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52화 (701/1,000)

00752  84. 1605년 루스 동란  =========================================================================

전쟁에서 대포가 중요해진 시기였으나 아직 경량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 기동성이 극도로 제한받았다. 그래서 병력이 몇 만이나 될 때도 야전에서는 겨우 몇 십 문을 운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성곽 같은 방어시설에서는 좀 더 많은 대포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진격로 전면, 중앙에 배치된 루스 군 1만 앞에는 대포가 겨우 서너 문에 불과했다.

- 뚜두두둣! 콰쾅!

장갑차에서 적의 야포와 총병들에게 화력을 퍼부었다. 수레에 얹힌 대포가 폭발력에 의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뜨거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뚜껑을 열어놓은 화약통에 불씨가 닿았다. 야포가 있던 곳마다 폭발이 연속되다가 마지막에 강렬한 화염이 하늘로 솟구쳤다.

루스 총병들이 6열에 이르는 두터운 대열로 앞을 가로막았으나 사거리 차이가 커서 단 한 발도 못 쏴보고 대열이 무너졌다. 살아남은 총병들이 검은 모피코트를 펄럭거리며 뒤로 달아났다.

그러나 장갑차 연대가 노리는 것은 전면을 가로막은 적이 아니었다.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선발대 다른 부대들도 아니었다.

장갑차 50여 대와 기병연대, 노가이한국 기병들이 중앙에 배치된 루스 군의 대형을 짓밟으며 뚫고 지나갔다. 창을 앞세운 자, 총을 쏘려는 루스 병사가 가끔 있었으나 장갑차에서 쏘는 기관총에 의해, 혹은 제1 기병연대 병사들의 총격에 사살 당했다.

“루스 군 병사 여러분! 저항하지 말고 어서 물러서세요!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여러분께서 주둔지로 복귀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어요. 차르와 찬탈자가 벌이는 권력 다툼에 말려들어 무의미한 희생을 치르지 말아주세요.”

장갑차에 동승한 에바가 확성기를 통해 선무 방송을 했다. 요란한 총성과 폭음을 뚫고 여자 목소리가 전장에 크게 울리자 루스 병사들이 어리둥절하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나 잿빛 하늘만이 루스인 병사들의 암울한 운명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가이한국 기병들은 뭐하나? 전리품 획득은 나중에 하라고 해!”

- 전하! 이놈들이 도대체 말을 들어먹지 않습니다!

말 타고 달리다가 잠깐 서서 루스 군 전사자들의 시체를 뒤지는 행위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 현장에 한참 떨어진 곳, 루스인 총병 소수가 남아서 방어하는 진채를 넘어가는 노가이한국 기병들은 전쟁에 참가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한몫 잡자고 작정한 것 같았다.

이민호가 경고했으나 연락장교가 한탄하는 소리가 무선망을 가득 채웠다. 노가이한국의 군사지도자 케이쿠바트도 자기 수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노가이한국 기병 4천 정도가 진채에 묶여 있었고, 다른 루스 군 1만여 명이 노가이 기병들을 노리고 진채로 접근했다.

“내버려두고 계속 달려. 유목민 기병이 다 저렇지 뭐.”

목표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적의 본진, 가짜 드미트리와 포병대, 그리고 외국인 용병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후사르 기병 3천여 기와 코사크 기병 1만여 기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장갑차들이 최고 속도로 달리고, 좌우의 기병들도 열심히 따라 달렸다.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 며칠 동안 전장에 평탄화 작업을 해뒀기에 장갑차와 말이 진창에 빠지지 않고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주인님! 어째서 선발대만 공격에 나서서 선발대와 본진 사이에 틈을 만들었을까요? 숫자는 적더라도 포병과 후사르가 본진에 다 몰려 있는데요.”

“전술 교재에 대규모 야전 전술 중에 이상한 것을 하나 끼워 넣었는데, 설마 그걸 선택할 줄이야.”

“동시간 공격이요?”

“응. 병참선을 지키는 구르카 5대대를 공격한 코사크 기병들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거야.”

반란군 수뇌부에 아마도 폴란드인이겠지만 아주 뛰어난 책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은 이후 가짜 드미트리 편에 붙은 루스인 부대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편제에 넣을 수 있었다. 모자이스크 성채 앞에 먼저 도착한 루스인 부대 4만은 대부분 새로 가담한 자들이었다.

전투에서 각 유닛의 시간별 작전행동을 규정해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한다는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보여준 적이 있었으나, 전선에서의 눈부신 전과나 화려한 기동과 반대로 후방 점령지역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전투부대가 병참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급부대가 적의 낙오부대와 게릴라 진압까지 떠맡아야 하는 방식이라 결국 보급부대에 작전 부담과 인명피해가 집중됐다.

