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55 84. 1605년 루스 동란 =========================================================================
6월 10일로 예정된 차르 대관식 전까지 연합군은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보야르들을 차례로 진압했다. 가짜 드미트리가 모스크바로 진군하는 동안 지방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보야르들에게 먼저 차르의 이름으로 전령을 보내, 당장 반란을 그만 두고 모스크바로 올 것을 종용했다. 대부분 보야르들이 차르의 대관식 축하 선물을 싸들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러나 가짜 드미트리를 진짜인 줄로 믿거나, 차르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보야르들은 항복을 거부했다. 부하들이 보야르를 살해하거나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보야르를 추방한 경우도 있었으나 몇몇 보야르들은 끝까지 버텼다.
아직도 루스 군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이민호가 반란이 지속되는 지역마다 연합군을 파견했다. 장갑차 중대와 구르카 대대, 루스인과 토르구트 혹은 노가이를 섞은 혼성 기병 연대 수준으로 나눠서 몇 곳에 보냈다. 5월 말이 지나면서 진창도 거의 말라 기동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연합군 병력이 도착한 순간 세 부족을 느끼고 금방 항복했다. 고산국 장교가 맡은 연합군 지휘관은 보야르와 가족들을 마차에 태워 모스크바로 보냈고, 차르에게 강제로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틴 몇몇 보야르들은 연합군과 끝을 보았다. 야포 사격 몇 발에 목책과 성채가 무너지고 지방 스트렐치들이 모여서 버티는 곳에 기관총 사격이 맹렬히 가해졌다. 전열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도망치는 순간 기병이 투입돼 추격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사이 구르카 용병들이 무너진 성채로 들어가 보야르를 사살하거나 생포했다.
전투가 벌어진 여섯 곳에서 보야르들이 모스크바로 끌려왔다. 네 곳에서는 산 채로, 두 곳에서는 보야르와 후계자의 머리만 도착했다.
“그냥 귀족이라 하지 굳이 보야르라고 구분할 필요가 있나?”
“동유럽의 보야르는 다른 유럽 귀족들과 성격이 좀 다릅니다. 슈이스키 가문이나 로마노프 가문은 공의 칭호를 받는 귀족이라 예외로 두더라도, 보야르를 일반적인 유럽의 토지 세습 귀족과 일대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민호는 곧 대관식을 치를 표도르 2세와 함께 그 동안 반란에 가담했거나 차르에게 협조를 거부했던 보야르들에 대한 처분을 논의했다. 일종의 살생부가 탁자에 놓여 있었다.
“군주의 수행원으로 시작해서 병력을 동원하는 군사 지휘관이었다가, 지금은 토지를 세습하는 지주이며 궁정의 대신. 똑같잖아?”
“9세기의 드루지나에서 시작해서 상급 드루지나는 보야르가 되고 하급 드루지나는 드보리아네가 됐습니다. 보야르의 명칭에 역사성이 있고, 법적으로는 차르와 직접 연결되는 독립적인 영주들입니다. 그리고 두마의 의원이기도 합니다. 여러 면에서 조금 다릅니다.”
“알았어. 그런데 보야르를 차르가 임명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조정 대신들을 차르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보야르 가문의 서열에 따라 임명하는 식이군. 차르와 보야르가 서로를 견제하는 셈이야.”
가문의 서열에 따라 공직에 임명하는 메스트니체스트보 제도는 실제 역사에서는 1682년에 폐기됐다. 그러나 보야르가 여전히 관료제에서 우위를 갖고 있었다.
1714년 표트르 대제가 칙령을 통해 보야르에게 분급한 포메스치야와 개인 재산인 보트치니 등 토지 구분을 폐지하고 관등표를 제정함으로써 보야르를 사실상 해체시켰다. 그리고 관직에 오른 사람이나 공장 운영 등을 통해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귀족이 되는 길을 열었다.
“제가 재위하는 동안 천천히 보야르의 권한을 제한해 나가야겠지요?”
“장기적으로는 보야르 계급 자체를 없애야겠어. 지나치게 독립적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언제든 반격을 가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
“형님이 저를 지켜주셔야죠. 작고 탄탄한 구르카 군인들이 마음에 듭니다.”
“크렘린 경비대 1개 중대만 지원하겠다. 구르카는 용병들이니까 월봉을 차르가 직접 지급하도록 해. 주둔비는 따로 청구하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쿠만인 중심으로 호위대를 운영하는 게 좋을 거야.”
