”
사실 이민호의 의향을 확인한 헤드비히 여왕이 덴마크 국왕인 오빠를 설득, 내지는 협박해서 전쟁을 막았다. 매년 쏟아지는 이익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인 서인도회사와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라는 해외 영토를 소유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 입장에서 여동생의 제지를 뿌리칠 용기가 없었다.
국왕좌승함의 알현실에서 욱센헤나의 고산국 백작 작위 수여식이 약식으로 열렸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명목상의 작위 수여식이었다. 고산국이 스웨덴과 구스타브 국왕을 보호해준다고 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이민호가 수용하면서 이루어진 행사였다.
욱센해나는 스웨덴 대법관일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고산국 북미 버뮤다 섬의 백작 자격으로 외교 활동을 수행하게 됐다. 물론 버뮤다에 대한 징세권이나 상속권은 없었으며 정식으로 고산국에서 봉록을 지급했다.
“알고 있겠지만 루돌프 황제가 프라하의 궁정에 몇 달 동안 유폐돼 있소.”
“아마도 마티아스가 황제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루돌프에게 실망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완전히 돌아선 탓에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격변하는 유럽의 정세 한가운데서 백작이 외교관으로서 할 일이 많소. 물론 스웨덴을 위해서 말이오.”
“제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전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의 동생 마티아스는 1605년부터 차근차근 형의 것을 빼앗거나 압박해 토해내도록 만들었다. 1606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에 올라 루돌프 황제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1608년에는 그 전부터 반란을 일으켰던 헝가리의 왕위를 차지하고 오스트리아 대공과 모라비아 변경백도 겸했다.
차례로 실권을 빼앗겨 불안감을 느낀 루돌프는 1611년에 동생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용병들을 고용해 보헤미아를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용병들이 보헤미아에서 약탈을 자행하면서 보헤미아의 개신교 귀족과 시민들이 왕위를 마티아스에게 거저 바치는 셈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합스부르크 가문 내에서 형제들이 권력 다툼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보헤미아 신교도들에게 이른바 <폐하의 편지>를 보내 신앙을 지킬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조만간 30년 전쟁이 일어나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그 편지가 없었더라도 종교개혁 이후 불안한 정세를 이어온 유럽에서 다른 이유로도 언제든 전쟁이 촉발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종교로 시작한 전쟁이라도 나중에는 흔한 이권 다툼이 전쟁의 주요 목적으로 변질될 수도 있었다. 어째든 아직은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살아서 권력을 빼앗긴 자는 울화병으로 인해 얼마 못 사는 법이오. 루돌프 황제의 사후를 대비하도록 하시오. 고산국 백작으로서 버뮤다 백작이 할 일이오.”
신성 로마 제국 황제라는 간판만 남은 루돌프 2세는 원래 역사에서 1612년 1월 20일에 죽는다. 루돌프는 유럽의 다른 나라 국왕이나 귀족들처럼 고산국에서 의학을 배운 주치의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울화병에는 약이 없었으니,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갈 수밖에 없었다.
다섯 달 후에 루돌프의 동생 마티아스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공식 선출된다. 그러나 루돌프가 죽는 순간부터 마티아스는 이미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전하의 어명을 따르겠습니다. 전하께 바치는 유럽 정세에 대한 보고서는 스웨덴 국왕에게 보내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고맙소. 스웨덴과 고산국을 위해 일할 훌륭한 외교관을 얻어서 몹시 기쁘오.”
물론 욱센해나가 스웨덴의 백작이므로 스웨덴 국익을 우선할 것임은 명백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지급하는 봉록 만큼만이라도 외교관으로서 욱센해나가 수집하고 분석한 고급 정보를 얻기를 원했다.
스웨덴의 구스타브가 국왕 즉위 초기의 어려운 시기에 고산국에 도움을 받는 대신 그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스웨덴이 발트 해의 제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제한 당한 이후. 군사 외에 다른 방면으로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스웨덴은 아름다운 곳이야. 그렇지 않나?”
“우리 땅에는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순양함 관측실에서 이민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깎아지른 듯한 피오르드 협곡과 그 중간 절벽이나 침엽수림에 쌓인 하얀 눈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스웨덴 궁정 무도회에서 가수로 출연했던 원주민들은 일종의 자부심이었겠지만 기대와 다른 대답을 했다. 고산국 백성으로 편입된 북미 원주민들은 이렇게 북미 대륙을 우리 땅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고산국 출신의 젊은 1.5세대 이주민들도 조만간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본국과 다른 외국의 경치에 감탄할 줄 알아야 진정한 문화인이라네.”
“나, 포우하탄의 전사로서 문화인이 되고 싶습니다.”
