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10 90. 1611년의 문화외교 =========================================================================
무도회 날짜를 연말로 정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북유럽 모든 나라의 귀족과 대상인들의 명단을 참조해 초청장 발송을 마쳤다.
새로 즉위한 스웨덴 국왕이 주최하고 덴마크 국왕과 아이슬란드 여왕, 그리고 고산국 국왕이 후원하는 무도회는 북유럽 전역에서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고산국 국왕이 후원한다는 발표에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아 유한 귀족들이 스웨덴으로 몰려들었다.
그 전에 왕궁에서 무도회에 낼 각종 음식 품평회가 열렸다. 여진족 호위들은 호위 임무는 제쳐두고 왕궁 주방장들에게 새로운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스톡홀름 왕궁인 크로노르 성의 시녀들에게 드레스 만드는 법을 가르치느라 바빴다.
화장을 담당한 호위들은 흰 도화지에 낙서하듯 스웨덴 귀족 부인과 영애들의 흰 피부에 화장을 해주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화장이 완성되면 귀족 부인들이 거울을 보고 너무 기뻐해서 어쩌면 호위들이 외교관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게 바나나라는 과일의 원형이야?”
연말 무도회를 일주일 앞두고 마침 새동래에서 열대 과일을 보내왔다. 일은 다들 아랫사람들에게 다 떠맡기고 할 일이 없는 이민호는 크리스티안 4세와 신임 국왕 구스타브 등과 함께 이것저것 맛을 봤다.
음식 관련해서 호사를 누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구스타브는 국왕 체면에 말은 못하고 눈으로만 웃고 있었다. 추운 지역에서 음식 문화가 발전하기 어려웠다.
“마치 책에서 본 것을 실제로는 처음 보듯 말하네. 자네 생 바나나를 못 먹어봤나?”
“말려서 딱딱한 것만 먹어봤어. 운송 중에 문제가 많이 생겨서 말이지.”
이민호 때문에 고산국 농업연구소 연구원들은 하는 일이 참으로 많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농민들이 재배하던 바나나와 아프리카 바나나를 교배시킨 다음 3배체를 만들어 크고 씨 없는 바나나로 개량해냈다.
어째서 품종 명을 민호 1호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농업연구소가 그렇게 정했다면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농업연구소로부터 종자를 받은 국영 과일 기업이 필리핀 북부 주민들과 현대 콜롬비아 지역의 남미 원주민들에게 선금을 주고 바나나를 대규모로 재배 시켰다.
수확한 바나나는 국영 과일 기업에서 수매해서 저온 보관해 소비지로 운송시켰다. 현대에도 그렇듯이 바나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고산국 본토나 북미에서는 아이들이나 이 없는 노인의 간식, 또는 운동하거나 일하는 청년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는 싸고 흔한 과일로 자리 잡았다.
베네수엘라에 정착한 덴마크 정착민들이 과일과 채소 섭식 부족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봐 개척 초기에 보내준 것이 바나나 종자였다. 덴마크 농부들은 바나나를 수확한 다음 먹고 남은 것을 말려서 본국으로 보냈다. 크리스티안 4세가 먹은 것은 바로 그 말린 바나나였다.
아프리카에서 생과일이 아닌 감자처럼 녹말 덩어리로서 굽거나 튀겨서 주식으로 먹던 바나나를 농업연구소가 다년간에 걸친 시험 끝에 품종 개량에 성공했다. 그래서 더욱 크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나나를 생산해서, 역시나 이름을 므부투 1호로 지었다.
고산국 국내에는 먹을 게 남아돌아도 식량 문제에는 항상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리고 새로 개량한 식물 종자를 해외로 퍼뜨리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고산국이 군사나 경제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면서도 다른 나라들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였다.
“오래 보관하기 곤란한 과일이긴 해. 냉장하면 껍질이 바로 검게 변해서 온도를 적당히 낮게 잘 맞춰야 하거든.”
“생긴 건 이상하지만 달짝지근하고 괜찮네. 그런데 이것은 거북열매 나나스 아닌가? 쌉쌀한 맛이 좋아 처음에 많이 먹었다가 입안이 헐었다네.”
“조심하지.”
파인애플은 카리브 지역 토착어로 나나스라 불렸다. 굳이 영어로 바꿔 부를 이유가 없어 나나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뜻을 받아 거북열매라고 불렀다.
