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56화 (705/1,000)

00756  84. 1605년 루스 동란  =========================================================================

차르의 대관식 날짜인 6월 10일을 며칠 앞두고 여러 나라에서 보낸 즉위 축하 사절단들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당연하겠지만 덴마크의 요한 왕자와 크세니아의 결혼식 때보다 더 많은 외국 사절들이 온 것 같았다.

외국 사절들은 차르와 회담을 할 때마다 옆에 앉은 사람을 더욱 신경 쓰게 됐다. 표도르 2세 옆에 이민호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차르를 협박해서 고산국 군대를 루스 차르국 영토에서 몰아내려고 계획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사절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폴란드 귀족들이 가짜 드미트리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기에 외국군이 루스 차르국의 내전에 개입했다고 항의하지도 못했다. 이번에 포로가 된 폴란드 귀족들이 조상들의 이름과 일대기까지 줄줄 외우면서 진짜 폴란드 귀족임을 폴란드와 모스크바에 입증했기 때문이다.

“고산국과 전쟁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결코 국가적으로 참전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국경 지역의 마그나트나 심심한 슐라흐타들이 자비를 들여 루스 땅으로 여행한 것뿐입니다.”

“여행이라고요? 훗! 어쨌건, 폴란드 귀족들의 몸값을 가져왔소? 이번에 전쟁비용이 많이 들어서 말이오.”

“포로가 된 귀족 가문들이 모은 돈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고산국이 참전한 것도 모르고 구경 갔다가 날벼락을 맞은 귀족들이 많더군요.”

이 시대 유럽에서 왕이 아닌 귀족이 포로가 될 경우 몸값을 그리 많이 받을 수는 없었다. 귀족들이 자기도 언젠가 전쟁터에서 포로가 될 것을 감안해서 몸값이 치솟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의 몸값만으로는 전쟁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포로는 또 있었다.

“후사르와 보병, 포병 포로들도 몸값을 내고 인수하겠습니다. 물론 치료비와 그 동안 들어갔을 숙식비, 장비가 남아있을 경우 장비 가격도 지불하겠습니다. 자포로제 코사크와 북유럽 용병들도 저희들이 동원한 만큼 후사르 몸값의 절반을 내겠습니다. 돈 코사크는 약탈할 기회를 노리고 참전했기에 저희가 책임을 지지 않겠습니다.”

“책임감이 있구려. 아주 좋소. 하지만 북유럽 용병들은 빼시오.”

폴란드 자체가 농업국이며 식량 수출국인데 이 시기에 식량 생산력이 높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까지 차지해서 매우 부유한 편이었다. 루스 차르국이 3년 연속 대흉년을 맞이했을 때도 폴란드는 식량 사정이 크게 나쁘지 않을 정도였고, 물량이 대폭 줄어들긴 했으나 곡물수출이 중단되지 않았다.

그러나 폴란드 귀족들에게 자금이 남아돌면서 하는 짓이 전쟁 아니면 사치, 아니면 국왕에게 특권을 제한받는 귀족이나 월급을 못 받은 병사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인 반란이었다. 폴란드 귀족들이 재미로 주변 나라들과 싸우다가 미움을 받아 나중에 분할되느니, 지금부터 자제를 하도록 압박을 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폴란드 귀족들은 잉글랜드처럼 눈치가 워낙 빨라서 고산국과 직접 전쟁을 하려들지 않았다.

이민호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에 관심을 둔 것은 순수하게 루스인들의 독립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다. 폴란드의 힘을 꺾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용병들을 처형하실 모양이군요.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어쩔 수 없지요. 잘 알겠습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사실은 전혀 아니지만 유럽에서 이민호의 이미지가 남의 나라 영토에 관심은 없어도 전쟁 중에 상당히 잔인하다는 쪽으로 형성돼 있었다. 항구도시 여기저기 포격을 가하고 해적들을 때려잡고 해서 잔인한 군주로 비쳐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외교 현장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시작하는 장점이 있었다. 어느 나라든 강하고 호전적인 나라와의 전쟁은 일단 피하고 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분 없는 전쟁을 하지 않았기에 국제 외교가에서 어느 정도 신뢰를 쌓았다.

“참! 차르로 등극하신 표도르 2세 왕자님께 축하 말씀을 올립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께서 전하는 선물을 바치겠습니다.”

“잊어먹을 뻔했구려. 즉위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었소?”

“풋!”

