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72화 (721/1,000)

00772  85. 1606년 장강에서  =========================================================================

이틀 후 원정군이 남동쪽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귀주성 남부의 강에는 퉁족이 돌기둥 위에 누각을 짓고 그 사이에 다리를 걸고 천장을 올린 덮개 다리, 일명 풍우교(風雨橋)를 놓아 보병이나 기병이 강을 건너기 편했다.

장갑차는 강에 가교를 설치해 건너거나 얕으면 바로 넘어갔다. 장갑차를 수륙양용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중량 대 출력이 떨어지고 적재공간을 줄여야 하는 등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5월 초순에 광서성 융성, 나중에 유주(柳州)로 이름이 바뀌는 강변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에 양광총독 대요(戴耀)가 관병 1만여 명을 이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중 나왔다. 몇 년 전부터 얼굴을 봤던 자가 여전히 양광총독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애공 대인. 바닷가 도시가 아닌 육지에서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

“대 총독은 한 곳에 정말 오래 계시는구려.”

양광총독 대요는 고산국 본토 건너 복건에서도 장주 북쪽 장태현 사람이었다. 장태현이 바닷가 고을은 아니지만 해안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 총독은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워낙 무능한 탓에 황상께서 저를 시골에 처박아놓고 잊어버리신 듯합니다.”

“유능한 분이시니 임기가 끝나면 중앙으로 불러들이시겠지요. 광동과 광서에서 반란 징후는 없소?”

2개 혹은 3개 성(省)의 군사와 민정을 동시에 관할하는 총독은 명나라 말기 지방의 실세였다. 남들은 보통 1, 2년, 길어야 4년 정도 역임하는데 반해 대요는 1598년부터 8년째 양광총독을 맡았다.

그만큼 믿음직한 신료라는 평가인 반면 중앙에서 큰 힘을 쓸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시기 명나라 관료 사회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아직까지는 반란 징후가 없습니다만, 그 대신 산적과 수비들이 예년보다 더 설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본거지 위치를 파악해 두었겠지요?”

“물론입니다, 대인. 지도를 봐주십시오. 대인께서 명한 광동과 광서 지역에 출몰하는 도적들의 산채 위치입니다. 몇몇 지부나 지현들이 도적들과 거의 내통하는 수준이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제2, 제3의 산채와 유사시 피난처까지 자세히 표시됐구려. 누가 이렇게 자세히 파악했소? 관원은 아닌 것 같구려.”

이민호는 이 정도 정보를 수집할 기관으로 당연히 동창이나 내금위를 예상했다. 그러나 총독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예. 개방의 광동, 광서 단두들에게 지시해서 조사했습니다.”

“개방이라면 거지들로 이루어진 무림방파 말이오?”

“무림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개방은 거지들의 단체 맞습니다.”

무협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개방(丐幇)은 실존하는 집단이며, 다만 소설과 달리 명나라 조정과 지방 관아의 통제를 받는 거지들의 집단이었다. 성(省)은 물론 각 부, 주, 현에 세습직 우두머리인 단두(團頭)가 있어서 상위 단두로부터 통제를 받는 동시에 그 지역의 모든 거지들을 통솔했다. 명 태조 밑에서 전쟁터를 전전하다가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 쫓겨난 병사들이 지방의 세습직 단두로 임명됐다.

먹고 남은 밥을 구걸해서 거지들이 나눠먹고 남으면 거지들의 숙소에서 키우는 돼지에게 준다. 거지들의 숙소에는 거지 기생도 있어서 동전을 받고 거지들에게 몸을 팔았다. 총독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이민호가 상상하던 개방과 상당히 다른 조직임을 알게 됐다.

개방에 속하지 않으면 구걸할 권리가 없기에 매를 맞고 쫓겨나거나, 임시로 구걸을 하는 자들은 단두에게 성의를 표시해야 했다. 거지 삼 년이면 관직도 마다한다는 속담이 중국에 있었다. 거지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직업이 아니었다.

“각 지역의 거지들을 활용하면 산채 위치를 확실히 알겠구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관군을 동원하면 일시에 산채 서너 곳까지는 토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문이 워낙 빨리 퍼지기 때문에 그 사이에 도적들이 일제히 도피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양광총독이 이민호가 이끌고 온 병력과 귀주성에서 데려온 소수민족 병사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군도, 기병도 아닌 보병만 잔뜩 데려와서 과연 산적을 잡을 의욕이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총독의 내심을 파악하고 이민호가 웃었다.

