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86 87. 1608년 =========================================================================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 1세 공작이 1607년에 도나우뵈르트에서 회합을 가지면서 독일에 로마가톨릭을 재성립시켰다. 이에 대한 반발로 그 다음해인 1608년에 개신교 귀족들이 모인 군사 동맹이 바로 신교도 연맹이었다.
다시 이에 대한 반응으로 1609년에는 가톨릭 동맹이 구성된다. 독일은 30년 전쟁을 향해 황제와 귀족, 신구교 신도들이 어깨동무하고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었다.
“혹시 유럽에서는 목사 개인이 교주가 되는 경우가 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로마가톨릭과 달리 신교는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신도들이 직접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목사가 그 중간에 끼거나 특히 교주 역할을 한다면 신교도인 제가 입에 담기는 매우 거북하지만 명백한 이단입니다. 종파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더라도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에서 목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아닌 장로가 설교를 하는 종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소. 그래도 목회자의 권위가 매우 높을 경우에는 평신도협의회나 장로회의 견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신도들이 쉽게 목회자에게 굴복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다오.”
“그래서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감시와 감사를 꾸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 신교도들은 신을 충실히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교는 로마가톨릭이 교황을 숭배하는 것처럼 결코 목사를 신앙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과장이겠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소.”
교황과 사제들의 지나친 권위에 반발해서 신교로 분리됐으니 혹시나 신부 대신 목사가 그런 권위를 가질까봐 신교도들 내부에서도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아직 신교가 초기 단계이며 로마가톨릭이라는 외부의 강한 적이 있어서 비교적 순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신교가 특정 국가의 종교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부패하게 돼 있었다. 이민호는 어느 종교든 순수성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주장을 절대 믿지 않았다. 어떤 종교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부패할 수도 있고, 뼈저린 반성을 통해 정화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하니 교회, 특히 목사가 부패하지 않도록 신교도 연합이 고산국 국내에서도 많이 도와주길 바라오. 나도 정부 예산 일부를 돌려 목회자들의 생활을 돕도록 하겠소. 신교도 연합에도 자금 지원을 하고 싶지만, 군사적 지원으로 가톨릭 진영에서 오해할까봐 접어두겠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신교도 연합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신교 연맹 사절단은 가톨릭과 신교도의 대립에서 고산국이 중립만 지켜줘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들은 바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멀리 고산국 왕도까지 찾아왔다.
“전하! 군주들은 성공회를 좋아하는 것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군주가 교권을 장악할 경우 여러 가지 민망한 사태가 많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 주십시오.”
“잉글랜드 성공회가 북미 새원산에 교회를 세웠지만 교세는 매우 약하다고 들었소. 내가 고산국 성공회를 세워 신도들에게 배교를 강제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합리적인 분이시니 그럴 일은 없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유럽 어느 영지에서 개신교가 밀려나더라도 북미가 안식처로서 역할을 하면서 신도들이 심적으로 매우 안정됐습니다.”
요즘도 가끔 신교도, 혹은 구교도들이 북미로 몰려오곤 했다. 유럽의 몇몇 항구에 들르는 고산국 여객선을 타고 오면 편할 텐데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서양을 건너는데 몇 달씩 걸리는 범선을 타고 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북미 땅을 밟지 못하고 배에서 죽어서 안타까웠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고산국으로 이민 온다면 얼마든지 받아주겠소. 고산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요. 혹시 나중에 독일에서 신교가 국교로 발돋움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시오.”
“감사합니다. 저희 신교도들의 정신적 지주이신 헤드비히 여왕님의 부군다운 고결한 결단이십니다.”
개신교 연합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믿을 만한 조직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군사적인 면을 제외하고 재정적, 정치적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덕택에 고산국, 특히 북미에 건립된 잡다한 종파 소속 개신교회들의 감찰을 이들에게 맡길 수 있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갈릴레오 갈릴레이 백작 말씀입니다.”
“문제가 있소?”
“그렇게 노골적으로 목성에 위성이 네 개나 있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희들은 갈릴레이 백작이 국왕전하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오호! 행성이 지구처럼 위성을 가지는 것이 문제란 말이오?”
