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29 81. 러시아 대기근과 중앙아시아 =========================================================================
81. 러시아 대기근과 중앙아시아
고산국 영토는 광활하다고 할 정도로 넓었고, 그 동안 농경지를 많이 개간했다. 농기계와 화학비료까지 동원해 생산성도 무척 높았다. 그래서 넘쳐나는 곡식을 창고에 보관하는 것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1602년 초부터 유럽 국가들에 식량판매가 대폭 늘어 이민호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골머리를 앓았다. 1600년 2월 19일에 발생한 페루 와이나푸티나(Huaynaputina) 화산의 분화로 인해 대기권 상층부로 올라간 엄청난 양의 황 입자가 햇빛을 가려 전 지구적으로 단기적인 한랭화를 유발했다. 이는 온대지방에 흉작을, 고위도 지방에 치명적인 흉작을 초래했다.
스웨덴의 경우 겨울에 기록적인 강설량을 보였다가 눈이 녹는 봄에 대홍수가 나서 농사를 망치고 여름에는 전염병이 돌았다. 유럽에서 곡창지대로 평가받는 프랑스와 폴란드도 흉작이라 식량을 구할 곳이 없었고, 독일에서는 와인 산업이 완전히 붕괴됐다.
명나라와 조선도 마찬가지로 1601년에는 곡식의 낱알이 패더라도 여물지 않아 흉년이 들었다고 실록에 전한다. 심각한 흉년은 1603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꾸준히 식량을 수입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쌀과 밀 대부분이 창고에서 썩어서 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절반이 비었어요. 100년 안에 절대로 채울 수 없을 것 같던 왕궁 지하 보물창고가 어느덧 금과 은, 보석으로 가득 찼어요.”
“실로 감동적인 이야기야.”
이민호는 혜영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았다. 1601년에 고산국 북미도 역시 흉작이었고, 특히 오대호 주변 평원의 농사를 크게 망쳤다. 그러나 영토가 넓어 기후가 다양한 고산국 영역 몇몇 지역에서는 오히려 풍작인 곳도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곡물창고에 지난 몇 년 동안 생산했다가 처분하지 못한 밀과 쌀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산국과 대서양으로 진출한 유구국, 그리고 덴마크와 네덜란드 상선들이 열심히 곡물을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금괴와 은괴를 보관할 곳이 부족해요. 얼른 왕궁 보물창고를 확장해야 해요.”
“공사는 진행하도록 해. 유럽에서 더 이상 금과 은을 긁어 들이지 말고 채권이나 이권으로 식량 대금을 받아.”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금과 은이 유럽에 남아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열대 기후인 고산국 본토도 흉작에 가까웠다. 그러나 곡물가가 오랜만에 폭등해서 농민들이 오히려 재미를 좀 봤다.
만약 각 지역에 설치한 측후소에서 여름 기온의 비정상적인 하강을 경고하지 않았다면 창고에 보관했던 쌀과 밀로 알코올을 만들 뻔했다. 페루에서 구아노를 수송하던 상선 선장이 화산 분화를 보고해서 원인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모스크바에서 덴마크 요한 왕자가 보낸 서신이에요. 발신일이 작년 10월 초인데 덴마크를 경유하느라 이제야 겨우 도착했어요.”
“서 시베리아로 보내지 말이야. 내용이 뭔데?”
“루스 차르국에 대기근이 발생했대요. 수확한 곡식이 거의 없대요.”
“역시 고위도 지역에 더 치명적이야. 차르는 어떻게 대응했대? 편지에 그런 내용이 나와?”
1601년 여름 루스 차르국에 기록적인 냉해가 덮쳤다. 여름인데도 밤에 종종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정도로 심각한 냉해 탓에 경작지에서 수확을 거의 거두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 흉작과 대기근이 1603년까지 이어져 루스 차르국 인구의 3분의 1인 2백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러나 식량이 남아도는 고산국 덕택에 루스 차르국에서 백만 명 단위로 굶어죽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게 됐다. 대신 금과 은이 고산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생겼다.
“차르가 모스크바의 가난한 자들에게 돈과 식량을 나눠줬대요.”
“맙소사! 어째서 그런 바보짓을 한 거야? 모스크바 시민들의 반란이 그렇게 두려웠나?”
“유럽에서 흉년에 이렇게 대응하면 자비로운 군주라는 칭찬을 받지 않나요?”
흉년이 들어 곡물가가 폭등하면 도시 빈민들은 살 길을 잃는다. 이때 군주가 식량을 공짜로 나눠주고 식량을 살 돈을 나눠준다면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백한 실수였다.
“유럽 전역을 덮친 흉작이야. 그런 미봉책은 굶주린 농촌 사람들을 도시가 아니라 수도로만 몰려들게 만들 뿐이야.”
“주인님의 예상이 맞아요. 농민들이 모스크바로 몰려들었다는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중국에서도 기근이 발생하면 농민이 도시로 몰려들잖아요.”
식량은 농촌이 아닌 도시에 있었다. 농촌은 곡식을 생산하지만 저장은 도시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근이 든 해에 농민들이 무작정 도시로 가서 구걸을 하든 막노동을 하든 연명했다가, 봄에 다시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하필 수도 모스크바에서만 식량과 돈을 나눠줬다는 것이 문제야. 사람들이 멀리 모스크바로 몰려들면 봄에 농사지으러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농촌과 다른 도시들의 경제구조가 붕괴되면 올해도 기근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각하군요.”
“아주 심각해. 혹시 차르는 인구 조절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거 아냐? 루스인을 멸종시키려고 작정했나?”
“설마 그러겠어요? 번역된 편지 내용을 좀 더 읽어드릴게요.”
