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12 90. 1611년의 문화외교 =========================================================================
드디어 스웨덴 왕궁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연말연시에 크리스마스까지 낀 휴가 기간 내내 스톡홀름은 축제 분위기였다. 여기에 외국 손님들까지 몰려와 작은 왕도 전체가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였다.
덴마크 서인도회사와 한자 동맹 상선들이 끝없이 스톡홀름에 도착해 식량과 물품을 쏟아냈다. 1만 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를 단기간에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 초청을 받은 유명한 유랑극단들이 시민들을 위한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술과 음식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이때 모든 스톡홀름 시민들이 오랜만에 배부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난한 스웨덴 광부들이 이번 연말연시를 평생 기억하겠군.”
“같은 바이킹의 후손들끼리 제발 적당히 싸우게. 그럼 양쪽 모두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서로 피를 워낙 많이 묻혀서 당분간 그렇게 되긴 힘들 거야.”
지금까지는 덴마크가 주로 가해자 입장이었지만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즉위한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몰랐다. 구스타브의 등장은 실제 역사에서는 스웨덴이 발트 해를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하고 덴마크는 곳곳에서 영토를 잃고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민호는 헤드비히 여왕과 크리스티안 4세, 그리고 국왕의 애인인 야하게 생긴 여자와 함께 같은 마차를 타고 성문을 통과했다. 역시나 성문 위에 늘어선 나팔수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어 국왕들의 입장을 궁성 전체에 알렸다.
궁성 외부는 밤에 더 화려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생화로 장식됐다. 꽃이 바로 얼어붙어서 시간이 가도 시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폐하 분들, 그리고 여왕폐하! 무도회장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왕궁 본관의 현관 앞에서 마차가 멈추고, 스웨덴 왕궁 시종장인지 궁내성 장관인지 하는 중년 귀족이 이민호 일행을 맞이했다. 크로노르 성에 입장하는 마지막 마차라서 경비병들이 서 있는 것 외에 궁성 건물 바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흉갑을 입고 투구를 쓴 경비병들이 일제히 창과 머스킷을 수직으로 절도 있게 세워 국왕들을 맞이했다.
“스웨덴 국왕과 차르는 도착했소?”
“이미 입장하셨습니다, 폐하. 네 분이 마지막으로 입장하십니다.”
시종장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원래 좁은 북유럽 건물의 복도인데다 고산국 도자기나 판금 갑옷 등 장식품까지 잔뜩 늘어놓아 무척 비좁은 탓에 둘씩 걸었다. 애인의 팔짱을 끼고 앞에 선 크리스티안이 이민호를 다시 보곤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복장이 참 멋지군 그래. 그러니 더 이상 어색하다는 표정 좀 짓지 말게. 이런 옷이 원래 어색한 거야.”
“옷이고 모자고 다 무거워서 싫어. 모자는 왜 이리 쓸데없이 크고 장식이 많은 거야?”
“어색해야 한다니까.”
무도회 첫날에 대비해 바로크 양식으로 준비한 유럽 왕족의 복장은 이민호에게 잘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사람 상체만한 커다란 모자에 집중된 보석과 깃 장식 때문에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갈 정도였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모티브로 한 복장의 부조화와 자유가 이 시대 복장의 핵심 철학이었다. 의상제작자들이 어떻게 하면 복장을 더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만들까 하는 연구에 골몰하던 시대였다.
“비키! 원래는 고산국의 무도회 복장을 널리 알리려던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기회는 많아요, 전하. 처음부터 이질감을 심어줄 수는 없으니까 저들에게 자연스러운 복장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의상은 여성의 영역이니까 의생활의 변화는 여성들부터 시작될 거여요.”
이민호가 투덜거리자 팔짱을 낀 헤드비히가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민호도 딱히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었다.
이미 의생활백과가 유럽 전역에 번역돼 출간된 이후 책을 보고 옷을 지어 입은 귀족 여성들이 꽤 됐고, 호평을 받아 점차 착용자를 늘려가는 추세였다. 그래서 요즘 남자는 부자연스러운 바로크 복장이 기본이었고, 여자는 화사한 드레스 차림인 경우가 흔해졌다. 기존 고래 뼈로 하의를 부풀린 바로크식 귀족 여성들의 복장은 중년 부인들이나 착용했다.
“입장하겠소.”
“예. 폐하!”
커다란 문에 도착한 크리스티안이 통보하자 시종장이 밑이 뭉툭한 홀을 들어 바닥에 연속 찍었다. 그리고 문 안쪽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들릴 만큼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 쿵! 쿵! 쿵!
