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8 84. 1605년 루스 동란 =========================================================================
정보부가 예측했던 것 중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내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을 더 주면 모스크바 서부 방어선에 배치된 루스군 전체가 가짜 드미트리에게 합류할 가능성이 있었다. 정보부에서는 가짜 드미트리가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 10만으로 예상했다.
“미친! 감불 장군! 구르카 1여단 먼저 기차에 탑승시켜!”
“예, 도련님. 제가 직접 모스크바에서 지휘하겠습니다.”
“기병들과 함께 바로 따라가겠다. 그때까지 크렘린 궁을 지키고 모스크바에 표도르 황태자에게 충성하지 않는 병력을 들이지 마라.”
“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표도르 황태자를 지키겠습니다.”
이제부터 참모본부의 사전 계획에 따라 병력 이동이 시작됐다. 감불이 구르카 제1 여단과 장갑차 1개 중대를 이끌고 기차역으로 이동했고, 다른 부대들도 기차편이 마련되는 대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모스크바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 크렘린 궁에서 보야르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표도르 황태자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늦었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전을 내버려뒀다간 자칫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물론 스웨덴과 덴마크, 혹은 오스만 제국도 참가하는 국제전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대동란의 시대가 열린 시점이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이었다. 표도르 황태자는 궁정 쿠데타로 죽고 가짜 드미트리가 모스크바를 점령한 다음 차르에 오른다.
가짜 드미트리는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 가짜 드미트리가 차르로 즉위했다가 다음 해인 1606년에 차르가 되는 슈이스키의 반란에 의해 죽은 다음, 이어서 나타난 두 번째 가짜 드미트리도 차르에 오른다. 세 번째 가짜 드미트리도 있었으나 그는 차르에 오르지는 못한다. 동란시대에 숱하게 많은 반란과 폴란드의 개입으로 인한 전쟁이 있었다.
“기병들을 집결시켜. 기차로 간다.”
“토르구트와 노가이한국에 전령을 보낼게요.”
민지가 전령을 골라 사흘거리 내에 위치한 기병들의 주둔지로 보냈다. 그 병력 외에 이민호는 시베리아 철도 경비를 위해 분산된 여진 기병 중에서 1만을 긴급 소집했다. 이들이 튜멘에 집결하는데 사흘쯤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급한 대로 인근 철도역에서 소집된 여진 기병들을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철도 경비에 차례로 투입했다.
동 몽골 부족들은 연락하고 소집해서 이동시키는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릴 것 같아 이 상황을 아예 통보도 하지 않았다. 대신 토르구트 족에서 기병 1만을 더 차출했다.
노가이한국은 현재 폴란드 편을 드는 자포로제 코사크의 공격에 대비해야 해서 추가로 차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르가 죽으면서 그 동안 루스 차르국의 손발이었던 돈 코사크의 향방이 오리무중으로 변했다. 이들이 적대적으로 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현재 기병 4만에 보병 1만이라. 해볼 만한가? 돈 코사크가 어느 쪽을 편드느냐에 따라 달라지겠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17세기 말이라면 루스 차르국의 군제가 엉망이 돼서 크림한국에 10만 단위로 두 번 원정을 보냈다가 전투가 전혀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병력 절반만 살아서 돌아오기도 했다. 카를 12세의 스웨덴 군이 4분의 1에 불과했는데도 여러 전투에서 처참히 패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이반 4세의 군제 개혁 영향이 남아있어서 스트렐치를 비롯해 루스인의 군대가 꽤나 탄탄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루스군이 고산국 상대로 야전을 피해 시가전을 유도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시가전에서는 장비의 우수성이나 훈련도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방어측이 약간 유리하거나 양측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병력이 소모될 가능성이 높았다.
“전하. 노가이한국과 크림한국이 동서 양쪽 코사크들을 견제할 것입니다. 이들 때문에 코사크도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 주면 좋지. 병력을 모스크바 방면에 전개하는 것에 최고 우선권을 두고 진행하자.”
정보부에서 그럴 듯한 의견을 내서 조금 안심이었다. 국영기업인 시베리아 철도회사는 현재 친정군의 직접 지휘를 받았다. 기관차와 객차, 화차들을 최대한 튜멘 방면으로 집결시켜서 튜멘과 모스크바 사이 노선에 집중 투입했다. 기차들이 오가며 계속 병력을 실어 날랐다.
다음 날 낮에 감불이 이끄는 병력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감불은 도착 즉시 기차 종점과 크렘린 외곽을 장악하고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 구르카 여단 병력을 배치시켰다고 통신으로 보고했다.
