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91 88. 1609년 =========================================================================
4월 9일에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지금까지 끌고 왔다가 결국 양쪽 모두 국력이 완전히 소진되고 말았다.
네덜란드가 독립을 확고히 한 상태로 휴전을 했으므로 명목상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네덜란드 남부는 여전히 에스파냐가 점령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프랑스에게 점령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벨기에로 독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종전이 아닌 12년 기간에 한정된 휴전이었다.
휴전협정을 체결하기 1년 전부터 왕도에 두 나라 특사들이 들락거리면서 고산국이 상대방 국가에 압력을 가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온갖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중립이란 양쪽에서 욕을 먹는 위치임에도 미래를 위해 감수했다.
다만 예조 판서를 안트베르펜, 영어식 표기로 앤트워프로 보내 프랑스, 잉글랜드 특사들과 함께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의 휴전 조약을 중재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예조 판서가 허허 웃으면서 두 나라 특사들을 차분히 설득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두 나라에 좋을 것이라는 암묵적 협박도 은근히 가했다.
휴전 협상 중에 이미 독립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판단한 네덜란드에서는 휴전의 지속과 평화보다는 무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12년 후에 두 나라의 휴전 연장 협상이 결렬되면서 30년 전쟁이 촉발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서로 상대방 지역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자기들은 결코 수용하지 못하는 자들이 선택한 것이 결국 전쟁이었다.
몇 가지 제안이 오고간 다음 에스파냐 본토 혹은 식민지에서 네덜란드 상인들이 교역을 할 수 있게 됐다. 걸핏하면 해적으로 돌변하는 프랑스나 잉글랜드보다 천생 상인인 네덜란드가 그나마 신뢰가 갔기에 에스파냐에서 흔쾌히 허락했다.
현재 에스파냐 선박을 에스파냐 근해에서 각국 해적들이 노리면서 항해 자체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보유 선박 숫자가 유럽의 절반에 달하는 네덜란드를 은괴 운송 업무에 끌어들여 수송 문제를 타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휴전협정이 체결됐으니 이제 두 나라가 전후 복구사업을 할 차례였다. 이를 위해 유럽 여러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으려 했으나 파산 직전인 두 나라에 돈을 빌려줄 은행은 별로 없었다. 피렌체 은행처럼 돈을 빌려주더라도 사채나 다름없는 고금리에 연체 시에는 가혹한 벌칙 조항을 삽입했다.
바로 이때 에스파냐와 네덜란드를 위해 이민호가 큰 선물을 주었다. 고산국과 덴마크 서인도회사가 대주주로 알려진 유럽 은행을 통해 대출받을 경우 지급 보증을 서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이때 유럽 은행은 고산국 국영 은행과 다를 바 없었다.
“빚보증은 친구 사이에도 서 주는 게 아니라면서요?”
“흠! 친구 사이라면 몰라도 국가 간에는 괜찮소. 국가는 영원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오. 만약 이 시대에 못 받으면 후손들에게 받아내면 될 것이오. 부채를 일으킨 자들이 후손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선조들이 될 수밖에 없지만 말이오.”
비올레타가 투정을 부리자 이민호는 두 나라가 고산국의 친구가 아니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에스파냐 출신인 비올레타는 작년부터 왕도에 머무르고 있다가 올 초부터 뻔질나게 왕궁에 들락거리는 에스파냐 특사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비올레타는 올해 봄에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평범한 부인들과 달리 고산국 후궁들은 띄엄띄엄 긴 터울을 두고 아기를 낳는 것 같아 이민호는 몹시 미안했다. 비올레타의 두 번째 아이는 아들이었는데 누나가 어렸을 때처럼 마치 천사 같이 예뻤다.
중학교에 다니는 첫딸 마르그레타는 수업 시간만 끝나면 바로 아기 침대로 달려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기와 놀아줬다. 이민호가 보기에도 아기는 엄마를 닮아 정말 예뻤다.
비올레타가 에스파냐 특사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네덜란드 출신 여류화가 마하레트도 같은 나라 특사들을 도와줬다. 고산국 궁정화가 겸 사진작가 자격으로 네덜란드 특사들에게 국왕과의 면담 등 여러 가지 편의를 베풀어준 것이다. 후궁이 아니면서도 대충 왕실 가족 대우를 받는 신분이 애매한 여자들이 마하레트를 비롯해 왕궁에 몇 명 있었다.
