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88 87. 1608년 =========================================================================
추수가 끝난 늦가을에 연초부터 계획했던 동원훈련을 실시했다. 병력이 적은 고산국 특성상 모든 부대가 빠른 기동성을 추구했고, 전시에 예비 병력의 소집과 훈련에 주안점을 두었다. 왕도 고북에서 집결한 병력이 고남 시 외곽 해안에 투입된 다음 작전을 마치고 다시 고북으로 철수하는 것이 이번 훈련의 기본 골격이었다.
예비군 동원령 선포와 동시에 전역 후 20년 가까이 된 만 40세 아저씨들까지 지정된 부대에 모여들었다. 예비군은 제대시기에 관계없이 사병은 50세까지 등록 가능했고 매년 거주지 인근 부대에서 훈련을 받았으나 이번 특별 동원 훈련에서는 40세까지로 소집이 제한됐다.
예비군들은 일 년에 2주일 훈련하고 현역 병사의 한 달 봉급과 훈련수당을 받았다. 돈으로 따지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모병제인 고산국에서는 예비군도 모병제라서 현역 복무 여부와 상관없이 예비군으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했다. 현역 출신이 수당을 더 많이 받고 간부로 우대 받는 정도였다.
본토와 북미에서는 보통 마을의 자경단이 훈련 겸해서 예비군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출신 이민자들도 성인 남자라면 대체로 예비군에 등록했다.
그래서 고산국에서는 현역 제대자 숫자보다 예비군이 훨씬 많았다. 현역에 복무하지 않더라도 성인 남자가 예비군에 등록하는 것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명예로운 일로 여겼다.
“이번 훈련에서 예비군 보병들은 중대 방어진지 건설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게 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장비가 많이 바뀌고 중대 방어진지 교리도 전반적으로 수정됐기 때문입니다. 지난번과 달리 기존 성곽이 아니라 야전 축성 위주입니다.”
“좋아. 인원이 넘쳐나는데 대부분이 훈련에 참가했어. 현역에 입대하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국방에 관심이 참 많은 것 같아.”
“현역 출신도 예비군도 아닌 남자는 국방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못하는 사회 분위기 탓입니다.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웬만해서는 현역들이 다 해결하니까 지역별 예비군이 실전에 동원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계복이 이민호 앞에서 이번 동원훈련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차트를 만들어 상관에게 브리핑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비슷했다. 한국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이민호의 기억과 경험이 알게 모르게 고산국 군대 문화에 많이 반영된 탓이었다.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개선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번 훈련에서 가장 중점적인 작전은 보병 일개 연대를 항공 수송하는 일입니다. 인원은 문제가 없는데 포병 장비와 보급품 수송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고산국 여러 도시의 외곽은 물론 고산국 군대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지역에 미리 활주로를 닦아놓았다. 덴마크 코벤하운과 모스크바, 북경은 물론 심지어 한성 남쪽 청파의 너른 들에도 유사시를 대비해 간이 활주로를 건설했다. 땅을 몹시 사랑하는 오희문이 들판을 개간한 다음 알곡을 말리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공중 수송 작전에서 병력 전개 방식은 현대 군대와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외국에 만들어놓은 활주로는 여차 하면 적지가 될 수 있기에 안전을 최우선해서, 만약 활주로가 적에게 점령된 상태에서는 수송기가 회항할 수 있는 거리에 예비 활주로도 만들어놓았다. 정식 작전에서는 활주로 경비대와 보급대, 관제단 등이 먼저 착륙한 다음 전투 병력이 탑승한 수송기가 내려앉는 식이었다.
“저번에 지시한 경포 제작은 완료됐나?”
“예. 짧아서 사거리는 줄어들었어도 가볍고 튼튼합니다. 시험을 마치고 이번이 첫 전개입니다.”
무거운 포병과 말은 항공 수송에서 가장 큰 애물단지였다. 전쟁에서 기병과 기마정찰대, 그리고 포병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들을 비행기에 태우기에는 현재 운용중인 비행기 자체의 한계 때문에 무리가 있었다.