이민호가 비꼬자 폴란드 사절들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표도르 2세가 기어코 폭소를 터뜨렸다.

“험! 이웃나라끼리 친하게 지내도록 하시오. 루스 차르국과의 국경을 확인하시오.”

이민호가 탁자에 내려놓은 지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루스 차르국 등 동유럽의 현재 국경이 표시돼 있었다. 흑해와 아조프 해 북쪽 크림한국 주변의 영역이 약간 불분명하고 오스만 제국의 요새 관할 지역이 직할령인지 단순한 파병인지 애매했지만 그 외에는 매우 정밀하게 제작된 지도였다.

“리투아니아 영토 안에 다른 색깔로 그은 선은 무엇입니까? 폴란드 국경에 걸쳐 다른 선도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소.”

“전하! 벨로루스와 우크라이나라뇨. 이들은 나라를 세운 적이 없는 피지배자 농민들일 뿐입니다.”

“어느 국가의 영토가 아니라 민족별 거주지역일 뿐이오. 루스 차르국 영토 안에도 여러 코사크들이나 소수민족들의 영역이 표시돼 있지 않소? 심각하게 여길 필요 없소.”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인들은 루스인과 인종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폴란드 사절단은 루스 차르국에서 언제든 서쪽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우려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실제 역사에서는 1650년대에 약화된 폴란드를 상대로 루스 차르국이 적극 개입해 벨로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차례로 할양받거나 분할해서 영토로 흡수한다.

“차르도 한 마디 하시오.”

“예, 전하. 사절들은 들으시오. 선물을 잘 받았다고 폴란드 국왕께 전해주시오. 그리고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말씀하시길,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 사람들이 폴란드로부터 핍박받을 때 동족으로서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고 권하셨소. 본 차르는 전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오.”

“하오나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폴란드의, 아니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입니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전형적인 놀부 심보가 폴란드에도 작용했다. 원래 14세기에 리투아니아가 영토를 대폭 확장하고 리투아니아 대공과 폴란드의 어린 여왕이 결혼하는 식으로 동군연합이 됐지만, 나중에는 사실상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를 흡수, 합병한 셈이 됐다. 20세기 전반 리투아니아가 독립할 때 침공해서 영토를 빼앗아간 나라가 폴란드였다.

“물론이오. 그래서 본 차르도 굳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해가면서 루스인의 해방과 통합을 부르짖지는 않을 것이오.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루스인들을 잘 보살펴준다면 굳이 전쟁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덴마크, 스웨덴의 영토 탈취뿐만 아니라 흑해 연안 유목민들의 약탈에 시달리던 루스 차르국이 공세로 전환한 척했다. 가만 놔둬도 차차 전세가 역전돼 루스 차르국에 유리하게 되겠지만 고산국이 개입하면서 역전의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다. 대신 루스 차르국은 영토 확장도 금지됐다.

새로운 차르가 내정 개혁에 착수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유사시 방어에 그치지 않고 서쪽으로 진출할 가능성을 보인 것만으로도 폴란드 사절단들은 큰 걱정거리를 안고 돌아가게 됐다. 폴란드에서 방어를 먼저 신경 쓰느라 루스 차르국을 선제공격하지만 않으면 일단 성공이었다.

그 다음으로 알현을 요구한 자들은 폴란드 국왕 시기스문드로부터 지원을 받는 폴란드 예수회 수도사와 선교사들이었다. 가짜 드미트리를 지원해 루스 차르국 전체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던 선교사들은 고산국의 개입에 무척 실망했다.

“교황청과 고산국이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국왕전하께서 직접 참전해 방해하시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루스인들의 차르를 가톨릭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꿔서 루스인들 전체의 개종을 노리다니, 그것이 더 놀랍소. 지금까지 가톨릭이 정교회와 잘 지내온 것은 다만 위장에 불과했소?”

차르는 이번에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그러나 어린 차르가 감당하기 어려운 종교 문제라서 이민호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예수회는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의 자발적인 통합을 추진하다가, 루스인 민중들이 반발하자 차르와 귀족들을 개종시켜 흡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협의를 통한 교회 통합을 내세웠다.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의 통합은 하느님이 역사하신 일입니다. 성전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전하께서 방해하셨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역사하셨다고 누가 그래요? 신탁이 내렸다는 증거를 내놓으시오. 선교사 당신 개인의 생각이 무조건 하느님이 뜻이라는 말이오?”

