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7 81. 러시아 대기근과 중앙아시아 =========================================================================
고산국 항공대에 폭격기나 전투기는 없고 정찰기와 수송기뿐이었다. 그러나 정찰기는 정찰과 수색 외에 폭탄 투하와 기총 사격이 가능한 사실상 다목적 비행기였다.
- 빠아앙~
그 정찰기가 경적을 커다랗게 울리며 우즈베크 기병 대열 상공을 지나 이맘이 위치한 후방으로 쇄도했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몸체와 소리에 놀란 우즈베크 기병들의 말이 일제히 펄쩍 뛰었다. 그러나 이맘을 지키는 정예 총병들이 하늘을 향해 머스킷을 발사했다.
오아시스 상업 왕국 사람들은 총과 대포 등 화약무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병 위주인 유목민들은 총과 대포를 방어전 외에는 잘 활용하지 않았다. 총은 발사 속도가 느려서, 대포는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이다. 비슷한 유목민인 크림한국 같으면 머스킷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화약 생산을 계속해 남는 화약을 매년 오스만 제국에 수출할 정도였다.
- 타탕! 탕!
우즈베크 총병들이 비행기에 대해 적절한 거리 판단을 하기 어렵고 대공사격의 기본인 리드 적용법도 몰랐기에 머스킷은 정찰기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사 순간 하얗게 일어나는 연기가 잠시 이맘의 위치를 가려주는 효과를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맘을 위해 햇빛을 가리는, 사실 겨울이라서 권위적인 소품에 불과한 일산은 희뿌연 연기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빨간 색이었다. 일산 위를 지나는 순간 정찰기에서 큼직한 것을 떨어뜨렸다. 마치 새가 날아가며 똥을 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250킬로그램짜리 항공폭탄 두 발이 땅에 꽂히며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다. 시뻘건 화염이 급팽창하는 범위보다 훨씬 멀리 파편이 비산해서 이맘과 약간 떨어진 위치에 서 있던 총병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폭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 콰쾅!
멀리서 이민호가 본 것은 찢어진 채 날아가는 빨간 일산의 일부뿐이었다. 그러나 이맘의 생존 여부는 우즈베크 기병들의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전진을 멈췄던 우즈베크 기병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 도주한 것이다.
“추격 개시! 토르구트는 왼쪽, 동몽골 기병과 기병연대들은 오른쪽을 맡아라.”
장갑차 원형진 뒤에 포진했던 기병들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나왔다. 그리고 패주하는 우즈베크 기병들을 추격했다.
이곳은 페르가나 말의 원산지에 가까웠으나 산지에서도 가격이 워낙 비싸서 타고 다니는 자들은 극히 적었다. 부하라한국의 사신들, 그리고 키르기스 청년 사신단은 귀족이라서 페르가나 말을 탔을 뿐이었다.
“양쪽 합해서 기병 10만이 넘는군. 장갑차 3대대, 정찰중대 출격!”
우즈베크 기병들이 돌격하는 동안 후방에 배치됐던 장갑차 1개 대대가 추격 임무에 동참했다. 장갑차 기관총 사수는 적 기병들이 뭉쳐서 반격하려는 순간마다 기관총 사격을 퍼부어 와해시켰다.
무한궤도로 발전한 다른 장갑차 대대와 달리 장륜식 장갑차로 구성된 정찰중대는 도주하는 적 기병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다. 장륜식 장갑차들은 일반 산지나 야지에서는 불가능한 빠른 속도로 우즈베크 기병들을 추월했다.
“주인님. 토르구트 기병들이 마치 피에 굶주린 악귀 같아요.”
“기병들이야 신나겠지만 너무 많이 죽이면 곤란한데.”
전사자가 많아질수록 앞으로 부하라한국과 고산국의 감정이 악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벽한 승리가 우선이었다. 유목민은 무조건 일단 실력으로 눌러준 다음에야 관대함이나 인도주의를 논할 수 있었다.
“사신들이 보기에 어떻소?”
“이건, 일방적인 학살입니다! 당장 전투를 멈춰주십시오.”
이민호가 고개를 빼들어 잠시 전황을 살폈다. 그 사이 정찰중대가 우즈베크 기병들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우즈베크 기병들이 포위망에서 빠져 나가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르구트나 동몽골 기병, 그리고 고산국 직할 기병연대들은 중앙아시아 기병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늘 전투에 참가한 우즈베크 기병들은 노인과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여기에 장갑차 1개 대대가 엄호하고 있으니 빠져 나갈 틈은 없었다.
“정상적인 교전이지만, 사신이 그렇다면 고려해보겠소.”
“죽어가는 저들은 전선에 나가 있는 우즈베크 병사들의 아버지나 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발 전투를 그쳐주십시오!”
