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44화 (693/1,000)

00744  83. 1604년  =========================================================================

수라바야와 마두라 등 자바 섬 북동부의 무역연합 도시국가들에서 합동으로 조공 사절단을 보냈다. 왕도의 백성들은 먼 나라에서 방문한 사절단의 화려한 행렬을 구경해서 즐겁겠지만 이민호는 더럭 겁부터 났다.

“마타람이 공격했소?”

“아닙니다, 전하.”

“그럼 혹시 6년 전처럼 네덜란드 해적선들이 도시를 공격했소?”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마타람이나 네덜란드 상인들은 고산국 국왕전하의 위엄에 눌려 저희 도시국가들과 평화적으로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불철주야 저희들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전하를 알현할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고산국이나 유구국 상선들이 꾸준히 입항해 교역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별도로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사절단을 왕도에 보냈다고 한다. 여러 도시국가들의 대표는 수라바야의 총리가 맡아 의전 절차를 진행했다.

“여러 나라에서 조공하는 물목이 어마어마하군요.”

“모처럼 진상하러 온 김에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전하. 하오나 저희들의 정성이오니 따로 하사품을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가져오셨으니 필요한 물품을 예조에 요청하시오.”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금과 은, 진주 외에도 남양에서 흔히 산출되는 향신료 몇 가지와 설탕, 식용유, 고무 등을 조공으로 바쳤다. 그 지역에 필요한 하사품과 물량은 예조와 협의해서 정하도록 하고, 이민호가 현안을 물었다.

“수에즈 운하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네덜란드 상선이 연간 65척 규모로 인도양에 들어오고 있고, 이들 대다수가 자바 섬 주변을 지나고 있소. 교역량이 늘어나서 좋겠지만 이 정도 숫자라면 언제든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수라바야와 마두라 등에서는 항구 방어를 잘하도록 하시오.”

“예, 전하. 요새에 고산국 대포를 배치한 이후로 예전과 같은 참극은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상선 65척 중에서 60척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임을 이사회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그러나 5척 정도는 동인도 회사 소속이 아니면서 탐험 등을 핑계로 인도양에 진입했다. 진짜 탐험대는 거의 없고 인도에서 계피나 후추를 사러오지 않았다면 해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1598년과 1599년에 수바라야와 마두라가 네덜란드 해적선단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야 부유한 수라바야가 압도적이었지만 마두라는 술탄의 후계자가 살해당하고 왕녀들이 강간당하는 등 인명피해가 컸다. 해적행위를 했던 네덜란드 해적들은 고산국 함대가 모두 격파했어도 정신적인 피해가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고산국 본토의 남쪽 땅을 지나다가 바닷가 밭에 바닷물을 채워서 소금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소금 제법을 가르쳐주신다면 저희 지역에서 소금을 만들고 싶습니다. 만약 국가기밀이라면 무식한 저의 허물을 꾸짖어주십시오.”

“예조에 청하면 천일제염과 몇 가지 다른 소금 제법을 담은 책을 넘겨줄 것이오. 기술자가 필요하다면 2년 정도 파견을 요청하시오. 비가 많이 오는 자바 섬 서부보다는 일조량이 풍부한 동부에서 충분히 경제적인 제염법이 될 것이오.”

“감사, 감사하옵니다, 전하!”

예전에 소금 가격이 쌀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일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소금이 대량 생산돼 쌀 가격의 5분의 1 이하를 유지했다. 사실 이민호가 마음만 먹는다면 전기분해나 천일제염법의 개선을 통해 쌀의 10분의 1 이하로 가격을 낮출 수도 있었다.

이제 소금은 해상운송을 했을 때 부피만 차지하지 별로 남지 않는 품목으로 변했다. 수출도 못할 품목이니 천일제염법을 가르쳐줘서 손해 볼 일도 없었다. 아마도 자바 섬 동부에서 소금을 생산해 서부로 수출하는 경제구조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아직 이 시기에는 천일제염법이 세계적으로 퍼져 일반화되지 못했다. 조선에서는 그 전에 천일제염법을 알고 있었으며 제주도에서 그 방법으로 약간 생산했더라도 거의 20세기 다 돼서야 대규모 천일제염이 본격화됐다.

열대 지역에서는 석탄을 태우고 그 위에 바닷물을 뿌려 나중에 허옇게 남는 소금을 채취하는 방식이었으나 효율이 떨어졌다. 바닷가 바위에 남은 소금 결정을 모으는 것도 인력이 많이 들었다. 암염 채굴 외에 염정이나 염수를 이용하는 것이 차라리 경제적이었고, 그 방법은 현대에 들어서서도 히말라야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혹시 역대 중국 정부에서 실시한 염철 전매제도를 아시오?”