신구 양쪽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고도 대체로 반박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론도 아닌 관측 결과를 들이미는 천문학자들과 충돌해봤자 논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명백한 관측 결과를 갖고 있었다. 더 이상 천동설로는 목성의 위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데, 목성을 중심으로 도는 천체가 하나도 아니고 네 개나 발견된 것은 성직자들에게 크나큰 고민이었다. 특히 성경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복음주의 교파들의 성서주의에 입각할 때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갈릴레오는 한 술 더 떠서 화성의 위성을 거의 발견할 뻔했으나, 위성이 천체망원경으로 확인하기에 너무 작아서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화성의 위성 두 개를 하나로 오인하는 바람에 위성 궤도 계산 문제에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두 위성은 소행성에 가까운 비정형에 크기도 20km 정도로 아주 작아 화성이 지구에 접근하기 전에는 다시 찾기 어렵게 됐다.
물론 이민호가 적당히 조언을 해줄 예정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 발견될 화성의 위성들이 200여 년 일찍 발견될 운명에 처했다.
“하오나 전하! 말은 안하더라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목성의 위성을 천동설이 잘못됐다는 증거로 활용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에 나왔듯이 천동설이 진리입니다.”
“티코 브라헤나 케플러를 비롯해 지동설을 주장하면서도 성경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천문학자들이 하고 있었소. 갈릴레이 백작도 모든 것은 신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소.”
말이 신교이며 프로테스탄트지, 성경 무오류설을 주장하는 측은 꽤나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성경 말씀이 무조건 옳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기에 도무지 과학적 토론이 되지 못했다.
이민호는 대학 신입생 때 기억이 떠올랐다. 학기 초에 선배 누나, 나중에 학교 선배가 아닌 것을 알게 됐지만, 하여튼 처음 보는 여학생의 설득에 넘어가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성경을 배우게 됐다. 남중, 남고를 졸업하고 공대를 다니는 남자는 여자가 뭐라고 말을 걸면 쉽게 넘어가게 돼 있었다.
그러나 그 단체에서 창세기를 설명하는데 영 설득력이 없었다. 웬만하면 종교적인 시각이라 이해하고 넘어가려던 이민호는 참다못해 폭발했고, 다시는 그 단체에 가지 않았다. 신교 연맹에서 보낸 사절단도 그렇게 꽉 막힌 면이 있었다.
“그래도 성경이 옳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전한 말씀이라 단 한 글자도 잘못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혹은 문학적 수사로 전하는 편이 효율적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오.”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 불문하고 성경은 지극히 진실됩니다.”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얼른 내보냈다. 군사적 지원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신교 연맹에서 파견한 사절단은 몇 가지 성과에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갈릴레오는 유럽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가톨릭 지역에서는 종교재판과 가택연금에 그칠 일을 신교도 지역에서 잡히면 화형 당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발견의 의미를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교도 사람들이 성경 문구에 집착할수록 일반인들로부터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백작은 앞으로 외국에 나가지 마, 제발.”
“예. 이제 고산국이 조국입니다. 평생 외국에 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남반구에서 천체 관측을 하기 위해 호주에 천문대를 설치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호주나 북미나 남미나 죄다 고산국 땅이었다. 갈릴레오는 고산국 영토 안에서 얼마든지 천문 관측과 연구를 할 수 있었다.
7월 3일에 캐나다 지역 세인트로렌스 강 하구에 프랑스 식민지 퀘벡이 건설됐다. 퀘백은 이로쿼이 말로 강이 좁아지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북미 대륙 전체가 고산국 영토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샹플랭 등 프랑스인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 도시까지 건설하다가 발각됐다.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옛 정착지를 빼앗긴 이로쿼이 원주민들이었고, 이들의 신고를 받고 뉴펀들랜드에서 경비함정이 출동했다. 프랑스인들이 퇴거 명령에 불응하고 교전태세를 갖추기에 곧이어 대서양 함대 순양함들이 급히 출동했다. 일이 완전히 끝났다고 왕도에 보고한 것은 7월 말이었다.
“1530년대에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 등이 건설한 요새와 가까운 곳입니다. 보고에 따르면 벌써 성벽을 쌓고 요새화한 2층 목조건물을 짓고 있었답니다.”
“사진을 찍어 보냈다니까 곧 도착하겠지요. 개척민들을 강제로 체포하긴 했어도 사상자 없이 끝나서 다행입니다.”
해군 총함장 이순신이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다. 조선 출신 무관들이 보기에 프랑스 개척자들은 허가 없이 국경을 침범한 무도한 침입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왜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도적들이었다.
