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85화 (73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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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608년

거대한 돔이 천체의 이동에 맞춰 아주 느린 속도로 돌아가는 곳이 천문대였다. 그 안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이 천체망원경을 통해 혜성을 관측하면서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아이들 중에서 이민호가 여덟 살짜리 작은 공주를 번쩍 안아들어 의자에 앉혔다. 21번째 아이는 이민호가 말하기 전에 벌써 접안렌즈에 눈을 들이대고 있었다.

“왼쪽 상단에 긴 꼬리가 보이지? 바로 저것이 혜성이란다.”

“작년 가을에 본 것과 다른 거죠? 좀 더 작고 어두워요, 아바마마.”

이민호의 자식들 중에는 유난히 똘똘한 아이들이 많았다. 어머니인 후궁들의 신분이나 지능이 높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왕국 전체가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자를 높이 우러러보는 분위기 탓이 컸다.

모든 후궁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2세들의 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혜진이 새로 만든 음식을 소개할 때 32시간 동안 영상 4도에서 숙성해 끓는 물에 19초 동안 데치고 등등 과학적으로 설명한 효과도 있었다. 만약 아이가 어리고 어려워서 못 알아들으면 어머니인 후궁이 자세히 설명해줬다.

“같은 혜성인데 지구에서 거리가 멀어서 작게 보일 수도 있다. 아마도 넌 76년 후에 저 혜성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다.”

“아바마마는요? 아바마마도 저와 함께 다시 저 혜성을 보실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고맙다만 그건 신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합치돼야 가능하단다. 자! 교대해라. 동생들도 봐야지?”

갈릴레오 혜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돈 다음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지나는 밤이었다. 이민호는 천문대에 애들을 모조리 데려와서 방문객용 천체망원경으로 혜성을 관측하게 했다.

오랜만에 밤에 외출하게 된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후궁들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두꺼운 옷을 입히고도 모자라 꼭 껴안고 있었다.

“전하. 비빈 분들과 왕자, 공주님들이 참 많습니다.”

“갈릴레이 백작도 백작처럼 훌륭한 자손을 많이 낳게나.”

“아이들과 눈을 맞출 시간도 없습니다.”

먼저 태어난 딸 둘이 서출이라 원래 역사에서는 둘 다 수녀원에서 평생을 보내게 했다. 그러나 고산국에 와서는 비록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귀족 작위를 얻고 고산국 주교를 통해 자녀들이 적출로 인정받게 됐다.

막내아들 빈센초가 태어난 직후부터 자주 아팠으나 고산국 의료진의 보살핌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또한 마리나 감바는 다시 넷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백작 혼자서 일일이 다 관측할 필요가 없어.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지만, 제발 동료들과 나눠서 일을 하는 습관을 들여 보게.”

“지금 보조 천문대에서는 동료들이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직접 보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습니다.”

“사진기가 있지 않나? 천체망원경과 사진기는 최고의 조합이라네. 관측은 동료나 학생들에게 맡기고 백작은 연구만 해도 된다네.”

“현미경과 사진기도 좋은 조합입니다, 전하.”

“설마 생물학에도 욕심을 내는 건가?”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하여튼 보조 천문대가 있어서 요즘도 계속 목성을 관측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갈릴레오가 작년 여름에 등장을 예고했던 혜성은 가을에 진짜로 밤하늘에 나타났다. 갈릴레오는 천체망원경을 통해 정확한 궤도를 산출한 다음 유럽 학자들이 관측한 날보다 며칠 일찍 혜성의 예상 궤적을 유럽 학계에 발표했다.

당연히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천체망원경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조잡한 망원경도 불티나게 팔렸으며 밤마다 혜성을 관측해서 스케치하는 것이 귀족의 새로운 취미로 각광받았다. 그래서 혜성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주들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예전처럼 마녀사냥을 못하게 됐다.

핼리 혜성이 됐어야 할 혜성에는 결국 갈릴레오라는 이름이 붙었다. 갈릴레오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실제 역사보다 몇 년 빨리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했는데, 이름을 개똥이, 마르그레타, 소똥이, 간난이로 붙였다. 이민호의 자식들 이름을, 그것도 아명을 실제 이름인 줄 알고 위성 이름에 붙여서 발표해버렸다. 새로 발견된 천체에 후원자나 그 가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갈릴레오는 지난달에 목성의 위성 네 개의 주기를 발표했다. 케플러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바로 그 다음 날에 첫 번째 위성 개똥이가 목성 측면에 나타난 것이 유럽 천문학자들에게도 관측됐다. 이로써 이 시대 천문학은 갈릴레오가 압도할 수 있었다.