튜멘과 모스크바 사이 철도 노선은 식량 공급을 위해 건설한 임시 선로에 불과해 일부러 전신을 연결하지 않았다. 그래서 통신차를 기차에 실어 보냈다.
“뭐? 가짜 드미트리가 아직도 모스크바에 도착 못했어?”
- 예, 도련님. 스몰렌스크에서 출발한 지 사흘째인데 모스크바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표도르 황태자가 일전불사를 선언해 모스크바와 주변 영지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있습니다.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300km 정도였다. 평소라면 기병이 사흘 안에 주파할 만한 거리였으나 지금은 봄이었다.
온통 진창이 된 길에서 헤매는 것은 외국군이나 루스 군대나 마찬가지였다. 기병이라도 하루에 간신히 20km 정도 이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평소에도 빠르지만 대지가 온통 진창으로 변한 이 계절에는 기차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었군.”
- 모스크바의 보야르들이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릅니다. 일부 보야르들은 표도르 황태자가 병력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는데도 거부했습니다.
“이놈들이! 알았다. 본진이 오늘 출발하면 내일 모레 도착할 것이다.”
모스크바까지 임시 선로라는 것이 한계가 많았다. 철로를 따라 전봇대를 세우지 않아 전신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가로등도 없었다. 적의 기습이나 철도에 대한 파괴공작을 우려해 야간에는 기차 운행을 중지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튜멘에서 모스크바까지 이틀거리가 됐다.
토르구트와 노가이한국 기병들은 지금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이동 중이었다. 병력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기차가 끊임없이 튜멘 역을 출발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이민호가 직접 지휘하는 장갑차 연대 차례였다. 장갑차 연대는 덩치가 큰 차량 위주라 화차가 보병이나 기병에 비해 몇 배나 필요했다.
“황태자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잘 오셨소. 모스크바 상황은 어떻소?”
표도르 황태자가 오스트리아인 음악 선생을 사절로 튜멘에 보냈다. 황태자 입장에서는 보야르들이 피아 구분이 제대로 안 돼서 선생을 사절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가 보기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루벤스 등 네덜란드 화가들이 외교관 역할을 했듯이, 오스트리아 음악 선생도 지식인 계층이었다. 이민호가 루스 차르국을 위해 만들어준 국가를 감명 깊게 듣기도 했다.
“보야르들과 스트렐치가 반란 직전 분위기였으나 고산국 정병들이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부터 놀랍도록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드미트리가 가짜인 것을 다들 알고 있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어느 나라든 심각한 자연재해가 닥치면 군주의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생활이 어려우니 최고 지도자인 차르를 바꿔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인기가 폭발했겠지만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런 쇼맨십이 없었다. 차르가 국가예산에 사재까지 털어 고산국에서 식량을 급히 사들여서 공짜로 나눠줬는데도 백성들은 자기들이 굶어죽지 않은 것이 누구 덕택인지도 몰랐다.
“외국 군대, 특히 오랜 세월 적으로 맞섰던 폴란드 군대를 끌고 왔는데도 인기가 좋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소.”
“강력했던 이반 4세 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이 많아서 드미트리라는 이름은 보야르와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폴란드는 싫지만 보리스가 더 싫어서 눈감아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오죽하면 이반 뇌제겠소? 그때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오. 특히 노브고로드에서는 도시민 전체를 학살했지 않소?”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젊으셔서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과거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저처럼 나이가 들다 보면 젊었을 시절에 관련된 것은 뭐든지 좋게 보게 됩니다.”
수유기 때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빽빽 울어서 끔찍하게 여겼던 아기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런데 전하! 고산국 군대가 모스크바에 진주한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혹시 차르와 비밀 조약을 체결한 것이 맞습니까? 보야르들이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맞소. 두 번째 국경조약을 체결할 때 부속 협정으로 비밀 공수동맹 조약도 체결했소. 차르가 급서할 경우 차기 차르가 즉위하고 치세가 안정될 때까지 보호해주기로 했소.”
사실 그런 건 없었다. 폴란드가 가짜 드미트리를 내세웠기에 이민호도 가짜 조약을 언급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모스크바를 장악한 감불도 그런 조약이 있는 줄로 오해하고 있었다.
“혹시 제가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겠습니까?”
“불가하오. 군주들끼리의 비밀 약속이기 때문이오. 영토 할양이나 보상금 지급 같은, 루스인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없으니 걱정 마시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전하.”
