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41화 (690/1,000)

00741  82. 1603년  =========================================================================

“브라질이라. 흠! 땅이 넓고 기름지다고 들었소.”

“국왕전하! 고산국은 땅이 충분히 넓은 줄로 압니다.”

이민호가 세계지도에서 남미 브라질을 손으로 짚자 두아르테가 아주 기겁을 했다. 세계 제일의 땅 부자인 이민호가 만약 브라질을 보면서 군침을 꼴깍 삼키기라도 한다면 두아르테가 기절할 것 같았다.

이민호는 지도를 보면서 포르투갈이 적도 바로 북쪽 황금해안을 놔두고 적도 남쪽 서아프리카 루안다에 노예무역을 위한 항구를 만든 이유를 알아챘다. 서쪽 남대서양 건너편 브라질 북동부에 사탕수수 농장들이 들어서고 브라질 총독령의 수도, 바히아의 사우바도르(Salvador)가 루안다와 비슷한 위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1603년부터 디오고 보테요가 브라질 총독을 맡고 있었다.

나중에는 남서쪽의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가 더 크게 성장하겠지만 이 시기에는 항해 거리가 짧고 만 안쪽 항구로서 입지가 좋은 사우바도르가 브라질의 관문으로 가장 적당했다. 남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사우바도르와 루안다는 사실상 쌍둥이 도시였던 셈이었다. 루안다에서 노예수송선에 탄 흑인 노예들은 북적도 해류를 타고 가장 짧은 항로를 거쳐 사우바도르에서 내려 주변 농장이나 광산으로 판매됐다.

“누가 뭐라 했소?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이라 고민이 많겠구려.”

“그렇습니다, 전하. 헌데 전하께서는 땅 욕심이 많으시더라도 최소한 국가가 성립된 곳이나 다른 나라 식민지는 존중하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전쟁도 싫고 새로 얻은 영토를 다스리기도 귀찮아서 말이오.”

그러나 아무리 귀찮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런 귀찮음 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다만 전쟁은 가급적 피했으며, 점령한 후에 기존 주민들이 독립운동이라도 할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관심을 접었다.

북미나 호주처럼 국가가 아예 들어서지 않거나, 일본처럼 독재자 혹은 사무라이라는 소수 집단이 백성들에게 학정을 펼치는 곳이야말로 새 영토로 욕심 낼만한 만만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동해여진이나 토르구트처럼 동질적인 집단을 한꺼번에 백성으로 영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독립군을 보듯이 북미로 이민을 가고도 확고한 정체성이 없이 양쪽을 오가게 되면 골치 아팠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계획은 브라질에 이민자들을 보내는 동시에 흑인 노예를 대량 매입해 사탕수수 농장이나 다른 일에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흑인 노예들의 사망률이 너무 높아서 꾸준히 흑인 노예를 구해서 브라질로 보내야 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을 좀 더 이주시키거나 남미 원주민을 동원하면 안 되오? 그런데, 참. 식민지란 남는 인구를 밖으로 내보내 영토를 개척하는 것 아니었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포르투갈은 인구가 적어서 브라질 전체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포르투갈 본국이 텅 비게 될까봐 이주 금지령을 내릴까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17세기 후반부터 포르투갈 본국에서 외국 이주 금지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일단 개척이 진행된 다음부터는 브라질로 이주를 많이 했으며, 다른 지역,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로부터 많은 이민을 받았다.

그러나 1500년에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개척을 시작한 1530년 이후부터 아직까지도 개척 초기에 불과했다. 고생할 게 뻔한 브라질로 이주하려는 포르투갈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더더욱 노예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남미 원주민은 숫자가 적소? 좀 덥더라도 인간이 살기 적당한 곳 같소만.”

“브라질 전체에 250만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므로 원주민이 적은 편은 아닙니다, 전하. 그러나 전염병이 퍼지면서 남미 원주민들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해서 일을 잘 못합니다.”

누에보 에스파냐 부왕령, 즉 멕시코보다는 페루 부왕령에서 원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극심했다. 은광 노역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브라질과 거리가 멀었다. 브라질 원주민들은 주로 해안이나 밀림 깊숙한 곳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에스파냐 은광의 부역에 동원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 정착민들이 구성한 준군사조직인 깃발을 따르는 사람들, 반데이란티스(Bandeirantes)들이 밀림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만들었다. 원주민들이 씨가 마른 다음에 이들은 모험가 조직이 되어 내륙 깊숙이 진출해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찾아 헤맸다.

