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60화 (709/1,000)

00760  84. 1605년 루스 동란  =========================================================================

대관식이 끝나고 나서 며칠 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여러 영지에서 보낸 사절단과 회담을 가졌다. 사절들은 대관식을 올린 차르보다는 이민호를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건 것 같았다.

그러나 의전 문제 때문에 차르가 참가하고 사업과 관계된 헤드비히 여왕이 참석해 사절들은 한꺼번에 3개국의 군주를 알현하게 됐다. 신성 로마 제국 남부보다는 발트 해에 가까운 북부의 개신교 지역 영지에서 더 많은 사절단을 보냈다.

발트 해 연안의 한자 동맹 도시들은 겨우 몇 년 만에 덴마크 서인도회사에 경제적으로 거의 종속됐다. 대규모 모피 교역에 이어 대기근 기간 동안 고산국과 서인도회사가 식량 무역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 탓이었다. 그래서 한자 상업도시들은 축하 사절과 즉위 축하 선물만 보내고 대관식이 끝나자 바로 모스크바를 떠났다.

“남의 나라에 와서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해서 미안하오, 차르.”

“아닙니다, 전하.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제게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이민호가 차르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절들과 협의에 들어갔다. 이민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지들이 많은데도 사절들로부터 갖가지 요구 사항이 많았다. 요구 사항을 대충 취합해보니 현재 신성 로마 제국 내륙 지역의 공통적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상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청원을 받았소.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헤드비히 여왕과 북미 여공작이 함께 내린 결정에 따를 것이오. 앞으로도 고산국과의 상품 교역에 관한 웬만한 일은 헤드비히 여왕과 직접 논의하는 편이 빠를 것이오.”

“예전에는 한자 동맹 도시들의 독점과 횡포 때문에 내륙 지방의 상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덴마크 서인도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활동 영역을 마구 넓혀서 내륙 지방을 영업권으로 둔 독일 상인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여러 영지에서 보낸 사절단이라면서 마치 상인 대표들처럼 애원했다. 이민호가 헤드비히와 눈을 마주치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민호가 사절들에게 대답했다.

“그럼 내륙 지방 상인들하고 거래를 금지시킬까요?”

“헉! 아닙니다, 전하! 다만 내륙에서는 운송비가 많이 드니 가격을 조금 낮춰달라는 요청입니다.”

“영지나 자유시를 통과할 때마다 세금을 내니 가격이 오르고, 내륙 지방 사람들이 상품을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 되는 것 같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이민호라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통일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상업 활성화를 위해 고산국에서 신성 로마 제국을 통일시켜준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모든 관세를 폐지하는 독일관세동맹은 나폴레옹 패망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19세기 전반에 차차 확장됐지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충돌하는 원인이 됐다. 독일연방이 탄생한 이후인 19세기에도 어려운 일을 17세기 초반에 추진하기는 불가능했다.

흔히 독일인, 게르만 족이라고 부르는 인종집단은 독일어 사용자라는 공통점 외에는 명확한 실체가 없는 다양한 부족집단들의 총체였다. 시저의 <갈리아전기>나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서 처음 언급되기 이전의 게르만 민족사는 불분명한 것이 많고, 중세 이후에도 분열을 거듭해 통일성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 역사학자들은 독일 역사의 시작을 843년 동프랑크 왕국이 건국된 해, 혹은 962년 신성 로마 제국이 성립한 때, 심지어 나폴레옹의 침략 이후에 독일 민족이 탄생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나치 독일에서는 5천년 역사, 일만 년 역사를 부르짖었지만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는 없었다.

“내륙 지방의 상업 활동에 결정적 장애가 되는 관세는 주권과 관련된 권리라서 뭐라 하기 어렵소.”

“내륙에 위치한 몇몇 작은 영지를 고산국 소유로 하고, 주변 통로에 위치한 영지들과 비관세 동맹을 맺으면 좋겠습니다.”

