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75화 (724/1,000)

00775  86. 1607년  =========================================================================

86. 1607년

1607년 새해 벽두부터 에스파냐가 국가 파산에 이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발표 직후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에스파냐 왕실에 부채를 갖고 있던 제노바의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살아남은 은행들은 펠리페 3세에게 높은 이자로 급전을 제공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유럽 전역에서 은행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 런 사태가 속출했다. 14세기부터 영업을 했던 피렌체의 은행 80여 곳과 베네치아의 은행들 중에서 일부는 도산하고 나머지는 은행의 신용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고산국에서 운영하는 유럽 은행도 일부 지점에서 지급 불능사태가 벌어져 휘청거렸다. 덴마크 서인도회사는 물론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왕실에서 유럽 은행 지점마다 급히 자금을 보내 지급 불능사태는 보름 만에 해결됐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한 독일 내륙 지역에 지점이 많은 유럽 은행의 신용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은행이 지급 불능사태에 처하면서 국제무역이 마비됐다는 점이 고산국과 덴마크 등에 가장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에스파냐에 재정위기가 닥칠 것을 예상한 직후 에스파냐 국왕과 급히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미 늦었다.

고산국에서 에스파냐의 재정 위기를 인지한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이었다. 재정 위기의 주요 원인은 몇 년째 계속되는 네덜란드와의 전쟁이라고 발표됐으나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에스파냐 왕실의 사치와 계획성 없는 예산 집행 관행이 가장 큰 문제였고, 결국 언젠가 국가부도 사태를 일으킬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고산국 호조판서가 부랴부랴 멕시코로 달려가 누에보 에스파냐의 부왕과 협의하는 중에 에스파냐 왕실에서 이미 파산을 선언해버렸다. 이민호는 고북 시에 머물고 있는 에스파냐 대사를 왕궁으로 초치해서 항의했다.

“이보시오, 대사. 에스파냐 왕실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소? 국가 파산을 선언하기 전에 북미나 덴마크에 급전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지 그랬소? 아니면 빚을 절반쯤 탕감해달라고 했어도 마땅히 들어줬을 것이오.”

“그, 그게 국가 파산이 갑자기 이루어져서 말입니다. 국가 재정이 어렵다는 말은 얼마 전부터 들었으나 본국에서 국가 파산을 선언한 것을 고산국 호조에서 알려주기 전까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요?”

이민호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는 에스파냐 대사를 노려보았다. 에스파냐 왕실과 누에보 에스파냐 부왕령, 페루 부왕령에서 이래저래 고산국에서 빌려간 금액이 은 3천만 냥이 넘었다. 은으로 천 톤, 고산국 화폐로 1억 원이 훨씬 넘어갔다.

다른 나라나 은행이라면 몰라도 고산국은 에스파냐로부터 채권을 강제로라도 회수할 능력이 있었다. 대사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처럼 은행에서 빌린 채무는 나중에 갚고 외국 왕실에서 빌린 채무는 다른 방법으로 갚는 방법을 모색할 것 같습니다.”

“영토로 갚는 것은 싫소. 내 분명히 말했소.”

“영토 말고는 갚을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것 같아서 생산과 수출에도 신경 쓰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에스파냐 왕실과 귀족들은 사치나 일삼았단 말이오. 펠리페 3세 국왕은 요즘 제대로 일을 처리하는 거요? 아니,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말이오.”

부는 인도, 즉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나 에스파냐에서 죽고 제노바에 묻힌다는 말이 있었다. 은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부의 흐름을 뜻하는 말인데, 신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가 아니라 에스파냐 왕실에 돈을 꿔준 제노바의 그리말디나 도리아 가문이 큰돈을 벌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신대륙 원주민들의 희생으로 캐내 유럽으로 실어간 은은 마드리드가 아니라 이탈리아 제노바에 쌓이고 있었다. 펠리페 3세와 총신 레르마 공작이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제노바의 은행들로부터 빚을 내서 계획성 없이 쓰는 바람에 생기는 일이었다.

지나고 보면 에스파냐 국가 재정의 상황이 그나마 지금이 더 나았다. 몇 년 뒤에는 세금이나 신대륙에서 보내는 은이 왕실에 들르지도 않고 채권자인 은행들에게 바로 넘어간다. 현대로 비유하면 월급 전체가 채권자에게 차압된 꼴이었다.

