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00화 (749/1,000)

00800  89. 1610년, 모험시대의 개막  =========================================================================

토르구트 귀족 자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전사로서 훈련받았다. 이들은 유목민 사회의 지배층으로서, 자유민이나 노예 부족민들처럼 양치기 직업을 가진 게 아니었다. 넓은 농지를 소유한 양반가 자제가 농사를 짓지 않고 과거시험에 대비해 공부하듯, 토르구트 귀족 자제들은 사냥을 하면서 무술을 연마했다.

“곧 죽어도 지배층이라는 거지. 사실 불쾌한 이야기야.”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그 집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계층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고산국에서는 관료와 군인들이 지배계층이 아닙니다만 어딜 가든 그런 조직이 필요하고, 바로 그들이 지배 계층을 구성합니다.”

유학자 의병장 출신 김학이 의견을 피력했다. 지배자의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김학이나, 심지어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민호도 한때 조선에서는 지배 계층인 양반에 속했었다.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지 못하는 집단은 멸절 혹은 노예화의 길을 걸었다. 옛날부터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 집단의 조직화가 필요했고, 어느 사회든 지배 계층 혹은 전사 계층이 유지됐다. 때로는 그 지배 계층이 나머지 집단 전체를 노예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지배자라곤 국왕 딱 한 명뿐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조선처럼 국왕이 사대부 양반 계층과 공동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지배층이 없는 고산국에서는 국왕이 직접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혹은 설득해가면서, 가끔은 강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찬반 또는 기대 여부와 관계없이 국왕과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의 결과는 대부분 좋았다. 현재 백성들의 높은 생활수준이 정책의 성공에 따른 결과였다. 그러나 창업 군주인 이민호는 웬만해서는 죽을 때까지 백성들의 지지를 받겠지만, 이민호가 사라진 이후에 백성의 지지를 잃은 국왕이 어떻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어쨌든 힘든 과정을 마쳤으니 저들에게 휴식을 주게. 쓴 맛을 보여줬으면 단 맛도 보여줘야 하는 법이네.”

“그렇지 않아도 이후 과정을 느슨하게 구성했습니다. 온천 휴식, 국방연구소와 산업체 견학, 오페라 관람 등입니다.”

“어디 보세. 아주 빡빡하게 일정을 짰군. 저녁에 오페라 관람할 때는 코를 골고 자겠어.”

온천이나 유원지에 가는 것이 쉬거나 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산업시설 견학이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구경만 시키면 늘어지고 만다.

“일단 새 옷을 입어서 무척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울긋불긋한 게 아주 잘 만들었네.”

군복 중에서 전투복이 아닌 정복은 남들에게 과시하고 같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도안됐다. 토르구트 족을 위해 디자인된 정복은 특히나 더 화려했다. 상의 단추는 금도금이 돼 있었고, 금실은 염색이 아니라 진짜 금을 섞어 짠 실이었다. 군모에 새 깃털을 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겨우 100여 명에 불과하고 얼마 전까지 천방지축이었던 귀족 자제들이었지만 저들은 토르구트 족의 미래였다. 지금까지 고산국 영향력 내에 들어온 지역의 지배자들을 왕도에 초청해 대접하는 과정에서, 고산국에 호감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예조와 해군 조직 내에 손님들을 접대하는 부서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였다.

“올 때 기차는 잘 탔다면서 의외로 승합차를 두려워하는군.”

“열차는 누가 봐도 쇳덩이 마차인데 승합차는 달라 보이거든요.”

“자체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거지. 전에 몽골에서 싸울 때 토르구트 기마전사들이 장갑차를 몹시 두려워하더군.”

고양이 버스도 아닌데 귀족 자제들은 승합차에 쉽게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조교들에게 떠밀려 억지로 차에 타고 좌석에 앉은 다음에는 바로 코를 골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몹시 피곤했던 탓이었다.

“다른 나라 귀족 자제들을 왕립사관학교 단기 과정에 입교시키는 것이 괜찮은 관광 상품이 될지도 모르겠어.”

“설마 돈 주고 고생하려 하겠습니까?”

“젊은이는 가기 싫어해도 부모가 돈을 내서 억지로 보낼 수도 있지.”

이민호는 해병대 캠프 같은 것을 떠올렸다. 세계 최강대국 고산국의 엘리트 사관생도들과 함께 훈련과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면 돈 많은 인도 토후나 이탈리아 도시국가 귀족들이 큰 고민에 빠질 수 있었다.

여기에 예방접종 등 몇 가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부모 입장에서 자식의 앞날을 위해 과감히 투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적과 풍랑으로부터 안전하기로 소문 난 거대한 고산국 여객선에 탄다면 여행이 위험할 것도 없었다.

“토르구트에는 특별히 무료로 해주신 겁니까?”