이민호가 신성 로마 제국 지도를 살폈다. 상업의 중요성을 알고 상공업을 통해 건국하고 확장을 거듭한 이민호는 강줄기마다 세워진 요새에 진절머리가 났다. 영주들이 강변 요새마다 대포를 배치해 하는 짓이라곤 강을 지나가는 상선들에게서 관세를 빙자한 통행료를 뜯어내는 것이었다.

“통행로 주변 영지들과 강압적으로 비관세 동맹을 맺으란 말이오? 고산국이 침략자로 지탄받을 것이오.”

“저희들은 얼마든지 고산국에 협력하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소. 일단, 발트 해에 연결된 슈테틴을 통해 내륙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겠소. 브란덴부르크의 베를린을 상업거점으로 삼으면 어떻겠소? 여기 혹시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 변경백이 보낸 사절이 있소?”

“저, 접니다, 전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에서 파견한 사절이 바짝 긴장하며 일어섰다. 브란덴부르크 귀족은 프로이센을 박살내고 슈테틴에 함대를 들이밀어 베를린을 침공하려 했던 고산국에 큰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베를린에서 외국에서 수입하는 식량에 한해 무관세, 기타 상품에 대해 관세 1할을 징수하면 어떻겠소?”

“저, 관세는 변경백령의 주요한 수입원입니다. 그렇게 많이 깎아주면 영지를 운영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보시오. 이렇게 남의 영지에는 상품이 무관세 통과하길 바라면서 자기 영지에서는 관세를 받길 원하오. 이런 식이면 신성 로마 제국의 상업은 지금처럼 계속 퇴보할 수밖에 없소.”

누구나 자유로운 상품 유통을 원하지만 손해는 보기 싫어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다 같이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를 살펴보니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브란덴부르크가 얻는 실질적인 수입은 많지 않았다. 교역량 자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종 수공업 길드에서 비관세 특권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관세제도가 이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고산국 국왕전하! 변경백께서는 지난 번 프로이센에 관련된 일로 인해 고산국 국왕전하께 부채 의식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세를 철폐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알았소. 그럼 브란덴부르크에서 얻는 일 년치 관세 수입의 절반을 고산국에서 보조해줄 테니 앞으로 일 년 동안 비관세 무역을 해보시오. 그 이후에 과연 관세를 징수해 수입을 얻는 게 이익일지, 아니면 비관세 자유무역이 이익일지 변경백령 입장에서 판단해보시오.”

“그렇다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변경백께 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좋소. 사절들은 들었소? 올해 하반기부터 브란덴부르크에서 비관세 무역을 실시할 것이오. 덴마크 서인도회사에서 주로 브란덴부르크를 통해 상품을 하역할 테니 여러 영지의 상인들은 이곳을 통해서 내륙 지방의 무역을 추진하도록 하시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이라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령이기도 하고 나중에 프로이센 왕국으로 발전하는 큰 영지였다. 그런 영지의 관세 수입 절반을 보조해준다는 이민호의 통 큰 선언에 놀랐다.

“시험적인 성격의 시도인 것 같습니다만, 제 예상이 맞습니까?”

“그렇소. 브란덴부르크에서 비관세 무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차차 비관세 영지를 늘려나갑시다. 비관세동맹에 찬성하는 영지는 브란덴부르크와 먼저 비관세 협정을 맺으시오. 덴마크 서인도회사와 고산국은 자동으로 참가하겠소.”

주로 독일 북부 지역에서 온 사절들이 웅성거렸다. 한참 동안 자기들끼리 협의하더니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비관세 동맹을 추진해보기로 합의했다. 비관세가 오히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다. 다만 자기들이 먼저 손해 볼 수는 없다는 이기주의가 앞섰을 뿐이었다.

“이번 일과 상관없이 전하께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민호에게 선물이랍시고 헐벗은 여자 노예 두 명을 바쳤다. 알비노라 부르는 백색증이었다. 황인종은 물론 백색증 흑인도 봤던 이민호 입장에서는 백인 백색증이 전혀 신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인들과 외형적으로 가장 차이가 적은 경우에 불과했다.

