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35화 (684/1,000)

00735  81. 러시아 대기근과 중앙아시아  =========================================================================

카자흐에서의 작전이 끝나고 다음 차례는 키르기스였다. 이는 루스인의 표기법에 따른 발음이었고, 키르기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크르그즈라고 불렀다. 카자흐한국의 관리들과 주변 유목민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키르기스 부족들은 산악지대 깊이 숨어 있다가 약탈할 때만 초원으로 나온다고 했다.

가장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토벌하기 가장 어려운 세력이 산악지대에 틀어박힌 키르기스였다. 이민호는 먼저 여진족 기병 1만을 철도 경비 임무로 복귀시키는 대신 제1 구르카여단을 호출했다. 수송차로 인원만 수송하는데도 열흘 넘게 걸렸다.

구르카여단의 장비와 보급품까지 모두 준비해서 본격적인 토벌에 나서려면 새해를 넘길 것 같았다. 그래서 키르기스에서 직접 작전을 수행할 병력 외에는 모두 귀환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전에 이민호가 표도르 황태자와 루스인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주었다.

“이게 무슨 노래입니까? 루스인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악보 볼 줄 알지?”

고산국 군악대가 장중하게 연주하는 가운데 전원 고산국 군인들로 구성된 남성 합창단이 ‘루스인의 나라’라는 노래를 러시아어로 불렀다. 황태자 표도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오스트리아 출신 남자 음악 선생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프랑스 출신 여자 음악 선생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민호가 기억하는 소련 국가에서 가사를 이 시대 상황에 맞추고 훨씬 부드럽게 바꿨는데도 원판이 워낙 사나이의 노래였다. 강렬한 곡조 때문에 아무리 가사를 고쳐도 종국에는 전체주의 찬양가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현명한 차르의 지도 아래 모든 루스인들이 단합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외국과 평화롭게 지내자는 내용이군요.”

“좋은 이야기지. 마음에 안 들면 가사는 적당히 바꾸든지 해.”

“지금 이대로가 아주 좋습니다. 전하께서 루스인들을 위해 노래까지 만들어주시는군요. 정말 감동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하.”

러시아가 차르국이나 제국, 혹은 외국의 식민지나 그 무엇이 되더라도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다만 동쪽부터 남쪽까지 꽉 막혀서 이민호가 알던 역사와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산국 국가는 안 만드세요?”

“어려워서 말이야. 작곡가들에게 부탁해볼까?”

“에이! 주인님이 직접 만들어주세요.”

민지와 민정이 졸랐으나 이민호는 난감했다. 첫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부터 막혀서 대한민국 애국가를 그대로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민호는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서, 기억에 없는 전혀 새로운 곡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었다.

“날이 몹시 춥습니다. 각별히 옥체를 보존하십시오, 전하.”

“이 지역은 시베리아보다 좀 낫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판.”

11월 중순에 활주로에서 예조판서와 표도르 황태자를 배웅했다. 이번 원정에 참가한 기병들 전원에게 종족을 가리지 않고 금 한 냥씩 나눠주고 남은 10만 냥을 예조판서에게 맡겼다.

최근 갈수록 폭등하는 식량 가격 덕택에 유럽의 금과 은을 빨아들이고 있어서 금 10만 냥 정도는 별 것 아니었다. 황금 3톤 이상을 수송기에 가뿐히 실었다.

루스 차르국은 가만히 앉아서 노가이와 카자흐 등 약탈자들을 퇴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루스 차르국의 남부와 남동부, 동부 국경의 위험이 사라짐으로써 국경에 배치했던 병력 수만 명을 서쪽으로 재배치할 수 있게 됐다. 거꾸로 보면 루스 차르국이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카프카스로 진출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졌다.

예조판서 일행과 루스 차르국의 황태자 및 선생들, 호위들까지 수송기에 태워서 튜멘으로 보냈다. 황태자 일행이 모스크바까지 기차를 타고 편히 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비행기에 타기 직전에 표도르 황태자가 멈춰 섰다.