보리스 고두노프의 시신을 크렘린까지 운반한 고산국 의원이 유명했지만, 그 일로 쿠만인 호위들의 충성심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쿠만인은 호위 임무 중에 모스크바 시민들을 가혹하게 대하더라도 고용주로부터 확실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고용주가 아닌 현지 주민들을 임무 중에 혹독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 구르카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한 정치적 부담은 고용주가 져야 했다.
“저도 이번 일로 쿠만인들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모스크바로 잡혀온 보야르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런 문제야 차르가 대신들과 논의한 다음 직접 결정할 일이지.”
“에이~ 아시면서.”
차르의 정식 대관식까지는 사실상 이민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분위기였다. 모스크바 시내와 외곽에 주둔한 병력이 루스인 기병까지 포함해 10만이 넘었기 때문이다. 이민호가 서류를 들고 읽었다.
“끝까지 저항해서 전투에서 포로가 된 자들은 사형, 군대가 영지에 도착한 다음에 항복한 자들은 신분 강등과 차르의 토지인 포메스치야 회수, 칙서를 가진 전령이 도착한 이후 항복한 보야르는 경고와 세금 인상, 그 전에 투항한 보야르는 용서. 고산국 참모본부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권하는군. 대관식 날에 아량을 베풀라고 돼 있어.”
“잠깐, 좀 적을게요.”
“러시아어로 번역된 것이 있어. 이 메모를 들고 대신들을 설득해.”
차르 표도르 2세는 몹시 유쾌한 표정이었다. 어린 차르의 명령에 반발할 귀족들도 이민호가 시켰다고 하면 절대 반대하고 나서지 못할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설득이 아니라 협박이죠. 이 기회에 제가 생각해둔 일도 전하의 위세를 좀 빌어서 추진하겠습니다.”
“약아빠진 녀석! 남들이 보면 내가 차르를 협박해서 개혁을 추진하는 줄 알겠군.”
“들어주실 거죠?”
“이봐, 차르! 정치라는 것은 군주 혼자서 하는 게 아니야. 대신이나 보야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
“하긴, 고산국에서도 혜영님이 총리를 맡고 계시죠.”
“그래. 사실 고산국에서 혜영이 실세고 나는 외지나 돌아다니는 허당이다.”
“큭큭! 앞으로 루스는 원정에 나서기 어려울 테니 저는 내정이나 잘해야겠습니다.”
이민호가 지도를 살피다가 차르에게 내밀었다. 루스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가의 넓은 영토가 표시된 지도였다. 폴란드에 선거로 옹립되는 국왕이 있으나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귀족들의 힘이 강해서 보통 중립적인 의미로 연방국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시기 리투아니아는 현대의 벨로루스 대부분과 우크라이나 일부분을 포함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자랑했다. 이교도를 정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튜턴 기사단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과 보야르들이 성장했으며, 결국 피지배자로 들어온 다수의 루스인들보다는 군사력이 강한 폴란드와 함께 연방을 구성했다.
“우크라이나 지역이나 리투아니아에 사는 루스인들은 어떻게 할 거야?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잖아.”
“키예프 공국 이래 원래는 같은 루스인들입니다만, 아시다시피 폴란드의 군사력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얼마 전에 자포로제 코사크들이 헤트만을 옹립해서 독립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와달라고 모스크바에 사신까지 보냈지만 우린 도와줄 힘이 없었지요.”
루스 차르국 주민들과 벨로루스, 우크라이나는 같은 동부 슬라브인이며 키예프 공국에서 출발했다. 언어도 이 시대에는 방언 정도의 차이에 그쳤고, 많이 바뀌고 난 뒤인 현대에도 말이 거의 통했다.
“루스인이라 해도 다 같은 루스인이 아니야. 앞으로 차르가 모든 루스인의 지배자 같은 칭호는 안 썼으면 좋겠어.”
“동족을 이민족의 지배하에 내버려두고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폴란드의 침공을 불러올 만한 위험한 발언이니까. 하지만 폴란드가 항상 강대국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야. 동족을 구하는 것은 같은 동족의 의무지.”
“하지만 리투아니아나 우크라이나를 영토로 합병하지 말라는 뜻이시죠?”
