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3 81. 러시아 대기근과 중앙아시아 =========================================================================
“유목민이면 비율이 높지 않습니까? 15만은 쥐어짜낼 겁니다.”
“더 많을 수도 있지.”
“저도 아홉 살에 전쟁에 동원된 적이 있습니다. 말 타고 뒤에 서 있기만 했지만요.”
감동은 시전부락이 주변 여진족들과 싸울 때 남자아이들은 물론 노인과 성인 여자들까지 전쟁에 총동원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명화된 국가일수록 국가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빠지다 보면 총인구의 10퍼센트를 동원하기도 어려웠다.
카자흐한국은 1465년에 발하슈 호수 남동쪽을 중심으로 건국돼 1523년 사망한 카심 칸 때 국가로서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발하슈 호수 북쪽과 북서쪽의 광활한 초원과 사막을 영토로 확장한 것도 카심 칸의 업적이었다.
그러나 사막과 초원에 사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카자흐한국에는 현재 에심 칸이 1598년 즉위한 이후 남서쪽 부하라한국과 동쪽 오이라트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이라트로부터 주로 침략을 당하는 대신 나중에 우즈베키스탄이 되는 부하라한국의 영역인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로 진출하는 식으로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카스피 해 동해안부터 아랄 해 남쪽에는 부하라한국처럼 주치의 자손들이 칸으로 이어지고 우즈베크 족이 중심인 히바한국이 자리를 잡았다. 원래 역사에서는 토르구트 족이 볼가 강으로 이주할 때 이주로 중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토 전체가 짓밟혔다. 그러나 토르구트 족이 기차로 이동한 덕택에 히바한국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저번에 도련님께서 유목민이 다른 지역을 약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맞아. 유목만으로는 자급자족이 안 되니까 교역이 막히면 침략에 나설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아시스 국가들은 달라. 유목 외에 농경을 하면서 무역도 해서 굉장히 풍족하고 부유한 지역이거든. 농경과 교역으로 힘을 키워서 다른 나라를 약탈하는 유목국가는 변명해줄 필요가 없어.”
그 부유하다는 카자흐인들이 노예를 얻기 위해 멀리 루스 차르국에 자주 쳐들어가서 약탈을 일삼는 것이 문제였다. 약탈 문제 때문에 카잔한국이 루스인들에게 가장 먼저 망한 것처럼 18세기 전반 러시아로부터 역습을 당하게 되지만, 현재 루스 차르국은 대기근에 시달려 밖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예판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전하께서 외정을 하시고 제가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신하된 도리로서 당연히 찾아뵈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모스크바에서 요한 왕자와 차르의 딸 크세니아의 결혼식에 참가한 예조판서가 아랄 해 인근에 주둔한 원정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예조판서는 최 선생의 부친이며 건국 초부터 이민호를 도운 개국 공신이었다. 당연히 이민호의 말투가 조심스러웠고, 예조판서도 국왕의 장인으로서 더욱 몸조심,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과의 협의는 잘 이루어졌습니까?”
“예. 루스 차르국과 스웨덴이 앞으로 10년간 휴전하기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다만 덴마크가 욕심을 부려서 문제였습니다만, 해결됐습니다.”
“덴마크의 돈줄이었을 텐데 모처럼 양보했군요. 예판께서 수고하셨습니다.”
루스 차르국이 발트 해를 접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루스 차르국의 모피를 독점 교역하는 것이 덴마크의 오랜 정책이었다. 그러나 결혼이 성사되면서 덴마크가 핀란드 만의 해안 일부를 할양함으로써 루스 차르국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덴마크 왕실에서는 황태자 표도르가 일찍 죽어 크세니아의 남편인 요한 왕자가 차르를 계승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을 것 같았다. 사전 정지 작업인지 요한 왕자가 보야르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젊은이라도 언제든 요절할 가능성이 있으니 덴마크는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민호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고산국과 덴마크가 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를 지원하고 있어서 로마노프 왕실이 차르나 황제에 등극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조선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출발하면서 조선에 잠시 들렀는데 조선 조정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기탄없이 말씀해보십시오.”
“조선 양반, 지주들이 노비의 자식들을 인질로 잡아두고 노비 출신 농민을 고산국에 위장이민을 보낸 일은 전하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고산국에서 농부가 고소득 직종이라는 사실은 조선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조선인 농민들을 유인해내기 위한 목적도 있어서 이민호는 가급적 농민들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영농기계화를 추진해 성공을 거두었다.
