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82화 (731/1,000)

00782  86. 1607년  =========================================================================

8월에 예조 판서가 돌아왔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고산국에서 제시한 영토 조약문 초안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고 앞으로 남미와 대서양에서 고산국에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두 나라의 사략선들이 대서양에서 에스파냐 선박을 약탈하려는 시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자국 선박뿐만 아니라 외국 선박들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복수로 사략 면허를 받는 경우가 많기에 사략선은 완벽한 통제가 될 수 없었다.

“포르투갈 총독부에 에스파냐 국왕의 명령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동군 연합이라는 애매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브라질의 개척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군 연합을 지지했던 1580년대와 달리 지금은 포르투갈 귀족들도 에스파냐 국왕에게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럼 내륙 지역에서 우리 탐사대와 자주 충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파울루와 주변 해안 도시들은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내륙에 위치한 상파울루보다 해안 쪽의 상비센테 섬과 산투스가 먼저 개발됐고, 브라질 식민 개척 단계의 비교적 초기부터 상비센테가 행정주도 역할을 맡았다. 1560년경에 상파울루 마을이 상비센테에 속했다가, 1680년대에 상파울루로 주도를 옮겼다.

“전하의 의중을 여쭤본 다음 통보하겠다고 했습니다. 내륙의 상파울루는 포기하더라도 상비센테 섬은 이미 개척을 완료한 곳이라서 도시로서 최소한의 자립이 가능한 영역을 달라고 포르투갈 쪽에서 요청했습니다. 상비센테를 어업 전진 기지로 활용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면 상비센테가 포르투갈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에서 봐줄 수 있겠습니다. 이곳도 콜론이나 파나마처럼 조차지로 하지요. 다만 상파울루 마을을 해체하고, 상비센테 섬의 포르투갈 개척민들이 내륙으로 못 들어가도록 단단히 약속을 받아내야 합니다. 내륙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쓰려고 할 것입니다.”

상비센테에서 산맥 너머 북서부 작은 마을인 상파울루는 1620년대 이후 노예사냥꾼들의 전진기지가 된다. 포르투갈 개척민들은 이후 200년 동안 남미에서 원주민 백만 명 단위를 붙잡아 노예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원주민 노예가 흑인노예 가격의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원주민이 흑인에 비해 생존율이 극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이 유달리 강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온 흑인들이 특히 강했다. 약한 흑인 노예들은 대서양을 건너오는 동안 이미 다 죽었기 때문이다.

“전하! 이제는 남미 원주민들도 고산국 백성입니다. 아무리 간이 큰 자들이라도 고산국 백성을 납치해서 노예로 삼는 짓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군대나 직원을 상주시켜 감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흐음. 상비센테 주변에 등대와 기상관측소를 설치해야겠습니다. 개척민들이 내륙으로 진입하다가 걸릴 때마다 도시에 벌금을 물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상비센테에 포르투갈의 완전한 주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일깨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전하. 상비센테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것이지, 포르투갈 영토로 인정한 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개척민들에게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남미 원주민들을 노예로 잡다 걸릴 경우 고산국 대서양 함대를 동원해 해안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비센테 주민들에게 각인시켜 놓겠습니다. 브라질 국경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라질에 포르투갈 개척민들만 있다면 고산국과의 협조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럽 온갖 나라에서 몰려온 개척민들은 고산국에 대해 잘 모르고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사고를 칠 우려가 있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디서부터 고산국 영토인지 제대로 가르쳐주기로 했다.

“남미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고 합니다. 홍역 같은 돌림병이 쓸고 지나가면 한 마을을 통틀어서 남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랍니다. 남미를 개발하기 전에 병원부터 세워서 사람들을 급히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조 판서께서는 제가 새로운 영토를 얻을 때마다 항상 경제적인 문제부터 신경을 쓴 것을 아실 겁니다. 언제나 원주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했지요. 예전보다 훨씬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베리아나 북미나 영토로 획득한 바로 그 해부터 원주민들을 위해 농경지나 목초지를 만들어주었다. 북미의 경우 포우하탄 부족연맹에게 베푼 것이 주변 원주민 부족들을 복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이민족 정복자들과 달리 고산국 영역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것은 고산국이 통치하면서 예전보다 잘 살게 해줬기 때문이었다.

