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70화 (719/1,000)

00770  85. 1606년 장강에서  =========================================================================

귀주성 경계에 들어간 직후 묘족을 만나기 전에 다른 민족들을 먼저 만났다. 화려한 모자 장식을 단 족장들이 전사들을 이끌고 관도에 나와서 이민호를 영접했다.

“주애공 대인! 저는 퉁족의 족장입니다. 오크남 대인의 상전이시며 왕 부인의 주인이시라면 저희 퉁족의 친구입니다.”

“국왕전하! 저는 투자족 백호 부족의 족장입니다. 호남성에 사는 거북 부족으로부터 대인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경에서 호남성에 이르는 무릉산맥에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퉁족(獞族)은 타이어와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는 종족으로 나중에 장족으로 이름이 바뀔 소수민족이었다. 현대 중국 영토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고, 주로 광서성에 거주했다.

투자족(土家族)은 스위스나 발칸 반도에 자리한 고산지대 거주민들의 전통 복장과 비슷한 형태에 붉거나 푸른 원색의 옷을 입고, 터번 비슷한 수건을 두른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투자족도 가까이 사는 묘족처럼 여자들은 은으로 목걸이와 두툼한 장신구, 혹은 모자를 만들어 유사시에 대비했다.

귀주성보다는 호남과 호북에 더 많이 사는 투자족은 기원전 4세기에 진나라에 정복된 바(巴) 나라의 후손이라고 했다. 명나라에서는 주변 소수민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주로 동원됐고 가정제 때는 멀리 해안지방으로 이동해서 왜구 토벌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 투자족은 소수민족치고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환영해주셔서 고맙소. 혹시나 황상께 불순한 자들이 준동하지 않나 걱정돼서 둘러보는 중이오.”

“대인 덕택에 지난번 흉년을 아무 일 없이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아예 숙영지를 건설하고 대형 천막에 족장들을 불러들였다. 모자에 달린 화려한 장식이 문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퉁족과 투자족 족장들이 천막에 들어왔다.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두 종족 모두 천 년 넘게 계곡이나 산악지역에 숨어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당연히 대대로 가난했고, 그 와중에 걸핏하면 한족 관리나 군대, 도적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왔다. 한족 왕조에 원한을 품었으면서도 왕조가 바뀔 때마다 큰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어떤 왕조든 계속 유지되길 원하는 성향을 가졌다.

“저희들이 스스로 군대를 조직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멀리 외국과의 전쟁에 나설 필요는 없소. 주변 내륙 지방에서 일어나는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데 필요한 군대요.”

“한족의 농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대 말씀이시지요?”

퉁족 족장이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슬쩍 주변을 살폈다. 한족에게 이민족에 해당하는 소수민족들 입장에서는 한족 왕조가 작정하고 종족 말살에 나설 수 있기에 매사에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했다.

소수민족이 한족 왕조의 탄압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켜봤자 무수한 희생과 더불어 더욱 척박하고 외진 곳으로 강제 이주당한 역사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산국 국왕이 직접 와서 군대를 소집하라고 지시했기에 족장들은 몹시 놀랐다.

“물론이오. 한족 말고 다른 종족들은 얌전하지 않소?”

“그렇지요. 하하!”

족장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고산국과 명나라 남부의 소수민족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로 예전에 이미 뜻을 나누었다.

소수민족들이 원하는 것은 왕명명이 부리는 수하들을 통해 비밀리에 전달 받았다. 과한 요구는 왕명명 선에서 조정됐다.

“지금도 농민 반란군과 도적들을 토벌하고 있는 중이오. 귀주성이나 주변에는 도적이 없소?”

“도적 떼가 설치면 즉각 토벌해서 잡아 죽였지요. 물론 관과 함께 말입니다.”

“일단 군사 천 명을 유지하시오. 그리고 매년 절반을 교체시키시오. 이번에는 특별히 광서성까지 행군을 합시다. 중간에 도적들의 산채가 있으면 토벌도 해가면서 말이지요.”