“후사르가 적의 본진에서 뛰쳐나와요.”

“포병대대는 우측으로 빠져서 적 본진의 포병을 먼저 잡으라고 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정규군은 아니고 마그나트라 불리는 폴란드 귀족들의 사병으로 구성된 후사르 기병대가 몰려나왔다. 상체에 철갑옷을 입고 치마처럼 생긴 상갑을 하거나 하지 않은 정도의 애매한 무장이었다.

그리고 등 뒤에는 독수리 날개깃을 연결한 장식을 달았다. 후사르는 원래 헝가리, 혹은 그 전에 세르비아의 경기병 출신이라 마갑을 갖추지는 않았다. 그래도 초기의 경기병에서 벗어나 중기병에 가까운 병과로 변모했고,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창병으로 이루어진 방진에 돌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제1 기병연대에게 맡길까요?”

“기병연대는 뒤쳐졌잖아.”

장갑차를 따라온 노가이한국 기병은 후사르보다 숫자가 두 배나 많은 6천이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경기병이라서 후사르를 상대로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다. 동서양의 중기병인 토르구트와 후사르가 대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토르구트가 다른 지역에서 작전 중이라 아쉽게 되었다.

기병연대는 페르가나 말을 탔는데도 돌격에 대비해 속도를 잠시 늦추는 바람에 한참 뒤쳐져 있었다. 장갑차 연대 위치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장갑차들이 직접 처치하기로 했다.

“후사르를 최대한 포로로 잡아서 모스크바 개선식에 데려갈 예정이다. 말을 노리고 쏴!”

- 따다다닥! 따다닷!

2열 횡대로 늘어선 장갑차들이 후사르 기병이 탄 말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말이 앞으로 고꾸라질 때마다 기다란 창과 날개 장식으로 인상적인 모습의 후사르 기병들이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이민호가 예상한 것보다 후사르 기병들이 훨씬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뒤에 위치한 후사르 기병들이 땅에서 구르는 동료들의 몸체를 말발굽으로 짓밟으며 계속 달려왔다. 후사르 기병들이 최고 속도를 달리면서 기다란 창을 수평으로 세운 다음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포로로 잡고 싶더라도 이런 식이면 별로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다.”

여러 장갑차에서 기관총을 쏘면서 빠른 속도로 달렸다. 급기야 장갑차 연대와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가 정면에 충돌했다. 이차대전 때 폴란드 창기병이 탱크에 창을 들고 돌격했다는 것은 과장이나 오해였더라도, 이 시대에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 콰콰쾅!

후사르가 옆구리에 낀 5미터가 넘는 기병창이 단숨에 부러지고 말과 기병의 몸체가 장갑차 정면에 충돌하면서 낸 소리였다. 충돌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 쓰러진 말과 기병을 장갑차들이 가리지 않고 깔아뭉개며 지나갔다. 말을 잃고 간신히 살아남은 후사르 기병이 충격적인 장면에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 사이 장갑차 연대 포병 대대 차량들이 반란군 본진에 배치된 포병대를 깨끗이 치워놓았다. 방열하는데 몇 십 분 걸리는 이 시대 야포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으나, 혹시라도 반란군 본진이 야포를 장전해놓고 기다리는 유인책을 쓰고 있을까봐 걱정거리를 아예 없애버렸다.

포격에 놀란 루스 기병 1만과 코사크 기병 1만이 본진의 행군 대열에서 뛰쳐나왔다. 그러나 기병들은 장갑차들의 진격로에서 벗어나 회피하는 모양새였다.

“적 기병은 무시하고 본진으로 돌격!”

폴란드와 독일, 네덜란드 총병들이 다급히 머스킷을 발사했다. 지휘관들의 일제 사격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수부터 무작정 쏘는 티가 났다. 장갑차 전면 장갑에 총알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 콰콰쾅!

밀집대형을 취한 총병에게 무지막지한 응징이 내려졌다. 장갑차 연대 포병대대는 아예 언덕에 자리를 잡고 적이 몰려있는 곳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가했다. 루스인 기병 1만여 기가 포격 몇 번에 놀라 북쪽과 서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장갑차들이 정면에 화력을 집중시키는 사이 측면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코사크 기병들을 노가이한국 기병들이 막았다. 노가이 기병 4천이 루스 군의 진채를 약탈하는 중이라 수적으로 절반밖에 안 됐으나 뜻밖에 잘 싸우고 있었다.

뒤늦게 다시 속도를 올린 제1 기병연대가 부대를 둘로 나눠 노가이 기병과 싸우는 코사크 기병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기마사격을 시작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코사크 기병들이 밀집됐다 싶으면 포병 대대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결국 코사크 기병들이 남쪽으로 달아났으나, 먼저 도주한 루스 기병들보다 훨씬 운이 나빴다. 남쪽에서 급히 북상한 제2 기병 연대와 토르구트 기병들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 뚜두두두둣!