“텍사스에 계절노동을 하러 오는 멕시코 원주민들은 튼튼한 편이었소. 남미 원주민들은 사탕수수 노동을 하기에 부적합할 정도로 많이 약한가 보오.”

“송구스럽지만 가격 차이로 따지면 남미 원주민 노예보다 흑인 노예가 열 배나 비쌉니다. 남미 원주민들은 워낙 약해서 일을 조금만 힘들게 시켜도 금방 죽어버립니다.”

어느 추산에 따르면 원주민 노예가 30~40달러 가격일 때 흑인 노예는 100~500달러에 판매됐다고 한다. 남미 원주민들은 포르투갈 농장의 가혹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 견디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그래서 농장주나 광산주들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더더욱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원했다. 그러나 흑인들도 가혹한 노동을 못 견뎌 죽어 나가고 여자가 부족해 대를 이어 노예노동을 시킬 수가 없었다. 이 상태라면 계속해서 흑인 노예들을 대량으로 구입해야 했다.

“그렇다고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가서 강제 노동을 시키면 문명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소?”

“무척 부끄럽습니다. 마카오에서도 노예무역을 했기에 그 처참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노예를 해방시켜 백성으로 받아들이셨지요. 사실 몹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민호가 마카오에서 매입했던 흑인 노예들이 현재 아프리카 왕국의 주축이었다. 고산국에서 몇 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전투하는 법을 배운 흑인들은 그보다 훨씬 못한 포르투갈의 요새도시 루안다를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농업기술은 고산국을 통해 꾸준히 배우는 중이며 대장간 수준이지만 공업기술도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 부분은 별로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모든 유럽 세력을 몰아내고 노예무역을 막는 것이 아프리카 왕국의 건국이념이었고, 고산국이 지원하는 이유였다.

그 유럽 세력에는 포르투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까지 놓고 보면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 이후 아프리카를 침략하는 주도 세력이었다. 노예무역이라는 야만적인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아프리카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것까지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와 함께 고산국의 오랜 우호세력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한 이유인 브라질을 유럽 세력의 각축장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지금도 남미 대륙 북동부 지역을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프랑스가 서로 차지하려 싸우고 있었다. 나중에 수리남이나 프랑스령 기아나, 가이아나로 분리되는 지역이었다.

“노예는 그리 효율적인 생산자가 아니오. 동 두아르테도 로마의 장원과 중세 장원의 차이를 알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잉여 생산량으로 따지면 노예제보다 농노제가 낫고, 소작농이 더 낫고, 자작농이 가장 낫습니다.”

지주 입장에서야 노예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일을 시키고 밥을 적게 주면 아주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노예 수명이 줄어 새로운 노예 구입비용과 관리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들었다.

고대의 노예노동이 농노나 소작농을 거쳐 자작농 또는 임노동자를 고용한 대규모 농장 위주로 변화된 것은 인본주의 확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의 광작도 마찬가지로 빈농에게 소작을 주는 것보다는 임노동자를 고용해 자작농이나 지주가 직접 경영하는 쪽을 택했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하는 말은 농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될 것 아니오? 노예보다는 자작농을 키우거나 임금 농업노동자를 고용해서 해결하시오.”

“적은 임금 때문에 농업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일하기를 거부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임금을 올려주시오.”

“전하께서는 부유하시니까 쉽게 말씀하실지 몰라도 브라질로 이민 간 농장 주인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브라질에서는 고산국에서 생산한 설탕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임금을 올려주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럼 계속 가난하게 살라고 하시오.”

“예, 전하? 잘못 들었습니다.”

두아르테가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사실 이민호도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지난 백 년 동안 흑인 노예 몇 백만을 브라질로 데려갔으면 시간이 흘러 이들이 자식을 낳아 더 이상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매입할 필요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농장주들이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해 흑인 노예들을 가혹하게 대하면서 쥐어짰기에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계속 노예사냥을 통해 적도 인근의 흑인들을 브라질로 보내 죽게 만들고 만다. 이민호는 이 죽음의 사슬을 분쇄하기로 했다.

“동 두아르테는 들으시오.”

“하명하시옵소서, 전하.”

“고산국 본토나 북미에서 생산한 설탕을 유럽에 판매할 때 이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고산국 설탕은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낮아 이익률이 10퍼센트가 안 되는 것으로 압니다. 사실 브라질에서 생산한 설탕은 가격은 비슷해도 이익률이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어휴! 동 두아르테가 잘못 알고 있소. 고산국 설탕은 유럽에 원가의 열 배 이상 가격에 팔고 있소.”

“설마 그렇게 많이 남습니까?”

