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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803화 (75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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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1611년의 문화외교

4월에 에티오피아 황제가 고산국 왕도로 사절단을 보내왔다. 평소 홍해를 지나는 고산국 상선이나 해군 함선과 자주 접촉하던 에티오피아는 고산국의 우위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교역 확대는 물론 문화적 교류도 요청했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오래 전부터 문명 세계의 일원임을 자부했다. 그리고 중동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로마가톨릭을 보호하는 등 변화하는 세계와 호흡을 함께 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분위기는 중세와 십자군전쟁 때 극에 달해 말에 갑옷을 입히고 창을 앞세워 돌진하는 중장기사는 유럽과 거의 흡사했다. 물론 십자군전쟁에 기독교 편으로 에티오피아 기사들이 참전했다.

에티오피아 곳곳에 수도원이 세워져 중세 유럽과 분위기가 별로 다르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입은 옷은 이슬람 지역과 비슷했다. 옷은 아무래도 종교보다 기후로 인한 영향력이 더 컸다. 그래도 사절단 대표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홍색 벨벳으로 만든 튜닉을 입고 보석이 줄줄이 박힌 화려한 장식 허리띠를 둘렀다. 키가 크고 순수 흑인일 텐데도 코가 곧고 턱수염도 잘 다듬어서 마치 현대 영화배우 같았다.

“고산국에서 간행한 의생활백과와 식생활백과가 저희 황실과 귀족들의 생활을 매우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나올, 흠! 흠! 백과사전도 기대가 큽니다.”

“성생활백과도 곧 나올 것이오. 에티오피아는 수수를 인류 최초로 경작한 지역이라고 들었소. 그 전에 에티오피아와 교류를 해왔다면 백과사전에 에티오피아 음식과 옷에 관한 장을 할애했을 텐데 안타깝소.”

16세기 이후에는 주변 이슬람 국가인 아달 술탄국이나 남부의 오로모 족 등 강대한 부족들이 자주 침입하던 시대였다. 1607년에 시작된 반란이 지난 3월에 드디어 끝나면서 요즘 들어 겨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국내 정치 안정과 주변 부족들의 반란을 억제하며, 가끔 해안도시를 위협하는 해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고산국의 힘을 빌리기를 원했다.

반란 와중인 1608년에 즉위한 수세니오스 황제는, 사실상 반란군 수괴로서 합법적인 황제이며 사촌인 야코브, 정식 명칭 말라크 사가드 2세의 제위를 찬탈한 셈이었다. 예수회 선교사의 기술에 따르면 그는 꽤나 지적이고 열정적인 30대 황제였다. 로마처럼 4세기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에티오피아에서도 역사상 드물게 그의 재위 기간 중에 로마가톨릭을 국교로 공인해서 유럽 수도사와 성직자들의 방문이 더욱 잦아졌다.

“그리고 늦었지만 즉위 축하 사절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오.”

“아닙니다. 황제폐하께서 서둘러 즉위하시느라 주변국에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오로모 족의 도움을 받아 수세니오스 쪽이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야코브의 시신을 찾지 못해 아직도 에티오피아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루스 차르국에서 가짜 드미트리가 연속 출현한 것처럼 에티오피아에도 역시나 가짜 야코브가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형제나 사촌, 혹은 친척끼리 제위를 노리다가 군사력으로 결판을 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동원한 세력이 에티오피아에 적대적인 침략자 오로모 족이라 해도 그것은 에티오피아의 내부 문제였다. 고산국 입장에서는 실제를 중시했기에 누가 황제가 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작년에 이집트 총독 대리 오크남 백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해안도시뿐만 아니라 나일 강을 통해서도 이집트와 교역하고 있습니다.”

“고산국의 통치 아래 있는 동안 이집트가 에티오피아나 수단을 침공할 염려는 없을 테니 잘 지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품질 좋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선물해줘서 고맙소. 답례로 에티오피아 황제와 사절단 대표께 명나라 복건 지방에서 나는 발효차를 선물하겠소.”

