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6 83. 1604년 =========================================================================
아리수 항은 왕도 고북 시의 외항으로서, 이 시대에 가장 선진적인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대규모 방파제를 겸한 선착장에 외국 상선들이 가득 정박해 있고 대형 기중기가 화물을 들어 올렸다가 부두로 내렸다. 요즘은 일꾼들이 등짐으로 내리는 것보다는 배에서 수레로 화물을 싣고 내리는 것이 일반화됐다.
항구 안쪽에는 거대한 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리수 항에 들어온 상품이 모두 고산국 본토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재수출되거나 가공을 거쳐 수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공 수출을 업으로 삼는 기업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근로자를 대량으로 고용해 방직, 방적 공장을 돌렸다. 강 하구에 위치해 공업용수 공급은 문제가 없었고, 폐수 정화도 확실히 했다.
항구 다른 쪽 거리에는 숙박시설인 고급 여관과 반점, 객잔이 늘어서 있었고 외국 상인들이 전체 손님의 절반 이상이었다. 여각이나 객주가 관리하는 숙박업소에서는 도매업과 위탁판매업, 창고업, 그리고 어음 교환 등 일부 은행업을 수행했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어음은 뜨거운 감자라서 가급적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선에서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항구가 좁다고 군항과 해군 주둔지, 해병 훈련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달라는 민원을 상인들이 제기하고 있어요.”
“얼씨구? 요새와 군항 덕택에 해적들한테서 안전해서 좋다고 몰려온 게 바로 몇 년 전인데?”
“사람들이 좀 간사하죠? 혜영 총리님도 단번에 거절하셨어요.”
외 호위대장 민정이 헤헤 웃었다. 궁성 호위와 관련된 문제라서 총리 혜영과 호위대에서 먼저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이 시대 유럽 상선들은 걸핏하면 해적으로 돌변했기에 요새와 군항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겨우 몇 년 전에 자바 북동해안 무역도시들이 네덜란드 해적에게 약탈당해 하마터면 멸망할 뻔했다.
물론 고산국 해군이 강력하다는 사실이 충분히 알려진 다음에는 해적질에 나설 정신 나간 선장이나 선원들은 없겠지만, 아예 기회를 엿보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요새와 군항은 왕도뿐만 아니라 무역항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왕도를 지나는 아리수 강 하구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야. 무역항은 아예 바닷가로 옮겨도 돼. 원래 외국 배들이 왕도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고 강 하구에 항구를 만든 것 아냐?”
“맞아요. 그럼 강 건너편 등대 쪽으로 새로운 항구와 공장 지대를 건설하면 어떨까요? 만약 땅이 부족하면 얕은 바다를 매립하면 될 거여요.”
“항구에 기차역까지 다 연결돼서 쉽게 옮기지 못할 거야.”
현대 대만 타이페이 시에서 강 남쪽 바다에 방파제를 쌓아 항구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가 항구 내부에 토사가 급격히 쌓여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민호는 항구 배후지에 아직 공간적인 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상업지구와 공업지구를 시 외곽에 배치한 덕택에 왕도 중심부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관청가와 각급 학교, 각종 사무실이 들어찬 중심가 외에는 널찍널찍한 주택가였다.
마당과 꽃밭을 원하면 단독 주택에, 집을 관리할 시간 여유가 부족해 편의성에 중점을 두면 연립주택에 거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널찍한 마당에서 키우거나 뒷마당 텃밭을 가꾸고 싶다면 교외에 거주하면 된다. 마차가 수시로 다녀서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고산국 백성들은 의식주 중에서 식생활에 이어 주거생활의 만족도가 높았다.
“드디어 들어와요.”
“크긴 크다.”
일만 톤 급 순양함 네 척을 필두로 명나라와 안남 국경지대에서 발호하던 해적들을 소탕하는 임무를 마친 함대가 귀항하고 있었다. 널찍한 상갑판에 8인치 3연장 포탑 2개는 너무 작아 보였다.
그러나 이민호가 예상한 대로 8인치 주포나 5인치 부포는 해전에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해군 함포는 적선이 아니라 지상 포격지원으로 임무 중심이 점점 옮아갔기 때문이다.