몇 년 전에 몇몇 양반들이 노비들을 데리고 고산국에 이주한 경우가 있었다. 농지가 농가마다 분배되므로 광대한 땅을 경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노예제가 불법이기에 노비들은 언제든 양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산국에서 편하게 놀면서 농가 몇 가구의 수입을 올리려던 양반들은 노비들을 잃고 그렇다고 농사를 직접 짓기는 싫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선 양반과 지주들은 고산국에 직접 이민을 가지 않고도 과실을 따먹는 방법을 찾아냈다. 자식들을 조선에 잡아두고 노비 부부만 고산국에 귀화시킨 다음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농가 수입의 대부분을 조선에 보내도록 강요해서 가만히 앉아서 배를 불렸다.
건국 초부터 고산국과 조선이 협상을 벌여 도망 노비는 이민을 받지 않도록 결정됐다. 연락선이 닿는 항구마다 검색이 심해서 노비가 고산국에 가기 위해서는 명나라 등 외국을 통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 조선 농민들이 고산국에 이민을 오는 경우가 늘어난다 했더니 역시 면천 노비로 위장한 노비들이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서 조선에서 노비 값이 치솟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고, 적발될 경우 조선 조정에서 자식들을 고산국에 보내주기로 합의했었지 않습니까? 혹시 조선이 노비의 자식들을 송환해주지 않습니까?”
“조선 조정이 아니라 적발된 노비들이 주인, 그러니까 지주나 양반을 옹호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식들을 조선에 남겨두고 교육을 시킨다나요.”
“노예근성 쩌네요. 아! 농담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하?”
이민호가 한참 고민했다. 내버려둔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다만 지주와 양반들이 하는 짓이 얄미웠다.
지주들 중에 양인도 있고 심지어 노비도 있었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노예가 노예를 사서 부리는 것처럼 조선에서도 노비가 노비를 매매할 수 있었다. 외거 노비는 소작농과 별다를 게 없었다.
“노예는 필요 없소. 조선으로 추방하시오.”
“예, 전하.”
고산국에 위장 이민을 온 가짜 노비들은 법률상 조선에서 면천됐으니 더 이상 노비가 아니었다. 다시 주인의 노비가 되든 양인으로 살든 알아서 할 일이었다.
초원과 사막에서 소탕작전이 계속됐다. 그 사이 표도르 황태자는 선생들에게 수업을 받는 중에도 종종 이민호에게 놀러왔다. 예조판서가 언급한 문제를 황태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드미트리 왕자가 나타났다는데 어찌 된 일인가?”
“당연히 가짜입니다, 전하. 2년 전에 차르께서 조사를 시키려고 하니까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도망쳤습니다.”
드미트리 왕자는 어려서 죽은 이반 4세의 아들이었다. 우글리히에서 암살당했을 때 모친과 귀족들이 왕자의 시신을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루스 차르국 역사에 기록된 가짜 드미트리가 세 명이나 나왔고, 둘은 찬탈에 성공해 차르에 올랐다.
이반 4세가 결혼을 일곱 번을 했으나 정교회에서 정식 결혼으로 인정한 것은 앞의 세 번까지였다. 그래서 드미트리 왕자는 차르 계승권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루스인들을 공포로 지배했던 미치광이 이반 뇌제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찬탈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였다. 루스인들의 삶이 어려워질수록 어딘가 드미트리 왕자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더욱 강한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가짜 드미트리가 나타났다.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가서도 진짜 드미트리로 행세했다. 폴란드 귀족들은 그를 세밀히 조사한 다음 진짜라고 결론을 내렸다. 진짜든 가짜든 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의 권위를 흔들 수 있다면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폴란드에 범죄자를 송환하라고 요구하지 그래?”
“폴란드에 있으면 있는 대로, 모스크바로 데려와서 처형하면 처형한 대로 문제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1605년에 폴란드의 지원을 업은 가짜 드미트리와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가 군사를 동원해 대결한다. 그런데 보리스 고두노프가 갑자기 병으로 죽는 바람에 루스 차르국 군사들이 가짜 드미트리에게 붙어버린다. 표도르 2세로서 차르에 즉위한 표도르는 보야르들이 일으킨 궁정 쿠데타 과정에서 살해된다.
“그렇긴 하군. 새로 들어선 왕조라서 아직은 탄탄하지 못한 것 같아. 황태자가 더욱 잘해야 할 거야.”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십시오, 전하.”
어서 표도르가 차르로 즉위해야 루스 차르국이 안정될 것 같았다. 그러나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기 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황태자가 차르가 될 때까지 황태자와 루스 차르국을 보호해주기로 약속하마.”