“흔한 토산품인 커피를 바치고 중동과 유럽에서 보물로 이름 난 홍차를 하사해주시니 고마우면서도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도 흔한 홍차를 주고 품위 높은 커피를 받아서 큰 이익이오. 교역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소?”

물론 커피와 홍차가 생산지라 해서 싸고 흔한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나무를 심을 땅이나 생산설비보다는 농장을 유지하는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서 산지에서도 기본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배에 실어 외국에 가져가면 몇 배 내지 몇 십 배로 뛰는 것은 사실이었다.

“고산국에서 유대인들도 소수 받아들인 것으로 압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지독한 종족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국왕전하께서는 부디 그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렇소? 정치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리보다는 교육과 보석세공에 전문화돼 있소. 유대인의 보석 가공기술은 정말 뛰어나다오.”

“상업적인 재능과, 특히 고리대금업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절대 이들 업종에 가까이 하게 내버려두시면 안 됩니다.”

“고산국에서 대부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리고 은행은 국영이니 걱정 마시오.”

에티오피아인들 중에는 팔라샤인이라는 종족이 있었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의 아들 메넬리크 1세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있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아가우 족이었다.

최근 이들이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사절단 대표가 이들 팔라샤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흑인인 팔라샤인과 혈통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유대인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것뿐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했을 때나 1980년대에 에티오피아에 가뭄이 닥쳤을 때 흑인 유대인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이란 종교로 분류되기에 흑인이나 황인종이 유대인이라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저희 에티오피아의 기사들은 지상에서 상대할 자가 없지만, 해군은 약한 편입니다. 고산국 해군이 강하기로 유명하고, 해적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왕도에 방문할 때 해군 수송선에 신세를 졌는데 그 크기와 빠르기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해군에 투자를 많이 했지요. 해군 장병들의 노고가 많았습니다.”

에티오피아 사절단과의 회담에 직접 참석한 총함장 이순신은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순신은 인도양과 홍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도 지도만 보고 주요 교역 도시와 해적들의 근거지를 짚어 냈다. 이런 식이라서 인도양 장악에 필요한 함대 세력보다 훨씬 적은 함선과 인원을 가지고도 삽시간에 인도양을 평정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인도양 함대는 창설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태평양 함대 일부 함선들이 파견돼 수에즈 운하에서 아시아로 연결되는 인도양 항로를 지킬 뿐이었다. 운송과 해적 토벌에 예전에 해적이었던 오만의 해상세력을 동원했기에 여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오만과 잔지바르에서 밀려난 해적들이 에티오피아 해안에서 창궐하는 것 같습니다. 고산국 해군이 에티오피아에서 해적을 토벌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해적은 만국공통의 적이지만 우리 해군이 어찌 독립국인 에티오피아의 해안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겠소?”

해적 토벌이 에티오피아의 요구사항에 포함될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회담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대뜸 해적 토벌에 찬동하지 않았다.

이 시대 소말리 족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라 기독교도인 에티오피아의 지배를 반대한다는 면에서 그 투쟁이 종교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해적은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해적일 뿐이었다.

“그거야 작전 기간 중에 고산국 함대의 진입을 허용하면 됩니다. 에티오피아 동부 해안도 안정시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해적은 수시로 이동하는지라 일일이 허락받아서는 작전하기가 어렵소이다.”

“그럼 고산국 해군에 한해서 에티오피아 해안의 해적 토벌 작전에 상시 작전권을 부여하면 어떻겠습니까? 정박지와 물과 식량 보급은 저희들이 책임지겠습니다.”

“그렇다면 할 만하지요. 총함장님! 에티오피아 해안의 해적을, 에티오피아 예하 부족인 소말리 족의 해안까지 진압할 수 있겠습니까?”

“하명하시면 수행하겠습니다, 전하.”