“차관은 또 뭔가요? 지급보증으로 이미 충분했는데 필요 이상의 차관을 두 나라에 제공해준 것을 두고 유럽 정계에서 말이 많아요. 빚에 쪼들리는 에스파냐로부터 북미와 남미를 차례로 할양받은 것처럼 고산국에서 멕시코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어요.”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소. 그러나 나는 멕시코는 별로 생각이 없소. 에스파냐에서 팔지도 않겠지만, 혹시나 팔더라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부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오. 고산국이 인구가 많은 지역을 영토에 편입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비올레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유럽 은행에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에 거액의 대출을 해준 직후 고산국에서 다시 비슷한 규모의 차관을 두 나라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고산국에서 제공하려는 차관은 악명 높은 피렌체 은행에서 내세운 대출 조건은 물론 유럽 은행에서 괜찮은 이자율로 받은 대출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당장 필요 없는 차관이라도 무이자에 가까우면 일단 받고 본다. 금리 0.1퍼센트라는 명목상의 이자율로 천만 원, 금 3백만 냥 정도를 두 나라에 반씩 나눠 빌려주었다.
금 100톤을 실은 특별 수송선이 순양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럽으로 떠났다. 한때 금으로 넘쳐났던 왕실 지하 창고는 이미 예전에 바닥을 드러냈고, 이 금은 호주와 조선, 일본, 그리고 필리핀의 여러 광산에서 싹싹 긁어모은 것이었다. 남아프리카 금광은 현재 인력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각종 기계도 설치를 끝냈다. 이 금광들이 조만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면 재정위기 상황이 풀릴 것으로 기대됐다.
몇 년 전 대기근 이후 어마어마했던 금 보유량은 이제 위험한 수준으로 바닥이 났으나, 이민호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이렇게 비올레타뿐만 아니라 유럽 외교가에서 오해를 사고 있었다.
“불안해요. 전하께서 욕먹을까봐 불안해요.”
“에스파냐에 거의 무이자로 차관을 제공했는데도 섭섭하오?”
“에스파냐가 갚지 못하면 전하께서 뭘 대가로 요구하실 건데요?”
여자에게 거짓말을 못하는 이민호는 잠시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비올레타가 불안해하는 것, 즉 빚을 지운 다음 빚 대신 멕시코를 할양받는 것은 이민호의 계획에 분명히 없었다.
“요구하는 건 없소. 에스파냐는 기한 내에 갚을 것이오.”
“아마 갚지 못할 거여요. 거의 무이자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에스파냐는 멕시코와 포토시의 은광 외에는 돈을 벌어들이는 산업 자체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국왕이나 총신은 금과 은을 얌전히 창고에 보관할 사람들이 절대 아니에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즐겁게 쓰고 볼 거여요.”
“모르겠소. 사정이 어렵다기에 차관을 제공했을 뿐이오. 어떻게 쓰든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오.”
비올레타가 애잔한 눈으로 이민호를 쳐다봤다. 그 눈길을 견디지 못한 이민호는 비올레타와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빚에 허덕이는 에스파냐의 상황을 이용해서 멕시코를 할양받거나, 전쟁을 통해 점령하지 않을 것을 우리 예쁜 쥐똥이의 귀여운 하품을 걸고 약속하겠소.”
“풋! 그 정도라면 믿을게요.”
마침 유모의 품에 안긴 비올레타의 아들 쥐똥이가 눈을 질끈 감고 자그마한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장녀 마르그레타가 차마 소리는 못 내고 귀여워서 미치려 했다.
“약속해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요. 멕시코 땅은 에스파냐에 남은 거의 유일한 식민지에요. 에스파냐의 미래가 될지도 몰라요.”
“멕시코를 에스파냐 이외의 외국 침략자나 해적들로부터 지켜주겠소. 고산국 내부에서도 절대 멕시코에 욕심을 내지 말라고 훈시하겠소.”
이민호도 지급보증과 차관을 합해 겨우 금 100톤에 멕시코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동안 에스파냐가 멕시코 지역에 투자한 자본만으로도 그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항상 궁핍한 에스파냐가 팔아먹을 것이라곤 영토밖에 없었다.