“고맙습니다, 전하. 혹시 전하의 따님들 중에서 제 배필로 적당한......”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안 돼! 꿈도 꾸지 마!”
농담 비슷하게 거절했으나 진담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 딸을 달라는 놈팽이 놈들이 많을 것을 생각한 이민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작전 지역이 동쪽으로 옮아가면서 사령부도 이전하기로 했다. 장갑차 연대는 일부러 훈련에만 투입하고 실전에는 주로 토르구트와 노가이 기병을 동원했다. 카자흐한국이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없이 토벌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전하! 항공대의 보고입니다. 남동쪽 120km 거리에 기병 3만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장갑차 안에서 통신참모가 보고했다. 지휘장갑차 후방석에는 보병 대신 통신기를 잔뜩 수납해놓고 여러 부대에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따로 보고를 받은 감동이 바로 이민호에게 달려왔다.
“도련님. 카자흐인들이 결국 전쟁을 택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서부의 작은 부족연맹만으로는 그 정도 병력이 못 나올 텐데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10월에 노가이 부족을 치는 것을 보면서 카자흐한국 전체가 미리 준비했을 거야. 감동아! 병력 집결하고, 아군 정찰대에게 적 정찰대를 잡으라고 해.”
“예, 도련님. 차라리 잘 된 것 같습니다. 주변 모든 유목민들에게 고산국의 힘의 우위를 확실히 보여줄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군대를 오래 지휘하다 보니 영원히 순수 직업군인일 것 같은 감동마저도 정치적인 사고를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도 차라리 잘 됐다고 여겼다.
그러나 병력이 대치한다 해서 반드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틀 후, 아랄 해 동쪽, 시르다리야 강변에서 고산국이 주도하는 연합군과 카자흐한국의 대군이 대치했다.
평원에 각각 기병 수만 명이 배치된 상태에서 잠시 교섭이 진행됐다. 전령이 양쪽 진영을 바쁘게 오갔다.
“뭐? 시르다리야 강을 국경으로 정하자고? 칸에게 오해라고 설명을 자세히 좀 해줘. 국경 조약도 필요하지만 우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약탈자들을 응징하러 왔다고 말이야.”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칸이 믿지 않습니다. 국왕전하께서 이렇게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 증거랍니다. 틀림없이 카자흐 영토를 빼앗고 궁전 지하 창고에 가득한 보물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고 가장 예쁜 네 번째 왕비를 강간하기 위해서 국왕전하께서 친정을 벌이시는 거랍니다.”
“참 구체적이네. 성질나는데 콱 그렇게 해줄까보다.”
동원한 병력이 많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산국 3개 기병연대와 장갑차 연대, 토르구트 3만, 여진과 동몽골 각각 1만, 노가이한국 2만까지 해서 8만을 넘겼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넓은 초원과 사막 지대에서 8만 정도는 한 줌에 불과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결국 카자흐한국의 칸과 직접 대면하기로 했다. 각자 호위 열 명씩 데리고 평원 중간에서 만났다.
에심 칸은 카자흐인들을 3개 부족연맹으로 조직해서 오이라트의 침략을 막아내고, 또한 반대쪽 부하라한국을 몰아붙인 영명한 군주답게 꽤나 똑똑해 보였다. 그러나 거의 세 배나 되는 고산국 병력에 겁을 집어먹은 티가 역력히 났다. 장갑차의 위력은 아직 보여주지도 못했다.
“내가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은 카자흐의 칸과 국경조약을 체결하고 약탈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국경이라면 아랄 해부터 시르다리야 강을 거쳐 발하슈 호수까지 이으면 어떻겠습니까? 사막은 어차피 없어도 그만입니다. 국경만 확고히 정해주십시오.”
텡기즈 호수와 같은 위도를 국경으로 정하려 했는데 칸의 말을 듣고 보니 솔깃했다. 이민호가 고민하자 민지가 안절부절못했다.
“칸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자비를 베푸세요, 주인님.”
“그, 그럴까?”
카자흐한국 유목민들의 활동 영역이 스텝 남부까지 이어진다 해도 카자흐한국만이 아닌 여러 종족이 사용하는 초지였다. 영토는 넓을수록 좋았고 고산국은 혼자가 아니라 토르구트를 비롯한 여러 부용 민족들이 있었다. 나중에 발견될 석유와 천연가스도 욕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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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덩치가 커져서 싸움 시키기 참 어렵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