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66화 (715/1,000)

00766  85. 1606년 장강에서  =========================================================================

며칠째 반란군의 방해를 받으며 때로는 반란군이 탄 배들과 교전하며 고산국 함대가 장강 상류로 꾸준히 거슬러 올라갔다. 4월 중순에 무한까지 하루거리를 앞두고 저녁을 맞았다. 황석 북쪽 10km 되는 장강의 굴곡에 생긴 섬이 함대가 경야하기 좋은 곳이라 정박하도록 했다.

수송선들을 가운데에 몰아넣고 순양함 두 척씩이 상류와 하류에 배치됐다. 순양함을 겨우 네 척만 동원해서 국왕좌승함이라 해서 안전한 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순양함 네 척은 물론 수송선에서도 견시와 야간 경계조가 사방으로 배치돼 어두운 강물을 감시하고 있었다.

“주애공 대인께서 오늘도 큰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대인처럼 훌륭한 분이 부마도위가 되신 것은 대명의 홍복입니다. 대인이야말로 대명의 만년성세를 위한 기둥 같으신 분이십니다. 실로 대인 덕분에 천하가 든든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고맙소, 병필태감. 오늘 저녁에도 거친 밥과 허름한 채소를 내어서 귀한 분들께 미안하기 그지없소.”

“아닙니다, 대인. 공자께서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아 살아도 즐거움은 바로 그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전쟁 중에 일개 병사들과 같은 식사를 하시는 대인께 몹시 감동했습니다.”

저녁에 손님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이민호는 소화가 안 되고 속이 거북했다. 적당한 인사가 오간 다음 식사를 하는 동안 명나라 고관대작들이 음식을 두고 온갖 불만을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뜻밖에 이들은 고급 재료가 나오지 않았다 해서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다. 다만 요리사의 실력에 가장 관심을 갖고 따졌다.

오늘 저녁에는 명나라 관리들의 입맛에 맞춰주기 위해 조리장이 일부러 볶음밥을 내왔는데, 이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중국 요리에서 볶음밥은 요리사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표준적인 음식이었다.

“차오판(炒飯)은 요리할 때는 강한 화력으로 순간적으로 볶아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밥알을 둘러싼 기름이 한 순간에 불타올라 꼬들꼬들해지며 차오판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좌승함의 숙수는 아마도 불 처리 기술이 떨어지거나, 볶음용 철판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약골일 듯합니다.”

“무엇보다 쌀의 선택이 잘못됐습니다. 찰기가 적은 쌀로 밥을 지어야 고슬고슬한 차오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고산국에서는 찰기가 많은 짤막한 쌀로 밥을 지어먹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다면 뜨거운 밥이 아니라 일정 시간 식혀서 찬밥으로 볶아야 했습니다.”

“달걀이 신선도가 떨어지며 밥알 하나하나를 제대로 감싸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음식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인의 숙수를 남경으로 보내주시면 일 년 안에 훌륭한 숙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요리의 기초는 잡아주겠습니다.”

고관대작이라는 자들이 입맛 떨어지게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흠을 잡았다. 그러나 전쟁을 할 때보다 훨씬 진지하게 말해서 이민호가 딱히 대꾸하기도 어려웠다. 간신히 변명한다는 것이 이 정도였다.

“군선의 조리장이 승조원 100여 명에게 나눠 먹이기 위해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오. 이해해주길 바라오.”

그 조리장이 왕실 요리사라는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조리장은 한식에 특기가 있고 유럽식 요리도 잘해서 원정 때 자주 데려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고관대작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는 어려웠다.

“뭐, 그래도 후식은 아주 훌륭합니다.”

“제가 예전에 조선에 칙사로 갔을 때 맛 봤던 과자와 약간 다른 듯합니다. 재료에 꿀과 우유 발효 식품이 딱 적당한 비율로 섞인 것 같습니다.”

이민호는 명나라 고관들이 전쟁이나 정치에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진 다음에 식도락을 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고산국이 나은 것은 병사들 식사에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재료에 있었다.

“꿀이 아니라 설탕이오.”

“오오! 그 비싼 것을!”

조리실에서 음식을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한 꿀보다 설탕을 주로 사용하게 됐다. 명나라에서는 아직 설탕 값이 비싸서 특별 대우한 꼴이 되었다.

“와아~”

- 펑! 퍼벙!

“또 시작했군.”