해적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고산국 함대가 떴다 하면 바로 육지로 도주했다. 그래서 주변 국가에서 지상군을 동원하고 해병으로 산과 섬을 수색해야 하기에 작전기간이 늘어지기 일쑤였다.
“전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직접 가셔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총함장님.”
고산국 해군 기동전단을 이끌고 간 총함장 이순신이 석 달 넘는 작전을 마치고 귀환했다. 명나라와 안남 해적 1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 두 나라 장수들에게 전공으로 나눠주었다고 한다.
원정에 참가한 장병들에게 승리수당을 나눠주고도 전리품이 꽤 많이 남았다. 한 척 단위로 해적질할 때는 민주적으로 모든 선원들이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과 달리 대규모 해적단으로 성장하면 두목들에게 부가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덕택에 대규모 해적을 토벌하면 이렇게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소리통을 통해서 며칠 전 전하께서 추밀원에서 하신 연설을 잘 들었습니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라 식당에서 장교, 사병들이 같이 들었습니다.”
“부끄럽게 그런 건 왜 들으세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왕실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대목에서 눈물을 쏟은 장병들이 많습니다. 충성스런 해군 장교와 사병들은 언제나 전하를 지지하겠다고 합니다.”
“고맙긴 한데 거 참 낯 뜨겁군요.”
그러나 이순신은 아직도 이민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선 국왕에게 충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순신은 백성들을 지키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산국에 온 것도 이민호와 한 약속 탓도 있었지만, 고산국으로 이주한 조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좋았다.
이순신의 어머니 변 씨 부인은 총함장 관사에서 지냈다. 왕성에 근무하는 어의와 간호사들이 교대로 파견돼 극진히 보살폈기에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큰 병 없이 장수를 누리고 있었다. 이순신의 부인 방 씨 부인은 아산에 머물며 선영을 지키면서 장남 이회와 차남 이열의 자식들, 그리고 아직 어린 조카들을 돌봤다. 이회와 이열은 현감 등 외직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 외에 이순신의 조카들은 조선보다는 고산국에 많이 들어와서 살았다. 이순신의 외사촌 변존서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조선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3년 전에 고산국 해군에 입대했다. 지금은 경순양함 함장을 맡아 일하면서 해군 사관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아산의 집안 종들은 주인을 따라 고산국에 오면서 이순신이 모두 해방시켜주었다. 주인이 있는 조선 노비들은 고산국에 이주하기 어려웠으나 이들은 좋은 주인을 만나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영농으로 독립하거나, 여전히 이순신의 가문에서 일했다. 종의 자식들 중에서 몇몇은 대를 이어 충성하기 위해선지 사관학교에 입교했다가 이순신의 아들 이면이 항공대장이 되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듯했다. 장교가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가문에 충성한다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았으나 육군이 아니라면 큰 상관은 없었다.
“전하! 추밀원이 생긴 지 벌써 몇 년째인데 의원들이 어찌 그리 하나 같이 답답합니까? 비록 실제적인 권한이 없는 기관이지만 전하께 정책을 조언하는 중요한 기관이니 만큼 제발 좋은 사람을 뽑으시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기본적인 상식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좋은 사람들은 출마하지 않거나 추밀원 의원직을 사양하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평생 직업으로 여기고 일하는 공무원 외에는 예나 지금이나 시간도 돈도 남는 사람들이 관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치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요구 수준을 아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귀찮아서라도 출마를 안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추밀원에 남는 사람들의 생각은 일반인이 가진 상식과 거리가 먼 경우가 흔했다. 권력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사실이라서 멀쩡했던 인간이 실권도 없는 추밀원 의원이 된 다음에는 유세를 떨곤 했다.
“하긴, 훌륭한 분들에게 벼슬을 주겠다고 하면 귀를 씻을 사람들이 많지요. 하오면 모든 백성들에게 일정 기간 공직 수행을 의무화하면 어떻겠습니까?”
“조선에서 관직이 주상과 국가에 봉사하는 직책인 것처럼 말입니까?”
