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74 85. 1606년 장강에서 =========================================================================
집결지에 장갑차 연대 숙영지와 산적 및 산적에게 잡혔던 양민 포로들의 수용소가 세워졌다. 산적 포로나 양민들을 위한 천막을 따로 준비해오지 않았으나 추운 지역이 아니라 큰 문제는 없었다. 비가 자주 오는 곳이어서 배수로를 만들고 기둥을 세워 하늘을 가리는 천을 쳐서 양민들이 비를 맞지 않게 했다. 산적들은 포박된 채 밤새 비를 맞았다.
다음 날부터 후속 부대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제2 기병연대는 낮에 도착했고, 구르카 여단은 보병인데도 기병연대와 몇 시간 차이 나지 않는 저녁에 도착했다. 이들이 아무 일도 안 한 것 같지만 만약 지도가 부정확해 폭격이 실패했을 경우 산적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을 것이다.
양광총독은 기병만 추려서 이민호가 시킨 대로 말 두 마리를 바꿔 타며 달려왔으나 사흘째에 도착했다. 묘족 등 소수민족 보병은 사흘째 저녁에 도착해 의외로 빨리 온 셈이었다. 명나라 관병들은 행군을 계속하면 와해될 것 같아 중간에 집결지 몇 곳을 만들어 그곳에 나눠서 대기시켰다.
“전하. 명나라 남부에 주둔한 관병은 보병이나 기병이나 전력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농민 반란이 일어났을 때 북경이나 그 주변에서 진압 병력을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 예상대로야.”
명나라 병력과 동행한 참모본부 장교가 이민호에게 최종 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명군과 동행한 모든 장교들이 명나라 병사들의 군기와 체력이 하도 엉망이라 설마 이 정도인가 하고 혀를 찼다고 한다. 조금만 더 빨리 행군시키면 천리 거리의 목적지에 도착할 때는 10분의 1 정도 남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로써 명나라 남부에서 활동하는 여러 무장 세력에 대한 평가는 대충 끝났다. 북경 북쪽 만리장성을 지키는 군세나 사병에 가까운 척계광의 남병이 아니라면 야전에서 싸울 만한 명나라 병력은 전무하다시피 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양광총독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항공대의 전과에 감탄하기 바빴다. 명나라 기병이 보병인 구르카 여단보다 늦게 도착한 것은 예상한 대로였고, 그나마 사흘 만에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산채 20곳을 동시에 공격한다는 게 사실이었군요. 대단합니다.”
“총독. 산채의 위치 정보가 매우 정확했소. 은을 좀 드릴 테니 총독이 이번 일에 큰 도움을 준 개방 단두들에게 상을 내리시오.”
단두들은 그 지역 거지들의 수입 전체를 받아 재분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어려울 때를 대비해 저축한다는 명분으로 수입 대부분을 단두가 독차지했다.
거지들에게 분배된 동전이 있더라도 거지 창녀 개기(丐妓)나 도박장을 거쳐 단두에게 단 한 푼 남기지 않고 회수됐다. 산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위험 감수와 고생은 밑바닥 거지들이 했더라도 이들에게 포상해봤자 어차피 단두에게 갈 돈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그런데 여기에 있는 포로들 말고 나머지 산적도 다 잡았습니까? 도망간 자가 있다면 당장 관병들을 보내 추격에 나서겠습니다.”
“살아있는 자들은 다 잡았고 죽은 자들은 산채에 내버려뒀소. 총독이 지휘하는 병력을 산채마다 파견해서 목을 베어 보고하도록 하시오. 산채에 불도 지르게 하시오.”
총독이 병력을 나눠 자금현 내에 산재한 산채로 서둘러 보냈다. 명나라 관병들이 가장 용감해질 때였다.
“산적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오?”
“요즘 북방에 방어 병력이 부족해서 적당힌 곤장을 친 다음 충군할 예정입니다. 평소라면 그저 참수밖에 없었을 테니 오히려 운이 좋은 셈이지요.”
“기껏 산적 토벌을 마쳤는데 다른 자들이 다시 산적이 될 것 같아 걱정이오.”
“떼로 몰살당했으니 최소한 자금현에서는 당분간 도적이 활개 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생업을 포기한 채 산적이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남의 것을 빼앗는 일에 재미 들린 악독한 자들이라도 산적질이 목숨을 내놓고 하는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살기가 고달프거나, 아니면 관병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지속적인 산적질이 가능했다.
“에, 대인! 그런데, 에.”
“참! 산채에서 나온 전리품을 나눠야겠구려.”
총독이 말을 더듬는 것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이민호가 바로 알아챘다. 다른 관료들에 비해 총독이 딱히 더 부패한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지키려면 위에 줄줄이 상납할 곳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태정 기간이라 누구는 사직하려고 목숨을 거는 와중에 이렇게 돈 되는 직책은 인기가 여전했다.
