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76 86. 1607년 =========================================================================
오랜만에 갈릴레오를 왕궁으로 불렀다. 갈릴레오는 우주 관측에 필요한 천체망원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광학과 렌즈 제조 분야에서 독보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그 과정에서 따로 군용 쌍안경과 항해용 망원경, 사진기와 교환식 렌즈를 만드는 회사를 차려서 큰돈을 벌었다.
사진기와 렌즈 제조 사업부는 이민호가 갈릴레오 회사에 지분을 받고 아예 넘겨버렸다. 갈릴레오가 관여해서 만드는 것이 훨씬 정밀하고 화질도 나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광학 회사는 반은 국영, 반은 왕실에서 자본 투자를 해서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 전에 국방연구소에서 군용 쌍안경을 제작하던 기술자들을 뽑고 대학교와 연계해 민관학 협력 광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천문대와 항해연구소가 광학연구소와 긴밀히 협력 중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1604년을 전후해 광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이론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광학 연구가 급진전했다. 일식과 월식, 화성 관측, 초신성 연구 등에서는 케플러가 고산국보다 앞서 나갔다. 루돌프 황제가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아 재정적 곤란에 빠진 케플러와 몇 번 접촉했으나 부인이 외국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전하께서 찾으셨는지요.”
“반갑네. 요즘도 밤마다 천체를 관측한다고 들었네.”
항상 그랬듯이 갈릴레오는 오후 늦게 왕궁에 도착했다. 일하다 보면 햇빛을 보기 힘든 직종이라 천문학과 교수나 학생들은 흡혈귀 전설에 가까운 소문을 달고 다녔고, 얼굴이 허연 갈릴레오야말로 대왕 흡혈귀였다.
“제 일이니까요. 당분간 이탈리아에 갈 일이 없으니까 티코 브라헤처럼 관측 자료나 충분히 쌓아두렵니다. 관측 자료를 공개하면 나중에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훌륭하네. 관측 자료를 공개해야 과학이 빨리 발전할 걸세. 교황이 하신 말씀은 섭섭히 여기지 말게.”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티코 브라헤도 생전에 관측 자료를 숨기는 경향이 강했다. 그가 죽은 이후 제자인 케플러가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활용할 때마다 그의 유족들과 법적 분쟁을 해야 해서 발표가 매번 몇 년씩이나 늦춰지기도 했다. 고산국에서는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대신 관측 자료나 연구 결과를 공개시켰다.
“그리고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조선과 명나라에서도 천문관측을 하고 있다네. 유럽보다 훨씬 오래 됐지.”
“그렇지 않아도 동료 교수들이 세계 각국의 천체 관측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국가 관측 자료는 구하기 어렵더군요.”
천문 관측이 국가의 지배 수단이 된 이래 이집트나 마야 등 고대 여러 나라에서 천문 관측을 실시했다. 동양에서도 관상감 등의 정부 조직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외국에서 정밀한 관측 자료를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정보국에서 여러 지역의 국가 관측 자료를 준비했네. 가난한 관료 학자들이라 얼마 안 되는 뇌물에도 쉽게 넘어 오더군. 이집트나 중동 지역에서는 더 옛날부터 천문을 관측했더라도 7세기 이전의 관측 자료가 없을 거야. 그렇지?”
“물론이지요. 이슬람이 확장하는 동안 이교도의 문화재로 낙인찍힌 것을 죄다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과학을 발전시켰더라도 그 이전의 문서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빨은 갈지 말게. 기독교 사회에서도 단순한 룬 문자를 이교도의 마법문자 취급했으니까.”
이민호가 갈릴레오에게 서류를 넘겼다. 세계 여러 나라의 혜성에 관한 관측 기록을 국역한 자료였다. 이민호는 갈릴레오가 핼리 혜성이 조만간 출현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발표해주길 원했다.
“여러 나라의 천문 관측 자료를 조사해보니까 그 동안 다양한 혜성이 관측됐더군.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혜성이 꾸준히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 같아.”