반란군은 장강을 따라 이동하며 어디서건 밤마다 함대에 야습을 해댔다. 그러나 함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으면 야습에 나선 반란군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주하기 일쑤였다. 병력의 우세만으로는 고산국 함대의 화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 따다다다닥! 따다닥!

섬 가까이 정박한 수송선 여러 척에서 기관총을 연사하는 동안 이민호는 서둘러 커피를 마신 다음 함교로 올라갔다. 함장 겸 전대장이 전체 함대에 전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함교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비화가 어둠 속에 불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이었다. 갑판에서 터져봤자 아무 문제도 없고 창날이 꽂힌 자국과 그을음만 남았다. 그러나 함교 위쪽 복잡한 상부 구조물에 명중하면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불이 날 때마다 해병들이 소화기를 동원해 즉시 진압했다.

“전하, 오셨습니까? 적이 강이 아니라 섬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섬에서? 온통 평평한 갈대밭인데.”

함대가 정박한 곳은 강이 굽이치며 유속이 느려진 곳에 모래와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평평한 섬이었다. 총격이나 포격을 피할 곳이 없을 텐데 반란군은 병력을 밀어 넣어 함대를 공격하려 했다.

“화공을 해도 되겠습니까?”

“바로 공격하게.”

공격해오는 적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함장이 소이탄 발사를 명하고 몇 초 후에 5인치 함포를 통해 포격이 시작됐다.

- 퍼엉~

소이탄 후보로서 처음에는 백린연막탄을 고려했다가, 그렇지 않아도 화력 과잉인 고산국이 끔찍한 무기를 쓴다고 비난할까봐서 네이팜탄 비슷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천연고무에 휘발유를 섞어 간단히 만들어서 포탄에 가득 채운 무기였다.

포탄이 터진 직후 결과는 그리 파멸적이지는 않았다. 널따란 섬 곳곳에 작은 불씨를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순양함 네 척에서 포격이 지속되면서 불씨가 옮겨 붙은 지역이 점점 늘어났다. 잠시 후 커다란 불이 일어나 바람을 타고 이동했다.

“적이 물러납니다, 대인. 고산국은 화공을 편안히 앉아서 하는군요. 놀랍습니다.”

“불길이 빠를지, 반란군이 물러서는 게 빠를지 모르겠습니다. 아! 역시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명나라 관료들이 감탄하다가 점차 표정이 굳었다. 초반에는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수천 명에 이르는 반란군들이 거센 불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장면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반란군들은 타고 왔던 배들이 모조리 불타오르는 것을 확인하곤 우왕좌왕하다가 일부가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수영을 못하는지 불길에 이리저리 밀려다녔고, 그런 반란군들을 화마가 차례로 집어삼켰다.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비화를 잔뜩 가져왔다가 불이 붙으며 갈대밭 여기저기서 불꽃이 피어났다.

“반란군 무리들이 불에 타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긴 한데, 조금 두렵습니다.”

눈치를 살피는 명나라 고관들에게 이민호가 한 마디 했다.

“황상께 불충한 무리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오.”

“물론입니다! 물론이고 말구요.”

“대인께서는 역시 황제폐하의 첫 번째 충신이십니다. 저희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어서 명나라 고관들이 황제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경쟁하는 고백의 장으로 변했다. 대외적으로 부마도위인 이민호의 충성심을 감히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거의 일방적이었던 전투는 자정 전후에 끝났다. 갈대 섬에서 포격이나 총탄에 맞아 죽은 반란군은 몇 안 되고 대부분이 불에 타서 죽었다. 물에 뛰어든 일부 반란군도 자기들이 원래 수적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침전에 돌아온 이민호를 왕명명이 공손히 맞이했다.

“속이 많이 상하셨나 봐요.”

“아니야. 오늘은 그냥 자자.”

귀찮아서 목욕도 생략하고 그냥 자려 했는데 왕명명이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줬다. 정성스레 닦는 왕명명의 옆얼굴은 꽤나 진지했다.

“할 말 있어?”

“주인님은 사실 반란군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거죠?”

“그렇지 뭐. 정치가 잘못 되는 바람에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봉기한 거잖아.”

“그들은 도적이나 다름없어요. 아니, 도적보다 더 심각해요.”

“맞아. 그래서 반란을 진압해야지.”

반란군이 반란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농민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다루는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지만 반란군은 농민의 생활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도 군대에게 약탈당하고 관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것도 반란 와중에 살아남은 농민들의 몫이었다.

“준비는 됐어?”