고산국에서 먼저 베풀고 손을 내밀면서 북미 원주민들이 순조롭게 고산국 백성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원주민들은 마을 공유 농장에서 일하거나 고산국 농민의 농장에 고용될 경우에도 매우 열심히 일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선풍기나 냉장고, 철근콘크리트 건물 같은 문명의 이기에는 흥미를 두지 않으면서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계통에 특히 관심이 높았다. 그리고 북미 원주민 부족에서 축제기간이라도 되면 전원 일손을 놓고 축제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기간에는 새원산의 공장이나 새강릉의 농장에서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아주 난리가 났다.
“이번 무도회에서 노래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나? 자네들은 이미 충분히 훌륭한 문화예술인이야. 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감성이 예민해야 한다네.”
“그런 것 없어도 노래는 잘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더 잘 부르기 위해서는, 아니야. 예술가인 자네 말이 맞아. 하하하!”
그때 고산국 함대 옆으로 지나가는 범선 갑판에 선원들이 몰려나와 손을 흔들었다. 발트 해의 통행 안전을 지켜주는 고산국 함대에 대한 예의였다. 이민호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범선을 살폈다.
범선은 한자 동맹 소속의 상선인 모양인데 얼마 전에 비해 무장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산국 해군이 직접, 혹은 덴마크 해군을 통해 꾸준히 발트 해의 해적을 소탕한 덕택이었다. 물론 상선도 여차 하면 해적선으로 변하는 시대라 해적행위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이 기회에 말해보게. 원주민들이 내게 불만을 가진 게 있나?”
“다 좋습니다. 식량이 부족할 일도 없고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금방 고쳐줍니다. 학교 교육도 부족 전통적인 교육 위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해줘서 다들 기뻐합니다.”
“그래도 요즘 불만이 쌓인 것 같은데?”
“다만 부족들 사이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지도하신 것이 약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사들은 전쟁을 통해 부족들 사이의 질서를 바로잡고 싶어 하는데 못하게 돼서 불만입니다.”
“흐음.”
분쟁을 억제했더니 북미 원주민 부족의 전통적인 전사 계급이 몰락하게 생겼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다들 벌거벗은 채 온몸에 문신을 하고 설치는 야만인 전사에 불과하겠지만,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귀족 전사와 평민이 명백히 구별됐다. 몽골 기마 병단도 마찬가지로 다 비슷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계층에 따라 귀족부터 자유민에 노예까지 세세히 분류됐다.
북미 원주민 귀족 전사는 전쟁에서 앞장 서는 특권을 가졌다. 그러나 고산국이 북미에 들어선 다음부터 그 특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뭔가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했다.
“전사들이 영예롭게 싸우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은 사실 상관없어. 그런데 남자들끼리 싸움이 끝나면 승리한 부족이 패배한 부족에 몰려가서 여자와 어린이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약탈하잖나? 바로 그것이 문제야.”
“바로 그것이 승자의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먹고 사는데 부족하지 않은데 굳이 싸워서 전리품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어. 게다가 고산국 전체적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됐잖아. 설마 자네들이 고산국 본토인들의 노예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전사 집단이 그런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십시오, 국왕이시여.”
이 중년 가수도 고위 전사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인디언 독립전쟁 당시 수 족의 지도자 앉은 황소가 태양 춤을 춘 것처럼 원주민 지도자가 종교 의식에 준하는 예술행위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아무도 추장이 춤을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 원주민들은 부단한 투쟁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경구는 북미 원주민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알았어. 콜로세움이라고 들어봤어? 전사들이 싸우는 동안 구경꾼들이 함성을 질러대는 고대 로마의 야만스러운 문화라네.”
“오! 그것 좋습니다. 생각만 해도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출전하겠습니다.”
“좋아! 다만 보호 장구를 충분히 갖추고 살상력이 작은 무기를 사용하도록 하게. 도끼나 망치 같은 타격무기는 물론이고 날붙이도 금지야. 이긴 쪽에서 상대방 마을에 대한 약탈도 없어.”
“에이! 그럼 그게 무슨 전쟁입니까?”
전쟁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원주민 부족 전사들은 고산국이 북미를 획득한 이후 조만간 전쟁이 모두 사라질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전사들이 자부심을 잃고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일을 국왕이 해결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제시한 것이 콜로세움이었다.
북미 원주민들이 딱히 개인 전투나 집단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다고 볼 수는 없었다. 원주민들의 강점은 17세기 잉글랜드 식민지군과의 전투에서 드러났듯이 숲에서의 게릴라전이었다.
지형지물을 극한으로 이용해 싸우는 자들을 상대하려면 이쪽의 인명피해도 늘어나고 제대로 전투를 끝장 낼 수가 없어 몹시 피곤해진다. 이민호가 숲에서 원주민 부족들과 절대 싸우려 하지 않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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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 일이 있어서 잠도 못 자게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