음악 선생이 바로 그날 모스크바로 떠났다. 음악 선생이 황태자와 보야르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보부는 음악 선생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나?”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간세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협력해 오스만 제국의 북쪽 국경을 침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고용한 첩자를 오스트리아에 보내 아돌프의 진짜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뭔데?”
“오스트리아 대공의 가신 가문 출신입니다.”
“대단하군. 혹시 여자 음악 선생도 잉글랜드의 간세야?”
“그렇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자기 시녀들 중에서 골라서 보냈으니 거의 확실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603년에 죽고 지금은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등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반 4세 재위 중에 한때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궁벽한 곳에 위치한 루스 차르국이 이용가치가 없어서인지 나중에는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동유럽의 강국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견제할 유일한 나라라서 최근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차가 우랄산맥을 넘어 러시아 영토 안에 들어섰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평원을 끝없이 달렸다. 중간에 카잔에서 하루 쉰 다음 모스크바로 향했다.
이민호는 4월 28일에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 강변 북쪽에 크렘린이 우뚝 서 있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세운 이 슬라브인들의 성채는 궁전과 성벽, 망루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이었다. 그래서 장갑차에 타고 성문에 도착하는 것이 미안해졌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스인들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다가 서거하신 부친께 심심한 애도를 표하는 바일세.”
표도르 황태자와 크세니아, 그리고 덴마크의 요한 왕자가 이민호를 성문까지 나와서 맞이했다. 비슷한 상복을 입더라도 남매는 흰색, 요한 왕자는 검은색을 입어 묘하게 문화권 차이를 나타냈다.
“적은 어디까지 왔나?”
“오늘 도착한 전령은 나흘 전에 모스크바 서쪽 40레구아 거리에 진채를 내렸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전령이 탄 말도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바람에 정보 보고가 무척 느렸다. 적에 대한 항공 정찰을 하고 싶었으나 우랄산맥 서쪽부터 모스크바 사이에 활주로가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초원 아무 데나 내려도 되지만 봄에는 제대로 된 활주로가 없다면 정찰기 이용을 단념해야 했다.
“하루에 10킬로미터, 2레구아 이동하는 것도 힘겹겠군.”
“송구하게도 친정군 대부분과 서부 방어군 다수가 가짜 드미트리에게 가담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대략 8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르카 1여단과 2여단이 모스크바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토르구트 기병 2만과 노가이한국 기병 1만이 외곽에 숙영지를 세우고 주둔했다. 여진 기병은 천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도를 지키는 일에 투입됐다.
적은 아직 멀리 있는데도 모스크바에서는 이미 몇 차례 전투가 이어졌다. 드미트리를 지지하는 보야르들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모스크바를 점령하려고 시도했고, 구르카 여단과 기병연대가 그들을 격파했다. 감불은 본보기로 모스크바로 접근하는 반란 가담 세력을 남김없이 몰살시켜버렸다.
스트렐치는 표면상 감불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으나 상황에 따라 여차 하면 반란군 쪽에 붙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현재 모스크바에서는 내부와 외부 모두에 적을 두고 있는 셈이었다.
이민호는 시가전이 벌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최대한 빨리 가짜 드미트리의 군세를 격파하는 것만이 모스크바에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었다.
“그들보다는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추가 병력을 투입할지에 신경을 써야 할 거야. 코사크들의 움직임은 어떤가?”
“코사크는 타타르인들과 충돌해서 개입할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전하.”
턱수염이 탐스럽게 난 50대 초반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그것 참 잘 됐소. 그대는 누구시오?”
“보야르 바실리 슈이스키입니다, 전하.”
“아! 바실리 이바노비치 공.”
정보부에서 알려준 내용이 맞다면 옆에 선 사람은 동생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슈이스키가 분명했다. 형제는 항상 함께 싸워나갔다.
바실리 이바노비치 슈이스키는 눈이 커서 착하게 생겼으나, 동시에 사람을 곁눈질로 쳐다보는 버릇으로 인해 겁과 의심이 많은 사람 같았다. 1591년 진짜 드미트리의 사인 규명 조사반을 이끌면서 암살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던 드미트리가 자살했다고 공표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실리 슈이스키는 실제 역사에서 가짜 드미트리가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이반 4세의 막내아들이 맞다고 공표해서 아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짜가 차르에 오른 다음에는 가짜라는 소문을 퍼뜨리다가 반란을 일으켜 가짜 드미트리를 죽인 다음 차르에 오른다. 그러나 재위 기간 5년 내내 반란이나 진압하다가, 스웨덴 군을 끌어들여 폴란드를 자극한 것이 원인이 되어 폐위당한다.
============================ 작품 후기 ============================
전투 못 들어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