논리가 막히면 어린놈이 함부로 나선다거나 늙은이가 생각하는 것이 꽉 막혔다고 비난하듯이 성직자들은 흔히 하느님을 들먹였다.

“신성모독이오! 하느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선교사가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 같소. 진짜로 하느님의 역사였다면 내가 방해했더라도 이루어졌겠지요. 선교사는 하느님이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를 통합시키라고 명했다는 증거와 교황이 신탁이나 기적을 인정하는 서류를 가져오시오.”

폴란드의 예수회 선교사들 입장에서 가짜 드미트리 사건은 루스 차르국을 정교회에서 가톨릭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여러 공작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가톨릭을 권력기반으로 삼아 다른 종교를 믿는 폴란드 귀족들을 핍박하는 폴란드 국왕 시기스문드와도 적극적으로 야합했다.

루스 차르국 궁정에서 차르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민호와 아무리 말다툼을 해봤자 반란은 이미 실패한 일이었다. 선교사와 수도사들은 반란군에 종군했다가 붙잡혔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데리고 대관식 전에 돌아갔다.

“괜히 저를 도와주시다가 교황청과 관계가 나빠질 것 같아 걱정됩니다.”

“걱정 마. 가만 놔둬도 어차피 관계가 나빠질 테니까.”

지난 5월 16일에 선출된 새로운 교황 바오로 5세에 대한 성향 분석이 끝났다. 전임자 레오 11세가 즉위 후 26일 만에 선종하는 바람에 추기경들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선출됐으나, 역시 나이는 성향과 관계가 없었다.

교황 바오로 5세는 매우 완고하고 고집불통이라 외교관보다는 법률가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던 성직자였다. 교회의 특권을 지키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또한 교회 재판권을 확장하면서 여러 나라의 세속 정부들과 충돌했다. 결국 교황 재위 일 년도 되지 않아, 살인과 학대행위 등을 저지른 성직자 두 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베네치아를 파문시켰다.

새로운 교황으로 바오로 5세가 선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민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분간 고향 이탈리아에 가지 말라고 갈릴레오에게 당부한 일이었다. 잘못하면 갈릴레오가 이단심문소에 체포돼 화형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급속히 보수화되면서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을 연출했다.

“전하께서 건국 후부터 지금까지 가톨릭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옛날 일이야. 그리고 모든 종교를 똑같이 대우했을 뿐이야.”

“1600년의 성지 순례를 성공시키면서 전하께서 성인으로 시성되느니 마느니 말이 많습니다. 지금처럼만 관계를 유지해도 로마 교황청에 크게 도움이 될 텐데 설마 전하와 대립하려 하겠습니까?”

“나는 가만히 있더라도 로마교황청에서 나를 공격할 거야. 나는 가톨릭교도가 아니니까.”

새 교황의 성향을 파악한 고산국 정보국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 가톨릭 세력이 강한 에스파냐와 프랑스, 이탈리아와의 교역량이 대폭 감소할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로마교황청에서 독립적이라 크게 염려할 것은 없었다.

“다른 교황들은 고산국과 긴밀히 협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서 종교나 국가나 지도자의 성향이 중요한 거야. 웬만큼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면 상관없는데, 극단적인 원리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할 경우 피차 아주 피곤해질 수 있어.”

교황 한 사람 바뀐 것뿐인데 로마교황청과 관계가 무척 많이 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산국이 건국 초부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으로는 이제 로마 교황청의 성에 차지 않았다. 국왕부터 농민까지 남김없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고산국은 기독교 국가의 보호자 혹은 협력자가 아니라 힘만 센 이교도 국가일 뿐이었다. 교황청의 입김이 미치는 지역에서 앞으로 어떤 손해를 보게 될지 몰랐다.

이민호는 지중해의 평화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반면에 열렬한 가톨릭교도인 에스파냐 왕실은 로마교황청을 수하 정도로 여기기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걸핏하면 이탈리아 땅으로 쳐들어갔던 프랑스도 별 문제가 없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교역량이 줄어들 이탈리아 여러 나라가 아니라 유럽 전역에 지점을 둔 당시 유일한 국제은행, 몰타 기사단이었다. 이민호는 교황의 성향이 파악된 즉시 몰타 기사단에 투자된 자본을 인출했다. 이교도보다 경멸받는 무신론자 이민호 개인의 자금은 물론, 신교도 국가인 덴마크 서인도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자금도 인출했다. 아무래도 국제적인 영업망을 갖춘 은행을 하나 차려야 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가끔 영문 자료 해석하느라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한 회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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