“예. 여러 지역의 묘족 외에 다른 종족들에게도 통보했어요. 관의 편으로 나서려니 어색해하더군요.”

“지금 명나라 조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봤자 어떻게 되는지 양응룡이 잘 가르쳐줬잖아.”

몇 년을 끌다가 1598년에 진압됐어야 할 양응룡의 난은 고산국 군대가 개입하면서 실제보다 몇 년 일찍 끝났다. 그 덕택에 예상보다 인명 피해가 훨씬 적었지만, 묘족은 명나라 조정은 물론 고산국에 대해서도 좋을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왕명명은 묘족은 물론 주변 소수민족들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일이 아주 잘 되더라도 분열되겠죠?”

“당연하지. 권력에 욕심을 가진 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항상 바람직하게 사태가 흘러가지는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그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어.”

“변수가 적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번 일본에서 봤지만 묘족도 그리 양반은 아니었다. 이차대전 때 고난을 당한 이스라엘이 건국 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괴물이 된 것처럼, 묘족도 주변의 약소민족들을 상대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고산국이 명나라 영토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길게 봐서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민호의 구상은 광대한 중국 땅을 서너 개로 분할해서 통제하는 것이었지만 변수가 워낙 많아서 고산국 군대가 직접 대규모로 나서야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전후 영토 처리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차라리 주인님이 명나라 황제가 되지 그러세요?”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귀 좀 닦아줘.”

“뭐라고요? 귀두를 닦아달라고요?”

왕명명이 이민호의 바지를 벗기려했고 이민호가 낄낄거리며 막았다. 십 년 넘게 같이 살다보니 농담이나 장난마저 아줌마, 아저씨가 다 됐다.

함대는 다음 날 무한에 도착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장강을 거슬러 오르는 중에 동쪽은 무창, 서쪽은 한양, 한양 북쪽 한수 건너편에 한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었다.

함대 선두에 선 국왕좌승함이 물굽이를 도는 동안 반란군이 장강에 무수히 많은 배들이 띄우고 강가에서 대포를 쏘아서 어떻게든 고산국 함대의 무한 진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함대는 적선들을 밀어붙이고 강변에 배치된 포대를 함포 사격으로 날려버리면서 꾸준히 전진했다.

“공성전이 한창이오.”

“적이 대규모로 증원된 것 같습니다. 10만은 안 될지 모르나 6만은 확실히 넘어갑니다.”

금의위 교위의 설명이 있지 않더라도 반란군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란군과 명군의 전투는 주로 무창 성벽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성벽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운제까지 전투에 투입돼, 반란군이 오래 전부터 무창에 대한 공격계획을 세웠음을 알 수 있었다. 올해에 일어난 반란은 자연스레 일어났다가 규모에 비해 어처구니없게 진압되던 예년의 반란에 비해 훨씬 계획성이 있었다. 어딘가 반란군 지도부가 숨어서 전체를 지휘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대인! 적의 대군에게 포위됐습니다!”

“포위 좀 되면 어떻단 말이오? 함장은 함대의 속도를 높여라!”

겁에 질린 병필태감을 무시하고 이민호가 함대를 강을 따라 계속 전진하도록 지시했다. 지상과 강을 모두 장악한 반란군들이 고산국 함대를 향해 치열하게 총을 쏘았다. 그러나 선두에 선 국왕좌승함은 적선들을 밀쳐내고 반란군이 밀집한 강변에 포격을 가하면서 빠른 속도로 남하했다.

- 쿠웅!

“전하! 적이 물밑에 말뚝을 잔뜩 박았습니다. 적선이 몰려옵니다!”

함장 겸 전대장이 당황하며 보고했다. 수심이 꽤 깊은 곳으로 파악된 곳이었는데도 말뚝이 박혀 있다는 사실에 이민호도 많이 놀랐다. 반란군은 고산국 함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실행에 옮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밀어붙여!”

“기관 최고 출력으로!”

- 끼기기긱~

국왕좌승함의 함수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마찰음이 울리고, 함미 쪽에서도 기관이 과작동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좌승함과 강바닥에 박힌 말뚝들의 대결은 다른 순양함들이 좌승함을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부딪치면서 끝났다.

반란군은 장강 중심에 돌을 쏟아 부어 억지로 수심을 낮춘 지형을 형성했으나, 순양함 정도의 거체를 막으려면 장강의 물길을 돌리는 둑을 만들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말뚝이 줄줄이 박힌 선을 통과하자 무창 성 앞까지 바로 도달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