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77 86. 1607년 =========================================================================
“안 힘들어?”
“첫 애 가졌을 때보다 훨씬 편해요.”
이민호가 둘째를 임신한 혜영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초산이 가장 힘들다고 했으니 둘째부터는 어렵지 않게 낳기를 바랐다.
왕립 여학교에 다니던 여학생들은 모두 졸업했고, 지금은 왕립학교로 완전히 변경돼 이민호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었다. 이제 미성년인 예비 후궁은 하나도 안 남았다. 후궁들 대부분이 궁전에 살고 베올레타 여공작과 헤드비히 여왕을 따르는 시녀들만 북미 등에서 거주했다.
“혜영이도 산모 수당을 받겠구나.”
“헤헤! 군것질 좀 하고 남는 건 둘째 이름으로 저축할래요.”
“무슨 저축을 해? 산모 수당은 산모를 위해 써야지.”
“해산하는 달에 아기 옷을 비롯해서 비용이 제일 많이 들어가거든요. 아! 산모 수당 지급 방법을 조금 바꿀까요?”
“그래. 다른 달은 좀 줄여서 해산달에 집중 지급하는 게 낫겠다. 아이 키우면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은 혜영이 계속 바꾸도록 해. 총리가 임신하니까 이런 점에서 좋네.”
고산국의 국시가 아기 많이 낳기라면 정부는 백성들이 아기를 많이 낳고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국초부터 출산 지원제도가 있었으나 혜영이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실질적으로 임산부에게 도움을 주는 제도로 점차 바뀌었다. 두 번째 출산을 하면서 다시 손을 본다면 더욱 완벽해지길 기대할 수 있었다.
기혼과 미혼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단 여자가 임신한 것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즉시 그 달부터 웬만한 직장의 월급에 해당하는 산모 수당을 추가로 받았다. 임신이 확인된 여성은 보통 직장을 그만 두거나 무기한 출산 휴가를 받았다.
정부로부터 산모 수당을 받으므로 무조건 무급 휴가라서 기업에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었다. 기업은 나중에 그 여성을 다시 고용할 의무를 지지만 출산한 여성은 육아를 위해 좀 더 편한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흔했다.
“아기가 어려서 죽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좋아요. 그럼 정말 슬플 거여요.”
“예전에는 예방 접종을 안 받게 하려고 아기 엄마들이 아기를 안고 도망 다녔었지.”
“정부 정책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자기 자식 지키려고 한 짓이니까 너무 비난하지 마세요.”
임산부는 매달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동네마다 배치된 지역 간호사 혹은 산파로부터 지원과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가사 일은 국가에 고용된 가사도우미가 임신부터 출산 후 일 년까지 무료로 도와주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경찰이 한 조를 이루어 하루에 한 번씩 임신한 여성의 집을 방문해서 확인하게 돼 있었다.
병원에서 출산한 다음 산모와 아기는 한 달 동안 산부인과 병원과 연계된 조산원에서 지냈다. 출산한 다음 날 멀쩡하게 퇴원하는 백인, 흑인과 달리 산도가 좁은 황인종 산모는 산후 조리 기간을 길게 잡아야 했다.
괜히 애 낳은 다음 날부터 밭에서 김을 맸다는 할머니들의 전설을 따라 했다간 40대에 꼬부랑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국왕 입장에서는 산모에게 한 달 쉬게 하고 20년 더 일을 시키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해산과 조리 기간 동안 가사와 다른 아이의 육아는 가사도우미가 대신했다. 가사도우미는 공무원 신분이라 이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이 두 배였다. 욕정에 굶주린 산모의 남편이 나이가 많은 공무원인 가사도우미를 덮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 노인과 장애인용으로 보행기를 만들어야겠어.”
“바퀴의자보다 가볍게 만들면 목발보다 편하겠어요.”
“국방연구소에 손수레 겸용 보행 보조기 제작을 의뢰할게. 노인 요양병원에는 아직도 환자가 없어?”
“예. 각 지역에 설립된 200인용 노인 병원에 환자는 겨우 서너 명뿐이에요. 자식들이 모시고 산다는 뜻이니까 나쁠 건 없어요.”
“아직은 노인이 많아질 때가 아니지.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니까.”