“일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결정은 아닌데, 피렌체를 공격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은행을 약탈하겠다는 뜻이오? 미쳤군!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 두라고 하시오.”

“으! 전하! 고산국의 통신기를 빌려주십시오.”

고산국 통신망을 이용해 대사가 급히 에스파냐 본국에 연락을 취했다. 덕택에 에스파냐가 군대를 동원해 채권자를 공격하는 최악의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 펠리페 3세가 국정을 돌보지 않고 총신들에게 맡겼는데, 도무지 믿지 못할 자들이었다.

펠리페 3세의 총신으로서 데니아 후작에서 레르마 공작으로 승작한 프란시스코 고메스 데 산도발은 부패라는 면에서 최악을 달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바야돌리드 시의회로부터 뇌물을 받고 1601년 수도를 바야돌리드로 옮겼다가, 다시 마드리드 시의회로부터 뇌물을 받아 마드리드로 재천도할 정도였다. 에스파냐의 첫 번째 교구인 톨레도의 대주교를 그의 삼촌으로 임명하는 등 레르마 공작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만 골몰했다. 갖가지 부패와 부정, 무능한 외교와 내정 때문에 에스파냐의 절정기를 끝낸 인물로 후대 역사가들에게 지목 당한다.

그렇지 않아도 에스파냐는 펠리페 3세의 즉위 이후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왔다. 부왕 펠리페 2세가 현재 국왕에게 남겨준 것은 광대한 영토와 그에 맞먹는 부채였다. 어려운 상황에서 즉위한 무능한 국왕과 국가재산을 사유화하는 부패한 총신이 나라 전체를 말아먹고 있었다.

1599년에 시작된 기근과 림프절 페스트는 에스파냐 인구의 1할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모리스코 추방은 에스파냐의 농업을 황폐화시키고 지주 계층인 귀족들을 파산시켰다. 이로 인해 농업이 무너져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으며,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양모 산업을 지원했으나 양모를 수출하고 모직물을 비싼 가격에 수입하느라 국가 재정은 갈수록 약화됐다. 에스파냐의 경제가 하도 엉망이라 에스파냐 화폐인 에스쿠도의 국제적 교환 가치가 은의 무게 이하로 떨어질 정도였다.

대사가 보고한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민호는 호조 판서와 예조 참판을 마드리드에 급파해 에스파냐가 고산국과 여러 나라 및 은행들에 진 빚을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들이 노력한 덕택에 에스파냐가 채무 지불 유예 사태에서 벗어나고 유럽이 큰 경제적 충격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주인님! 에스파냐에 빚을 지우지 마세요. 항상 못 돌려받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빚을 지울 건데? 무능한 국왕과 부패한 총신이라니, 우리가 뜯어먹기에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이야?”

이민호가 눈을 찡긋하자 혜영이 어이없어 했다.

“주인님은 욕심이 너무 많으세요.”

“부채를 절반으로 탕감해준 덕택에 페루의 구아노 광산 전체를 얻었잖아. 페루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야. 우리에게 고용된 원주민 광부들이 계속 임금을 받고 있으니까 페루 부왕령도 계속 세금을 징수할 수 있어.”

에스파냐는 처음에는 파나마 운하 운영권과, 카르타헤나와 산타 마르타를 제외한 파나마에서 베네수엘라 서쪽 국경까지의 영토를 고산국에 넘기려 했다. 현대의 콜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고, 덴마크의 식민지인 베네수엘라와 지상으로 연결된다는 점 때문에 한때 이민호도 솔깃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버티며 에스파냐의 영토 할양 제안을 거부했다. 영토를 조금 떼어주면서 빚을 다 갚고 고산국의 해군력을 이용해 카리브 해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에스파냐의 계획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파냐의 상황을 보건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민호의 계산이었다.

“나중에 중남미 대륙 전체를 한꺼번에 얻어내려고요? 땅을 얻더라도 그곳을 지키거나 개발할 인력이 부족하잖아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개발할 수도 있으니까. 인구가 적은 나라라는 사실이 정말 서럽다.”

고산국 본토와 직할지, 속국 등을 포함해 전체 인구가 3천만을 넘어섰다. 그러나 영토는 넓은 반면 인구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고, 군대 규모 확대는 물론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더라도 개발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중남미는 우방인 에스파냐의 영토에요. 주인님이 영토에 욕심 부리면 후대에 에스파냐 사람들이 그 일로 우릴 싫어할 거여요.”