“혜성과 별똥별을 혼동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이것은 꼬리가 긴 혜성인데 비슷한 것이 1531년과 그 이전 1456년에도 나타났어. 만약 이것들이 동일한 혜성이고 75.3년 주기라면 아마 올해 9월에 나타날 거야.”
“비슷한 모양의 혜성이 일정한 주기마다 나타난다는 뜻입니까?”
앞으로 이름이 바뀌겠지만 핼리 혜성을 관측한 역사는 오래 됐다. 기원전 240년에 중국에서 관측했고 조선에서는 1456년부터 꾸준히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1607년에는 음력 8월 9일에 혜성이 처음 관측됐으니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혜성이 지구 대기권의 동요 때문에 만들어진 광학 현상이라 주장했고 르네상스 시기까지 대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티코 브라헤가 1577년 시차계를 이용해 혜성이 달보다 멀리 있다는 사실을 관측함으로써 혜성은 천체의 하나로 격상됐다. 안타깝게도 티코 브라헤는 1601년에 이미 사망했다.
“비슷한 혜성이 아니라 동일한 혜성으로 추정된다는 거야.”
“다음에 출현하는 정확한 시기를 예상할 수 있다면 동일한 혜성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단순한 혜성의 출현이 아니라 공전주기가 확인된 혜성이 다시 나타난다면 천문학사에서 큰 사건이 될 것입니다.”
혜성이 단순한 별똥별처럼 일회성이 아니라 행성처럼 태양 궤도를 공전한다는 사실은 아직 관측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다. 이민호는 이 시대의 기존 상식이나 과학적 지식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거야. 일단 올해 가을에 나타날 것이 확실하니까 혜성이 출현하기 전에 자네 이름으로 논문을 발표하게. 유럽에도 9월 전까지 번역해서 출판할 거야.”
“전하! 제가 연구하지 않은 논문이 제 이름으로 나간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자료를 자네가 직접 확인해서 가능성이 있다면 서둘러 발표하라는 거야. 어차피 기존 자료로는 앞으로 관측될 정확한 날짜나 궤도를 정밀하게 계산할 수 없어. 유럽과 아랍 지역의 천문학자들에게 혜성의 출현에 대비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네.”
과학자로서 양심 문제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옛날 자료에 학자의 목숨과도 같은 명성을 걸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아직 천문학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때, 혜성의 출현을 예상하고 또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면 이 기회에 충분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은 천동설과 지동설 논쟁을 끝낼 결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1607년에 혜성을 발견하고도 큰 일 없이 넘어갔지만, 1680년대에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핼리 혜성의 공전주기가 확인되면서 혜성도 태양계의 구성요소라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뉴튼마저 1680년 말 태양에 접근할 때의 혜성과 1681년 멀어지면서 관측된 혜성이 동일한 혜성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핼리 혜성의 주기성이 제대로 확인된 것은 1680년과 81년에 나타난 혜성의 궤도를 정밀하게 계산한 1705년 잉글랜드 천문학자 핼리에 의해서였다.
“자료 양이 많지 않으니 며칠 안에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갈릴레오 자네가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혜성을 발견한 즉시 다시 천문학계에 발표하게. 유럽 천문학자들은 자네가 발표한 며칠 후에 천체망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그 후에 일반인들도 맨눈으로 보게 되겠지.”
관측한 이후 배를 타고 유럽에 가서 알리면 이미 늦겠지만, 고산국에는 유럽까지 무선 통신이 가능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성능의 갈릴레오식 천체망원경으로 확인한 다음 학계에 발표하더라도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며칠 늦게 발견하게 돼 있었다.
“혜성을 매 시간마다 사진으로 찍어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 그게 가장 좋겠어.”
