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73화 (722/1,000)

00773  85. 1606년 장강에서  =========================================================================

광저우까지 하루거리를 앞둔 5월 21일 아침에 이민호가 양광총독을 불렀다.

“대인, 부르셨습니까?”

“잘 오셨소. 오늘 정오에 산채 20곳에 대한 비행기 폭격이 실시될 예정이오.”

“그럼 산채는 오늘 안에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까? 몹시 당혹스럽습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시대는 항상 변해왔소. 총독! 지금 즉시 출발해서 폭격에 의해 타격을 입은 산적 잔당들을 체포하려 하오. 혹시 총독은 말을 탈 줄 아시오?”

지금 출발해서는 빠르다는 고산국 기병들도 폭격 예정 시간에 맞춰 영안에 도착할 수 없었다. 말을 타지 않은 구르카 보병이나 명나라 관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민호는 영안에서 말로 하루거리까지 접근한 다음 폭격을 시작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관병들 사이에 섞인 산적의 끄나풀이 기마 전령을 보낼 것에 대비해 기병이 이틀 동안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에서 출발하기로 계획을 짰고, 이제 실행에 옮길 순간이었다.

“물론입니다, 대인. 제가 비록 썩은 유생 출신이나 북방의 전투에도 여러 번 참가했습니다. 저는 감군으로서 가마를 타고 지휘하다가 기마부대 전체를 말아먹는 환관이 아닙니다.”

“그 정도면 됐소. 말을 타면 이틀 정도에 영안에 도착할 수 있겠소?”

“조금 어렵지만 할 수 있습니다.”

“좋소. 기병들을 소집해 영안으로 달려오시오. 교대용으로 빈 말을 최소 한 마리를 대동하게 하시오. 보병들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이동하라고 지시하시오.”

어리둥절한 총독을 남겨두고 장갑차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여 동쪽으로 달려갔다. 기병들이 따라 달리고 구르카 용병들이 뛰었다.

그러나 속도가 아니라 장갑차에 비해 지구력이 떨어지는 기병과 구르카 용병들은 점점 뒤쳐졌고, 곧 장갑차 연대를 시야에서 놓쳤다. 산악지대에서 단련됐다는 묘족 등 소수민족들은 이들보다 한참 뒤떨어졌고 명나라 관병들은 10리도 못 뛰어서 절반이 낙오했다.

광저우에서 관도를 따라 동쪽으로 140km 위치에 영안이 있었다. 가는 길에 동강을 비롯해 강을 세 번 만났으나 두 곳은 폭이 20미터에 미치지 못했고 한 곳은 여울과 강 중간의 섬을 이용해 가교를 세울 필요도 없이 바로 건널 수 있었다.

“도로 사정이 생각보다 좋군.”

“평야지대라서 관도를 닦기 편한 곳이니까요. 그리고 광저우는 송나라 때부터 발전한 국제 무역항이에요. 광저우로 통하는 관도는 언덕길만 아니면 수레 네 대가 교차할 수 있어요.”

장갑차에 탄 왕명명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바람을 만끽했다. 이민호가 탄 차가 선두에 서는 바람에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후속 차량들은 누렇게 먼지를 둘러썼다.

장갑차로 네 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영안에 도착했다. 중간에 장갑차 세 대가 엔진이 퍼지거나 궤도가 벗겨졌으나, 구난차량에게 맡기고 계속 달린 덕택에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주인님! 저 멀리 비행기에요!”

“음. 작전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구나.”

이민호는 고산국 비행기들이 편대 비행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귀환하는 길임을 알았다. 영안 주변 여기저기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연기가 치솟는 곳은 예외 없이 산적들의 본거지인 산채였다.

“국왕이다. 각 소대별로 배정받은 산채를 들이친다. 연대장에게 지휘권을 일임하겠다.”

통신을 마치고 호위 장갑차 네 대도 배정된 산채로 향했다. 관도에서 벗어나 30분쯤 농로를 달렸다.

산채가 가까워지면서 장갑차에 탑승한 보병들이 하차 전투를 준비했다. 이 지역 절반 이상의 산채가 관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하차 보병들만 들어가야 했다. 장갑차 소대마다 산채 두 곳, 중간에 고장 난 장갑차들 때문에 몇몇 소대에게는 최대 세 곳을 맡겼다.

산채에는 100에서 200명 정도 기거하는 것으로 사전 조사됐다. 광동성의 산적들이 만 명이 모여 공성전을 통해 도시를 점령한 적이 있었으나, 산채 여러 곳이 연합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산채들마다 이미 폭격을 받아 조직적인 저항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맙소사!”

관도에서 가까운 평지 농촌 마을로 위장한 산채에 장갑차들이 도착했을 때, 예상과 훨씬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민호는 폭격을 당한 산채가 활활 타오르고 정신이 나간 산적들이 허둥거리며 도망치는 것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세상에! 농민들이 산채를 약탈하고 있어요!”