“예. 전하의 업적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남미는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열대우림은 풍요로운 곳이라 야생과일만 따먹어도 일단 굶어죽을 염려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 대륙은 유럽이나 아시아와 땅이 연결되지 않은 채 오래 고립돼 있어서 전염병에 극히 취약한 곳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예방접종에 대한 거부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복자로서 남미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남아있는 한 좋은 의도의 의료 지원까지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들 목숨을 구해주는 일인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예를 들어 원주민 추장이, ‘우리는 하루에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많은데 고산국에서 배운 대로 하루에 세 번 이를 닦는다.’는 식으로 비판하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허허! 참.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뻔히 보이는 다른 목적을 위해 참으로 저열한 비방을 하는 경우겠습니다.”

‘하루 종일 굶어도 양치질 세 번’은 남미를 경제 및 문화적으로 침탈하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해방신학자의 비판이었다. 비슷한 논리로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캐치프레이즈,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도 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때보다 불만일 때가 훨씬 많다. 이런 문구는 누구에게나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남미에서 전염병은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원하러 가는 바로 그때에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제 지원과 의료 지원을 동시에 추진했으면 합니다.”

“남미 원주민들이 무조건 전하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보장이 없군요. 지나고 보면 행운일 텐데 말입니다.”

“유럽인의 등장 이후 인구가 많이 줄었다 하나 남미 원주민이 최대 250만은 되는 모양입니다. 비옥한 땅이 많으니 이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다만 땅이 너무 넓어서 수송이 문제일 뿐이지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열대우림 지대에서 지상으로 운송을 생각하는 것은 무리였다. 열대우림에서는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벌채하는 것도 아주 큰 일이 된다.

브루나이의 티크 목재처럼 대단히 가치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남미 내륙에서 바다까지 목재를 끌고 오면서 수지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마존 강 등 남미의 강과 지류를 교통로로 당분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땅이 넓으면 미래는 무궁무진합니다. 남미 매입 이후 고산국 관리들이 요즘 의욕이 넘쳐 나는 것 같습니다. 아국과 전하의 홍복입니다.”

“일하기를 좋아한다면 그것도 팔자겠지요. 실컷 부려 먹겠습니다.”

아직도 농업 위주인 이 시대에 남미 획득은 이민호에게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했다. 앞으로 산업혁명기에 이르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므로 농지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처럼 농업에 집중하다가 세계 조류에서 뒤쳐질 수도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멕시코나 몇몇 지역을 빼면 대부분 고산국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태평양의 섬들에 대한 영토 등록을 고산국이 먼저 마쳤다는 사실도 유럽에 잘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유럽 탐험가들이 태평양을 포기하고 인도양으로 향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프랑스가 대표적이라 합니다.”

“네덜란드는 아시아의 예절과 무역 관행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에는 좀 가르쳐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 유럽 모험가들 사이에 ‘동양의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이 인기라고 합니다. 읽어본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함부로 허튼 짓을 못할 것입니다.”

그 책은 이민호가 내용을 정하고 소설가가 상선 선장들의 도움을 받아 집필했다. 그리고 왕립대학에서 공부하는 유럽인 유학생들이 여러 나라 말로 번역해서 유럽 각국에 판매한 탐험 안내서 같은 책이었다.

내용을 보면 마치 동양 모든 나라가 고산국에 순종하는 것처럼 돼 있었다. 그리고 항구마다 고산국의 거대한 전함이 정박하고 있다가 해적질하는 배가 나타나면 즉각 침몰시킨다고 겁을 줬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면 아무래도 인도 남부가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겠습니다. 포르투갈처럼 항구에서 무역만 하는 것으로 그치면 좋은데, 저들은 다를 것 같습니다.”