1759년 전까지는 혜성의 위치, 이동 경로, 모양, 혜성 꼬리의 길이와 방향 등을 그린 자료가 흔하지 않았다. 아예 사진까지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면 천문학사의 쾌거가 될 수 있었다. 이민호는 혜성이 출현하는 바로 이때 갈릴레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민호와 갈릴레오는 고북 시 교외에 세워진 갈릴레오 영지의 천문대 외에 고산국 영역 곳곳에 건설된 천문대에 천문학자들을 파견해서 혜성을 관측하기로 합의했다. 만약 주변국 학자들이 요청할 경우 관측에 동참시켜줄 것도 결정했다. 고산국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였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혜성의 꼬리 방향이 일반적인 생각과 다를 걸세.”
“꼬리라면 당연히 운동 방향의 반대쪽에 생기는 게 아니었습니까?”
“혜성은 별똥별이 아니야. 관측하는 동안 혜성 꼬리와 태양의 방향에 유의하게. 그리고 어째서 꼬리가 운동 방향과 상관없이 생기는지 그 원인도 파악해야 할 거야.”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과연 전하의 말씀처럼 꼬리 모양이 그렇게 될지 몹시 기대됩니다.”
혜성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이벤트였다. 특히 핼리 혜성은 맨눈으로도 볼 수 있어서 나타날 때마다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았다. 혜성과 관련된 모든 주도권을 갈릴레오를 내세워 고산국에서 장악할 심산이었다.
조선에서는 혜성의 출현을 반역의 징조로 보았다. 1456년에는 사육신의 반란모의, 1531년에는 문정왕후를 폐위하려는 김안로 등의 기도가 사전에 발각됐다.
“그리고 혜성이 나타나더라도 관측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것이 무엇입니까?”
갈릴레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갈릴레오는 처음에 이민호를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합리적인 군주 정도로 여겼다가 나중에 혼쭐 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민호 덕택에 천문학에서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으니 갈릴레오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과학자인 반면 이민호는 공학자에 가까웠다. 이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었고,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했다.
“어째서 75.3년이라는 길면서도 일정한 주기에 지구, 아니 태양에 접근하는가 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
“혜성이 행성들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더라도 행성과 많이 다른 궤적을 택한다는 뜻이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어째서 태양을 중심으로 혜성과 행성들이 도는지, 그 기본적인 원리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
“아! 그 생각을 안 했었군요. 과연 신의 섭리입니다. 생각해보면 신의 섭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상관없습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전하.”
갈릴레오가 뭔가 떠올랐는지 황급히 천문대로 돌아갔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튼이 아니라 갈릴레오를 통해 발표될 것 같았다. 케플러가 월식을 관측하면서 지구의 힘이 달에 미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예측했으나 확신을 갖지는 못한 시기였다.
알현실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당연히 갈릴레오의 얼굴이 그 틈에서 나왔다.
“논문을 쓰면 전하께서 제1 저자가 되어 주십시오.”
“아부하지 말고 공동 연구하는 교수, 학생들 이름이나 제대로 올리게.”
“천문학계에, 아니 물리학에도 결정적인 변수가 생겼습니다. 세계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이 중요한 발견에 결정적인 논리를 암시해주신 전하께 감사드립니다.”
갈릴레오가 복도를 뛰어가는지 쿵쿵 울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어느덧 나이 40이 넘은 사람이 이럴 때는 마치 아이 같았다.
“올해 출현하는 혜성에 주인님 이름이 붙는 것은 아니겠죠?”
“갈릴레오 이름이나 붙이라고 해.”
혜영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민호는 아직도 베링 해에 민호 해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 꽁해 있었다. 그리고 반역 등 불길한 인상이 강한 혜성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혜성이 출현하는 시기마다 대규모 마녀 사냥이 진행됐었다. 이번에는 혜성이 출현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림으로써 미지의 공포가 줄어들어 마녀 사냥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마녀 사냥은 공포 분위기 조성이나 재산 탈취를 목적으로 행해진 경우가 많아, 혜성의 등장을 기화로 유럽에서 마녀 사냥이 시작될지 아직 확실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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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만으로 한 회를 다 채운 것은 처음인 듯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