“모스크바에 활주로를 건설해서 고산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좋겠습니다. 저도 자주 전하를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는 운영비가 비싸.”

“와! 고산국 국왕전하의 입에서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시끄러. 얼른 가.”

생각 같아서야 모든 나라의 수도에 공항을 건설하고 편안히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활주로 건설비나 비행기 운영비가 아니라 인건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 년에 비행기 달랑 한 대가 이착륙하더라도 장기간 훈련시킨 관제요원과 경비 요원을 공항에 유지해야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여객기가 정기 항로를 왕복하지 않는다면 민간 공항이 유지될 턱이 없었다.

“제가 고산국 왕궁에 자주 가야 공주님들을 만나 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지 마. 왕궁에 들어오는 순간 죽여 버릴 거야.”

“북미 여공작 비올레타 각하의 따님 마르그레타 공주님이 벌써부터 미인이 될 조짐이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아! 권총은 뽑지 마십시오, 전하.”

표도르가 집요하게 딸을 달라고 졸라서 엉덩이를 발로 차서 내쫓았다. 외국 국왕 대 황태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딸을 노리는 도둑놈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었다.

얄미운 황태자 다음에 예조판서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신년까지 궁성에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외교 문제는 예조판서에게 일임했다. 매년 하던 일이니 예조판서와 혜영이 알아서 잘할 것으로 믿었다.

수송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다. 수송기는 금방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전하. 기차에 놀랐는데 비행기는 더 놀라운 문명의 이기입니다.”

말 타고 돌아가려고 준비 중인 노가이한국의 케이쿠바트가 감탄했다. 이번 원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세력이 노가이한국이었다. 평소 말 안 듣던 독립 노가이 부족들을 모조리 복속시키고 카자흐한국으로부터 넓은 영토를 할양받았다.

또한 토르구트나 루스 차르국에게 공격받을 우려가 사라졌다. 그리고 부족한 식량을 고산국에서 싸게 매입할 수 있도록 이민호에게서 언질을 받았다.

“이 지역을 잘 아실 케이쿠바트에게 묻겠소. 해로 외에도 철도를 직접 오스만 제국의 수도에 연결할까 하는데, 지름길인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가는 노선으로 잡으면 어떻겠소?”

“에이! 말도 안 됩니다.”

케이쿠바트가 단번에 현실성 없는 노선이라고 단정했다.

“조지아 왕국이 무너지고 지금은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에게 나뉘어 지배되고 있다지만 산사람들 성질이 어디 갑니까? 다 죽을 때까지 악착같이 저항할 겁니다. 산맥을 통해 철도를 건설하기도 힘들고 끊임없는 방해로 인해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일 년 내내 수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지아 지역의 인구가 13세기에 5백만이었다가 18세기 말에는 25만으로 줄어든다. 페르시아 남부 지역의 농노로 끌려가는 등 다는 아닐지라도 외부 침략자들에 대한 치열한 저항의 결과였다.

현대에도 카프카스 산맥 북동부 체첸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치열한 항쟁이 지속됐다.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이 포위돼 전멸할 뻔하기도 한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강하다고 소문 난 노가이한국에서 치를 떠는 것을 본 이민호는 카프카스 산맥에는 접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알았소.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이겠소.”

“저와 노가이한국은 전하께 언제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노가이한국의 군사지휘관인 케이쿠바트는 휘파람을 불며 기병들을 이끌고 북서쪽으로 향했다. 전진기지나 다름없던 케이쿠바트의 영지 엠바 주변이 확고한 노가이한국의 영토가 되면서 이번 원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이 되었다.