야포 탑재 차량을 수송기에 싣는 것은 현재로서는 아직 불가능했다. 결국 말은 포기하고 분해해서 보병이 직접 운반하는 가벼운 야포를 따로 만들어서 배치했다. 예전에 임진왜란 때는 말에 싣고 다녔는데, 그것보다 가벼운 포였다.
“만약 전시라면 현지에서 말을 사거나 징발할 경우 기병이나 기마정찰대가 아니라 가장 먼저 포병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게를 줄였다고는 하지만 그걸 운반하려다가는 허리가 휠 것 같아서 말이야.”
이차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한 75밀리 단포신 산악포는 무게가 400kg에 달했다. 그러나 포를 75kg 단위로 분해해서 운반하더라도 당연히 사람이 아닌 말이 동원됐다.
그런데 고산국에서는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마치 이차대전 일본군처럼 사람이 운반하도록 했다. 그래서 포 하나와 포탄 몇 발을 운반하는데 자그마치 40명 정도가 필요했다.
그렇게 제작한 경포의 위력은 일반적인 3인치 포에 비해 훨씬 약했다. 그래도 사거리나 위력이 이 시대 다른 나라의 화포에 비해 훨씬 나았기에 이거라도 쓸모가 있었다.
“도련님이 개발을 지시한 가벼운 무반동포가 곧 개발이 완료됩니다. 사실 경포 같은 것이 없어도 전투에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유럽식 성곽은 물론 적의 강화된 진지라도 박격포와 무반동포만으로 충분히 제압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원하는 모든 것을 준비한 다음에 전투에 나설 수는 없지. 하지만 장비가 좋을수록 아군의 희생이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반적인 야전에서는 아군 전사자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렵습니다. 대규모 기마전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근대적인 무기로 무장한 고산국 군대를 상대해야 할 적군은 매우 불행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일방적인 학살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산국 군대의 위력을 아는 나라에서는 애써 전쟁을 회피했다.
그러나 지난번 몽골과 싸울 때처럼 수만 명이 동원된 기마전이라면 문제가 많이 달라졌다. 그때 아군에서도 주로 동맹군이지만 토르구트 족에서 사상자가 천 단위로 발생했다. 그 전투는 고산국 군 장교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충격으로 남았다.
그리고 후방 보급대에서 희생자가 난 것도 뇌리에 깊이 박혔다. 비전투부대의 안전을 위해 기관총을 배치하는 등 여러 가지 보완 조치가 뒤따랐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현역 부대들은 모두 아리수 항에 집결해서 함선에 승선 중입니다. 예비군들은 사흘간의 적응 훈련을 마친 다음 역시 아리수 항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북미에서도 같은 훈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총 30만 명 병력을 지휘하는 계복은 기분이 어때?”
“이제야 역사서에 등장하는 장군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현역 중에서 육군은 3만밖에 안 되고 예비군이 나머지 인원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예비군도 현역 복무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충분한 훈련을 받았기에 충분한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고산국 예비군은 전시에 훈련받지 못한 농민들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명나라나 조선과 전혀 달랐다. 조선에서 예비군에 해당하는 속오군들은 매년 농한기에 정기적인 훈련을 받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규정과 다른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쌍령전투에서 무너지는 꼴을 보면 속오군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시키지 못한 것으로 봐야 했다. 물론 화승총으로 기병을 상대하는 것에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승리하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그것이 군대의 존재 의의입니다. 그런데 도련님.”
“왜?”
“저는 언제까지 원수로 있게 됩니까?”
“뭐? 도원수나 상원수로 승진하고 싶어?”
무슨 걱정이 있는지 알겠지만 이민호가 괜히 농담을 해봤다.
“아닙니다. 요즘 똑똑하고 유능한 부하 장군들이 많이 생겨서 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민망하다는 뜻입니다.”
“관두면 뭘 하려고?”
“뭔가 할 일이 있겠지요.”
“그럼 원수나 해, 이 원수야. 나는 초등학교 졸업도 못했고 너는 대학물을 좀 먹었다면서? 졸업은 했어?”