소수민족 군대 조직을 영구화하려는 목적에서 이런 이벤트를 기획했다. 처음이 어렵지 핑계를 잘 대서 소수민족 군대가 관도를 계속 왕복하면 나중에는 한족들도 그러려니 하게 돼 있었다.

“훈련한다는 의미가 있군요. 혹시 저희들을 앞으로도 직접 지휘해주시겠습니까?”

“그건 어렵소. 당분간 한족 관리의 지휘를 받으시오. 그래야 의심을 덜 받을 테니까 말이오.”

이민호는 명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해 두 종족에서 보병 천 명씩을 징집했다. 소수민족들도 명나라 영토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므로 징집에 응하기로 했다.

“전하! 묘족은 징집하지 않으십니까?”

“이미 원정군에 참가하고 있소.”

“아! 묘족 전사들 일부가 일본, 아니 고산국의 구주라는 섬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답답하지만 함께 하기로 했소. 두 종족도 고산국과 함께 하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마시오.”

“이를 말씀이십니까? 묘족이 이 자리에 없어서 하는 말인데, 강한 종족이라는 자부심에 눈과 귀가 멀어서 합리적이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이민호와 부족장들은 이 자리에 없는 묘족을 실컷 욕했다. 묘족은 한족에 밀려 뒤늦게 남하했기 때문에 먼저 이 지역에 자리 잡은 다른 종족들과 사이가 나빴다.

특히 투자족의 경우 묘족을 견제하기 위해 명나라와 영합하는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명나라는 묘족을 투자족으로 견제하고 해남도의 려족은 묘족을 보내 견제하는 등 이이제이의 원칙을 준수하고 있었다.

사흘을 기다려 두 종족의 전사들이 도착하자 행군 대열에 포함시켰다. 다시 이틀 동안 이들을 훈련시키면서 나머지는 느긋하게 천막에서 쉬게 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최고지휘관인 이민호는 항상 바빴다.

“그 동안 매우 수고가 많았네. 고용주로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구르카 여단을 지금처럼 유지하고 싶네. 군무에 종사하는 동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보고하게.”

“감사합니다, 전하. 강한 군대 안에서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봉급이 많아서 더더욱 좋습니다.”

상사 계급장을 단 구르카 여단의 중대장들을 모아 식사를 함께 했다. 몇몇 작은 문제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봉급을 비롯해 충분히 만족하기에 중대장들은 문제 제기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했다.

“유일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저희 동족들을 좀 더 많이 고용해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고산국 군에 응시하려는 대기자들이 많아 매년 임용 시험을 볼 때마다 경쟁률이 치열합니다.”

“지금은 전쟁이 없지만, 아마 조만간 병력을 늘릴 필요가 있을 거야. 2, 3년만 기다려보게.”

이민호가 아는 것은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몇 십 년 안에 명나라가 망하고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뿐이었다. 특별히 고산국이 전쟁을 일으킬 일은 없으므로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했다.

이민호도 정보국과 참모본부의 도움을 받아 나름대로 명나라와 유럽의 내부적 모순을 누적시켜 문제가 빨리 터지도록 어느 정도 배후조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몹시 어려웠다. 만약 큰 전쟁이 일어날 낌새가 보이면 구르카 용병도 두 배 정도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전하.”

“말해보게, 상사.”

구르카 2여단의 주임상사가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민호는 느긋이 기다려주었다.

“아주 춥고 척박한 땅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혹시 저희들이 사는 땅도 다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저희들은 주로 카트만두 계곡의 네 왕국이나 구르카 왕국 출신입니다. 자그마한 땅을 두고 오래도록 서로 싸우는 것은 모두가 공멸로 향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병력을 동원해서 자네들의 고향을 침략할 수는 없지 않나? 자네들은 그 나라 백성이니까 반역행위가 될 수도 있어.”