“역사상 그 어느 군대도 소문보다 빨리 기동하지 못했소. 그 빠르다는 몽골군이라도 강과 호수가 많은 광동과 광서에서 소문보다 빨리 전진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 소문을 역으로 이용해봅시다.”

명나라에서 북병은 기병, 남병은 거의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반적인 전쟁에서 기병의 역할이 더 중요했지만 명나라 남부는 기병이 활동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중국을 정복했던 역대 유목민족 기마군단들도 남부 중국을 점령하는데 애를 먹으며 학을 떼는 곳이었다.

심지어 현대 중국군에서도 남중국에 주둔하는 기갑부대는 전차가 아니라 수륙양용장갑차 위주로 편성돼 있었다. 전차를 보유한 부대가 있더라도 공격이 아니라 방어전에 투입하기 위해 주력 전차보다 한두 세대 뒤떨어진 낡은 전차를 운영했다.

“혹시 산채가 별로 없는 광서에서 먼저 도적들을 토벌하면서 그 동안 광동의 도적들을 안심시킨다는 뜻입니까?”

“그렇소. 내 휘하의 병력이 이렇게 적지 않다는 것은 총독이 더 잘 알지 않소? 산채 가까운 바닷가에 고산국 군대를 상륙시켜 급습할 수도 있소.”

“하오나 대인께서 너무 많은 병력을 동원하시면 중앙 조정에서 신경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만 벌써 1만이 넘지 않습니까?”

“칙서에 나온 대로 정확히 5천이오. 나머지는 원래부터 명나라 땅에서 황상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던 여러 종족들이오.”

이민호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다만 소수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나 만나다가 도적 토벌을 이유로 같은 편이 된 것에 총독이 거북함을 느낀 것뿐이었다.

“광서에 분포한 산채들에 대한 공격도 내가 맡겠소. 관군은 넓게 포위망을 치고 도망치는 산적들을 잡으시오.”

“대인께서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시대에도 양광의 도적을 완전하게 소탕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인을 믿겠습니다.”

“확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오. 지도를 보니 영안에는 도적들의 산채가 정말 많소.”

영안은 현대의 광동성 광저우 동쪽 자금현이었다. 총독은 이민호가 광서에 있으면서 광동의 산적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혹시 어떤 방법을 활용하실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영안이 그래도 내륙 지역에 있어서 해안에 상륙해서 산채를 급습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칙서에 명시된 바에 의해 고산국 병력을 더 동원하기도 곤란합니다.”

“병력을 추가시키기로 했지만 일단 올해에는 5천만 활용하겠소. 총독도 비행기가 뭔지 알고 있을 것이오. 바로 그 비행기를 동원해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이오.”

“아! 그거 좋은 방법입니다.”

산적 집단을 토벌할 겸, 명나라 영공에 비행기를 투입해 지리 파악과 폭격 연습을 겸해 비행기를 종류에 관계없이 대거 동원하기로 했다. 현재 활주로 공사가 끝난 팽호 섬에 세 가지 종류의 비행기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혹시 평소에 산채에 잡혀 있는 사람이 많소?”

“몸값을 내지 않으면 즉시 죽여 버리기 때문에 남아있는 양민은 거의 없습니다. 살아있다면 이미 산적이 된 자들입니다.”

일부 산적 떼에 국한된다지만 사람의 몸을 회를 떠서 잔치를 벌인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왕명명이 운영하는 상인이나 주상아 공주가 기근을 당한 지역으로 식량 운송을 의뢰한 표국 사람들 몇이 이런 산적들에게 희생돼 돌아오지 못했다.

“산적과 수비 외에 도시에 흑사회가 있다면서요?”

“예. 여자들이 모여 애들을 유괴해서 먼 지역에 팔아치우는 봉양방과 전염병 환자들이 부자나 가게 주인을 협박하는 풍인방이 있습니다만, 사방에 흩어져 있어서 관병으로 일망타진하기 어렵습니다.”

범죄조직 구성원들은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에 있었다. 관과 결탁해 일정 기간마다 뇌물을 바치고 토벌 정보를 얻는 것은 기본이었다.