“에스파냐가 지금처럼 식민지를 엉망으로 관리했다가는 조만간 중남미 여러 지역들이 다들 독립하게 될 거야. 식민지에서 태어난 크레올에게 시민권을 안 주는 문제도 그렇고, 흑인 노예 문제도 그래. 에스파냐가 중남미 대륙을 지킬 방법은 없어.”

“하지만 그런 건 직접 당해봐야 알 거여요. 지금은 에스파냐가 세계제일의 강대국이니 독립운동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 걸요?”

만약 고산국이 중남미에서 영토를 얻는다면 흑인 노예들이 아직 소수에 불과한 이때 얻는 편이 나았다. 인종이 다르면 정치적 분열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괜히 어수룩한 펠리페 3세를 상대로 중남미 대륙에 욕심을 부리다가 자칫 동맹관계가 깨질 수도 있었다. 국가의 최고 수뇌부인 국왕과 총신이 바보라도 에스파냐에는 똑똑한 귀족들이 많았고, 펠리페 3세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몰아가서 에스파냐 모든 사람들이 고산국에 중남미를 넘기자고 합의할 때까지 끈기를 갖고 기다릴 작정이었다.

1월 19일에 마닐라의 산 아구스틴 교회가 완공됐다. 겉은 그럭저럭 교회의 모습을 갖춘 것에 불과했지만 천장 벽화를 비롯한 내부 장식은 화려함의 극치에 달했다.

축하하는 의미로 초대형 샹들리에 하나와 대형 샹들리에 몇 개를 고산국에서 제작해서 보냈다. 천주교회 입장에서는 양초 값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게 됐다.

1월 30일 웨일스 남부 브리스톨 해협 주변에서 큰 홍수가 발생해 주변 해안지대, 특히   카디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2천여 명이 죽고 가축들이 쓸려 나가고 농지가 침수됐다고 한다.

이민호는 잉글랜드 해역에 쓰나미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했다. 고산국에서 조만간 태평양 전체에 지진과 쓰나미 경보 체계를 갖출 계획이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4월 25일에는 지브롤터 전투가 있었다. 에스파냐의 국가 파산으로 인해 네덜란드 파견군의 군사행동이 중지되자 여유가 생긴 네덜란드가 함대를 파견해 지브롤터 항을 급습했다. 짧은 전투 시간에 비해 에스파냐 해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잉글랜드에게 패한 이후라 식민지였던 네덜란드 해군에게 해전에서 패한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607년 4월부터 버밍엄을 비롯한 잉글랜드 전역에서 인클로저 운동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미들랜드 반란이라는 이름은 인클로저 운동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귀족, 지주들을 쳐 죽인 다음 국왕의 군대에 의해 진압된 것처럼 오해되기 쉬웠다.

그러나 이때 국왕군은 그 존재 자체가 없었고 민병대는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출전 명령을 거부했다. 사실은 농민들과 귀족의 하인, 고용인들이 싸워 수십 명 단위의 사상자를 낸 것뿐이었다.

6월 8일 노샘프턴 뉴튼 마을의 반란이라 해서 지주들이 인클로저 운동에 반대하는 소작농들 최소 46명을 살해한 사건이 미들랜드 반란 기간에 발생한 가장 큰 인명피해였다. 1608년에 끝난 미들랜드 반란은 잉글랜드 농민들이 일으킨 역사상 마지막 반란이었다.

5월 말에 전 영의정 류성룡이 안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이민호는 직접 문상을 가려다가 광해군과 조선 조정의 눈치가 보여서 부친과 예조 판서를 보내 조문하도록 했다.

조선의 애국자이며 충신의 죽음에 수많은 선비들과 농민들이 찾아와 조문했다고 한다. 이민호는 <징비록>과 <서애집>을 읽으면서 류성룡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 새삼 감탄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애민애국 사상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서애의 문집을 국역한 다음 고산국의 모든 도서관에 비치했다. 류성룡의 유가족과 후손들이 인세만으로도 풍족히 살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비용 들이고 욕 먹어가면서 전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빚을 지운 다음 얼마든지 뜯어먹을 수 있지요.

1607년은 핼리 혜성이 지구에 접근한 해더군요.

아마도 오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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