고산국은 아직도 신생국이라 노인보다 미성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선 출신으로서 환갑이 넘은 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노년을 보내는 경우도 흔했다. 이래저래 고산국에서는 노인 인구가 희박한 편이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 아이가 자라 청년과 장년을 거쳐 노인이 된다. 노인 요양 시설을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군대 규모를 너무 급격히 확장하는 건 아니에요? 요즘 전쟁도 없잖아요.”
“청년들이 쉽게 해외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야. 평생 직업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벌어주기도 하고.”
그러나 장차 아시아와 유럽에 다가올 거대한 전쟁에 대비해 군비를 확충한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웠다. 현재 용병이나 여진족, 몽골과 토르구트 등 소수민족 군대를 제외하고 고산국과 북미에서 새로 9개 연대를 창설했다. 병력이 기존의 두 배가 넘어서 슬슬 사단 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단은 장기간 독립 작전이 가능한 제 병과 연합부대라는 개념을 가졌다.
해군도 그 동안 건조한 중순양함 위주로 함대를 재편성하고 해군과 해병을 추가로 모집했다. 수송선의 대형화 외에 아예 상륙함을 다수 건조해 지상군의 장거리 수송에 대비했다.
그리고 배와 해안지대에서 싸우던 해병을 상륙전과 지상전 위주의 해병대로 개편하기 위해 참모본부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지금도 도서지역이나 기상관측소, 항구 등은 해병이 방어를 담당했다.
“열대와 고원지대 위주로 훈련하는 걸 보면 혹시 남미 대륙에 욕심을 내는 것 아니에요?”
“그건 아니지만, 어쩌면 남미를 떠맡을 수도 있어서 미리 대비하는 거야.”
“에스파냐가 항상 문제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민호가 펠리페 2세의 친 가톨릭 정책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열정과 봉사 정신이 그리웠다. 국왕이 바뀐 후의 에스파냐는 거의 나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구 흐트러졌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환관 광세사들이 발호하는 명나라도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다. 주상아 공주에게는 안 됐지만 만력제 같은 암군은 차라리 일찍 죽는 편이 나라를 위한 일일 것 같았다.
조선은 예상보다 훨씬 나았다. 광해군은 형제 나라인 고산국과 교역을 잘 유지해서 백성들의 생활수준을 이전 시대보다 한 단계 높였다. 제주도와 남해안 몇몇 항구도시는 10년 넘게 활황이라서 똥개가 10원짜리 고산국 금화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광해군이 고산국 이민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농민들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서 지주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양반 지주들의 반발이 심해 걸핏하면 역모설이 나돌았다.
“만약 조선에 반란이 일어나 둘로 나뉘어 싸운다면 어느 한쪽을 지원할 건가요? 당연히 당금국왕을 지원해야 하지 않아요?”
“아니. 불개입을 천명해야지. 만약 양반들이 광해군을 몰아낸다면 그 다음 정권 내내 분위기가 보수 반동으로 흐를 것 같아 걱정이야.”
정상적인 계승이 아니라 이른바 반정을 통해 정권을 얻는 자들은 전 정권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처럼 고산국과 조선이 서로 남는 것을 팔고 부족한 것을 사는 교역이 막힐 우려가 있었다.
“우리와의 관계도 약화되겠죠. 고산국이 침공할 염려가 있다고 여론을 호도하면서 군대를 증강시키지 않을까요?”
“말로만 그렇지 부패한 자들이 군대를 증강할 일은 절대 없어. 국방비로 돌릴 나랏돈이 아깝거든.”
“요즘 건주 여진이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 더 불안하던데요.”
“남 몽골 부족들과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나봐. 이중 삼중으로 결혼 동맹을 맺고 있어.”
이민호는 어서 건주 여진이 들고 일어나길 바랐지만 준비를 마치려면 아직 멀었다. 건주 여진은 얼마 전에 호이파 부의 도성을 포위 공격했으나 패륵 바인다리의 지휘 아래 끝까지 버텨 건주 여진을 몰아냈다.
1607년에 호이파 부의 도성이 함락돼 건주 여진에 흡수되는 것이 실제 역사인데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호이파 부가 동해국과 교역을 추진하면서 몇 년 동안 내실을 쌓은 것이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힘이 됐다.