“농민들도 잘 싸우는구나.”

폭이 넓은 두툼한 도를 휘둘러 이미 쓰러진 산적을 난도질하는 자는 가벼운 복장으로 봐서 근처의 농민이 틀림없었다. 산채 방향에서 나타나 등짐을 지고 농촌 마을 방향으로 뛰어가는 노인도 역시 농민이었다.

산채에 접근해보니 중년 여자들이 잔뜩 몰려와서 산채를 뒤집어엎고 돈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부상당한 산적은 여자들 서너 명이 붙잡은 다음 짧은 칼로 목을 그었다. 이민호는 보병들에게 하차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감탄했다.

“농민들이 참 대단하다. 다른 산채도 다 이 모양일까?”

“아마도 그렇겠죠. 산적들이 저항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농민들이 약탈에 나선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명나라 관병들에게 괜히 뛰어오게 한 것 같다.”

“돈 될 것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뛰어 오겠죠.”

장갑차에서 보병들을 하차시켰다. 군인들이 나타나자 농민들은 잽싸게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쳐 버렸다.

농민이 도적에게 이기고, 도적이 관병에게 이기면 현대 중국이나 일본식 상대 평가법으로는 농민이 관병에게 이겨야 한다. 그러나 관병은 농민들을 밥으로 보는 자들이었다. 고산국 장갑차 보병은 명나라 관병이 아니었지만 농민들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것이 이해가 됐다.

“전하! 산적들이 붙잡아 땅굴에 가둬놓은 양민들이 있습니다.”

“어? 땅굴 속에 있어서 폭격에서 안전할 수 있었겠군.”

양광총독은 산채에 양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갇혀 있거나, 혹은 산적들을 위해 농사나 가사 일을 하고 있었다. 산적 포로들과 섞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양민들을 석방했다.

그런데 문사 복장을 한 자와 늙은 농민이 무릎을 꿇고 이민호에게 빌었다. 싹싹 손을 비는 것은 전 세계 공통적인 몸짓 같았다.

“대인!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응? 방금 도적들로부터 자네들을 살려주지 않았나? 석방해줬으니 어서 집에 돌아가게. 집이 멀면 여비를 좀 내줄까?”

반란 진압에 비해 산적 토벌 작전이 더욱 민사작전에 가까웠다. 명나라가 멸망할 것에 대비해 그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기 위한 심리전에 가까웠으므로 이럴 때 돈을 팍팍 쓰기로 했다.

“아닙니다, 대인! 그보다는 저희들이 광저우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 주십시오. 저희들이 관도로 가다가 관병들에게 잡히면 도적으로 몰려 목이 베이거나 외국에 팔려가 종노릇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쯧쯧! 알았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증명서를 받아 귀가하도록 하고, 광저우까지 갈 사람들은 내가 보호해주겠네.”

“감사합니다, 대인!”

명나라 관병에게 잡히면 죽거나 노예로 외국에 팔려갈 수 있다는 공포가 양민들의 뇌리를 잠식했다. 이런 일에 대비해 산적에게 포로가 됐던 양민이라는 증명서를 발행했으나, 아주 가까운 곳에 살지 않는다면 산채에서 석방된 양민들은 고산국 군대의 보호를 받길 원했다.

이민호는 치안이 어지러운 지역이라면 그럴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산채에서 구해온 양민들도 한 곳에 모아 병사들이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나 관병이 양민들에게 접근하면 쫓아내도록 지시했다. 겁쟁이 관병들이 산적은 무서워서 토벌하지 못하고 그 대신 양민을 침탈하는 경우는 흔했다.

실제 역사에서 임진왜란 후인 1605년에 사명당이 일본에서 포로를 쇄환해왔을 때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힘이 센 기관에서 이들을 노비로 간주해 횡령, 점유하고 매질을 했다고 사헌부가 보고하면서, 노비라도 일본에서 탈출하거나 쇄환된 자들은 양인으로 속량할 것을 건의했다.

쇄환사로서 일본에 건너간 사신들이 지은 사행록인 <해사록>이나 <부상록>, <동사록> 등에는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 중에서 일부가 조선에 돌아가면 군병 또는 노비가 될 것이 두려워 귀국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정이 기록돼 있다. 물론 귀국하려는 포로들도 많고 다이묘들이 조선인 포로들을 숨긴 사례가 더 흔했더라도 자의적으로 귀국을 포기한 자들도 분명히 있었다.

“대인! 저를 풀어주십시오. 저는 벼락 맞을 산적이 아니라 산적 놈들에게 잡힌 양민입니다요!”

“밤송이 수염에 가죽옷을 입었는데?”

거대한 체구에 거친 말투, 입은 옷 때문에 순박한 양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양민이라고 주장한 거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소연했다.

“저는 여기서 북쪽 100리 화평 현의 백정으로서 마을에서 도축 일을 하다가 산적들에게 잡혀왔습니다. 환관이 아닌 사내라면 당연히 수염을 길러야 합니다.”