오히려 관병으로 토벌에 나설 때, 관병들이 마을 주민들을 도적으로 지목해 몰살시키고 마을을 약탈하는 경우도 흔했다. 일반 백성들이 믿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흘 동안 산채 토벌을 위한 합동 훈련을 한 다음, 도합 2만 군사가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유주에 관병들이 대규모로 모였다는 소문이 나서 그 근처 산채들은 이미 텅 빈 다음이었다.

토벌군은 유주에서 계림으로 향하면서 산 속 깊숙이 위치한 산채 몇 곳을 토벌했다. 산채가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설마 관병들이 토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피하지 않았는데, 토벌군에는 산악지역에 특화된 구르카 용병들이 있었다.

“우리는 나쁜 산적들입니다! 관과 백성들에게 잘못했습니다!”

포승줄에 묶인 산적 200여 명이 인솔하는 병사의 구령에 맞춰 함성을 질렀다. 이들을 선두에 세우고 토벌군이 풍광이 아름다운 계림으로 향했다. 관도에 백성들이 몰려나와 산적들에게 침을 뱉거나 작은 돌을 던졌다.

“대인! 백성들의 반응이 좋긴 합니다만, 얼마 안 되는 산적들을 토벌하는데 이렇게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니 조금 민망합니다.”

“뭐 어떻소? 이 정도는 돼야 광동까지 소문이 크게 나지요.”

광서성 계림 부근에서 대규모 토벌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광동 지역, 특히 영안에서는 산적들이 더 활발하게 노략질에 나섰다. 계림은 영안에서 충분히 멀었고, 광동의 관병들까지 광서로 파병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광총독이 동원한 1만 관병은 오로지 광서 지역에서 차출한 병력이었다.

계림 주변을 토벌할 때 개방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산적들이 관병을 피해 숨어든 곳도 개방 거지들의 눈에 속속 포착돼 관병들이 출동했다. 광서의 관병들은 실력이 없더라도, 이들과 동행하는 고산국 기병이나 구르카 용병들의 실력은 출중했다. 보통 관병인 줄 알고 토벌에 저항하던 산적들이 단번에 때려 잡혔다. 작전이 계속되면서 산적 포로가 2천으로 늘었다.

“총독! 광동 지역에서도 관병들을 소집했겠지요?”

“물론 광저우에 1만 병력을 소집했습니다만, 관병들 중에도 산적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많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관병이 출동하는 즉시 산적들이 피할 것입니다.”

“광저우 남쪽에 순덕이라는 곳 주변이 수비들의 수채가 많은 곳이오. 전령을 보내 이곳을 공격하는 척하라고 하시오.”

광저우 주변을 흐르는 북강과 서강, 주강 등 큰 강들이 하구에서 무수히 많은 지류를 형성했다. 이로 인해 수로가 매우 복잡한 삼각주 지역의 중간인 순덕(順德) 주변에서 수적들이 번창했다. 이민호는 수군을 증강시켜 수채를 공격하는 척만 하라고 요구했다.

“대인! 순덕은 수중 지형이 매일 같이 변하는 곳이라서 병력을 헛되이 잃을까 겁이 납니다.”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 강의 수심을 재면서 천천히 진군시키시오. 관병들이 순덕을 공격한다는 소문을 내게 해서 영안의 산적들이 안심하게 하려는 목적이오.”

“성동격서로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전령을 보내 대인의 명을 실행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전령을 보내고 나서 토벌군이 계림 남동쪽 광저우 방향으로 진군했다. 계림에서 광저우까지 천리 거리라서 열흘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중간에 강이 몇 개 있었으나 관도가 강폭이 좁은 곳 위주로 나서 비교적 쉽게 도하할 수 있었다.

토벌군 2만이 광저우로 향한다는 소식이 광동 전체에 퍼져 나갔다. 순덕의 수비들은 긴장했고, 영안의 산적들은 때를 만난 듯 활발히 나무를 하러 다녔다. 나무를 한다는 말은 산적들의 속어로 약탈과 납치를 뜻했다.

열흘이 지나 토벌군이 광저우 북쪽에 이르렀다. 구르카 용병은 물론 귀주성에서 소집한 소수민족 전사들도 아직 생생했으나, 명나라 관병들은 열흘 동안의 행군에 몹시 지쳐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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