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07화 (756/1,000)

00807  90. 1611년의 문화외교  =========================================================================

“자! 가정을 해보자. 우리 해군이 실수로 배를 모두 잃고 장병들은 대부분 지상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적의 대규모 함대가 왕도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너희들에게는 정비에 들어갔다가 수리를 갓 마치고 인원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함선 겨우 12척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

이순신이 가정한 상황을 듣고 이민호가 쿨럭쿨럭 기침을 해댔다. 명량해전과 비슷한 상황 가정에 놀란 이민호에게 사레가 들린 것이었지만 호위들이 놀라 주치의를 부르고 햇볕을 가리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패할 것이 뻔한 전투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천천히 물러서면서 시간을 벌어 함선과 병력을 집결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바로 뒤에는 왕도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무의미하게 싸우다 패하느니 차라리 육군과 합세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수 강 하구의 요새와 협력해서 버티다가, 간간이 치고 나가는 유격전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군을 모을 시간을 벌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모든 사람들이 물러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로 그때 명량해협에서 왜군의 대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냈다.

그것도 해전 초반에는 통제사의 좌선 한 척만 남아서 해협을 틀어막으며 싸우고 다른 배들은 전투 중반 이후에 참전했다. 상식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결과였지만 그런 결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싸우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바로 그 날로 전투 해역에서 물러섰지만 서해에는 비슷한 지형이 여러 곳이었다. 일본 수군이 한성, 또는 일본 육군에 대한 보급을 위해 충청도 해안까지 북상하려면 명량해전과 비슷한 전투를 몇 번이나 치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전투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을 명량 해전에서 명백히 드러낸 이상, 수백 척이 넘어가는 일본 함대의 거대한 규모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 수군이 전열을 유지할 경우에도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일본 수군 함대가 서해안을 통해 북상하다가 명량해전 때처럼 계속해서 패하다 보면 여전히 병력이 우세인 상황에서도 연합함대가 와해될 수 있었다. 다이묘들은 자기 영지의 생산력의 주축인 농민 병사 아시가루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갖은 핑계를 대면서 전투를 회피할 가능성이 컸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 육군이 왜군에게 형편없이 몰린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 전투 경험이나 조직 체계, 기타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똑같은 왜군을 상대로 더욱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서도 이긴 자들이 조선에 있었다. 물론 우리 국왕 전하는 예외로 친다. 항상 이기신 분이니까.”

이민호가 어깨를 으쓱하니까 200여 명의 교육생들이 일제히 작은 웃음을 토해냈다. 해병대 간부 교육생들은 육전의 이민호와 해전의 이순신이라는 임진왜란의 2대 영웅을 한 자리에서 동시에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임진왜란 전사는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동안 고산국과 조선, 그리고 큐슈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었다. 그리고 왕립 사관학교나 각종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임진왜란 전쟁사에서 이민호가 승리한 이야기는 별도의 장으로 묶여 있었다. 이 나라의 국왕이고 임진왜란에서 전환점을 마련한 몇몇 중요한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호가 승리한 전투에서 배울 점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압도적인 화력을 최대한 활용한 전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방 입장이 돼서 이민호가 이끄는 부대를 격파하는 고민을 하는 편이 훨씬 유용했고, 사관생도들이 즐기는 지적 유희가 되었다. 김학 교장이 무도한 일이라고 분노했지만 생도들은 이렇게라도 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편이 나았다.

“총함장님께서 말씀하신 분들은 진주 목사 김시민이나 함경 북평사 정문부 같은 장군들입니다. 그분들은 다른 조선군과 똑같은 무기와 오히려 더 적은 병력을 갖고도 승리했습니다. 그들의 승리 요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 일단 싸움에 나서야 이길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도망가면 그것으로 패배가 확정된다. 일단 싸워야 이길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데 패장들은 언제나 변명을 늘어놓았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의 문제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패한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은 해전에서 치열하게 싸운 끝에 결국 승리한 이순신 같은 명장이 있는가 하면, 있지도 않은 적의 습격에 놀라 와르르 무너진 칠천량 해전의 지휘관 원균 같은 이들도 있었다. 경상좌수사 박홍처럼 적의 군세에 겁을 집어먹고 아군을 퇴각시켰다가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부대 자체가 와해된 경우는 더욱 흔했다.