멕시코에는 원주민이 너무 많았고, 현지에서 출생한 백인이나 혼혈 등 에스파냐 본토의 시민권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오래도록 불만이 쌓이다 보면 반드시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하고야 만다는 것이 이민호의 예상이었다.
그리고 딱히 멕시코 땅에 욕심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태평양을 완벽한 고산국의 내해로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땅이 바로 멕시코였지만, 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에도 숨통을 트여 줘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고산국의 위정자가 될 자들이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참! 필리핀 총독부에서 마닐라 남쪽 마린두크 섬 남해안에 올해부터 부에나비스타를 건설하고 있어요. 이 일하고 관계있나요?”
“쿨럭!”
부에나비스타라는 이름 그대로 경치 좋은 해변에 건설한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이는 필리핀 총독부의 기존 식민지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필리핀 내부와 외부에 더 이상 필리핀 총독부를 위협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는 사업이었다.
명나라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에 중점을 두던 총독부에서 조만간 플랜테이션 농업을 시작할 것으로 이민호는 예상했다. 경작할 작물은 당연히 사탕수수였다. 설탕은 향신료나 차와 마찬가지로 현대에 비해 가격이 극히 높았다.
“역시 전하께서는 필리핀을 신경 쓰고 계셨군요.”
“에스파냐가 필리핀 전체를 식민 개척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마닐라를 교역 중심지로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소. 포르투갈 사람들을 보시오. 아주 작은 섬에 불과한 마카오를 통해 교역을 하면서 얼마든지 이익을 얻고 있지 않소?”
“맞아요. 필리핀 총독부가 원주민, 아니 현지 주민들과 땅이나 이익 문제로 충돌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요.”
몇 년 전 1603년에도 필리핀 마닐라에서 상글레이 반란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에스파냐와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가 아니라 에스파냐와 중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을 상글레이 메스티소라고 특별히 구분하는데, 바로 이들이 주도한 반란이었다.
반란 과정에서 에스파냐 사람 수백 명이 죽고 머리가 잘렸으며 그 머리가 장대에 꽂혀 인트라무스 성벽 주변에 줄줄이 전시되기도 했다. 원래 역사에서 총독 임기를 마치고 마닐라에 거주하던 루이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는 바로 이 반란 때 부하들과 함께 수많은 반란군들을 향해 돌진하다가 죽어서 목이 매달렸다. 그러나 현재 비올레타의 부모는 새강릉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마닐라 총독부에서는 필리핀 사람들과 마닐라 항에 마침 정박 중이던 유구국 상선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란 진압 직후 에스파냐는 마닐라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던 명나라 사람 1만여 명을 학살했다.
반란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온 고산국 해군과 해병대가 본 것은 잿더미가 된 마닐라 시내에서 중국인 생존자들을 상대로 닥치는 대로 살육을 자행하고 있던 광기 어린 에스파냐 군인들이었다. 만약 고산국 군대가 에스파냐 군인들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머지 중국인 1만 명도 다 죽였을 것이다.
명나라 상인이나 마닐라에서 살던 중국인들은 고산국 군인들에게 절을 한 다음 엉엉 울면서 명나라로 돌아갔다. 실제 역사에서는 마닐라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던 중국인 2만여 명이 몇 백 명만 남기고 거의 다 죽었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멕시코가 아니라 필리핀 땅을 욕심내고 계신다, 이런 뜻이지요?”
“그게 아니라, 마닐라보다 훨씬 더 좋고 안전한 교역 장소가 생겼기 때문이오. 에스파냐에 통보하기 전에 비올레타와 상의하려 했는데 늦었구려. 알아 맞춰보시겠소? 중국에도 가깝고 고산국에도 가깝고, 마카오에서는 더욱 가깝소.”
“그럼 어디인 줄 알겠어요. 광저우에서 바다로 나오는 곳, 마카오에서 강 하구 건너 동쪽 섬이죠?”
집무실에는 세계지도와 고산국 지도, 그리고 동아시아 지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학교 교실마다 하나씩 비치된 것과 똑같은 지구의가 탁자에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필요한 지도를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섬만으로는 너무 작아서 육지 쪽도 일부 조차지에 넣으려 하오.”