“으으! 알았다. 너 같은 자들은 당분간 따로 모아서 관리하겠다. 만약 산적이 양민이라고 속이면 즉결 처형하겠다.”

산적이라고 판단해서 잡았는데 양민으로서 산적에게 붙잡혔다거나, 최근에 강제로 산적이 된 양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아 분류하는 일로 골치가 아팠다. 산적으로 분류되면 기본이 참수형이기에 거짓말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산적이 아니라고 우겼다.

양민과 산적 포로들을 집결 예정지로 이송했을 때 다른 산채로 향한 각 소대로부터 진압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는 산적들이 많아서 정오에 실시된 폭격에 대부분 산채 건물에서 죽었다고 했다. 장갑차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행렬 뒤에 포로나 산적들을 많이 잡아왔다.

“전하! 작전을 완수했습니다. 산적 사망자 2천여 명을 산채에서 확인하고 그 외에 산적 진입 과정에서 산적 천여 명은 사살했습니다. 양민 천여 명을 석방해서 그 중 400명을 귀가시키고 600명을 광저우까지 보호해주기로 했습니다. 산적 포로는 천여 명, 애매한 자는 3백여 명으로 분류했습니다.”

“많구나. 수고했다, 연대장. 내일 혹은 며칠 더 여기서 주둔해야 할 테니 숙영지를 건설하도록 해.”

보고를 마친 장갑차 연대장은 공병대와 병사들을 동원해 숙영지를 건설하고 포로와 양민, 애매한 자로 분류해 따로 수용했다. 고산국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있어서 포로와 양민들은 조용했다. 연대장이 다시 와서 물었다.

“전하! 포로 등에 대한 식사는 병사들과 동일한 것을 제공해야 할지 여쭙니다.”

“아니. 식량과 조리도구, 장작을 제공하고 저들끼리 알아서 해먹으라고 해. 명나라 남자들은 요리를 잘 한다더군.”

“양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산적들에게도 식칼 같은 조리도구를 내준다는 말씀이십니까?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밥 해주고 맛없다고 욕먹기 싫으니까. 그리고 식칼 따위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걱정되면 매 끼니마다 줬다가 다시 회수하도록 해.”

국왕좌승함에 동승한 왕궁 조리장이 요리한 볶음밥 하나 가지고 온갖 비난이 쏟아졌었다. 조리장보다 실력이 못한 조리병들이 한 요리를 명나라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리가 없었다.

연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출전 전에 이민호가 산적 토벌은 군사작전이 아닌 민사작전임을 몇 번이나 강조했기에 곧 수긍했다. 명나라 백성들을 지켜주는 것은 명나라 조정이나 관병들이 아니라 고산국 군대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인님. 고산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의외로 명나라는 자기 백성들을 잘 지켰어요. 제대로 정착한 사람들은 저처럼 소수민족 혈통 극히 일부뿐이에요.”

“일부 명나라 백성들이 고산국에 정착하더라도 제대로 융화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주 질리는 인간들이야.”

왕명명은 이민호와 특수 관계가 있었고, 게다가 한족 출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산국이나 북미에서 일했던 복건과 광동 출신 노무자들은 일을 마치면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갔다. 흔히 이갑제나 음식 탓을 했지만 뿌리 깊은 중화사상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고산국에 이주한 명나라 사람들이 소수 있었으나 이들은 철저히 자기들끼리 뭉쳐서 살았다. 장사를 하더라도 관시 즉 인적 관계 중심의 폐쇄적인 거래 위주였고 정상적인 가격 경쟁이나 품질 경쟁을 하지 못했다. 마치 중국인 관광객들이 중국인 소유 여행사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 중국인 소유 호텔에서 자고 중국인 소유 업소에서 놀다가 중국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다른 종족들과 아예 선을 그어버렸다. 현대 제주도의 투자이민이나 현재 고산국의 이민 정책에서 공통적으로 이들은 받아들여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고산국의 주력 종족인 조선 출신자들이 먼저 차별을 하지 않더라도 명나라 출신자들로부터 차별을 당했다. 고산국에 이민을 왔으면 고산국 백성인데도 고산국의 상국 대명 출신이라며 자부심이 엄청나게 강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아예 명나라 출신자들의 이민을 받지 않기로 했다. 마침 대규모 토목공사도 대부분 마친 시기라서 복건성이나 광동성과 맺은 노무자 송출 협정을 더 이상 연장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래서 명나라가 망할 경우 고산국 영토로 편입하지 않고 대략 서너 개로 분리하겠다는 거야. 안 망하면 안 망하는 대로 좋고. 우리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저들과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이민호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았기에, 명나라가 자체적으로 무너질 때에 한해서 개입할 예정이었다.

============================ 작품 후기 ============================

명나라가 나중에 어떻게 되든 준비를 미리 해놓은 셈입니다.

명나라 작전은 앞으로 1회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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