이민호는 사절단을 돌려보내고 나서 이순신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규모가 작은 함대로 거대한 적 함대를 상대해 온 이순신이었지만 인상 쓰는 게 아무래도 이번 해적 토벌 작전이 함대 운용에 부담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희들이 일방적으로 해적 토벌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티오피아가 수혜를 받을 테니 부담도 나눠야지요.”

“훌륭한 말씀입니다만, 배와 운영비가 한두 푼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고산국 왕도로 출발하기 전에 포르투갈 선교사 마누엘 데 알메이다가 이런 조언을 해주더군요. 고산국은 돈을 들인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확실하게 돌려준다고 말입니다.”

“정말 훌륭한 선교사이십니다.”

인도양 함대를 창설할 계획은 원래 없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해군을 무한정 확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면 홍해와 잔지바르, 모카와 호르무즈 해협을 지킬 함대 창설을 고려할 만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자그마치 금 300달란트, 거의 10톤이나 되는 많은 자금을 내놓았다. 고산국이 부유하지만 거대한 순양함을 만드는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기에 갹출금의 단위가 달랐다. 에티오피아가 오랜 세월 국가 체계를 유지했고 교역을 중시했기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국왕전하께서 만족하신 모양이군요. 이로써 앞으로 에티오피아의 바다는 영원히 고산국에 맡겨도 되는 것입니까?”

“예? 배 한 척 만드는 비용은 간신히 충당하겠소만. 어허! 이걸 어찌 하나.”

물론 잔뜩 과장한 발언이었다. 회담 내내 느긋한 표정을 유지하던 대표의 턱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고산국 해군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철선이 비싼 줄은 알았지만 설마 금 300달란트로도 배 한 척 값에 불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리 호 주변에 세워진 제철소는 국영이면서 주변 노천광산에서 철광과 석탄을 캐서 아주 싸게 철을 생산하고 있었다. 운송비나 함선을 건조할 때 인건비를 합해도 고산국 순양함 건조 비용은 현대 전투함의 10분의 1에도 달하지 않았다. 사실 현대에도 전투함 자체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고, 이 전투함에 탑재되는 전자 장비의 가격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운영비도 많이 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에티오피아에서 매년 운영비로 30달란트 정도 내면 어떻겠습니까?”

정보국을 통해 미리 보고를 받았지만 현대의 가난한 에티오피아에 대한 인상이 앞서던 이민호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금 1톤이면 운영비로 쓰고도 남았다. 진작 에티오피아와 회담을 했다면 작년까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명나라와 유럽의 통화제도를 책임지기에는 매년 금 1톤만으로는 티도 나지 않았다.

“좋소. 에티오피아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에티오피아 해안을 해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도록 하겠소. 그러나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때에는 중립을 지키겠소.”

“오스만 제국과 고산국의 우호 관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베시 총독령에서 차지한 에르트리아 주변은 차라리 해적이 없습니다. 그 외의 지역을 맡아주십시오.”

하베시 총독령은 메카의 항구인 지다에 총독 관저를 세우고 아라비아 반도 서해안과 에티오피아 북부 에르트리아 등을 관할지로 삼은 행정구역이었다. 아달 술탄국이 에티오피아를 공격했을 때 오스만 제국의 부추김이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과 적대하던 포르투갈이 군사력을 지원해 에티오피아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현대처럼 고립된 아프리카 최빈국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과 포르투갈 등 영토로 따지면 거대 제국들이 관심을 둔 나라였다. 여기에 케냐 지역에 거주하다가 에티오피아 고원지대로 꾸준히 이주하는 오로모 족,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쿠시 족 등 안보 불안이 끊임이 없었다. 제위를 둘러싼 분쟁도 에티오피아의 약화를 부채질했다.

============================ 작품 후기 ============================

에휴~ 늦게라도 올립니다. 이번 회담의 의미가 조금 더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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