둘은 자매인지 벌거벗은 채 서로 껴안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불쌍했다. 눈 색깔이 특이하게도 하나는 붉은색, 작은 쪽은 보라색이었다.

“이들은 뭐요? 고산국에는 노예제가 불법이오.”

“전하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노예는 분명히 아닙니다.”

11세기에만 해도 유럽 전역에 노예제도가 있었다. 잉글랜드에도 11세기에 인구의 1할이 노예들이었고, 농민들이 영주에게 노역을 제공하는 대신 토지 보유권을 갖는 제도(socage)는 1660년까지 지속됐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노예제를 금지시키거나 최소한 기독교인이 비기독교 지역에 노예로 팔려가는 것만이라도 막으려고 노력했다. 수차례 공의회를 열어 노예제 금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노예제가 사라졌다.

그러나 1452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무슬림과 대립하면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국왕들에게 무슬림과 이교도, 불신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이들을 노예로 삼을 권리를 주고 전쟁에 의한 노예 획득과 매매를 합법화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이 양보를 통해 줄기차게 유럽의 평화를 추구한 것과 정반대 정책이었다. 그러나 1537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미 대륙 원주민의 노예화를 금지하는 등 교황마다 노예 정책이 엇갈렸다.

1551년 한 해에만 10만 명의 노예가 카잔한국으로 잡혀갔고 수백 년 동안 매년 일만 명 이상이 크림한국이나 노가이한국에 노예로 약탈당한 루스 차르국에도 사실상의 노예제가 존속했다. 땅을 매개로 한 농노와 달리 콜롭(kholop)은 직접 주인에게 속한 공짜 노동력 제공자였다. 하는 일은 하인과 같으나 주인이 마음대로 죽이거나 남에게 팔 수 있는 콜롭은 18세기 전반 이후 농노로 전환됐다.

“색안경을 끼게 해줘라.”

호위들이 벌거벗은 여자노예 둘에게 비단을 감싸주는 동안 이민호가 거들었다. 햇빛이 직접 비치지 않는 실내라 해도 밝은 실내조명 때문에 알비노들에게는 눈부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색안경을 처음 써본 알비노들이 무척 신기해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리투아니아에 살던 농민의 딸이옵니다. 타타르인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 다니다가 이곳까지 왔습니다.”

“리투아니아 사람이라면서 러시아어를 잘하네?”

“부모가 루스인입니다.”

“리투아니아 말은 잘해?”

“남들 하는 만큼 합니다. 마을이나 읍내에서 리투아니아를 사용하고, 집에서는 러시아어를 씁니다.”

“인재네. 고산국에 갈래? 이제부터 노예가 아니니까 스스로 결정해. 색안경은 물론 햇빛이 닿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줄게. 대신 리투아니아어 사전을 만들고 리투아니아어로 된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해야 할 거야.”

이민호가 둘과 대화를 해서, 낮에는 공부하면서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어 번역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밤에는 부업으로 주상아 공주 밑에서 화장품 모델을 하라고 권했다. 완전한 백색 캔버스를 얻었다고 주상아가 기뻐할 것으로 기대했다.

알비노 둘은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부모는 물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마을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비싸다고 소문 난 색안경을 계속 쓰고 싶어서 따라오기로 했다.

형제자매 혹은 남매 중에 둘 이상이 알비노일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어디서든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아 고산국에서 거두기로 했다.

“무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기나긴 전쟁을 치르느라 끔찍했었는데 이제야 힘이 납니다. 나중에 고산국 국왕전하와 차르께 사절을 보내겠습니다. 저번에 차르께서 제안하신 것을 추진해야지요.”

“물론입니다. 스웨덴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전쟁터를 오래 비울 수 없는 스웨덴의 카를 9세가 가장 먼저 전마에 올라타고 크렘린을 떠났다. 아무리 가까운 리보니아라지만 적이 출몰하는 지역을 뚫고 얼마 전까지 적국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기병 30명만 끌고 온 카를 9세의 용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과 아이슬란드 여왕 헤드비히도 마차를 타고 떠났다. 그 사이 크리스티안과 함께 베네수엘라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다. 펠리페 3세에게 영토 할양을 제안하기 전에 먼저 주변 권신들부터 뇌물을 주어 구워삶기로 했다.