기관총은 처음 개발될 때의 설계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제작 공정을 통해 훨씬 정밀해졌고, 운용교리가 발전했다. 기름칠만으로도 발사속도를 월등히 높일 수 있었다.

“가짜 드미트리는 어디 있나?”

“찾는 중인데, 어려워요.”

전황은 몹시 복잡하게 진행됐다. 멈춰 선 부대는 반란군 본진 소속 부대들과, 진채를 약탈 중인 노가이한국 기병들밖에 없었다. 모자이스크 앞에 배치됐던 선발군 4만 중에서 기병을 모조리 뽑아내서 고산국 기동부대를 추격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진채를 약탈하다가 포위당한 노가이한국 기병과 싸우고 있어서, 추격에 나선 루스 기병은 6천에 불과했다.

이들을 다시 제2 기병 연대가 옆구리를 찔러 들어가며 총격을 퍼부었다. 두 배나 되는 병력을 믿고 루스 기병들이 접근하려 했으나 기병총과 권총을 쏘는 기병 연대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그 사이 토르구트 기병 2만이 적의 본진 우익에 들이닥쳤다. 자포로제 코사크들이 말을 타고 나왔으나 코사크는 검기병이었고 토르구트는 기본적으로 창기병이었다. 상성상 최악의 상대를 맞이한 셈이었다.

숫자가 절반 이하인 코사크는 단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병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토르구트 기병들이 본진을 향해 돌진했다.

- 타탕! 탕!

반란군 본진에 배치된 북유럽 용병들이 화승총을 발사했다. 토르구트 기병 몇 명이 떨어지는 것을 이민호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토르구트 기병은 더 이상 반란군 본진에 대한 접근을 멈추고 창 대신 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활을 높이 들어 토오를룩의 구령에 맞춰 3연속 발사했다. 화승총보다 사거리가 조금 더 긴 화살이 반란군 본진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백기가 올랐어요, 주인님!”

“포격과 총격에 버티다가 화살 공격에 항복해? 어이가 없다.”

그러나 토르구트 기병들이 화살 연사 후 돌격을 예견했기에 항복한 것이었다. 장갑차 연대도 본진을 돌파하기 직전이었다.

반란군 본진은 포격과 총격으로 인해 이미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화살이 본진 곳곳에 박혀 화살에 의해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것처럼 보였다.

“루스 병사들 말고는 다 잡아! 놓치지 마!”

진채의 전투는 이미 끝났다. 선발대에 속했던 루스인 기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모조리 도망간 탓이었다. 노가이 기병들이 안심하고 진채를 계속 약탈해서 이민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본진이 항복하자 선발대 루스 군들도 큰 혼란에 빠졌다. 기병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을 챙겨 도주해버렸고 보병들도 마차에 묶인 말을 풀어 도망가거나 진채를 약탈하는 일에 가담했다. 전투 중에, 심지어 노가이한국 기병의 약탈 중에도 불타지 않았던 진채 네 곳이 잠시 후 모조리 불타올랐다.

전투의 마지막은 편제를 유지한 채 남쪽으로 도망가려는 코사크 기병들을 토르구트 기병들이 하나씩 잡아들이는 식으로 전개됐다. 토르구트 기병들이 본격적으로 올가미를 던져가며 포로사냥에 열중했다.

허리에 단검을 차고 기다란 기병도를 휘두르던 코사크 기병들은 화살에 맞아 죽거나 올가미에 걸려 땅에 끌려 다녔다. 기병전에서 한 번 호되게 당한 코사크들은 토르구트 족과 싸울 엄두를 못 냈다.

“우라아아~”

바로 이때 쓸데없는 부대가 도착했다. 모스크바 주변 영지에서 보야르들이 징집한 기병 2만과 모자이스크 성채의 기병 5천이 몰려왔다. 전투의 대세가 결정되자 보야르들이 참전하겠다고 선언했고,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 보야르들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성채에 있던 기병들까지 평원에 내보냈다.

보야르가 지휘하는 루스인 기병들은 안 잡히고 도망가던 외국인 용병들 위주로 색출해냈다. 그리고 불타는 진채 주변과 시체에서 전리품을 챙기는 일에 몰두했다.

전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기병 연대 병사들이 적의 본진에서 20대 초반 젊은이와 폴란드 귀족, 장교들을 체포해왔다. 나머지 포로들은 인종별, 직종별로 구분해 분리시켰다.

“네 놈이 그리고리냐? 수도사라며?”

“나는 이반 4세의 막내아들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가 맞습니다.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저에게 정당한 예우를 해주십시오.”

“오! 그래?”

============================ 작품 후기 ============================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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