이미 예상한 질문이고 미리 준비된 답변이었다. 만약 이민호가 인도 아대륙에 관심이 있었다면 주임상사의 제안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벵골 지방과 네팔을 장악하면 인도 나머지 지역을 정복하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산국에게 인도는 필요가 없었다. 대영제국처럼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세금을 받고 원하는 작물을 키우도록 강요한다 해도 지나치게 인구가 많아 웬만해서는 적자가 예상됐다. 마찬가지 이유로 중국 땅도 고산국 본토의 안전과 직결되지 않았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답답해서 여쭤봤습니다. 히말라야 작은 나라의 왕들이 전하가 다스리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쪽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쪽 사람들이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도록 하게. 나는 지금까지 일본에 보복한 것 외에는 다른 나라의 영토에 욕심을 낸 적이 없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넓은 영토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정복할 줄 몰랐습니다.”

천막 벽에 달린 세계지도를 보면서 여단 주임상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민호는 원사 계급을 만들까 하다가 말았다. 고산국 통틀어 군 경력이 10년 넘는 사람은 감동과 감불을 포함해도 극히 드물었고, 구르카 용병들은 더 짧았다.

“정복이 아니라 획득이지. 어쨌든 자네들도 지켜봤겠지만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아.”

“바로 그게 불만이면서도 고맙습니다.”

건의한 상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네들이 용감한 것을 알고 있으니 용맹을 과시하지 못해 초조해 할 필요가 없어. 지난번 무창성에서 칼 들고 돌격한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전하. 그 동안 절실하게 반성했습니다.”

죽지 않아도 될 구르카 용병이 세 명이 죽고 다섯 명이 팔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는 중상을 입었다.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군인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강경한 대외정책을 선택할 수 없게 되고, 군에 입대하려는 청년이 대폭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다.

이틀 동안 훈련한 다음 행군 대열에 퉁족과 투자족 병력을 세웠다. 두 종족 병사들은 울긋불긋한 원색의 옷을 입고 고색창연한 철갑이나 가벼운 등갑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명나라 조정에서 화약무기가 민간, 특히 소수민족에게 들어가는 것을 무척 꺼렸으므로 전사들을 화승총으로 무장시키지는 못했다. 환관이 화약을 만들고 전쟁에서 화약군을 지휘하다가 훈련 미숙으로 사용도 못해보고 토목보의 변 때 참패한 경험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 콰쾅! 콰앙! 우르릉~

고산국 군대가 처음 만나는 나라나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동맹군과 함께 행동할 때 항상 하던 짓을 이번에도 했다. 계곡 건너편 바위산에 포격을 가해 야포의 위력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고산국 군대를 은근히 깔보고 싶어 하던 두 종족 젊은 전사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러나 산사태가 나면서 바윗덩어리가 계곡으로 굴러 내려오자 이민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대인! 산이 무너지면서 계곡이 막혔습니다.”

“흠! 야포의 위력이 워낙 강해서 말이오. 저수지로 쓰면 안 되겠소?”

“내버려두면 물길이 막혀 농사를 망치고 장마철이 오면 홍수가 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퉁족과 투자족 전사들 중에서 100명씩 뽑아서 막힌 물길을 트게 했다. 소수민족 전사들이 투덜거리면서 작업에 참가했다. 이민호가 못 들은 척 헛기침을 했다.

그 날부터 산길로 이어지는 관도를 닷새 동안 행군해서 귀양에 도착했다. 귀양성 바깥 평지에 병력을 주둔시킨 다음 이민호는 귀주 포정사 등 명나라 관리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양성에 입성했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고 다음 날부터 이민호는 명나라 관리들과 주둔군의 근무 상태를 살피고 회계장부를 검사했다. 장부를 부실하게 작성한 관리와 공금을 횡령한 위 지휘사에게 곤장을 치고 대규모 농민 반란군에 대비해 성벽 바깥에 양마장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남경에서 관리에 대한 규찰 권한을 이민호에게 부여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다. 앞으로 명나라 남부지방에서 편히 돌아다니기 위해서 이 권한도 상시적으로 보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외성 역할을 할 양마장을 건설하려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건설비도 만만치 않게 들 것으로 예상한 관리들이 반발했다. 자금이나 부역 이야기는 쏙 빼고 건설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관리들이 변명하자, 이민호가 공병대를 시켜서 해자와 양마장까지 이틀 만에 건설을 끝내고 물을 채웠다. 밀차와 삽차가 현장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것을 한족과 소수민족 가리지 않고 수만 명이 몰려와서 구경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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