노가이 기병들도 황금 한 냥씩 받고 고산국에서 나눠준 보급품을 받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거위털이나 오리털을 넣어 만든 바지와 방한복은 제작비가 은 두 냥이 넘었다. 언제든 기병을 다시 동원할 수 있으니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멀리서 오신 고산국 국왕전하께 부하라의 지배자 바키 무하마드 칸께서, 그 이름에 알라께서 영광을 주시기를! 신하를 보내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키르기스에 대한 원정을 준비하는 사이 부하라한국에 사신을 파견하려 했는데, 출발 직전에 부하라에서 보낸 사신단이 먼저 도착했다. 사신단은 고산국과 카자흐한국 사이에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보다가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칸이 사신단에 결정권을 많이 위임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추정을 뒷받침하듯 사신단을 이끈 대표는 칸의 동생이라는 왈리 무하마드였다. 그는 페르시아 왕족과 비슷한 몸에 끼는 상의를 입고 터번에 깃털을 달았다. 전쟁 중에 잃었는지 오른손이 없고 손목을 소매에 가리고 있었다.

“부하라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무슬림들의 수령이며 알라를 위한 성전의 전사이며 알라의 승리를 위한 찬조자, 바키 무하마드 칸께서는 고산국 국왕전하를 몹시 존경하고 계십니다.”

“나도 부하라의 칸을 존경하고 있었소.”

남을 존경하는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사신 대표가 조상들의 내력과 그들의 알라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길게 읊는 동안 이민호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칸의 여러 가지 칭호 중에 이맘이라는 중요한 칭호가 빠져 있는 것이 특이했다. 부하라한국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살펴봤더니 종교 지도자 이맘은 따로 있었고, 정치적 영향력도 강했다.

실제 역사에서 바키(Boki) 무하마드 칸이 죽고 나서 1605년 동생 왈리(Vali) 무하마드가 칸에 즉위한다. 그러나 이맘 쿨리가 칸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자 왈리 무하마드 칸은 페르시아로 도망친다. 샤 아바스 1세가 군대를 지원해줬으나 왈리 무하마드는 패해서 죽고 이맘 쿨리가 1611년 칸에 오른다.

1600년에만 해도 부하라한국은 아랄 해 남동부 트랜스옥시아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르다리야 강 남서쪽이 대부분 부하라한국의 영토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1598년 페르시아의 공격에 마슈하드와 헤라트 등 남서쪽 영토를 상실했고, 이어진 부하라한국의 왕조 교체 이후 칸에 대한 잦은 암살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됐다.

부하라한국은 페르시아와 카자흐한국의 공격에 점차 밀려나고 잦은 내분으로 인해 국력이 위축된 상태였다. 전통적으로 중요한 교역도시인 타슈켄트를 카자흐에 넘겨줬고, 대도시인 사마르칸트를 한때 점령당하고 다시 수복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고산국이 기병 수만을 이끌고 나타나자 부하라한국은 군사력이 아닌 외교를 통해 영토 진입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전하께서 약탈자 키르기스에 대한 토벌을 추진하고 계시다는 소문이 초원과 산맥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쯤 아둔한 키르기스 부족 사람들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키르기스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반성하도록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도와주기로 했소. 왜요? 부하라한국에서 반대하려 하오?”

“반대하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오나 전하의 군대가 키르기스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부하라한국의 영토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민호에게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대규모 군대가 영토를 지나가면서 온갖 민폐를 끼치게 돼 있었다. 또한 전쟁 중인 카자흐한국이 이 기회를 노려 부하라한국 영토를 공격한다면 몹시 곤란하게 된다.

대규모 외국군이 통과하려는 국가에서는 당연히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통 통과 전에 두 국가가 협의하고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민호는 부하라한국에 한 푼도 줄 생각이 없었다.

“부하라한국이 그 동안 키르기스를 보호한데 대한 응징을 가할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라오.”

“오! 신이시여! 알라께 맹세컨대 저희들은 키르기스들이 다른 나라를 약탈하도록 도와준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키르기스 족의 기원은 사마천의 <사기>에 묘사된 내용을 신뢰한다면 적발녹안이었다. 붉은 머리에 녹색 눈이라면 켈트 족과 유사한 백인 계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대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주민의 대부분은 몽골 영향을 크게 받은 투르크계이며, 백인의 유전적 영향은 8분의 1 정도로 보고 있었다.