“알다시피 고산국 항공대가 폭격했고 내 휘하 병사들이 포로를 잡았소. 총독의 관병들은 늦게 도착해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소.”
“알고 있습니다, 대인. 폭탄이 매우 비싼 무기라는 것도 압니다.”
“물론 참수한 것은 관병들의 공으로 쳐주겠소. 산채에서 발견된 재물은 절반씩 나누도록 합시다.”
“반이나 주시렵니까? 감사합니다, 대인!”
경상우수영 관할 해역에서 올린 조선 수군 전체의 전과는 무조건 경상우수영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하던 누군가가 아주 잠시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조선의 조정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통했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과도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채에는 의외로 많은 금과 은이 보관돼 있었다. 산적 두목들이 유사시 들고 옮기기 좋게 귀금속으로 바꾼 것으로 봐서 장물애비들이 연관돼 있음이 분명했다.
산채와 연결된 장물애비들은 거의 이 지역 사람들로서 관과 유착된 것이 확실했다. 그러므로 수사를 하더라도 잡아낼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현실적인 총독도 아예 장물애비들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피했다.
“산적들이 잡아둔 양민들은 전적으로 내가 처분하겠소. 대신 산적 포로는 모두 총독에게 맡기겠소.”
“아, 그게. 예. 그렇게 하십시오, 대인.”
산채를 뒤져서 베어 온 산적 사망자들의 수급 3천여 과로 총독은 이미 충분한 전과를 올렸다. 산적 포로도 천 명이나 돼서 괜히 이민호에게 몫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다만 산적에게 잡혀있던 자들을 여러 가지로 활용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내주는 것이 아까웠을 뿐이었다.
이로써 산적에게 인질로 잡혔던 양민 600여 명, 그리고 산적인지 양민인지 구별하기 애매한 자들 300여 명이 자유를 찾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신분이 애매한 자들도 완전히 양민으로 간주했다.
“산적 토벌을 마쳤으니 순덕의 수채를 공격하는 수군을 물러나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수군이 몰살당할까봐 불안하오?”
“그건 아닙니다만, 괜한 인명 손실을 입을까 두렵습니다.”
양광총독이 무능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중국 역사에서 가끔 보이는 훌륭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매우 현실적인 관료로서 결정적인 실패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수군에 전령을 보내서 바로 퇴각시키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대인.”
겨우 140km를 행군하지 못하고 퍼져버린 관병이나 삼각주 지대에서 수적을 상대하지 못하고 헤매는 수군이나 거의 비슷한 전력이었다. 총독은 그 동안 혹시라도 수군이 패할까봐 매우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다음 날 장갑차 연대를 앞세우고 광저우로 향했다. 산적 포로들에게 키를 씌우고 발목에 족쇄를 채워 걷도록 했다.
중간에 낙오한 관병들을 수집해 대충 대오를 짜게 했는데 이들이 워낙 굼떠서 하루에 100리도 걷지 못했다. 그래서 광저우로 돌아가는데 나흘이나 걸렸다.
그 동안 동쪽 길이 막히다시피 해서 곤란했던 광저우 주민들이 성 밖 관도까지 몰려나와 토벌군을 환영했다. 산적들은 주민들에게 침과 주먹세례를 받아야 했다.
산적에게 붙잡혔던 양민들이 대열에서 슬금슬금 빠져 나가는 것을 이들을 보호하던 구르카 용병들이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이미 은 열 냥씩을 나눠줬으니 여비는 충분했다. 신분이 애매한 자들로 분류된 자들 중에서 절반이 산적이라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대인과 휘하 군졸들을 위해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운 말씀이나 총독은 바로 수군을 소집하도록 하시오.”
“예?”
“광저우 입구 수로를 위협하는 순덕의 수채들을 공격해야 할 것 아니오?”
“어? 그렇더라도 행군에 지친 군졸들을 위해 하루쯤은 쉬셔야 합니다.”
이민호가 남쪽 하늘을 가리켰다. 멀리 남쪽 하늘에 새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미 시작했소.”
- 쿠우웅~
남쪽에서 뭔가 번쩍거렸다. 곧이어 시뻘건 화염이 하늘로 솟구치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광저우의 관리들이 수비들과 결탁했을 것이 분명하므로 공격계획을 총독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총독은 이 와중에 전공을 세울 기회가 다시 왔음을 알아차렸다.
“경력은 뭐하느냐? 당장 수군을 집결시키도록 해라! 대인! 어서 서두르시지요.”
총독이 아랫사람들을 닦달하고 이민호를 주강의 선착장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광동 수군이 운영하는 배들 말고도 고산국의 수송선들이 잔뜩 정박하고 있었다.
“고산국 병력은 광저우와 항구를 지키고 묘족과 여러 종족 전사들은 배를 타라.”
