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9 82. 1603년 =========================================================================
“아프리카 왕국에서 포르투갈 십자가를 진상했어요.”
“아니, 므부투 이 인간이 무슨 진상 짓을 한 거야?”
혜영이 상자에서 반쯤 불에 탄 나무 십자가를 꺼내자 이민호가 기겁했다. 나무 십자가에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듯해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아프리카 왕국이 얼마 전에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달한 것은 잘 아시죠? 콩고 강 하류에서 남쪽으로 200여 km에 포르투갈에서 건설한 루안다라는 요새도시가 있어요. 그곳에서 양쪽이 접촉한 직후 소소한 교전이 있었다고 해요. 노예로 끌려갈 뻔했던 흑인 2천 명을 구했대요.”
“소소한 교전? 아까 포르투갈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 흑인들이 말 타고 총을 쏘면서 기습하는 바람에 참패를 당했다더군. 요새 일부가 점령돼 교회가 불타고 말이야.”
“십자가는 포르투갈에 돌려줄까요? 므부투 국왕이 제법 머리를 쓰네요.”
“그렇게 해. 종교적 상징물을 전리품으로 챙겨서 우리한테 보내다니, 므부투는 포르투갈이 오해해서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할 것으로 기대하나?”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찔러봤겠죠.”
“음흉한 녀석!”
현대 앙골라 북서부의 루안다는 포르투갈의 노예무역 회사 본사가 위치한 곳이었다. 서아프리카의 적도 기니 만, 즉 황금해안에 건설된 포르투갈 요새가 시기적으로 앞섰지만 나중에는 더 남쪽에서 노예무역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도는 동인도 항로를 개척하면서 아프리카 서해안과 동해안 여러 곳에 요새 및 보급 거점을 건설했다. 그리고 고산국이 새로 발견한 섬의 해안에 영토 표지석을 세운 것처럼 포르투갈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파드라오’라 불리는 석조물을 곳곳에 세워 영토권을 주장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다음부터 포르투갈 상선들이 지중해를 이용하게 되면서 아프리카 동해안 소팔라와 키루와, 모잠비크 등에 건설된 기존 요새들은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브라질과 카리브 해 연안에 보내는 노예무역은 지금도 번성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해안 각지에 세운 파드라오를 근거로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해안 거의 대부분을 영토로 주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프리카 왕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려나 봐. 예상한 일이지만 여러 모로 걱정된다.”
“에스파냐는 개입하지 않겠죠?”
“개입 못할 거야. 동군연합이라 해도 세계를 둘로 나눈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두 나라에 여전히 유효하니까.”
고산국에 우호적인 두 세력이 바야흐로 맞붙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는 고산국이 건국된 직후부터 교역을 통해 이득을 나눈 포르투갈, 다른 하나는 고산국이 건국을 지원한 아프리카 왕국이었다.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동인도제도의 향신료 교역에 참가하고 잉글랜드가 인도의 후추 무역에 종사함으로써 그 동안 포르투갈이 향료무역을 통해 얻던 이익이 점차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다. 여기에 오스만 제국과 아랍 여러 나라들이 주도하는 수에즈 운하를 통한 향료무역이 활발해졌다. 포르투갈은 더 이상 향료무역을 통해 독점적인 이익을 얻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현재 포르투갈은 서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매입해 브라질과 카리브 해로 보내는 노예무역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다. 농업도 못하고 그럴 듯한 산업도 없는 포르투갈 입장에서 노예무역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왕국은 흑인의 노예화를 막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나라였다. 아프리카 왕국 입장에서 흑인노예를 대량으로 브라질로 보내는 포르투갈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었다.
노예무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질 전쟁은 고산국에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예전 대항해시대와 달리 에스파냐와 동군연합이 된 이후 포르투갈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이민호는 아프리카 왕국이 결국 포르투갈의 해안요새들을 모두 몰아낼 것으로 예상했다.
“바다에서는 절대 싸우지 못하게 해요.”
“어차피 아프리카 왕국에는 아직 해군도 없고 대형 상선도 없어. 포르투갈이 미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로 가는 고산국 상선을 나포하지 못하겠지.”
고산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흑인의 노예화를 막는다는 목적을 제시하며 므부투에게 아프리카 왕국을 세우라고 권한 이민호는 심정적으로 중립일 수가 없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마카오 노예 시장에서 명나라 노예를 매매하지 않았어요. 명나라 관리들에게 쫓겨날까봐 그랬겠죠?”