“그래. 이미 문화나 종교 같은 게 많이 달라졌잖아. 나는 차르가 폴란드로부터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 그러니까 리투아니아 남부를 흡수하지 말고 독립만 시켜줬으면 좋겠어. 물론 정치나 경제면에서 협력을 유지하더라도 말이야.”
민족 문제는 매우 민감한 주제였다. 이로 인해 최악의 경우 차르 표도르 2세가 폐위당할 수도 있었다.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그 문제는 언급 자체를 피해야겠군요.”
“그래. 나는 딱 국경선까지만 지켜줄 테니까, 국경을 넘어가는 문제는 알아서 하되 혼자서 감당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지금으로서야 현재 국경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버거우니까요.”
고산국이 좋은 시기에 간섭해서 앞으로 러시아가 확장되는 일을 막게 됐다. 혹시나 루스 차르국이 이민호의 권고를 무시하고 서쪽이나 남서쪽, 혹은 북서쪽 핀란드 방향으로 팽창하길 원한다면 이민호가 뒤끝을 작렬할 수 있다는 부담감을 안아야 했다.
그리고 루스 차르국 주변국에 고산국 이름으로 통보한다면 주변국들이 알아서 조심하리라고 예상했다. 걸핏하면 루스 차르국으로 대군을 파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내전을 종결시켜준 대가로 전하께서 철도 부설권과 핀란드 만의 항구 개항을 요구하셨지 않습니까? 그게 과연 권리가 되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저희가 철도 부지를 제공하고 침목을 벌채해주는 것만으로 의무가 끝나나요?”
“철도 부설권은 봉사가 아니라 큰 권리야. 모스크바에서 발트 해까지 철도를 연결하면 고산국 본토에서 해로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화물을 운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할 테니 걱정 마. 모스크바에 철도를 연결할 때와 똑같아.”
이민호가 고등학교 다닐 때 했던 질문을 표도르 2세가 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고산국 철도청에서 계산한 건설비와 향후 이용량을 추정해서 개통된 다음 해에 흑자 운영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진정한 종점은 튜멘이 아니었고, 첫 번째 종점이 현대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시기에는 이름도 없는 핀란드 만의 해안이었다.
철도를 건설하면서 루스 차르국에 요구한 것은 선로 주변 부지와 철도 역사 부지, 그리고 선로 침목에 사용할 목재의 벌채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구한말에 일본이 대한제국의 철도 부설권을 강탈하거나 미국으로부터 매입해 철도 건설을 진행했을 때와 비슷한 조건이었다.
일본은 철도 건설 공사를 하면서 조선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적은 임금을 지불하거나 아예 한 푼도 안 줬지만, 이민호는 루스 차르국 기준으로 충분한 임금을 줄 계획이었다. 대한제국에 철도를 건설한 일본의 경우 철도 개통 첫 해부터 384만 3천원이라는, 당시로서 큰 이익을 얻었다.
“지난 대기근 때 철도를 이용해 식량을 대규모로 운반할 수 있어서 철도의 활용도가 확실히 증명됐습니다. 저희가 철도 건설비를 분담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군대와 모스크바 상인들도 철도를 이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자금 사정이 빠듯할 테니 건설비를 분담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철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할 거야. 고산국 상인들처럼 요금을 낸다면 말이야. 아! 군대가 이용할 때는 승객이든 화물이든 반액으로 할인해주마.”
“부담 가는군요. 건설 현장에 농노들을 동원해드릴까요? 부디 사양하지 마십시오.”
“아니. 루스인들을 철도 건설 노동자로 고용할 거야. 그래야 지방에도 돈이 좀 돌지 않겠어? 철도가 완공되면 앞으로 루스인들에게도 좋은 교통수단이 될 거야.”
정치가라면 이런 좋은 조건을 미심쩍어 해야 정상인데 표도르 2세는 미안해하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순진한 소년을 속이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다.
역사와 노동자로 고용될 루스인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 차르에게 영토 내의 철도 노선에 한해 이익의 2할을 떼어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철도 경비를 철도 회사에서 고용한 루스인 기병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런 비용을 제외하고도 철도를 통해 꽤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고, 전략적으로도 철도가 발트 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 작품 후기 ============================
신분제는 쉽게 고치기 어렵습니다. 새 차르가 알아서 여러 가지 개혁 좀 하겠죠.
막대한 건설비에도 불구하고 초기 철도사업이 꽤 많이 남는 모양입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포로 몸값 협상, 예수회와의 협상 등 외교전이 이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