유럽에서 설탕 가격이 워낙 비싸서 한때는 백 배 가까운 수익을 올린 적도 있었다. 이는 고산국과 북미의 사탕수수 농업 과정 대부분이 기계화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업은 대규모 노예 노동에 의존함으로써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다.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흑인 노예가 대서양을 건너면서 가격이 몇 배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가혹한 노동으로 인해 노예들이 죽어나가므로 꾸준히 매입해야 한다는 것도 비용 상승을 부추겼다.

“노예제보다 자작농이 훨씬 많은 잉여 생산물을 내는 것은 법칙 아니오?”

“그렇긴 합니다만, 욕심 많은 농장주들이 현재의 생산 방식을 바꿀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망해야지요. 고산국이 설탕 판매 가격을 현재 수준에서 1할 정도 낮추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소?”

“예. 브라질은 바로 망합니다. 그 동안 전하께서 배려해주신 덕택에 사탕수수 농장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호는 얼마 전부터 대기근에 대비해 설탕 가격을 대폭 낮춘 적이 있었다. 설탕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곡물 소비량이 줄어든 것은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에서 사탕수수 농업이 유일한 산업이므로 더 이상 싸게 판매하지 못했다.

“그곳 기후가 사탕수수 농업에 적합하더라도 한 가지 작물에 지나치게 집중한 것도 문제였소. 만약 이번 대흉년 기간에 밀이나 귀리를 심었더라면 브라질 농장주들은 떼돈을 벌었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전하. 노예노동을 시키려다 보니 사탕수수와 면화 같은 플랜테이션 농업에 적합한 품목밖에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번 일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민호가 포르투갈에 노예무역을 금지시킬 권한은 없었지만 경제적 효율성 문제로 잘 설명했다. 그러나 이 논리가 포르투갈 귀족과 농장주들에게 먹힐지는 알 수 없었다. 경작법은 쉽게 안 바뀐다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포르투갈 사람이 노예를 동원해 브라질을 개척할 필요는 없소.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것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오?”

“그건 그렇습니다, 전하.”

“그럼 고산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민을 받으시오.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에서 농업이민을 받으면 간단히 해결될 것이오.”

이민호도 이왕이면 조선인 출신자들만으로 영토를 가득 채우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부족하니 되는 것이 없었다.

결국 여러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여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와 임금을 하락시킬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지금은 조선 출신이나 이민자들 모두가 만족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노예의 후손들도 결국 포르투갈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오. 그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수도 있소.”

“전하의 뜻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포르투갈로 돌아가면 귀족들과 브라질 농장주들을 설득해보겠습니다.”

만약 고산국에서 꾸준히 사탕수수 농업을 하지 않았다면 포르투갈 농장주들이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됐다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더 많이 매입하려 노력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설탕 시장을 장악한 고산국 때문에라도 이제는 브라질이 사탕수수가 아닌 다른 농업으로 전환할 때였다. 고산국, 포르투갈, 에스파냐가 담합해서 적절한 물량과 가격으로 유럽의 설탕 시장을 통제하는 것도 한때 고려했지만, 아직은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전하! 아프리카 왕국에 붙잡힌 노예회사 직원들 문제입니다만.”

“몸값을 내면 석방해줄 것이오.”

“예? 아프리카 왕국에서 직원들을 석방해준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포로들을 잡아먹었다고 오해하는 거요? 유럽인들이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아프리카 왕국의 문명 수준은 웬만한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오.”

노예회사 직원들을 끌고 가서 강제로 노동을 시킨 것은 아프리카 왕국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인 직원들이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해서 벌어들이는 것은 이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경비하는 비용보다 못했다. 아프리카 왕국은 포르투갈이 포로 송환을 요구할 경우 언제든 돌려보낼 준비가 돼 있었다.

“아주 잔인한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만.”

“믿지 않는다면 소개장을 써주겠소. 아프리카 왕국의 므부투 국왕을 만나보시오.”

두아르테를 잔지바르의 아프리카 왕국 대사관으로 보냈다. 물론 잔지바르부터는 므부투가 대 아프리카 제국 황제로 통했다.

흑인 노예 문제가 이번 회담을 통해 단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 가격이 아무리 싸더라도 다른 농법이나 제도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시장 참가자들이 하게 된다면 노예제가 금방 사라질 수도 있었다.

남북전쟁 전후에 북부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휴머니즘이 성장한 탓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북부 자본가 입장에서는 노예제에 비해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주는 것이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에 노예제 폐지에 찬성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회는 주로 설명입니다.

노예무역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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