“전하! 이번 사태는 프랑스에 의한 심각한 도발이라고 간주됩니다. 3년 전에도 카나타 마을 안쪽에 아카디아라 해서 프랑스인들이 정착지를 건설했었습니다. 그들은 고산국에 불법 이민 온 것이 아니라 북미 구석진 곳에 프랑스의 개척지를 건설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카디아라는 곳에서는 경고를 안 듣고 싸우려 들기에 함포 사격을 가한 다음 모조리 생포했었지요.”
“프랑스와 잉글랜드 어부들이 조업하도록 내버려두고 밀수출하는 것도 눈 감아줬더니 이젠 우릴 아주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국경 문제는 다른 일보다 더욱 강경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프랑스에 엄중히 항의하겠습니다.”
국토가 무지막지하게 넓고 지킬 사람은 적다 보니 이런 비슷한 일이 자주 생겼다. 대서양 함대를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카리브 해 연안에 집중 배치하는 바람에 북쪽 해안의 경비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그 틈을 노리고 캐나다 지역에 개척지를 건설하는 프랑스인들이 종종 있었다.
프랑스 정부에 항의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민호도 알고, 이순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에 항의라도 하지 않으면 불법 정착촌을 인정하는 줄로 오해하는 인간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전하! 유독 프랑스인들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민 오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우리 영토에 들어와서는 은근슬쩍 들어앉으려 합니다. 프랑스 영토로 결코 인정해주지 못할 일인데도 당당하게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마치 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 같이 거만하게 굴더군요.”
“그래서 프랑스가 유럽의 짱...... 아니, 자부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중세에 다른 지역들이 엉망일 때조차 프랑스는 풍요로움을 구가했습니다. 물론 전쟁도 자주 일어났지만 귀족들의 전쟁에 불과했었지요.”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이전에도 프랑스인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국토는 풍요롭고 옛 로마 제국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으며, 프랑스인들이 주변 잉글랜드나 독일을 봤을 때 야만인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에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발전하고 프랑스는 오히려 ‘혁명을 일으켜야 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했다.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이 소고기를 덩어리째 구워먹는 것을 보고 요리도 아니라고 조롱했지만, 영국인들은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부유했다. 실제 역사에서 18세기말이나 19세기 초반 이야기였다.
“북미 영토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막으려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해적들의 활동을 줄일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서양 함대를 증강시켜 드릴까요?”
현재 대서양 함대는 해적들을 방어하느라 카리브 해 방면에 집중됐고, 북대서양을 지킬 여력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프랑스 개척민들이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당연히 함대 증강을 제안했는데, 이순신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럼 고맙지만 지금 대서양 함대의 전력으로도 가능합니다. 다만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어서 전하의 결단이 요구됩니다.”
“지금 함대 전력으로 가능하다고요?”
금시초문이라서 설명을 자세히 듣고 보니 역시 정치적 부담을 질 만한 과감한 계획이었다. 이순신이 제안한 대로 아일랜드와 에스파냐 사이에 일개 전단을 고정 투입하면 유럽의 해상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순양함의 빠른 속도와 전파탐지기 덕택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폭 800km라면 순양함 일곱 척으로 봉쇄할 수 있습니다. 한두 척을 페로 제도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배치하면 나머지 북쪽 구멍도 완벽하게 봉쇄됩니다. 잉글랜드 해적선과 노예무역선, 프랑스 사략선과 개척선까지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무척 그럴 듯했다.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신중하게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유럽에서 전쟁이 나면 그렇게 합시다. 지금은 아닙니다. 대서양 함대에 1개 순양함 전단을 더 증설하고, 동북부 해안 쪽에는 해양경비대를 창설해서 프랑스 개척선을 막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걸핏하면 북미 해안에 상륙하는 유럽 어선들도 통제해야 합니다.”
“병력과 배를 증강시켜준다면 싫어할 해군 지휘관은 없습니다, 전하. 다만 제가 설명 드린 것은 유사시 언제든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형님.”
어느새 환갑이 넘은 이순신은 아직도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7년 계약 기간을 채웠으니 이제 편히 쉬겠다는 이순신을 붙들어두고 계속 일을 시키는 사람이 이민호였다.
이민호는 이순신의 모친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 계신데 아들이 은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은퇴하는 순간 폭삭 늙어버릴 것 같아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런저런 이야깁니다. 주제 하나를 두고 몇 편 진행하는 것이 나은데 작은 주제가 많을수록 자료수집 부담이 커서 제 입장에서는 피가 마릅니다.
금도 곧 발견됩니다. 다음 회는 1608년 하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밤새고 이만 자야 해서 오늘은(도) 한 편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