“당연하지. 명나라로부터 정식 항의를 받은 다음 명나라 노예 매매를 금지했어. 그 전에 명나라 사람들도 마카오를 통해 노예로 많이 팔려갔다고 들었어. 고아나 말래카, 마닐라에도 명나라 노예가 꽤 많이 살고 있어.”
마카오 노예상인들은 명나라에서 주로 소년과 소녀들을 15~20두카트에 노예로 사들여서 주로 집안일을 하는 하인으로 부렸다. 1571년에 포르투갈에서 중국인 노예 소유 금지법이 통과되고 1595년에는 고아 부왕에 의해 중국인 노예 거래를 한 자들에게 천 두카트를 벌금으로 징수했다. 그리고 1624년에 포르투갈 왕법으로 중국인을 노예로 소유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그러나 노예에 관한 포르투갈의 특별대우는 중국인에 한했다. 지금도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동족의 손에 붙잡혀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팔린 다음 비좁은 노예 수송 전용선에 태워져 브라질과 카리브 해 연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고산국에서 남아프리카에 작은 규모의 육해군 합동부대를 파견해놓았다. 잉글랜드나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편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파견부대 주둔지에서 멀지 않은 희망봉 부근에도 파드라오가 세워져 있었다. 그 지역은 실제 역사에서 나중에 포르투갈은 배제한 채 대영제국과 네덜란드 이주민 보어인 사이의 각축장이 되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석에 불과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그 동안 고산국에 협력한 포르투갈에 미안하지만 아프리카 왕국이 포르투갈 세력을 쫓아내길 원했다. 버젓이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파드라오를 세우는 것은 포르투갈인들이 흑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파견부대에서는 주변에서 목축과 채집을 하는 코이코이 족과 교역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곡식 종자를 소개하며 재배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민호는 남아프리카의 코이코이 족과 산족에게 발달된 유목과 경작법을 가르친 다음 아프리카 왕국에 통합시킬 계획이었다.
어느 가을 날 오후 이민호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호위 몇몇과 함께 미행(微行)에 나섰다. 오후 다섯 시가 갓 지나면서 직장에서 퇴근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교외에 사는 사람들은 다섯 시 1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했다.
왕도가 가장 활기찬 시간대가 바로 이때였다. 다섯 시에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는 것은 실로 장관이었고, 고산국 왕도를 방문한 외국 상인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왕성 남쪽 주작대로를 따라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파는 아이스크림과 양 꼬치구이, 어묵 등 군것질을 하는 것이 이민호의 취미였다. 왕도 고북 시청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식품위생이고 수도와 전기 등을 시청에서 직접 지원하기에 왕도 주민들은 탈이 날 걱정 없이 군것질을 할 수 있었다.
포장마차는 농민이나 군인이 아닌 직장인, 혹은 대학생들이 부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흔했다. 고산국에서 돈이 부족할 일이 없으니 재미로 포장마차를 한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는데, 주인에게 물어보니 정반대였다.
“당연히 돈을 모아야죠. 고산국에서 제대로 살려면 돈이 최고입니다.”
“책을 갖고 다니는 걸 보니 대학생 같은데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하나? 요?”
실수했음을 깨달은 이민호가 얼른 존댓말로 바꿨다. 하마터면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 뻔했다. 지금은 신분을 숨긴 채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미행 중이었다.
고산국 대학생들은 20대 초반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최근에 이민 온 사람들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직했다가 다시 대학을 다니는 나이 든 학생들도 흔했다. 이곳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 주인만 해도 이민호보다 나이가 한두 살 더 많았다.
“손님도 아시다시피 고산국 안에서만 살려면 악착같이 돈을 모을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고산국은 너무 평화로워요. 여자나 아이들에게는 좋겠지만 저 같은 젊은 남자에게는 너무 따분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혼자서나 친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재학 중에 해외여행을 가면 대학교에서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그거야 공부에 도움 되는 여행만 해당되거든요. 인생과 이 세상을 알기 위한 여행은 개인적인 여행이라 해서 지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행경비를 지원받으면 돌아와서 한 달 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요. 지겨운 숙제를 해야 한다면 여행의 의미가 반감돼요.”