“덴마크와 노르웨이 국왕 크리스티안 4세 폐하와 그분의 미스트리스이신 아델린 백작부인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안쪽에서 볼까봐 이민호가 옆으로 비켜줄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티안이 입장하기 전부터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좌 다섯 개 중에 앉은 구스타브와 차르 표도르만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어서 이민호와 헤드비히가 입장을 위해 문 앞에 섰다. 시종장이 지를 고성에 대비해 배에 힘을 꽉 주었다.
“고산국 국왕전하와 그분의 배우자, 아이슬란드의 여왕이시며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의 군주이신 헤드비히 여왕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고, 무도회장 한 켠에 자리 잡은 고산국 해군 군악대가 임페리얼 마치를 연주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미친 듯이 영토를 확장해 이미 제국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고산국 국왕 이민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했다.
이민호는 헤드비히와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춰 걸었다. 넓은 무도장에 입장한 수백 명의 귀족과 대상인들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도 좋소.”
“감사합니다, 전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소리가 마치 꿀벌들이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민호가 라틴어로 준비한 인사말을 참석자들에게 전했다.
“스웨덴 왕국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 폐하께서 주최하신 무도회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리오. 부디 춤과 음악, 음식과 술을 마음껏 즐기고 편히 돌아가도록 하시오.”
“화려한 무도회에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전하.”
어찌 된 일인지 옥좌 다섯 개 중에서 중앙의 자리를 구스타브가 이민호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이때 덥석 앉아버리면 남의 잔치에서 주인 자리를 차지했다고 두고두고 뒷말이 많을 것 같아 이민호는 몹시 걱정됐다.
그렇다고 새파란 나이에 약소국 국왕에 불과한 구스타브가 주인 자리에 앉기도 곤란했다. 서로 겸양의 예를 보이다가 결국 이민호가 중앙에 앉았다. 자연스레 헤드비히가 바로 옆 자리에 앉고, 반대쪽에는 크리스티안이 앉았다. 젊은 스웨덴 국왕과 차르는 양쪽 끝자리를 차지했다.
이민호와 구스타브는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고른 것에 불과했지만 무도회 참석자들이 보기에는 북유럽 발트 해 연안국들 사이에서 세력 균형이 새로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무도회 참석자들은 이 사실을 뇌리에 깊이 새기며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귀족과 상인들은 그 현실을 바탕으로 이익을 추구할 고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최자이신 구스타브 국왕이 개회 선언을 하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안됐지만 구스타브는 스웨덴 국왕이며 오늘 무도회의 주인인데도 모든 행사 진행을 이민호의 허락을 맡으면서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새로 즉위한 어린 국왕은 스웨덴 국내에서 귀족들의 발호를 막을 힘이 없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이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고산국 국왕은 든든한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스웨덴은 고산국의 동맹국이 되면서 급격히 강해진 덴마크와, 고산국 덕택에 국내를 안정시키며 피보호국 지위를 기꺼이 누리고 있는 루스 차르국 사이에 끼게 됐다. 그 어느 쪽도 스웨덴이 감히 노릴 수가 없는 강국이었다. 실제 역사와 전혀 달라진 상황에서 아무리 북방의 사자라는 구스타브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만약 스웨덴이 영토를 확장하려면 그 대상은 바다 건너 폴란드나 신성 로마 제국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고산국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다. 차라리 이민호가 제안한 남미 땅을 얻는 편이 가장 현실적인 영토 확장 방안이었다.
“이 음악은 뭔가요?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에요.”
“루스 차르국 출신 이민자인 차이코프스키라는 사람이 작곡한 음악이오. 비키에게는 뭐가 연상되오?”
“선선한 북유럽의 여름과 높은 산에 자리 잡은 잔잔한 호수가 떠올라요.”
“그 호수에 백조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이 헤엄을 치고 있소.”
왕명을 받고 급히 대서양을 건넌 새강릉 시립 관현악단이 <백조의 호수> 중에서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정경을 연주했다. 곡 초반 하프 반주에 맞춰 독주에 가깝게 연주되는 클라리넷의 처연한 선율이 무도회 참석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중에는 금관악기와 현악기의 협주가 곡에 장중함을 더했다.
참석자들의 나라는 달라도 다들 북유럽 출신이라 서정적인 음률에 쉽게 매료됐다. 그 동안 장중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그레고리안 성가나 지나치게 가벼운 하층민들의 민요만 듣던 귀족과 상인들이었다. 이런 우아한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이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하는지 눈물까지 흘렸다.
환생자의 특권인 예술작품 절취행위를 마음껏 누리기에는 이민호의 양심에 꺼려졌다. 처음에는 필명으로 소설이나 음악을 발표했으나, 요즘에는 원작자가 고산국에 이민 왔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본격적인 무도회에 앞서 고산국 발레단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발레를 짧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발레는 15세기에 이탈리아 궁정에서 시작되고 앙리 2세의 왕비 카테리네 데 메디치, 즉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후원으로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루이 14세 재위 기간이 되어야 직업적인 전문 무용수로서 발레리나들이 생기고 1661년에는 왕립 무용학교가 건립된다. 아직은 발레가 발전하고 유럽 전역에서 크게 유행할 때가 아니었지만 고산국에서는 발레가 무용의 주요 갈래 중 하나로 이미 자리 잡았다.