“그렇지요. 쓸데없는 사람은 관직을 제 배 불리는 데만 이용할 테니 훌륭한 사람들이 나서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찾아보면 괜찮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소한 현재의 추밀원 의원들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훌륭하신 총함장께서 추밀원 의원을 겸직하시면 어떻습니까?”
이순신이 갑자기 인상을 굳히고 이민호를 노려봤다.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앉아 있으라고요? 저 조선에 돌아갈까요?”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추밀원 의원을 겸직해보라는 이민호의 제안을 이순신은 거의 명예훼손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래서 문제였다.
왕궁에서 혜영과 함께 에너지 정책, 즉 연료와 동력에 관해 가볍게 논의했다. 새로운 지역을 획득할 때마다 현지 주민이나 원주민들에게 물어서 검은 물이 나는 곳, 즉 육상 유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석유를 주로 선박이나 기차 연료로 사용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다양한 화학제품은 하나씩 용도를 찾아내는 중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적당한 지역마다 유전을 하나씩 찾았다. 이들 모두 육상 유전이며 생산비가 적게 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현대 쿠웨이트의 원유 생산비용은 배럴 당 1달러 수준이었으나, 고산국은 유전 탐사에 든 비용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 이하였다.
본토 주변에서는 브루나이 유전, 이집트 주변에서는 아부다비와 알제르 유전, 서 시베리아는 튜멘 유전, 북미에서는 새인천과 이리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를 쓰고 있었다.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 설치한 거대한 저유고를 채우기 위해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바다를 오갈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주로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예전에 콩이나 땅콩기름을 짜서 연료로 쓰던 기관을 유구국에 넘기는 건 어떨까요?”
“왜?”
“예전 기관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효율이 낮잖아요.”
고산국의 발전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혜영이 한 말이었다. 이민호는 석유를 못 구하고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을 만들 금속가공 기술이 부족한 와중에 도박하듯 터보샤프트 엔진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히려 시대적으로 앞선 기술이었지만 디젤 엔진보다 효율이 낮은 것만은 분명했다.
“요즘은 그걸 잘 안 쓰나?”
“석유가 워낙 싸니까요. 예전에 아무 거나 넣어 쓰던 기관은 탐사선 말고는 안 써요.”
연료 효율로 따지면 화석연료, 특히 석유가 압도적이었다. 육상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는 생산비가 싸기에 가격도 낮아서 여러 지역에서 쉽게 사용했다.
심지어 유럽과 조선에서도 겨울 난방연료로 비싼 장작이나 불편한 석탄 대신 훨씬 싼 석유를 수입해서 쓸 정도였다. 석탄 수출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한 스웨덴에서 애걸복걸한 다음에야 석유 수출 물량을 제한했다.
“석유 시대가 의외로 빨리 오고 있어.”
“석유가 중요한 자원이라고 하셨지만 흔히 사용하다 보니 실감을 못해요. 유구국에서 좀 더 큰 배를 만들고 싶어 해요. 기관을 넘겨주면 안 되나요?”
“유구국에는 안 됐더라도 기관을 외국에 넘기면 절대 안 돼. 콩이나 땅콩기름을 짜서 연료로 쓴다고 우습게 보이지만, 고산국의 최고 기술이 집약된 장비야. 그것만으로도 기차와 장갑차, 군함에 심지어 비행기까지 쉽게 만들 수 있어.”
“군함에 비행기까지요? 그럼 안 되겠네요.”
덴마크 서인도회사에 큰 화물선 세 척을 넘기면서 유독 기관부는 고산국 사람들만 고용하도록 했다. 유구국에 넘긴 화물선에서 사용하는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내연기관을 복제할까 겁나 유럽 귀족들에게 승용차를 대량으로 팔려던 계획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아예 군용과 건설용 외에는 차량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고산국 왕도 주작대로에도 승합차 몇 십 대 외에는 마차만 돌아다녔다.
모든 동력기관을 오직 국가에서만 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고산국과 나머지 나라를 가르는 기술적인 장벽이었다. 만약 고산국의 인구와 국력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외국과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다면 자칫 국가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 있었기에 철저히 기술 유출을 막았다.
“어떤 동력이 가장 싸고 효율적일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지열발전과 수력발전이에요. 건설비가 많이 드는 대신 연료 자체가 필요 없으니까요. 배나 기차의 동력이라면 아무래도 석유겠죠.”