“오호! 그런 면이 있군요.”
포장마차의 젊은 주인이 인도와 실론, 그리고 페르시아에 다녀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공이 문학이라서 전공과 관계되는 여행인데도 지도교수는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외에는 학교에서 여행비용을 지원하는 여행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대학생의 여행경비를 지원하는 것에는 간첩을 파견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여행 행선지를 정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물론 보고서를 작성해야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페르시아가 급성장하고 있군요. 인도는 어땠어요?”
“제가 간 곳은 벵갈과 실론, 그리고 고아뿐이지만 인도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더군요. 지방마다 말도 다르고 종교도 달라요. 매우 인상 깊은 곳이었어요. 하지만 아는 사람들한테 여행지로 추천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왜죠?”
“고산국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딱 보면 티가 나나 봐요. 품질이 다른 옷과 배낭 때문인 것 같아요. 부자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애들이 돈 달라고 손을 벌리고 여자는 다리를, 험! 실례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이 떡볶이를 먹던 민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향신료인 빨간 고추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떡볶이는 고급 간식에 속했다.
“그곳 남자들은 여행자를 상대로 소매치기나 강도질을 하려고 해요. 한 번은 죽을 뻔했어요. 무기를 든 남자들 20명에게 포위됐었는데 라자의 병사라는 터번 쓴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짜 죽었을 거여요.”
“그래도 치안을 유지하는 세력가들이 있군요.”
“그 라자의 병사라는 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병사들에게 여행비용을 다 빼앗겼거든요. 그나마 옷과 짐은 손대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그래서 고아의 포르투갈 부왕청으로 가서 부왕 아이레스 데 살다냐에게 부탁해서 고산국으로 가는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고 했다. 살다냐는 1542년생으로서 1600년부터 1605년까지 17대 인도 부왕 겸 34대 인도 총독을 역임했다.
“다른 나라의 관리나 관청에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예조에 보고하는 법이 있지요?”
“물론 보고했어요. 그리고 내 돈을 들여 갚으려 했는데 예조에서 보내는 것이 규정이라더군요.”
“예조가 역시 일을 잘하네요.”
“일이야 국왕전하만큼 열심히 하겠습니까만, 관리치고는 제법 열심히 하죠. 참! 네덜란드가 인도를 노리는 모양이더라고요. 고아의 성벽에 대포가 올라가 있고 포르투갈 병사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본 말래카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때는 말래카도 고아 부왕령에서 관할했다. 포장마차 주인 덕택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민호가 이야기 값으로 1원을 더 내자 주인이 떡볶이 1원 어치라며 양동이에 가득 담아주었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뜨끈뜨끈한 것을 이민호가 직접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미행 중이라서 여자인 민정은 짐을 들지 않았다.
“주인님. 네덜란드는 인도양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우리가 안 보는 곳에서 그런 약속이 다 지켜지겠어? 어쨌든 이렇게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바로 덴마크에 연락해야겠다.”
유럽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사실상 덴마크 서인도회사의 자회사였다. 동인도회사 설립 전에 이민호가 네덜란드인 대리인을 내세워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주식회사는 주주의 국적을 따지지 않기에 주식을 덴마크 서인도회사로 넘겨서 헤드비히에게 관리를 시켰다.
“함대가 아니라 자본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함대를 원격 통제하는 거여요?”
“그게 훨씬 싸게 먹히거든. 내가 충분한 지분을 갖고 있으니 이사회의 결정도 내 마음대로야. 앞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하고는 싸울 일 자체가 없을 거야.”
잉글랜드 동인도회사는 물론 유럽의 몇몇 상업은행에도 이민호의 개인 자본이 투자돼 있었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라는 근세 자본주주의 중심 지역을 이렇게 자본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 전역에 지점을 둔 국제은행 역할을 담당하는 몰타 기사단에도 교황의 권유로 자본을 투자했다. 원래는 돈을 벌기 위해 설립된 은행이 아니라 유럽 각지에 영지를 소유한 성당기사단이 대출과 환전 등의 방법을 통해 십자군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떠맡은 역할이었다.
성당기사단이 해체된 다음 몰타 기사단이 그 역할과 은행조직을 인수했다. 이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국제적인 영업망을 갖춘 은행 조직이라서 꾸준히 높은 배당률을 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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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아프리카 왕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