“타이지가 내게 금괴 약간을 선물로 보냈네. 물론 이번 귀족 자제들의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선물이라는 명목이야.”

“토르구트 족은 우리 고산국에 매우 유용한 군사집단이니 무료로 해줄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봐, 교장! 권력을 가진 자가 치부하는 방법이 바로 이런 거야. 나는 그 금괴를 국고로 넘겼네. 교장 자네도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이런 방법으로 개인이 치부하면서 국가에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없도록 잘 살펴보게.”

“황공합니다, 전하.”

교육비용을 고산국 정부가 아닌 이민호 개인에게 주어 토르구트는 비용을 절감하고, 고산국은 인원과 자금을 들여 자제들을 무료로 교육시키는 대신 권력자가 그 뇌물을 사유화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고산국 정부에서는 애초에 토르구트 귀족 자제들을 무료로 교육시킬 작정이었으므로 타이지가 보낸 뇌물은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타이지는 잘 알고도 이민호에게 순수한 의미의 선물을 보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에서 예산을 들이는 일을 추진하면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푼 대가로 개인이 이득을 취하는 것은 독직행위, 즉 맡은바 직분을 더럽히는 행위였다.

토르구트 족 귀족 자제들은 보름동안 고산국 본토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이전 시대까지 유목민 젊은이들이 농경 정착사회의 발전된 문명을 살피며 부유함에 몹시 감명을 받는 것은 그 부를 약탈해 자기 것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고산국을 약탈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젊은이들은 공장이나 학교, 시민들의 부지런하면서도 여유 넘치는 삶을 살펴보면서 토르구트도 고산국처럼 발전하기를 열망했다. 마치 개화기의 신사유람단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분명히 내부 기득권층의 보수성과 개혁의 한계에 실망해 종족 전체를 강대국에 팔아먹을 자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고산국에서는 이들의 독립을 유지시켜줄 계획이었으나, 다른 나라에 넘기려 한다면 전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귀족 자제들이 돌아가고 나서 몇 달 뒤부터 토르구트 족에서 유학생들이 몰려왔다. 비록 귀족 자제들은 자기 부족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으나, 가신이라 할 만안 집안의 자제들이 귀족 자제들의 언변에 홀려서, 혹은 종용을 받아 고산국으로 향했다.

이들 중 절반은 왕립사관학교에 입교하길 원했다. 토르구트 족 젊은이들을 위한 정원을 특별히 증원해서 다 받아줬다. 이들은 고산국이 아니라 신생 토르구트 육군을 건설할 재원들이었다. 고산국 참모본부에서는 교환 근무 방식을 통해 장교들을 실전 교육시키고, 반대로 토르구트 육군 내에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토르구트 안에도 여러 부족들이 합종연횡해서 세력구도가 복잡하므로 통합된 육군이 제대로 구성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하는 타이지의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절반은 유학생들을 위한 조선말을 가르치는 어학당과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 단기 속성 과정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들이 택한 전공은 정치와 법학, 경영 등 귀족의 가신들에게 필요한 학문이었다.

기술 쪽을 택한 학생도 일부 있었고, 축산학은 이해하겠는데 의외로 농업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소수 있었다. 토르구트 족이 생활하는 공간이 건조지대이긴 하나 호수 근처에서는 충분히 농업도 가능했다.

“아주 그냥 마구 억수로 퍼붓는군.”

이민호는 반 년 만에 이조의 종합상황실을 다시 찾았다. 태풍이 본토를 직격하면서 곳곳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고산국 본토는 평소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장마 때 물난리 정도야 가뿐하게 극복했지만 태풍은 집중호우와 강풍을 동반했다.

수천 년 동안 본토에 살아온 원주민들도 폭우와 강풍에 견딜 만한 집을 짓고 살았다. 고산국이 건국되면서 도시와 마을을 건설할 때도 가장 먼저 물난리에 견딜 수 있는지 입지 조건부터 따져서 약간 높은 언덕 지대에 건물을 지었다. 우물이 아닌 상수도가 농촌마을에도 잘 보급돼 낮은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건물 자체야 철근 콘크리트나 석조 위주니까 집이나 지붕이 바람에 날려갈 염려는 없었다. 매년 태풍을 몇 차례씩 얻어맞고 나서는 바람에 날아갈 만한 가벼운 기왓장으로 지붕을 시공하는 경우가 사라졌다.

“계곡에 들어간 피서객들은 전원 대피시켰나?”