“교육생에게 답을 해준다면, 적에게 포위된 가운데 군과 민이 하나가 되어 필사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승리를 취할 수 있었다. 오직 싸워야 승리를 쟁취할 기회가 생긴다.”

“임진왜란 전사를 살펴보면 조선군이 보통 싸움 한 번에 쉽게 허물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척 강합니다.”

“지켜내야 할 사람들이 있는 남자는 강하다. 오자는 필사즉생 행생즉사, 일인투명 족구천부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각오가 부족하다. 내 등 뒤에 가족을 남겨둔 군인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싸워야 한다. 특히 아군 병력이 열세일 때는 일부당경 족구천부, 한 사람이 좁은 길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말을 명심해서 적절한 지형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실전에서 승리를 거듭한 장군의 말씀에 교육생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이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이 명량 해협을 전장으로 택한 것은 평소 지론이 반영됐던 것 같았다. 이순신은 오자의 말도 상황에 맞춰 더 강력하게 변형시켰다.

그러나 고산국의 개입으로 임진왜란이 일찍 끝나면서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처절하게 진행된 명량 해전도, 적의 대규모 함대를 상대로 200여 척 넘게 수장시키고 이순신도 끝내 전사한 노량 해전도 벌어지지 않았다. 임진년 해전에서 큰 활약을 했어도 위의 두 해전이 빠지는 바람에 한국 역사에서 최고의 무장이 될 기회를 놓쳤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 대신 이순신은 세계를 누비는 고산국 해군의 수장이 되었다. 얼떨떨한 가운데서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는 이순신을 볼 때마다 이민호가 미소 지었다. 이순신 덕택에 건국 초의 바쁜 상황에서 이민호가 정말 편해졌다.

해군이란 조직은 인력보다는 배와 함포라는 장비와 기술적인 요소가 많이 필요해서 이 시대 일반 육군보다 훨씬 전문적이었다. 유럽도 전열함 시대에 들어가고 육군과 해군이 완전히 분리된 다음에는 항해 기술과 함포 제작 및 운용 기술, 해전 전술 방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 무엇보다 함선을 운용하는 승조원들의 경험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신조함을 뚝딱 만들어서 병력을 채워 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해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시에 급히 병력을 증강한다 해서 승선 경험이 없는 신병들이 전투함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왕전하께서 교육생들을 위한 격려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아! 준비해온 것은 없지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총함장님.”

이순신과 예의를 차린 다음 이민호가 해병대 간부 교육생들 앞에 나섰다. 교육생 대표가 나와서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를 하고, 마침 해군 예복을 입고 나온 이민호가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았다.

“해병대를 선택한 귀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해병대는 적지에 상륙해 교두보를 지키는 것이 주요 임무인 만큼 대규모 적 병력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보급을 바다를 통해서 받아야 하므로 전투 중에 보급 사정 또한 열악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무기와 보급품 없이 물러설 곳이 없는 적 해안에서 몇 배나 많은 적에게 둘러싸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뜻이다.”

“저희들은 해낼 수 있습니다! 무기가 부족하면 적의 무기를 빼앗아 쓰겠습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군인 정신은 제 정신이 아니라지만 해병대에게는 특히 그 말이 더욱 잘 어울렸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넘쳐나는 것은 적군뿐인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려면 합리적인 판단이 오히려 임무수행을 저해할 수도 있었다.

이차대전 공수부대를 소재로 다룬 미국의 어느 TV 드라마에서 공수부대는 포위되는 게 일이라는 중대장의 대사도 해병대와 잘 어울렸다. 온갖 지형과 상황에서 온갖 종류의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는 것과, 상륙주정에서 내린 다음 적의 포화가 빗발치는 백사장에서 큰 희생을 무릅쓰고 전진해야 하는 것도 흡사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경보병인 공수부대와 달리 해병대는 일반 지상군 부대와 같은 야전 임무도 맡아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상륙교두보 확보 이후에는 안전하게 행정 상륙한 육군 부대와 똑같이 부대 편제를 갖춰서 적과 상대하는 것이 해병대였다.