키르기스 족은 고대에 바이칼 호수 북쪽 예니세이 강 상류에 거주하면서 철륵 연맹이나 돌궐 연맹, 위구르 제국 등에 속했다. 그리고 서기 840년에 위구르에서 독립해 발하슈 호 인근으로 이주하면서 시베리아 남부부터 몽골, 카자흐 동남부와 천산산맥까지 흩어져 살았다.

“그래서 여기 키르기스인 부족장의 아들을 인질로 데려왔습니다.”

온몸에 가죽옷을 두른 청년이 끌려와 이민호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가 부족장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저는 베르쿠치일 뿐입니다, 전하. 요즘 산맥에 기근이 들어서 동료들과 함께 멀리 초원으로 사냥하러 나왔다가 이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어허! 어디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냐?”

부하라한국 사신들이 키르기스 청년을 윽박질렀다. 이민호는 베르쿠치, 즉 검독수리 사냥꾼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겨울에 말 타고 팔에 거대한 수리 종류의 맹금류를 얹고 다니면서 늑대나 여우를 잡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여우의 주둥이나 늑대의 목덜미를 강력한 발톱으로 옥죄어 죽이는 검독수리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그렇다면 네가 데리고 다니는 수리는 어디에 있느냐?”

“위험해서 동료들과 함께 도망치게 했습니다만, 제가 검독수리의 주인입니다.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바로 부르겠습니다.”

“불러라. 구경 좀 하자.”

청년이 입을 오므리고 손가락을 넣어 삐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잠시 후, 거대한 검독수리가 하늘에서 나타나 청년의 팔에 내려앉았다. 흔한 흰꼬리수리도 아니고 훨씬 큰 사냥꾼인 검독수리가 날개를 펼치자 말 크기와 비교될 정도였다.

“멋지군.”

“하오나 전하! 수리 사냥은 키르기스 귀족들의 취미입니다. 저 비싼 검독수리를 어떻게 일개 사냥꾼이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을에 기근이 들어서 멀리까지 사냥을 나섰다는 청년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청년의 동료들이 몰려와서 부하라한국 사신들을 비난했다. 키르기스는 말 타기도 아주 잘하는 산악인들이었다.

청년은 또한 마나스치, 즉 마나스 암송가의 후계자로서 키르기스의 민족적 영웅인 마나스의 서사시를 10만 줄까지 외우고 있었다. 마나스를 완전히 암송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나, 키르기스에서는 단 한 줄도 외우지 않았던 마나스치가 어느 날 자다 깼더니 다 외우게 됐다는 식으로 신비한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었다.

“사신 대표는 어찌 변명하겠소?”

“이들이 키르기스인들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발 전하! 대군을 이끌고 영토에 진입하지 말아주십시오. 지금도 망하기 직전입니다.”

“부하라한국의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키르기스를 내버려두면 계속 약탈을 할 것이고, 그럼 속국들이 위태로워져서 어쩔 수 없소.”

“저희들이 키르기스를 막겠습니다. 키르기스가 명목상 칸의 신민들이니 말을 들을 것입니다. 만약 말을 안 들으면 군대를 동원해 몰살시키겠습니다.”

부하라 칸의 동생이 애걸복걸하는 동안 이민호가 키르기스 청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역관을 통해 우즈베크어를 알아들은 청년들이 놀라기는커녕 콧방귀를 뀌었다.

“풋! 우즈베크인들이 키르기스를 공격하겠다고?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너희들은 지금 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가 너희를 말리지 않으면 고산국이 직접 토벌할 것이다.”

칸의 동생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수리 사냥꾼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고산국이 강한 것 같지만 산맥에서 과연 힘을 발휘할지 모르겠습니다.”

“네놈들이 매를 버는구나.”

이민호가 구르카여단에서 중대장을 맡은 구르카인 상사 하나를 불렀다. 30대 중반의 구르카 전사가 달려온 다음 키르기스인 청년들을 쭉 훑어봤다.

============================ 작품 후기 ============================

중앙아시아 원정을 끝맺기가 참 어렵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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