6월에 에스파냐 사절단이 고산국 왕도를 방문했다. 국가 파산 사태라는 급하고 중대한 일을 협의하는 중요한 사절단인데도 겨우 5월에 사절단이 결정돼 출발했다고 한다. 사절단 대표는 레르마 공작의 아들이며 20대 중후반 정치가인 크리스토발 데 산도발이 맡았다.
“우세다 공작이며 세아 후작, 데니아 후작,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 크리스토발 고메스 데 산도발-로하스 이 델 라 세르다가 고산국 국왕전하를 뵙습니다.”
“잘 오셨소, 공작. 우세다 공작이 레르마 공작의 아들인 것은 아는데, 레르마 공작은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우세다 공작은 젊은 나이에 벌써 공작이 되셨소?”
“고산국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마드리드 북쪽 우세다 마을을 매입했습니다. 국왕폐하로부터 조만간 우세다 마을에 대한 징세권을 받을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정식 공작은 아니지만 공작 대우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크리스토발은 1609년에 우세다 마을을 매입하고 국왕으로부터 1611년에 징세 특허장을 받는다. 그러나 사절단 대표로 임명되면서 직급을 높이기 위해 공작 작위를 급히 샀다는 것 같았다.
“에스파냐의 국가 파산에 관한 모든 책임은 국왕의 총신인 레르마 공작에게 있습니다. 레르마 공작은 홀란드 반란군과 전쟁을 수행하고 멕시코에서 대서양을 건너오는 은 운반선들이 잉글랜드와 프랑스 해적들에게 연이어 나포되는 이 엄중한 시기에 국왕폐하를 꼬드겨 궁정에서 사치를 일삼고 있습니다. 국가 부채 대부분이 궁정과 귀족들의 사치에 소모되는데도 전체 부채가 얼마인지, 전쟁에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레르마 공작이 부친인데도 객관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는구려. 훌륭하오.”
우세다 공작은 꽤나 똑똑해 보이긴 했으나, 지극히 권력 지향적인 젊은이였다. 심지어 부친의 직위를 빼앗기 위해 부친의 정적들이 꾸민 음모에 적극 가담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그런 짓을 해서 부친의 직위를 빼앗고 마드리드에서 추방시켰다.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레르마 공작이 전횡을 일삼고 국가 재산을 빼돌려 개인 재산을 불린다는 서류에 동의하는 의미로 서명을 해주십시오. 그럼 레르마 공작을 실각시키고 제가 총신을 맡아 고산국의 중요한 동맹 국가인 에스파냐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저는 늙고 무능력한 귀족들에 비해 훨씬 많은 교육을 받았으므로 자신이 있습니다.”
“아니, 사실이 그렇더라도 다른 나라의 일에 외국 국왕이 간섭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펠리페 3세 국왕폐하는 고산국 국왕전하를 소중한 친구이자 인생의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시면 에스파냐 국왕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친의 권력과 재산을 빼앗기 위해 열심히 음모를 꾸미고 실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펠리페 2세가 죽은 이후 에스파냐가 그야말로 엉망이 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있는 우세다 공작이었다.
이민호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젊고 야망이 넘치면서도 사고방식이 유연한, 그래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더 위험한 유럽의 젊은 귀족들과 구별되는 욕심 많은 멍청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우세다 공작이 이민호의 표정에서 뭔가 오해한 것 같았다.
“사실 건국왕이신 고산국 국왕전하와 단순히 왕좌를 계승한 펠리페 3세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이없는 일입니다. 에스파냐 국왕은 지능이 떨어지는 자이니 무슨 헛소리를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공작의 국왕인데 말이 좀 심하지 않소?”
“저는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외교적 언사를 배제하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국왕, 다른 한 사람은 부친인데도 우세다 공작의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 에스파냐에 망조가 들다 보니 국왕과 그의 대리인인 총신에 이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가 외교 사절단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었다.
펠리페 3세가 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맞고 총신 레르마 공작이 부패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외교 사절이 외국 국왕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자가 외교 사절로 임명된 것 자체가 에스파냐의 국가적 위기를 실증한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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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