양쪽 기병들의 수준 차이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벌어져 있었다. 칼과 칼이 맞부딪힐 때마다 우즈베크 노인 기병은 손목이 부러지고 어린이는 칼을 멀리 날려 버렸다. 그리고 2차 공격을 피할 엄두도 못 내고 단박에 목숨을 잃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겁에 질려서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자들도 흔했다. 그들의 목을 향해 칼날이 떨어졌다. 토르구트 기병은 불교도가 대다수라 기도하는 무슬림들의 목을 베는 일에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민호 입장에서도 이런 추태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좋소. 전투를 중단하겠소.”
그러나 이민호가 무전기를 통해 작전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우즈베크 기병들이 항복했다. 전투 초기에 승부가 바로 결판나는 바람에 전사자가 많지는 않았으나, 최소 5천 명 이상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그 몇 배나 많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약탈의 시간이었다. 토르구트와 동몽골 기병들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부상당했거나 상관없이 우즈베크 기병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았다. 겨울이라 속옷과 겉옷 정도는 남겨두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 사이 직할 기병 연대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사방으로 정찰대를 파견했다.
“전하. 혹시 이맘이 도망갔습니까? 제 수하들을 보내 수색을 시켰는데 이맘의 시체를 못 찾았습니다.”
“이맘의 머리 위에 큼지막한 폭탄 두 발을 떨어뜨렸으니 시체를 찾기 어려울 것이오.”
정적의 죽음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왈리 무하마드가 입을 다물었다.
“혹시 말이오. 칸의 자식들이 아직 어린 것 같던데, 만약 칸이 죽으면 칸의 동생이 칸으로 즉위하는 거요?”
“법은 그렇습니다만, 제 오른손이 이래서 그런 불행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저는 칸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이맘들은 정치지도자의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1605년 이후 이맘 쿨리가 왈리 무하마드 칸을 암살하려던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고지식한 무슬림들에게 칸의 불구는 암살을 위한 적당한 핑계거리가 될 수 있었다.
왈리 무하마드가 칸으로 즉위했다가 페르시아로 잠시 도망쳤을 때 제작된 그림에는 명백히 오른손이 없고 소매가 팔랑거리는 식으로 묘사됐다. 내전에 외국군을 개입시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신체적 불구를 이유로 칸을 쫓아낸 이맘의 쿠데타도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저런! 어쩌다 손을 다쳤소?”
“부하라한국이 계속 이어져 왔으나 샤이바니 왕조에 이어 새로이 아스트라한 왕조가 들어선 지 올해로 겨우 3년째입니다. 그 동안 큰 혼란에 빠졌던 부하라 주변 지역에서 숱한 전투가 벌어졌었습니다. 저는 적에게 포위됐던 칸을 구하려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오! 고산국보다 역사가 짧은 나라는 아프리카 왕국 이후 처음이오. 그런데 전쟁 중에 입은 부상을 문제 삼는 자가 종교 지도자인 이맘이라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소.”
“고산국에서는 상이군인과 유가족에 대한 보호가 각별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했으니 당연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세상에는 당연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곳도 흔했다. 나라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상이군인이나 유가족에게 줄 돈이 아깝다는 것이 솔직한 이유였다. 정치가들은 그 대신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곳에 예산을 쓴다는 핑계를 댔으나 국가예산이란 권력자들의 농간에 의해 중간에 줄줄 새기 마련이었다.
“전하! 저 포로들을 어떻게 처분하실 의향이신지요?”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에게 이익을 나눠줘야 하는 책임이 총지휘관인 내게 있소. 이번 원정을 위해 큰 비용이 들었고 전리품도 별로 없으니 포로를 팔아서라도 자금을 마련해야겠소.”
“멀리 외국에 데려갈 것도 없이 저희가 포로들을 사면 안 되겠습니까? 칸을 설득해서 대금을 전하께 지급하겠습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소. 가격만 맞는다면 말이오.”
보통 국가들은 포로들의 몸값을 받아내야 막대한 전쟁비용을 소모한 국가재정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리품을 별로 얻지 못한 병사들에게 당장 승전수당이라도 쥐어줘야 했다.
그러나 부유한 고산국이 승전수당을 걱정할 일은 없었고, 노예제가 불법인 마당에 포로들을 외국에 노예로 판매할 리도 없었다. 그저 이 핑계로 부유하다는 실크로드의 상업 국가들을 협박해서 돈이나 뜯어낼 생각이었다.
“키르기스의 차기 부족장들은 이번 전투에 대한 감상이 어때?”
“말씀 드리기 황공하오나 몹시 끔찍합니다, 전하. 앞으로 저희 키르기스는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내리신 명령은 무엇이든 완수해내겠습니다.”
이번 전투의 교육적 효과는 부하라한국과 키르기스에 그치지 않았다. 토르구트나 동몽골 기병들은 이 이야기를 과장을 섞어 널리 퍼뜨릴 것이다. 토르구트가 고산국에 대한 반란을 꿈도 꾸지 못하게 된 것도 부수적인 효과였다.