“조차지라고요? 거대한 중국이 설마 서양 도깨비들을 위해 땅을 빌려줄 생각을 할까요?”
“양광 총독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고, 서양 오랑캐를 동원해 해적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명나라 황제에게서 칙허를 얻었소. 마닐라를 제외한 나머지 필리핀 땅을 고산국에 넘기고 이곳, 향항을 국제무역항으로 개발하면 어떻겠소?”
조차지는 기한이 되면 반환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국제 역학 관계에 따라 조차 기한을 계속 연장할 수도 있었다.
“에스파냐에 이렇게 잘 해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음, 뭐 비올레타 그대의 고국이기 때문이오.”
미래의 일이라서 직접 말하기 곤란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 홍콩의 지리적 이점에 욕심내던 서양 열강들이 많았다. 고산국이 세워지면서 앞으로 홍콩이 서양 여러 나라 혹은 영국에 넘어갈 가능성은 없었지만, 이민호가 주도함으로써 홍콩이 역사보다 더 빨리 개발되게 생겼다.
다들 알다시피 홍콩이 발전하면 교역량이 웬만한 중진국 하나를 가뿐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민호는 식민지가 아닌 순수 무역항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 일을 잉글랜드가 아닌 에스파냐에게 맡기려 했다.
고산국 본토에도 좋은 항구가 많았으나 물류 허브가 되기에는 지리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었다. 물류 허브는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본을 무자비하게 쏟아 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리상의 위치가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무역항을 운영함으로써 얻을 이익 때문에 거대한 국제항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아리수 항은 고산국 및 유구국 상선과 금괴를 가득 싣고 오는 외국 상선들만 입항하는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산국에도 역시 석탄이나 목재, 시멘트를 잔뜩 쌓아둘 곳이 필요했고, 그곳은 바로 홍콩이 적절한 위치였다.
“국내에 산업시설이 없으면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처럼 무역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오. 가급적 군사적 충돌을 줄이고 주변국들과 잘 어울린다면 에스파냐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오.”
“그러니까 향항은 마카오가 너무 좁아서 하지 못하던 국제 중계무역항이 되는 거군요. 전하께서 에스파냐에 넘긴 차관을 이곳 항구개발에 쓰도록 에스파냐 특사들에게 충고할 게요.”
국제무역항 개발이라는 사업이 작은 일은 결코 아니었다. 건축과 토목 기술이 우월한 고산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도와줘야 할 테고,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에 넘어간 황금 100톤은 고스란히 고산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오히려 에스파냐가 더 많은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홍콩은 국제무역항으로서 충분히 성공할 만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홍콩이 광저우의 외항이 아니라 고산국 왕도 고북 시의 외항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었다. 이민호도 어렴풋이 생각했을 뿐이었다.
“원래 에스파냐의 명목상 영토였던 북미와 남미를 고산국에 할양하면서 에스파냐 왕실의 국내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영토가 아닌 조차지라도 얻는 편이 좋을 것이오.”
“고산국에 영토를 팔고 명나라 영토를 얻어서 이상하긴 하지만, 이곳에 항구가 생기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돼요.”
“그렇소. 나도 이곳이 배후 산업단지까지 갖춘 생산적인 무역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 남미를 얻으면서 미리 생각해뒀던 거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오. 고산국, 에스파냐, 명나라 대표들이 함께 모여서 향항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합시다.”
비올레타는 고산국 국왕의 후궁이었지만 웬만한 에스파냐 외교관들이 하지 못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광고대행사에서 AE라는 직종이 광고주 회사에 가서는 광고대행사를 대표하고 광고대행사 내부에서는 광고주를 대리하듯이, 비올레타도 양쪽 국가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홍콩의 개발은 군사적으로 위협해 강압적으로 탈취한 것과 전혀 달랐다. 고산국의 눈부신 발전을 눈여겨 지켜본 명나라 황제와 고관들이 무역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이렇게 과감한 양보가 가능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홍콩은 고산국과 명나라, 에스파냐 세 나라가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진짜 홍콩과 다른 홍콩의 시작입니다.
밤을 새서 자야겠습니다. 오늘은(도) 한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