참석자들은 그래도 이탈리아 발레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어서 여성 독무나 남녀 한 쌍이 춤을 출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무대 중앙에 나선 무용가는 여성 네 명이었다. 발레리나 네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발랄하고 경쾌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귀여운 아기 백조들이네요.”
“여왕은 뭐든 듣거나 보는 순간 본질을 바로 알아보는구려.”
백조의 호수 2장 네 마리 아기 백조(4 Cygnets)의 춤은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완벽히 동일한 동작을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새강릉 발레단의 발레리나들은 상체 움직임은 거의 없이 다리만으로 어린 백조의 바쁜 물갈퀴 질을 잘 흉내 냈다.
“다리가 참 건강하게 예쁘군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해왔다고 들었소.”
보수적인 신교도 지역인 북유럽에서 야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발레리나들의 무용복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얇은 옷과 격렬한 다리 움직임 덕택에 발레리나들의 다리 윤곽이 충분히 드러났다.
춤을 마친 다음 인사하고 퇴장하는 발레리나 네 명 중에서 두 명은 조선 계통, 두 명은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아일랜드 이주민 여성들이 어릴 적부터 리버 댄스에 익숙해 균형 감각이 남다른 편이었다.
“비키. 말이 궁정 무도회지, 기껏 폴로네즈하고 사교춤밖에 없지요?”
“하의를 부풀린 의상 때문에 춤동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이번 무도회를 전환점으로 삼아 여성들의 복장이 간편해지면 좋겠어요.”
중세 유럽에서 춤이란 마치 강강술래처럼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노래를 부르는 문화적 행위였다. 12세기부터 서유럽에서 유행한 카롤(Carol)이나 이탈리아의 로렌제티가 회화로 남긴 카롤라가 그런 전통적인 원형의 춤사위였다. 그러나 교회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춤을 추지 못하게 했기에 시골에서나 이런 집단 무도가 가능했다.
종교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도 비슷했다. 더욱이 여성 귀족들의 복장이 화려해지고 하의를 부풀리는 파딩게일 양식이 유행하면서 회전하거나 도약하는 춤사위라는 게 아예 불가능해졌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궁정 무도회는 자주 개최됐지만 가면무도회 아니면 바스당스(Basse Danse)라 해서 그저 남녀가 손을 잡고 걷는 단순한 수준이었다. 다만 사교춤은 남녀 모두 가벼운 복장을 입어서 비교적 격렬한 동작도 소화해낼 수 있었다.
“자! 우리도 춤추러 나갑시다.”
“방금 봤던 발레와 비교하면 너무 단순하고 지루할 것 같아요.”
그러나 헤드비히는 이민호가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스타브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호와 헤드비히를 선두로, 남녀가 쌍을 이뤄 4분의 3박자 기악곡에 맞춰 무도회장 안을 천천히 행진했다. 박자에 맞춰 몸의 높낮이를 바꾸거나 잡은 손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것이 춤동작의 전부였다.
이 시기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궁정 무도회에서 유행하는 폴로네즈는 이토록 단순했다. 전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궁정 무도회의 화려한 춤동작은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 복장 때문에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쌍쌍이 줄 맞춰 행진하는 것으로 무도회를 묘사한 영화가 고증에 충실한 편이었다.
앙리 3세가 폴란드 국왕으로 즉위했다가 도망친 1573년에 폴란드의 민속춤 폴로네즈가 프랑스에 처음 도입된 다음 전 유럽에 확산됐다. 남녀 한 쌍이 손을 잡고 높이 들어 올린 아래로 다른 남녀가 지나가는 춤 동작은 이 폴로네즈에서 비롯된 것이다.
“발레 말고 다른 춤도 준비해오셨죠? 고산국 무용수들이 스웨덴에 입국하는 것을 봤어요.”
“물론이오. 유럽의 궁정 무도회도 바뀔 때가 됐소. 물론 귀족들의 의상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지만 말이오.”
이 시대에 디스코나 클럽 댄스를 소개하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나치게 격렬한 춤 말고도 북유럽 귀족들에게 소개할 만한 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중에서 궁정 무도회에 적합한 왈츠 같은 춤도 있었다. 빈 주변 농촌의 민속 무용이었던 왈츠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빈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지만, 이민호는 그런 역사성 따위는 싹 무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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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1611년을 끝내겠습니다.
무도회를 핑계로 진행되는 외교 관계는 몰아서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