쉼켄트 북쪽에 숙영지를 건설하고 전장 정리를 실시했다. 토르구트 기병들이 전사자들을 매장하는 사이 군의관 등 의료진이 우즈베크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즈베크 포로들을 모아 가시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수용했다.
그 사이 사신단이 바쁘게 양쪽을 오갔다. 부하라한국에서는 포로들 몸값으로 금 50만 냥과 페르가나 명마 2천 마리를 바쳤다. 키르기스에서는 그 동안 노예사냥을 업으로 삼았던 작은 부족 셋이 동료 부족들의 손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페르가나 분지 일부를 점유한 키르기스에서도 페르가나 명마 1천 마리를 바쳤다.
“마적 퇴치라는 것, 이렇게 간단히 할 수 있었잖아. 그렇지?”
“위기에 몰려서야 행동에 나선 저희 키르기스를 용서해주십시오, 전하. 부족장들도 설마 이런 꼴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마적들도 설마 고산국 병력이 멀리 우랄산맥에서 키르기스산맥까지 원정하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고산국 병력이 아니라 이웃 부족들에게 공격을 당할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노예 사냥꾼들이 사라졌다.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세력은 오이라트와 건주 여진 정도였다.
카자흐한국과 부하라한국, 그리고 키르기스가 일찍 결정을 내린 덕택에 원정을 예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오이라트를 서쪽에서부터 기습하고 싶어 하는 동몽골 기병들을 다독여 옴으로 보내고 토르구트는 정착지로 귀환시켰다.
다들 승전수당과 봉급을 금으로 받아 집에 돌아가면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초원에서도 냉해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으니 금 두 냥과 은 몇 냥은 가족은 물론 이웃들까지 추운 겨울을 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연말에 왕도로 돌아온 이민호는 혜진과 최 선생, 예조 판서 등 측근들을 집무실로 불러 모았다. 지역별로 물가 수준을 달리 하는 제안을 했던 프랑스 유학생 김수공도 특별히 불렀다. 그리고 원정 기간 동안 생각해온 계획을 발표했다.
“다들 느끼고 있겠지만 은의 가격 안정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소. 그래서 조만간 금 단일본위제로 이행하고자 하오. 지금까지 모아온 금과 북미에서 생산된 금, 그리고 호주에서 생산한 금을 기반으로 금 본위제를 시행하려고 하오.”
길게 본다면 국가경제가 커지면서 금본위제만으로는 화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와 비교해본다면 앞으로 수백 년, 혹은 고산국의 경제발전이 예상보다 빠르다 해도 수십 년은 버틸 수 있었다.
“화폐의 가치가 귀금속의 실제 가치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전하?”
“장기적으로는 그렇소. 지금도 귀금속 가치는 계속 변하고 있소. 그러나 시행 중에 혼란이 커질 테니 일단 금의 가치를 고정시키는 게 필요하오.”
“하위 통화인 은화의 명목 가치와 실제 가치가 달라지면 안 됩니다.”
“우리 고산국 주화의 위조가 가능하다면 세계 모든 나라의 은이 몰려들어 우리의 금과 교환해갈 것이오. 그러나 다른 나라 기술자들은 쉽게 고산국 주화와 비슷하게 만들지 못하며, 혹시나 비슷하게 만들더라도 비중을 따지는 간단한 실험으로 금방 구별할 수 있다고 알고 있소.”
그 동안 김수공과 호조 관리들이 준비해놓은 화폐 개혁안이 있었다. 금 함량 9.9그램으로 만든 10그램 무게의 주화를 10원으로 삼고, 금 한 냥의 3.75분의 1로 규정했다. 1원이 아니라 10원이 기준 통화였고, 여기까지는 귀금속화폐로서 무게로 따져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현재 통용되는 냥 단위의 금화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러나 10원 이하 단위는 귀금속의 본원적 가치에서 약간 벗어났다. 금 0.5그램과 은 4.5그램을 섞어 만든 주화를 1원으로 정했다. 유럽 상인들이 수령을 거부하더라도 고산국 국내에서만 통용되면 상관없었다.
은이 적은 비율로 섞인 주석 주화인 백동화는 쓸모가 많았다. 크기와 구성 비율을 다양하게 해서 1전과 5전, 그리고 10전 주화를 제작했다.
1전이 여전히 가치가 크다는 의견이 있어서 구리로 그 이하 단위를 만들도록 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계획보다 약간 서둘러서 고산국이 과도기적인 신용화폐 시대에 접어들었다.
============================ 작품 후기 ============================
1602년이 끝났습니다.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밀려오는 기병들을 상대시키려 했는데 싸움 붙이기가 더 어렵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