“케플러도 참 대단한 천문학자야. 백작과 그 사람이 서로 도와서 할 일도 많을 거야. 백작의 좋은 경쟁자이기도 해.”

“예. 전하께서는 어떻게든 케플러를 왕도로 영입하려고 하셨지요.”

“싫다는데 할 수 없지.”

부인이 유럽을 떠나길 싫어해서 케플러는 결국 독일에 남았다. 황제가 약속했던 연구 자금을 주지 않고 심지어 녹봉도 지급을 미루어 경제적으로 곤란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고산국 천문대 이름으로 매 분기 일정한 연구 자금을 케플러에게 보내주었다. 수급 유지 조건은 발표 논문 사본 3부를 고산국에 보내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연구비 절반 이상이 티코 브라헤의 유족들과 벌이는 법정다툼에 지불되고 있다는 씁쓸한 보고를 나중에 받았다. 생전에 티코 브라헤와 가까웠던 친족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평생 얼굴 한 번 못 봤던 자들이 당당히 유족 행세를 했다. 덴마크 서인도회사를 통해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모두 사들이려 했으나 일부 유족들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불러서 포기하고 말았다. 고산국 천문대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측하고 있기에 10년 이내에 쓰레기가 될 자료였다.

1608년은 조선에서 아주 큰 일이 일어난 해였다. 대동법의 시행을 앞두고 대규모 논란이 조선의 조야에서 한바탕 벌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안방준은 대동법에 대한 언급을 아예 꺼내지 않았으나 흥분을 멈추지 않았다.

“사언 자네답지 않게 왜 그리 설치나? 시중에서 떠드는 소리는 못 들은 척하고 넘기는 고고한 선비 운운하지 않았나?”

“선혜법 문제 말인가? 아무리 백성들에게 좋은 법이라도 시행하기 전에는 최대한 신중해야지. 선혜법을 추진하는 분들이 너무 서두르고 있어.”

이민호는 오랜 친구인 안방준이 대동법 찬성이 아니라 반대편에 선 것에 꽤 놀랐다. 백성들을 보살피는 것이 선비의 의무라던 평소 언행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안방준은 이원익과 대척점에 서기에는 나이가 적고 관직에 진출하지도 않았지만, 학자로서의 명성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래서 오리 대감과 그리 척을 지는가? 오리 대감도 경기도에서 먼저 한정적으로 실시하자고 하지 않았나? 이미 선혜청은 설치됐다네.”

“한 곳에서 실시하면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전에 다른 곳에도 줄줄이 실시하자고 하겠지. 그리고 경기도는 너무 넓어. 시험하고 말고 할 곳이 아냐.”

“이해하겠네. 자네를 비롯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리 빨리 전국에 시행하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자네, 방납의 폐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비판하지 않았나? 사언 자네가 방물주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고 있어. 여기 왕도까지 말이야.”

“나만 나쁜 놈으로 몰리겠군.”

의자에 기대어 누운 안방준이 잔에 담긴 냉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셨다. 조선에서는 절대로 이렇게 늘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민호 앞에서는 서로 자세를 흩뜨린 채 편히 눕다시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산국과 조선 통틀어서 고산국왕인 이민호 앞에서 이렇게 편히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아! 액체가 바닥이 났을 때 빨대를 통해 나는 이 소리가 너무 좋아.”

“전용 빨대라도 만들게나. 이리나! 여기 잔을 채워줘.”

안방준도 많이 적응돼서 이제는 머리가 허옇고 눈이 큼지막한 루스인 시녀가 잔에 커피를 따를 때도 무덤덤해졌다. 안방준에게 고산국 왕궁은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왕궁에 오기 전까지 바깥의 왕도에서 본 광경들이 더 놀라웠다.

“고산국 왕도는 내가 올 때마다 달라져. 아주 크게 달라진단 말이야. 산에 세워진 게 30층탑인가?”

“방송 전파탑이야. 자네가 자주 안 오니까 그렇지. 자주 들르게. 나는 왕이고 사언 자네는 선비니까 명절마다 나한테 세배하러 와야 하는 것 아냐?”

“웃기는 소리! 내가 네 살 많아!”

“심각한데 농담해서 미안해. 하지만 당쟁을 거부하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누군가? 나는 사언 자네를 개혁적인 학자로 알고 있었어.”