“예, 전하. 무굴 제국이 아예 인도 남부까지 정복했으면 좋았겠지만 악바르 대제가 서거하시면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실론이 몇몇 나라와 잘 지내는 듯하다 요즘은 위태위태합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해 아프리카와 인도, 아시아에서 우선권을 가진 포르투갈은 현지에서 때로는 환영받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도 하는 애매한 침략국 및 교역국이었다. 브라질처럼 개척하기로 작정하고 달려든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교역에 방점을 뒀다.

“인도는 도와주고 싶어도 독립적인 토후들이 너무 많아 지원하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입에 들이미는 것 같아 나중에 욕을 먹겠지만, 인도 남부 여러 나라들을 일일이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인도 남부의 공백 상태 때문에 제대로 도와주기도 어렵고, 토후들이 고산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괜히 제3자가 개입했다가는 양쪽으로부터 비난만 받을 수 있어서 당분간 관망하기로 했다.

9월에 아일랜드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휴 오닐과 로리 오도넬이 아일랜드를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잉글랜드보다는 아일랜드 평민 독립군이 점령 지역을 꾸준히 넓힌 탓이 컸다.

아일랜드 독립군은 잉글랜드는 물론이고 아일랜드 귀족 영주들과 치열하게 교전을 하면서도 아직도 살아남았다. 오히려 서부를 기반으로 동부와 북부로 꾸준히 전진했다.

여기에는 북미 탐사대 훈련소를 졸업한 자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북미로 이주한 대다수 아일랜드 출신자들은 관심이 적었고, 독립군에 지원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아이누 섬에 여차 하면 여왕 두 명이 동시에 등극하게 생겼다. 1600년 2월 19일에 분화한 페루 와이나푸티나 화산 때문에 아이누 섬도 몇 년 동안 농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민호도 고민을 꽤나 하면서 혜영과 총독, 아이누 출신 후궁들과 심각하게 회의를 나눴건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고산국 왕도에서 사관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족장들의 후계자 놈들이 제 역할을 하나도 해주지 못했다. 모든 아이누에게 능력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시기에 조상신 제사에 매달리는 바보짓을 저질러 버렸다. 그 동안 어렸을 때부터 후궁으로 들어온 아이누 여자들이 내한성 종자를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고산국에서 식량을 대거 수입함으로써 3년 기근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저기, 나코! 아직 시뻘건 대낮이다. 아니, 아침이다.”

“헤헤! 주인님의 씨를 주세요. 아이누 사람들 중에서 아이누의 왕을 뽑으라는 지시를 한 분은 주인님이세요. 덕택에 제가 왕좌에 가장 가까이 간 아이누가 됐답니다.”

어차피 속국을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민호는 아이누 사람들에게 자치권을 많이 주려고 여러 후보들을 공평하게 교육시켰다. 그러나 각 지역 족장의 아들들이 아니라 이민호에게 시집 온 후궁들이 그 동안 업적으로 인해 여왕으로 추대될 판국이었다.

“주인님의 씨를 받으면 저로 확정되는 거나 다름없어요.”

“잠깐! 니무는 왜 안 왔어?”

“당분간 교대로 아이누 섬을 다스리면서 비번은 주인님에게 붙어살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제 차례에요.”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둘을 왕궁 내에 묶어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이누 족장들이 간절히 청원하는 바람에 아이누 섬에 보냈고, 결국 이렇게 됐다. 지금은 족장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둘이 공동 통치자 지위에 올랐다.

족장 후계자들은 고산국 왕도에서 대학이나 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실무 경력을 쌓지 못했다. 그에 반해 아이누 후궁들은 이민호와 혜영 옆에서 일을 배우면서 각 지역의 부족이 아니라 아이누 전체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사고의 폭이 넓어졌다. 3년 흉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둘이 활약하니 족장 후계자들과 경쟁이 될 수가 없었다.

“아아! 사실 저는 왕궁에 계속 남고 싶어요. 주인님의 사랑을 계속 받고 싶어요. 족장들의 강권에 못 이겨 여왕이 되더라도 니무하고 나눠서 6개월씩 있을래요.”

============================ 작품 후기 ============================

아이누 섬의 경우 직할령보다는 속국으로 내놓는 쪽이 차라리 속이 편합니다.

이어질 내용이 조금 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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