“예, 전하. 소금과 철을 국가에서 판매독점권을 갖거나 상인들에게 판매권을 나눠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염상들이 지방에서 세력을 만들어 종종 반란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오. 수라바야나 마두라는 영토가 좁으니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오. 외국 상선들이 들여오는 소금 가격보다 싸기만 하다면 전매권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참고하시오.”

“소금을 독점 생산하고 판매를 함으로써 국가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라리아 때문에 자주 갈 수는 없었지만 자바 섬도 무척이나 역동적인 지역이었다. 지금은 인구가 적더라도 나중에는 1억 넘는 인구가 별로 크지도 않은 길쭉한 섬에 북적거리며 살아간다.

“전하! 마두라는 자바 섬과 달리 땅이 몹시 척박한 곳이에요. 저희 가련한 마두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무슬림 복장을 한 여자는 작은 피리를 들고 있었다. 만파식적처럼 피리를 불어 해적과 전염병, 해일로부터 마두라를 지키는 왕녀 같았다. 1598년에 피리를 불었는데도 수도 방칼란을 침공한 네덜란드 해적을 물리치지 못해 처녀가 아닌 것으로 오해를 산 왕녀는 불쌍하게도 사형을 당하기 직전 이민호에게 노예로 넘겨졌다. 왕녀는 아라 공주 밑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자바 섬 북동쪽 마두라 섬은 화산으로 인해 고도차가 큰 자바 섬과 달리 표고 차가 거의 없는 낮은 언덕 지형이었고, 땅은 자바 섬과 달리 비옥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마두라 사람들은 날품팔이 노동자나 상인으로 인식됐다.

“마두라가 척박하다지만 그나마 정향과 담배가 생산된다고 들었소.”

“하오나 요즘은 정향 가격이 폭락해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좁은 땅에서 얼마 안 되는 소와 티크목을 키우며 살아야 하나요?”

“황소 경주는 박진감 넘친다고 들었소만.”

“일 년 내내 카라판 사피 경주를 열 수는 없잖아요. 먹고 살아야 해요. 제발 저희들이 살아갈 길을 알려주세요.”

그렇다고 마두라에 다른 농작물을 심을 수는 없었다. 땅이 워낙 척박하고 건조한 탓이었다.

그런데 마두라인들은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았고, 외부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자바 섬의 인구에서 세 번째 큰 인종집단이었다. 현대 마두라에 겨우 2백만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자바 섬 전체적으로 2천만 명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이다.

“마두라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겠소. 하나는 주변 바다를 이용해 어업과 해운에 진출하는 것이오.”

“페라후를 해상운송에 쓰기에는 너무 작아요. 선체를 바꾸거나 유구국 상선에 선원으로 취업하는 길이 있겠어요. 선원으로 취업하도록 전하께서 도와주세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서 태평양에서 흔히 사용하는 다선체 쾌속 범선 프로아, 혹은 페라후나 프라우는 아웃리거가 달린 커누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커누보다 훨씬 크더라도 여전히 선체 길이가 짧아 무거운 화물을 운송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선원으로 취업하는 것보다 어업을 우선하시오. 어업이란 물고기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까지 포함한 산업이오. 앞으로 소금을 싸게 생산할 수 있을 테니 물고기를 염장해서 마타람 같은 내륙 지역에 판매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오.”

“아! 바다에 가득한 물고기를 그 비싼 소금에 절여서 판다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 이익이 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마타람 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염장한 물고기를 싫어하오?”

“아니에요. 고급 음식으로 여기고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비싸요.”

조선에서도 중기까지는 소금 값이 비싸서 염장한 물고기가 내륙지역에 싸게 유통되지 못했다. 소금이 대량 생산돼서 소금 값이 충분히 내리고 운송비가 낮춰지고 나서야 내륙지방에서 염장 해산물이나 건어물 유통이 가능해졌다.

“염전을 만들어서 소금 가격을 충분히 낮춘 다음에 시도해보시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두라인들이 이미 개발한 상품이오.”

“그것이 무엇인지요?”

“말린 정향과 담뱃잎을 함께 썰어서 궐련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오.”

“정향 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품으로 팔지 못하는 정향과 역시나 상품성 떨어지는 담뱃잎을 섞어서 피우고 있어요. 그런 싸구려를 외국 애연가들이 사려고 할까요?”

멘톨(menthol) 담배처럼 정향이나 계피, 딸기 향 등 풍미가 강한 첨가물을 섞은 담배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있었다. 21세기 초 미국에서 담배 판매량의 3분의 1이 멘톨 담배였고 인도네시아산 정향 담배, rokok kretek는 매년 2~3억 달러 규모였다.

그러나 중독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2009년에 미국 FDA가 정향 담배의 판매를 금지했고, 인도네시아가 WTO에 미국을 제소해 두 가지 담배가 동일하게 판매금지 혹은 판매금지 철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정향 담배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고 오히려 멘톨 담배에 대한 규제에 들어갔다.