풍력발전이나 태양열 발전도 오래 전에 연구를 시작했다. 바람개비 같은 것을 돌리는 풍력발전은 등대나 측후소 등 격오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태양열은 온대 지방의 겨울 야간 난방에 활용할 급탕시설을 데우는 연구에 집중했다.
“석유를 소중히 여기도록 해. 지금은 흔히 쓰는 싸구려 연료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부족해질 날이 올 거야.”
“설마요.”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간 것을 기억하는 이민호였다. 생산비용보다 수송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현재의 석유 소비 체계를 확인할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석유 가격이 싼 덕택에 해군이나 장갑차 부대에게는 석유 아까운 줄 모르고 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겨울철 학교에도 난방유를 충분히 공급해서 아이들이 따뜻한 교실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남편 말 좀 믿어라!”
“석유 값이 오를수록 수송비에 연동돼서 물가가 올라요. 그럼 실제 소비를 줄여야 하는 백성들에게 미안해지잖아요.”
“너무 싸서 지나치게 낭비하니까 그렇지. 겨울에 석유난로 과열로 화재가 자주 나잖아. 별로 춥지도 않은 고북에서 창문 열어놓고 밤새 석유난로를 켜둘 정도면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해.”
그래도 전체적으로 석유 소비가 과열되거나 낭비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민호가 김수공과 함께 생산비와 수송비, 각종 경제효과를 엄밀히 예측한 다음에 석유 가격을 결정해 그리 싸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석유 판매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이익이 많이 남았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석유 수송에 투입되는 운송 능력과 인력이 가장 아까웠다. 동해국과 토르구트 족의 경우에도 백성들이 추운 겨울에 고생할까봐 석유난로와 석유를 조금 싸게 공급했더니 어느덧 장작이나 쇠똥 말린 것을 대체할 정도로 대중화되어 버렸다. 예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루스 차르국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모르지. 전력 자체는 루스 차르국이 강한데 내전 성격이라서 보야르와 정교회의 지지를 받는 쪽이 이길 거야.”
가짜 드미트리가 폴란드에서 추종자들을 모으면서 1604년 3월에 크라코프의 궁정에서 시기스문드 3세를 면담해 병력 3,500명을 지원받았다. 남부의 코사크 일부도 가짜 드미트리에게 가담했고, 군대가 루스 차르국 국경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일부 보야르들은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째서 가짜에게 붙은 거죠?”
“가짜 드미트리를 진짜로 믿는 것처럼 하는 동안에는 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세금을 안 내도 되니까.”
“가짜 드미트리가 폴란드와 코사크의 지원을 받았더라도 루스 차르국의 군대는 강해요. 초반 승전은 두 번으로 그쳤어요. 차르가 친정군을 출정시킨다면 조만간 전쟁이 끝날 것 같아요.”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끝내면 좋겠다. 그런데 내전에 외국군을 끌어들이는 대가로 영토를 할양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너무하지 않아?”
가짜 드미트리는 예수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공개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 귀족들에게도 손길을 내밀었다. 폴란드 귀족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차르가 된 다음 스몰렌스크 등 모스크바 서부의 도시들을 폴란드에 넘겨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국가반역자가 분명한데 모스크바에서는 의외로 인기가 있어요.”
“차르가 잘하겠지.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이제 원정 가는 건 귀찮다.”
“별 일 없겠죠. 주인님 아직 20대인데 말투가 노인 같아요.”
1604년의 전쟁은 외국군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내전으로 취급됐고 아직 보리스 고두노프가 우세해서 고산국에서는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이민호는 러시아 역사에 어두워서 어째서 가짜 드미트리가 차르에 올랐고 어떻게 로마노프 왕조가 열렸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전 초반에 약간만 지원했어도 간단히 끝날 일을 가만히 지켜보느라 개입할 기회를 놓쳤다. 결국 몸이 고생하게 됐다.
============================ 작품 후기 ============================
분량이 유독 많다는 것은 챕터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1605년부터 러시아 동란의 시대인데 고산국이 개입하면 전개과정이 많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오랜만에 원정에 나가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