“지금도 개혁적인 것은 마찬가지야.”

안방준은 1573년생이니까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이 나이에 학자로서는 벌써 최고 수준에 올랐다. 그러나 광해군이 벼슬을 제수해도 금방 사퇴해버리고 학문에 열중했다.

사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마음에 드는 높은 벼슬이 아닐 경우 학문을 핑계 대면서 사퇴하는 수가 흔했다. 학문이 높은데도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높은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하는 것이 안방준의 한계였다.

“혹시 말이야. 서인으로서 남인들이 대동법을 추진하니까 반대하는 것 아냐? 그런 식으로 당쟁에 매몰됐다가 나중에 대동법이 좋은 법이라는 것이 완전히 판별이 나더라도 자네는 계속 반대하게 될지도 몰라. 지식인의 한계라는 것이 그러니까.”

“설마 그럴까?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왜 말을 못해? 나는 지금까지 당색에 매몰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품고 있어.”

안방준은 성혼의 문인이며 김여물의 아들 김류 등 주로 서인들과 주로 교류했다. 그러나 김류만 해도 당색을 타파하려고 노력했고 안방준도 당색 때문에 비판받을 거리를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민호의 친구로 조선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특히 몸조심을 했다.

“다시 생각해보게. 아마 자넨 나중에 대동법이 좋은 평가를 받아도 여전히 비판할 거야. 체면도 있고 주위 사람들의 말이 더 먼저 들리니까. 더 웃기는 이야기를 해줄까? 만약 서인에서 재상이 나와서 대동법을 적극 추진하더라도 자넨 계속 반대하게 될 거야. 당쟁 때문에 대동법을 반대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이지.”

“설마 내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까?”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이야. 모든 것을 정책만으로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정책 뒤에 숨은 정치색 때문에 반대하는 거지. 정책 치고 나쁜 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실행하고 나서 금방 그 정책을 만든 자의 흑심이 드러나게 돼 있어. 이번에 경기도에 선혜법을 실시한 다음 문제점을 낱낱이 적어서 상소하겠네.”

“어허! 참.”

안방준과 한참 동안 논의했다. 이 고집불통을 조선에서 불붙은 대동법 논란에서 한 발 물러서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당분간 지켜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언제 울컥해서 대동법을 비판하러 나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교도들이 1608년 5월 14일 독일 바바리아 지방의 아우하우젠에서 회합을 가졌고, 신교도 연합을 창설했다. 로마가톨릭 영주들에게 짓눌리던 독일의 신교도들이 오랜만에 힘을 합치면서 자신감이 넘쳤다.

신교도 연맹은 헤드비히 여왕에게 부탁해서 고산국 왕도에 사절단을 보냈다. 그리고 이민호에게 무척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전하께서는 종교를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교황의 성지 순례를 도와주셨을 때는 많이 놀랐습니다만, 아이슬란드 여왕폐하와 결혼하시면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다 훌륭한 종교이니 개인이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 일이오.”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이단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는 개신교 계열 영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직은 이 말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중에 개신교 특정 정파로 국교가 정해진다면 다른 종교나 심지어 같은 개신교 내의 다른 종파도 탄압을 받게 된다. 신교도 지역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이주할 사람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었다.

“존경합니다, 전하. 독일의 모든 신교도들은 전하를 프레스터 존에 비견하고 있습니다.”

“과찬이오. 고산국에서는 어느 종교든 교회 건물과 전도 활동에 대한 자금지원을 해주고 있소. 다만 사제나 목사들에게 교회 운영비를 스스로 마련하도록 하고 있는데, 영리활동을 하다 보면 자칫 지나치게 세속화될 것 같아 걱정이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민호가 은근슬쩍 떠보자 사절단 대표가 얼씨구나 하고 바로 떡밥을 물었다.

“전하! 개신교 특정 정파를 국교로 선포해서 목사들을 국가의 관리로 임용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부패 문제가 거의 사라질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을 생각은 없소. 다만 성직자, 음. 목회자들을 국가 관리로 임용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겠소. 하지만 로마가톨릭은 알아서 하고 있기에 반대할 것 같소.”

개신교에서도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목사가 되려면 기나긴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했다. 현재 고산국 개신교회에서는 평신도협의회나 장로회가 교회의 예산을 집행하는 외에 국가로부터 정기 감사를 받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당분간 술렁술렁 넘어갑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적정한 양의 금을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입니다. 탐사하고 있겠지요. 몇 년 동안은 연표에 나온 대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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