“그 지방에서는 싸구려라도 다른 지역에서는 고급품이 될 수도 있소. 하나 공주?”

“예, 전하.”

브루나이와 동남아시아의 경제를 손에 쥐고 흔든다는 하나 공주가 알현실에 나타나자 마두라의 왕녀가 몹시 선망하는 눈길을 보냈다. 북미 여공작 비올레타나 북방 여공작 민영만은 못해도 하나 공주도 광대한 지역의 경제권을 쥔 세력가였다.

“하나 공주는 마두라의 왕녀님과 함께 정향 담배의 생산과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오.”

“예, 전하. 이쪽으로 오시죠, 마두라의 아름다운 왕녀님. 마두라 사람들의 운명을 개척할 중요한 사업 이야기랍니다.”

“아아! 감사해요. 이제 마두라 사람들이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나요?”

“그 대신 술탄과 왕녀님부터 더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게으른 사람들을 몹시 미워하신답니다.”

북미에서 담배를 대량 생산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담배 시장 대부분을 고산국이 장악했다. 그러나 에스파냐 농민들이 흑인 노예를 이용해 쿠바에서 생산한 시가가 유럽의 고급 담배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정향 담배는 쿠바의 고급 시가에 대항할 만한 중요한 상품이었다. 정향 담배의 자매품으로 계피 담배와 박하담배도 생산할 예정이었다.

아직 과학보다 종교가 우선되는 시대였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 성과가 알려지더라도 어느 한 면만 강조하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잘못된 상식이 일반에 퍼지는 경우는 더욱 흔했다.

오랜만에 열린 추밀원 회의에서 의원들이 이민호에게 제안한 안건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무지,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인한 참극과 이를 알면서도 즉시 수정하지 못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문제점으로 드는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가 아닌 17세기 초반에 등장했다.

“전하! 참새는 해로운 짐승입니다.”

“컥! 흠! 흠! 발언을 계속하시오.”

“농업에 해를 끼치는 참새를 모두 잡아야 합니다. 사냥꾼을 동원하고 독이 든 미끼를 풀어서 참새를 멸종시키도록 어명을 내려주십시오.”

“농사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참새를 다 죽이란 말이오?”

“전하께서 동물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계십니다만, 참새는 곡물 수확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심하게 끼치는 해조이기 때문에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이런 정책의 결과를 알고 있는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으나 참고 들어보도록 했다. 이민호야 답을 알고 있었지만, 후대에 이런 비슷한 논의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호주에서는 어째서 토끼 반입을 금지하는지 농민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토끼가 호주 전체에 가득 찰 거라고 설득해도 농민들은 과장이나 기우라고 반발할 뿐이었다. 실제로 당해봐야 아는데, 일단 당하고 나면 피해가 너무 크고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웠다.

참새를 멸종시키려는 시도는 중세나 근대도 아닌 20세기 중반인 1958년 이후 몇 년 동안 중국의 모택동이 전국적으로 실시한 정책이었다. 전 인민을 동원해 참새를 다 잡은 이후 해충이 창궐하면서 쌀 수확량이 급감해 3년 동안 자그마치 4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래서 겨우 17세기 초반인 이 시대 사람들이 무지하다고 비난만 퍼부을 수는 없었다. 이민호도 만약 모택동 통치시기에 중국에서 살았다면 모택동을 설득해서 참새를 잡지 못하게 말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숙청당할 것이 분명했다.

“제안을 하기 전에 연구부터 하라고 했는데, 그 절차를 지켰소?”

“하오나 전하. 참새가 벼이삭을 쪼아 먹는 것은 상식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농한기인 지금 시급히 참새를 잡아야 피해가 줄어들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추밀원 의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소리를 질렀다. 추밀원 의원들이 조선의 조정 대신들을 흉내 내는 것 같아 조금 한심해 보였다.

“뭔가 정책을 제안하기 전에 현 상황과 그 정책이 시행된 이후 어떻게 변할지 관련 연구소에 연구를 의뢰했느냐는 말이오.”

“당연한 것을 시간 들여 연구까지 한다면 조정의 정책 효율이 극도로 떨어질 것입니다.”

“추밀원 의원들은 정책을 제안하기 전에 법부터 지키시오. 정책 제안자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만든 정책을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할 수 있겠소?”

이민호는 매우 논리적으로 설득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다. 의원들은 이민호만큼 정보를 갖지 못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급하게 참새를 잡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원할 뿐이었다.

추밀원 의원들이 고산국을 멸망시키자고 이런 잘못된 제안을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추밀원은 현대 미국의 상원과 비슷하게 각 지역별, 직종별로 선발해 이민호가 직접 임명한 사람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선거로 뽑힌 다음 이민호가 임명 절차를 거쳐 임명한 나머지 의원들도 나름대로 이민호에게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참새 문제에서, 해답을 알고 있더라도 설득은 불가능하겠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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