“태풍이 오기 며칠 전부터 계곡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을 대피시켰습니다만,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숨어들어간 사람들이 일부 있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인명 피해가 난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국왕인 나와 정부 관료들이 할 일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바로 그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 지나고 보면 항상 후회가 된다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짧은 폭우에도 계곡 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못한 것 같았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린 피서객들이 계곡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의 주의사항을 신경 써서 읽을 리도 없었다. 여름 휴가철 전에 신문에서 피서지 안전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뤘으나 사람들은 어느 계곡이나 해수욕장이 물이 더 좋은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재해 상황에서 백성들이 소방관이 내린 ‘명령’은 잘 받아들입니다만, 경찰이나 예비군의 지시는 잘 따르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럼 경찰이나 예비군이 소방관의 지휘를 받아 대신 명령할 수 있게 법을 고쳐야 할까?”

“그게 좋겠습니다, 전하. 급할 때는 안전 요원들에게 어느 정도 강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소방관의 명령이라고 하면 따지지 않고 일단 따를 것입니다.”

산간계곡에 아주 잠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계곡 전체를 휩쓸 수 있었다. 이를 돌발 홍수라 하는데, 1998년 지리산에서 새벽에 100밀리미터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60여 명이 죽고 30여 명이 실종되는 큰 인명피해가 난 적이 있었다.

예전에 물이 흘렀던 흔적이 계곡에 어두운 색의 선으로 남으므로 그 선 아래에서는 아무리 평평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도 야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원칙을 지키지 않아 본토에서만도 매년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 동네 경찰관이나 긴급 소집된 예비군들이 계곡에서 야영객들을 대피시킬 때 거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피해를 더 키웠다.

“태풍이 오기 사흘 전부터 매 시간 방송으로 경고하는데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심지어 태풍 도착 하루 전에 계곡으로 들어가 야영하는 사람들도 있어.”

“전하! 기차역에 크게 태풍 경보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어. 최소한 계곡에서 야영하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가는 일만은 줄어들어야 해.”

가족 단위, 혹은 젊은이들이 단체로 놀러 왔다가 목숨을 잃으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끝자락에 전문가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가졌다.

결론은 개인이 선택한 야영지보다 더 좋은 야영지를 국가에서 제공하는 것이었다. 계곡 주변 시원한 숲속에 수도와 전기, 화장실과 목욕시설을 갖추고 간단한 가게에서 생필품을 판매하면 굳이 위험한 계곡에 천막을 치고 자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다. 물론 아무리 위험하다 경고해도 죽어라 말을 안 듣는 자들이 소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돌발 홍수가 생길 때 정말로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계곡 휴양지에 야영장을 건설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에 있었다. 올해 말까지는 본토의 모든 계곡에 야영장이 완공될 예정이므로 아마도 마지막 위험한 시기가 이번 태풍일 것으로 봤다.

태풍이 지나가고 사흘 뒤 인명피해가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12명이 죽어서 예년에 비해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이민호는 한숨을 쉬면서도 이들이 마지막 희생자들이길 바랐다.

계곡에서 매년 발생한 인명피해가 바다에서 물놀이하다가 빠져 죽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해수욕장에는 안전요원이 상시 대기하고 있는 반면, 계곡은 너무 길어서 안전요원 몇 명만으로 관리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에 파견된 자원탐사대가 3년간의 탐사 끝에 그린란드 남서부에서 빙정석 노천광산을 발견했다. 빙정석은 2천도 이상인 산화알루미늄 용융점을 1000도 이하로 낮춰주는 촉매 역할을 하는 물질이었다.

“주인님이 몹시 기뻐하시는군요.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무제한으로 알루미늄을 생산하는데 그런 촉매가 필요한가요?”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알루미늄을 생산할 수 있게 됐어. 수력발전은 물론 심지어 화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분해해도 경제성이 있어. 물론 전기를 소모하는 단위가 아예 다르지만 말이야.”

천연 빙정석은 알루미늄 생산 외에 여러 산업에 사용돼서 언젠가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연 빙정석을 채굴하는 동안 인공 빙정석을 합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주인님 말씀처럼 빙정석이 정말로 얼음이 만년 동안 굳어서 생성되는 거여요? 그런 이유를 들면서 자원탐사대를 그 추운 그린란드에 보냈잖아요?”

“그런 전설이 있지.”

빙정석은 북해빙궁 같은 가상의 무림 문파에서 소궁주에게만 전해지는 신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주성분이 플루오르화알루미늄나트륨인 빙정석은 이비투드의 퇴적물 중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

이민호는 빙정석이 그린란드에서 나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래서 자원탐사대가 끔찍이 춥고도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섬인 그린란드 전체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3년이었다.

현대 그린란드의 이비투드(Ivittuut) 빙정석 광산은 1794년에 발견되고 1864년에 채광을 시작해서 1963년에 폐광됐다. 천연 빙정석이 고갈될 것에 대비해 미리 합성 빙정석을 만들었으나, 이비투드에서는 폐광 이후에도 그 전에 비축된 빙정석을 계속해서 수출했다.

============================ 작품 후기 ============================

죄송하지만 오늘도 한 편입니다. (버릇됐나봅니다. ㅜ.ㅠ)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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