농업연구소에서는 3년간의 시험 재배 끝에 이것을 필리핀과 하와이로 보내 원주민들에게 부업으로 재배하도록 했다.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이 아니라서 경영 효율성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고산국 정부가 먹을 것으로 국내에서 큰 이익을 보려고 한 적이 없으므로 제값에 사서 제값에 판매했다. 유럽에도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해서 시민들도 싼 값에 열대 과일 맛을 보게 했다.
“나머지 열대 과일은 보관과 운송이 어려워 음료로 만들었다네.”
“아이 시어! 오! 이거 상큼한 게 꽤 좋은데?”
“그거 원액이야, 이 사람아! 물 넣고 설탕을 타야 해.”
크리스티안이 뛰어난 국왕이면서도 덤벙대는 기질이 조금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1611년의 승리를 제외하고 매번 구스타브의 스웨덴에게 패하는 이유였다.
젊은 국왕 세 명은 아이스크림까지 맛있게 먹고 나서야 주 요리를 건너뛰고 후식만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주 요리에 도전했다.
“이건 고기를 다져서 안에 양념을 했군. 향신료를 이렇게 듬뿍 쓰다니, 역시 고산국다워.”
“비싼 향신료는 아니야. 마늘과 생강 같은 거지.”
불고기와 갈비 종류가 인기가 좋았다. 고기를 굽거나 삶은 것밖에 모르던 추운 지방 국왕들이 별천지에 온 듯이 신나게 먹어치웠다. 곶감에 계피를 탄 수정과는 최소한 이 지역에서만큼은 호사스런 음식의 극치였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느끼하지 않으면서 자극적이지도 않아. 나는 좋긴 한데, 잘못하면 농노들이 먹는 음식처럼 밍밍하다는 평가를 받겠어.”
“얼씨구? 향신료를 잔뜩 쳐 넣은 것보다야 건강에 훨씬 좋은 음식이지. 음식 종류는 다양하니까 식성 따라, 취향 따라 알아서 먹으라고 해. 구스타브는 어때?”
“풋! 쿨럭!”
정신없이 먹다가 갑자기 불러서 놀랐는지 구스타브가 사레가 들렸다. 체면을 중시하던 어린 국왕이 한참 기침을 한 다음 간신히 대답했다.
“저는 아주 좋습니다. 스웨덴 자유민들이 매일 이렇게 먹는다면 좋겠습니다.”
“고산국에서도 매일 이렇게 해먹지 못해.”
“부유한 고산국에서도 못 먹다니요. 맛있긴 하지만 이게 그렇게 비싼 음식입니까?”
“집에서 만들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음식이거든. 사서 먹으려면 먹겠지만.”
이탈리아 음식과 중국 음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지만 전통 한국 음식도 독특한 면이 있었다. 특히 발효식품은 현대인의 건강음식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음식 문화는 그 문화를 보유한 국가에 대한 국제적 평가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평가가 달라진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 국왕들에게 고산국 음식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고산국의 국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음식 준비는 끝났고, 그 다음 의상 준비야. 음악은 그 다음이야.”
“무도회 준비라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어.”
“자네야 먹고 평가만 하니까 그렇지.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요즘 다들 정신없이 바빠.”
여진족 호위들이 주도해서 스웨덴 왕궁 시녀들이 밤새 만든 의상들을 국왕들이 품평했다. 비단옷을 입고 모피를 걸친 시녀들이 똑바로 걷거나 춤추는 동작을 선보였다. 왕비 외에도 애인을 셋이나 둔 크리스티안의 입이 헤 벌어졌다.
“우와! 이 미녀들은 누구야? 덴마크나 스웨덴에서는 절대로 못 볼 대단한 미인들이야. 이곳 왕궁에 있던 그 못난이들을 자네도 봤겠지?”
“말조심하게. 저들이 자네가 말한 바로 그 못난이들이라네. 여자가 화장을 제대로 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정말 몰라?”
“에? 설마!”
추운 북유럽의 겨울에 잘 어울리지 않지만 겨울에 얇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 해병대 공병단이 크로노르 왕궁의 난방장치를 대대적으로 손봐준 후라 가볍게 입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궁성에서 지내시지 그러십니까? 손님을 왕궁에 모시지 못해 거북합니다. 혹시 왕성이 너무 낡았나요?”
“크로노르 성은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성이라서 더욱 운치가 있어서 좋아. 하지만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의 제안을 이민호가 사양했다. 크리스티안이 피식 웃었다.