고산국에는 예전부터 직장인을 위한 야간대학 과정이 개설됐다. 계복은 육군 총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밤마다 학교에 가서 공부했다. 이민호보다 오히려 계복이나 감동, 감불이 자기 개발에 더 충실한 인간들이었다.
육군 사관학교 외에 고급 간부를 육성하기 위한 육군대학도 얼마 전에 이민호의 개인적인 수하라고 할 만한 고급 장교들이 졸업했다. 원수인 계복이나 중장 계급인 감동과 감불은 고산국 군의 수장급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소령급 중견 간부들이 다니는 육군대학을 당당히 졸업하고야 말았다.
“교수님들이 교과서 외에도 열심히 연구한 것을 강의하기에 배울 게 참 많습니다. 도련님도 밤에 시간 나시면 일반 대학이나 육군대학에 다니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밤 시간이 언제 내 시간이었어?”
“아! 하하하! 그렇군요.”
계복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하나도 부럽지 않다는 표정이라서 이민호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혜영에게 이 문제를 넘길까? 나도 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 말이야.”
“아닙니다! 제가 한 헛소리는 그저 잊어버리십시오.”
혜영 등 후궁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간 계복이 아주 큰일 날 뻔했다. 이민호는 시간이 돼서 자리에 일어났다. 이민호를 기다리며 꽃단장을 마친 후궁들이 오늘 밤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동원 훈련은 2주 동안 계속됐다. 고북 아리수 항에서 병력을 실은 해군 함대가 고남으로 향하고, 그 시간에 선발 함대에 탑승한 해병대가 해안에 상륙작전을 펼쳤다. 해병대가 해안을 점령한 다음 내륙으로 진군하는 사이 해군이 선착장을 급조해 후속 함대가 병력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다시 이민호가 훈련을 참관한 것은 일주일 후 고남 시 외곽에서였다. 활주로에 수송기가 착륙해서 병력을 쏟아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 장면이었다. 물론 그 전에 선발대인 수송기에서 내린 인원들이 활주로를 확보하고 연료보급 준비를 마친 다음이었다.
“안전을 위해 이런 방식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전투 병력이 적지에 강행 착륙하기는 어렵겠어. 적이 활주로를 파괴하든지 간에 어쨌든 이용을 차단하면 수송기가 못 내리잖아?”
“그래도 수송기가 맨 땅에 착륙하다가는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활주로에 내린 수송기가 정지한 다음 보병들이 출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병사들이 총을 겨누며 주변을 경계하는 동작을 취했고, 그 사이 다른 수송기들이 차례로 내렸다.
병력을 내린 수송기들은 활주로를 반 바퀴 돌아서 다시 이륙했다. 착륙과 이륙이 같은 활주로에서 동시에 진행되기에 통신기를 잡은 관제관들이 아주 진땀을 쏟아야 했다. 자칫 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내리는 것은 더 어렵겠지?”
“매번 작전을 실시할 때마다 병력 일부를 항상 고정적으로 잃을 것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아직 낙하산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천 번에 한 번 꼴로 낙하산이 펴지지 않았다. 이는 현대 공수부대의 확률보다 훨씬 높았다.
보조 낙하산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비싼 낙하산을 두 개나 휴대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아직 비행기를 크게 만들지 못해 탑승한 병력에게 필요한 무장을 제대로 휴대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그래도 알루미늄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비행기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전투보다 이동이나 보급이 어려운 거야 알고 있었지만, 비행기를 만들고도 전투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도련님. 도련님은 지금까지 정말 잘해왔습니다.”
“고마워.”
계복이 이민호를 위로했다. 계복은 나이가 겨우 한두 살 많은데도 이렇게 제법 형님 노릇을 할 때도 있었다.
기동 훈련은 잘 끝났다. 고산국 본토와 북미에서 육군 30만 명과 해군 함대 전체가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끼고 있었다. 필요한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건주여진이나 몽골, 유럽 강대국들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초반에 영토 일부를 내주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이민호의 욕심이었다. 이 시대에 기동과 보급이 가장 큰 문제였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거의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고산국은 함대와 장갑차는 물론 300년이나 앞서서 비행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더라도 올립니다. 쿨럭~ 자꾸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