마차에 타려다가 다시 내린 헤드비히가 이민호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민호가 헤드비히를 다시 꼭 안아줬다.

“이럴 줄 알고도 당신을 선택했는데, 역시 가슴이 아파요.”

“나도 그렇소. 얼른 당신의 배가 부르길 바라겠소.”

“그럼 좋겠지만 당신만 있으면 상관없어요.”

그러나 여자들은 임신하거나 출산하면 아기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남편을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번에 헤드비히의 가임기가 겹쳤으니 좋은 소식을 기대해볼 만했다.

헤드비히는 혜영이나 혜진처럼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거나, 주상아 공주나 파티마 같은 특별한 미인, 혹은 여진족 호위들처럼 항상 이민호에게 붙어 있는 여자들에게 질투하지 않았다. 헤드비히는 비올레타와 민영, 최 선생처럼 이민호가 마음을 나누는 여자들에게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자는 남자가 성관계를 가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정서적 유대를 가진 여자에게 질투하기에 오히려 일부다처제가 더 쉽게 유지 가능했다. 그러나 한 여자에게 사랑을 쏟으면 나머지 모든 여자들에게 심한 상처를 준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민호는 더욱 조심하기로 다짐했으나, 헤드비히처럼 애정표현을 과하게 하는 여자 앞에서는 마음가짐이 흔들렸다.

“힘들면 언제든 왕궁으로 와도 좋소.”

“그곳엔 제가 있을 자리가 없잖아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행복했어요. 내년에 또 만나요, 내 사랑.”

헤드비히가 이민호에게 입맞춤한 다음 다시 마차에 올랐다.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토르구트 족도 본거지로 돌아가기 위해 숙영지를 철거했다. 2만이나 되는 대군이 생활했던 곳이었으나 천막을 치우고 나자 놀랍도록 깨끗했다. 고산국 군악대가 연주하는 가운데 토르구트 기병들이 대열을 맞춰 남동쪽으로 행군했다.

“전하! 모스크바는 상당히 뒤떨어진 도시라고 들었는데도 사실은 꽤나 번화한 곳이더군요. 단순한 돌담집들이 모인 것에 불과한 크림한국의 도시들보다 장중한 느낌입니다.”

“혹시 타이지도 도시를 건설하고 싶소?”

명나라 변경 도시나 타타르 여러 도시들을 봤던 타이지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이민호는 타이지 코오를룩이 모스크바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유목민에게 도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고정된 상업 및 군사 거점으로서 성벽을 갖춘 도시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유목민 국가에 가장 모범적인 도시를 우리 함께 설계해보지 않겠소? 일단 수도에 걸맞은 넓은 지역을 골라야겠소.”

“저, 전하. 별로 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요? 유목민들이 사는 비단길 지역인 천산 북로나 남로에도 거대한 도시들이 있지 않소? 나라가 번창하느냐 마느냐는 농촌보다 도시의 성쇠로 판가름 나는 법이오.”

일중독자 같은 이민호가 오아시스 도시들을 유목민의 도시라고 사기를 치며 타이지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13세기 전성기 때 몽골 카라코룸의 경우 사방으로 성벽을 둘렀다지만 대제국의 수도로서의 중요성에 비해 상주인구나 규모 자체는 농경국가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토르구트가 차지한 영역은 전형적인 스텝 지역이었고 강을 교통로로 사용하기 어려운 한창 내륙 지방이었다. 그러나 상업 및 군사 거점만이 아니라 행정과 교육, 의료 등의 중심지 역할을 맡을 지역이 필요해 수도뿐만 아니라 몇 군데에 작은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카자흐한국과의 국경을 영구적으로 확정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토르구트가 도시의 편리함에 안주해 유목민 기병의 장점을 잃으면 고산국으로서도 크게 손해였다.

============================ 작품 후기 ============================

말이 러시아지 동유럽과 북유럽 전체에 대한 정책 조율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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