“총함장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다시피 군인으로서 바로 그런 불굴의 투지가 필요하다. 해군이면 어떻고 육군이면 어떤가? 농부가 수확량을 최대로 거둬들이기 위해 열심히 밭을 갈 듯이, 군인도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나를 봐라! 건국 초부터 지금까지 국왕으로서 수많은 일을 해오지 않았나?”

“풋!”

교육생들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이민호도 바로 알아챘다. 배석한 여진 호위들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쌓은 업적 외에도 수많은 후궁들을 별 문제없이 거느렸다는 점에서 남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이 인간들이! 내 업적을 먼저 생각해보란 말이야!”

“국왕전하께서 단기간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것을 백성이라면 어느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부러워서 그럽니다.”

“교육생 대표가 옳은 말을 했다. 그건 남자의 능력이다.”

이민호는 해병대 간부들 앞에서 실컷 자랑하고 싶었으나, 당사자인 호위들이 노려보고 있어서 관두었다. 대신 해병대에게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군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권했다.

그리고 해병대장과 참모본부 간부들과 대담을 나눴다. 현재 연대 규모인 해병대가 집결해서 작전을 하는 것보다는 부대가 조각조각 나뉘어 적군이 숨어든 마을을 수색, 토벌하는 중대 단위 작전에 더 많은 교육 시간을 할애하도록 지시했다. 육군보다 해병대에서 초급 간부 교육에 더욱 신경을 쓰는 이유였다.

10월 30일에 스웨덴 국왕 카를 9세가 서거했다. 국내 정치보다는 외정을 통해 스웨덴의 국력을 키우려고 노력한 군주였지만 주변 강대국들 틈에서, 그것도 몇 가지 불운이 겹치는 가운데 영토를 넓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학자들에게 그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스웨덴의 정치적, 종교적 격변기를 잘 극복해서 차기 국왕이 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게 기반을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카를 9세의 아들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라틴어 이름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16세의 나이로 스웨덴 국왕의 왕좌를 계승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북방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무명을 자랑하는 정복 군주였지만, 이민호에게는 귀엽고 당찬 소년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북유럽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번에도 예조 판서가 조문 외교를 수행하려고 출발을 준비했다. 그러나 11월 초에 아이슬란드 여왕의 다급한 요청으로 인해 특별히 이민호가 선왕인 카를 9세의 장례식과 구스타브 아돌프의 대관식에 참가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향하게 됐다. 정보국에서는 여왕이 남편을 보고 싶어서 호들갑을 떤다고 단정했지만 이민호는 뭔가 수상한 움직임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도착하고 보니 이민호가 호위 전대와 대서양 함대 일부를 이끌고 직접 움직인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스웨덴 내부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전통적인 적대관계는 이민호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으나, 아직 폴란드가 남아 있었다. 폴란드 국왕 시기스문드 3세는 스웨덴의 왕좌를 강하게 요구했고, 군사적인 움직임까지 탐지됐다. 스웨덴 내부에서도 국왕이 어리다고 해서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정식으로 왕권을 수행하는 기점인 대관식은 무한정 연기됐다.

“왕이 됐는데 아직 대관식을 못 올렸군. 내가 도와줄 일이 있나?”

“언제나 스웨덴을 위해 도움을 주시는 고산국 국왕전하께 제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다시 폐를 끼치기는 싫습니다. 그러나 국왕전하께서 외교관을 보내지 않고 직접 와주신 것만으로도 제게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로군. 자넨 아주 훌륭한 국왕이 될 거야.”

“설마 고산국 국왕전하만큼이야 하겠습니까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이민호를 올려다보던 꼬마 아돌프가 어느새 16세, 이 시대에 성인이 돼서 국왕의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스웨덴의 국왕은 전에 카를 공작의 영식이었던 시절에 이민호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단검을 아직도 허리에 차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잠이 많아져서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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