스톡홀름의 왕궁인 크로노르 성은 13세기 중반에 지어진 고풍스런 성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대비한 요새 비슷한 모양이고 크기도 작아서 신성 로마 제국 귀족들의 성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원 역사에서는 17세기 말에 크로노르 성이 불타서 이 자리에 거대한 스톡홀름 왕궁이 세워진다.
“솔직히 말해서 밤에 암살자가 기어들어오는 게 무섭다고 하게.”
“그렇지 뭐. 그 문제 말고도 고산국 군함에서 지내는 게 훨씬 편하다네.”
크리스티안이 핀잔을 주자 이민호도 속내를 밝혔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이민호에게 화장실과 목욕실 문제가 가장 컸다. 화장실을 한 번 사용하려면 궁성 복도를 한참 걸어야 하고 목욕탕이 궁성에 있는지도 몰랐다.
바이킹 시대라면 변소 밑에 암살자가 숨어 있다가 대변을 보는 왕의 엉덩이를 찔러 죽이는 것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 있었던 사건이었다.
17세기에 그려진 회화를 보면 알겠지만 크로노르 성은 바닷가에 세워졌다. 바닷가에 일반 성도 아닌 왕성이 세워져 있다면 고산국 함대에게 아주 쉬운 공격 대상에 불과했다. 지금은 국왕좌승함을 비롯한 순양함 네 척이 궁성 바로 옆에 정박해서 다른 배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무도회 닷새 전부터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신성 로마 제국 귀족들에게 스웨덴은 궁벽한 곳에 불과했으나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시대 기준으로 거대한 고산국 순양함들이 왕궁 주변 바닷길에 늘어선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도로는 넓고 납작한 돌로 포장됐다. 심지어 이 시대에 드문 가로등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 길을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꽃으로 장식된 황금마차를 타고 달리는 외국 귀족들은 스웨덴이 말로만 듣던 시골 왕국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아이슬란드에서 온천수를 이용해 온실 재배한 생화가 스웨덴으로 대량 유입됐다. 북유럽 농민들이 겨울에 온실에서 화초를 기르자면 엄청난 난방비가 들겠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난방에 관련된 모든 것은 거의 공짜에 가까웠다.
“고산국 군대가 건설 일을 아주 잘하더라고.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걸?”
“해병대 공병단 말인가? 그거 원래 건설 전문 부대야.”
해병대가 현재 연대 규모를 편성했다 했지 해병대 자체가 연대는 아니었다. 물론 해병대 예하에 아직 1개 연대만 편성돼 있었지만 해병대에 필요한 지원부대는 사단 이상의 기준으로 모두 갖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연대 단위에 해당하는 해병 공병단이 상륙함대에 동승했다가 스톡홀름의 도로를 확장하고 수도 시설을 건설했다. 공병단은 유사시 훌륭한 전투부대이기도 했다.
“왕궁이 좁아서 손님들을 주변 수도원에 모실 수밖에 없어. 신교 국가가 된 후에 수도원들이 텅 비었으니 잘 됐지. 고산국 군대가 수도원을 개축했다면서?”
“응. 해병대 공병단이 목욕탕과 화장실부터 바꿔놓았지. 순양함을 타고 온 손님들에게는 사용법을 설명해주지 않아도 될 거야.”
북유럽 귀족들을 순양함에 태울 때부터 예상한 문제였지만 유럽 귀족들에게 변기에 앉는 방법부터 일일이 가르쳐줘야 했다. 잘못하면 손님들이 양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거나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어정쩡한 자세로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 무도회가 외교의 장이라고 했지? 옳은 이야기야.”
“이제야 내 말을 믿는구나.”
그러나 스웨덴 왕궁의 무도회는 고산국에 의한 거대한 문화 침략의 장으로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음식과 의상과 음악과 춤은 군사적인 의미는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었다. 침략을 당한 나라 사람들이 침략자를 오히려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 문화침략이었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자국 젊은이들이 열광하지 않도록 만들려면 자국 문화를 키워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화 육성은 구호를 외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오랜 시간 꾸준한 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이나 다른 북유럽 국가들은 문화 발전을 지원할 재정적인 여력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젊은이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즐길 문화를 생각이 꽉 막힌 이른바 귀족 꼰대들이 자본을 투자해 육성해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산국의 승리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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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획득은 비교적 보수적이었습니다만, 음악이나 음식문화 외에 상품 수출에서 비롯된 문화 침투는 적극적인 편입니다. 문화 침투도 침략인 줄 당시에는 잘 모르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