이민호가 지시하자 광저우 도착 직전에 작전을 통보 받은 여러 종족 전사들이 수송선에 나뉘어 탑승했다. 고산국 병력을 구성하는 장갑차 연대, 기병연대, 구르카 여단은 광저우에 남았다. 여기서 광저우 수군과 육군 관병들까지 모조리 명나라 사선에 태우고 나니 광저우에는 온통 고산국 병력이 깔리게 되었다.
“광저우 점령 연습을 하시나 봐요?”
“우연이지. 총독의 반응을 살펴볼 목적도 있고.”
왕명명이 묘한 표정으로 이민호의 얼굴을 들여다봐서 부담이 갔다. 그러나 총독이 휘하 관병들을 바삐 지휘하는 것을 보고 이번 작전을 통해 원한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알았다.
함대가 주강 하구에서 서쪽 삼각주 지역으로 진입했을 때는 비행기들이 동쪽으로 돌아가고 난 이후였다. 순양함들이 앞장서서 강변에 축성된 수채의 방어시설을 함포로 박살내며 돌입했다. 규모가 큰 정크선 몇 척이 응전하러 나왔지만 8인치 함포 한 방에 옆구리가 뚫리며 가라앉았다.
그리고 폭격을 받아 반쯤 무너진 수채가 있는 곳마다 수송선에서 소수민족 병사들을 쏟아냈다. 뒤늦게 사선을 타고 도착한 관병과 명나라 수군이 상륙해 이들을 지원했다.
주강 삼각주의 수비들은 광동성 수군이나 주강 하구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함대의 공격에도 버틴 자들이었다. 전투 경험은 충분했고 병력도 많아 제대로 맞붙어 싸운다면 묘족이나 관병들에게 밀릴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적들이 집결한 곳마다 수송선에 탑재된 3인치 함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잘 싸우고 있구려.”
“제가 비록 저들을 토벌해야 할 양광총독의 직분을 맡고 있지만 오히려 수비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묘족은 정말 잔인한 인간들이군요.”
“고산국과 총독의 합동작전이오. 앞으로 묘족이나 투자족 같은 자들을 총독이 지휘하도록 하시오.”
“저들의 전투력은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가급적이면 광동과 광서 땅에 들이지 않겠습니다.”
“총독이 알아서 하시오. 다만 관병으로 활용하라는 뜻이오.”
그런데 수적이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수적과 함께 사는 양민, 혹은 바닷가에 사는 유랑민족이 섞여 사는 바람에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서 빨리 끝내려 했던 토벌이 의외로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수적이 많더라도 삼각주의 섬마다 분산됐고 순양함의 화력이 워낙 강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소수민족들의 희생이 컸으나 섬 하나하나씩 차례로 토벌을 마쳤다.
“묘족이나 투자족도 황상의 충성스런 신민들입니다.”
묘족과 투자족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희생도 컸지만 명나라 관리나 병사들이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소수민족 병사들에 대한 양광총독의 평가가 반란군 예비 음모자에서 충실한 병력으로 바뀌는 데는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적 토벌을 마친 다음 광저우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소수민족들을 내려준 다음 그 동안 참전에 대한 수고비 조로 은전을 나눠줬다. 한 달 남짓 고산국과 함께 산적과 수비 토벌에 나섰던 소수민족 전사들은 은 스무 냥씩 받고 몹시 만족했다.
기병연대와 장갑차 연대, 그리고 구르카 여단을 수송선에 태웠다. 양광총독이 끝까지 따라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커다란 사선을 타고 나와 배웅했다.
“대인께서 앞으로도 양광 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뜻을 황상께 아뢰겠습니다.”
“총독은 지금까지 잘해왔소.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주시오. 물론 본작도 황상께 총독의 충심을 아뢰겠소.”
총독이 화려한 장식이 된 나무 상자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호위가 받아들다가 휘청하는 것이 부피에 비해 꽤나 무거운 듯했다.
“이건 대인께 바치는 제 마음의 정성입니다.”
“뭘 이런 걸 다. 고맙소.”
적당히 유능하고 적당히 부패한 양광총독은 어지러운 명나라 조정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민호도 명나라 황제에게 표를 바칠 때 양광총독이 유능하며 황제에게 충성스럽다고 특별히 칭찬하는 문장을 써주기로 했다.
“멍멍이 네가 할 일이 있다.”
“주인님이 활약하신 일을 과장해서 명나라 전체에 소문내는 일 말씀이죠?”
“그래. 혜영, 미카와 협의해서 진행하되 예산은 아끼지 마라.”
스스로 얼굴에 금칠하는 낯 뜨거운 일이었으나 명나라 백성들은 영웅을 원했다. 비록 한족은 아니더라도 명나라를 위해 싸우는 영웅 한둘쯤은 필요한 시기였다.
어느 영화 광고 문구처럼 척계광은 죽었고 이성량은 늙었으며 유정은 약했다. 소재가 준비됐으니 주인공을 멋지게 띄우는 것은 미카를 비롯한 정보국과 왕명명이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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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정상적인(?) 연재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