요한 왕자는 차르의 청이라면서, 이민호에게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자그마치 6백만 명이 일 년 동안 먹을 양이었다. 작물을 거의 수확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유럽에서 식량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루스 차르국에는 구매 대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절반은 금으로, 절반은 나중에 같은 양의 식량으로 갚겠다고 제의했다.
“우리에게 루스 차르국이 갚을 식량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그럴 가능성도 없겠죠?”
“반값으로 사겠다는 뜻이야.”
“도와줄 건가요?”
“어차피 식량은 매년 남아도는데 이 기회에 인심 좀 쓰지 뭐. 대신 빚을 지워야겠어.”
다른 나라의 미래를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채무자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군함 등을 사게 해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웠고, 채권을 빌미로 각종 이권을 뜯어내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그리고 냉해와 흉년은 작년으로 그치지 않을 거야. 올해는 물론이고 어쩌면 내년 1603년 가을까지 이어질 수도 있어.”
“역시 화산 분화 때문인가요? 그래서 호주와 북미의 시장들에게 경작 면적을 대폭 늘리도록 지시하셨군요.”
“튜멘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를 놔야할지도 몰라. 선로와 기술자, 경비 병력 출동 준비를 해둬.”
오대호 연안의 제철소에서 선로를 제작해 서 시베리아까지 수송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본격적으로 곡물을 수송하기 위한 철도 건설 전에 미리 준비해두는 편이 좋았다.
“어째서요? 설마 차르가 자기 영토 안에 철도를 놓게 할까요?”
“루스 차르국에 식량을 운반할 인원이 없거든. 농민들이 모스크바에 몰려들었으니까.”
마침 튜멘 시장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루스인 농민과 그 가족 10만여 명이 우랄산맥을 넘어 고산국에 귀화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민호는 5만 명을 서 시베리아에서 노동자로 활용하도록 하고 나머지 5만은 호주로 이주시켰다. 호주 칼굴리 금광에 노동력 여유가 생겼고, 그 동안 개간을 미뤄두었던 호주 남서부 새목포 주변을 농지로 개간해 경작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우랄산맥을 넘을 루스인들도 모두 서 시베리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정착시키기로 했다. 만약 루스인들을 서 시베리아에 정착시켰다간 자칫 그 지역 전체가 고스란히 루스 차르국에 넘어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주나 돼야 흉년을 이용할 수 있는 거야. 다른 나라에서 보면 우리가 꽤나 얄미울 것 같은데?”
“다들 흉년 때문에 제 코가 석 자여요. 우리에게 신경 쓰지 못할 것 같아요.”
대규모 흉년의 여파가 잉글랜드에도 도달해, 아일랜드에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없어 일부를 철수시켰다. 덕택에 북미로 이주했다가 아일랜드 독립군에 지원한 청년 500여 명이 아일랜드 서부에 무사히 잠입할 수 있게 됐다.
가칭 아일랜드 평민 독립군은 척박한 황무지에 주거지와 농지를 건설하고 양을 키웠다. 전투보다 보급과 생존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 유격대의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기도 전부터 대서양과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루스 차르국에 대한 식량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루스 차르국 영토 내에 식량을 수송해도 국내 수송 역량이 붕괴돼 필요한 곳에 식량을 분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곡물을 수송해야 할 농민들이 죄다 모스크바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민호가 예상한 것처럼 차르의 동의를 얻어 튜멘에서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급히 철도를 깔았다. 곡물 수송을 마치면 선로를 회수할 예정이었다.
선로와 건설장비, 자재가 이미 준비돼 있었기에 루스인 귀화 노동자들까지 동원해 건설은 빠른 시일 내에 끝났다. 덕택에 모스크바에 모여든 루스인들이 대량으로 아사하기 직전에 식량 공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바 네 손길에 정성이 가득 깃든 것 같다?”
“당연하지요, 주인님. 주인님께서 제 동포들을 살려주셨으니까요. 고마워요.”
“칭찬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요즘 이민호의 목욕 시중은 러시아 궁녀들인 에바와 올가, 그리고 이리나와 율리아가 돌아가며 맡았다. 목욕 침대에 엎드린 이민호는 나긋나긋한 에바와 올가의 손길을 즐기며 졸음 속에 빠져 들었다.
“때가 나오지도 않는데 왜 몸을 밀어요?”
“그야 마사지 효과 때문이지. 몸이 나른해지잖아.”
봄에 들어선 다음 이민호는 루스 차르국에 대한 식량 수송과 여진 기병 및 토르구트 기병의 훈련에 전념했다. 이민호가 직접 서 시베리아까지 가서 훈련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령관인 감동을 지원하는 일을 계속했다.
노가이 족과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은 아직까지 조용했지만 약화된 루스 차르국을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들이 이 기회를 노리고 뭔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만간 고산국에서 군사력을 동원해 가상 적국인 루스 차르국을 지원해야 할지도 몰랐다. 국제사회의 금언처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셈이었다.
1602년 초여름, 고산국의 식량지원 덕택에 굶어죽지 않은 루스 농민들 중에서 절반이 더 늦기 전에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냉해는 여전했고, 가을에 수확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해에 또 다시 루스인 20만 명이 서 시베리아를 통해 고산국에 귀화했다. 루스인들이 뭉치지 않도록 북미 미시시피 강 유역과 호주 북동부, 흑룡강 하구 등 여러 곳에 분산 배치했다.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는 왕관을 담보로 맡기며 고산국에 추가적인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이민호는 루스 차르국의 계승권을 상징하지도 않을 왕관을 즉시 돌려주었다. 그러자 차르가 다른 제안을 했다.
“볼가 강 동쪽 스텝 지역을 사달라고?”
“우리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현재 노가이 족이 거주하고 있어서 실제로 루스 차르국의 영토라고 하기도 어려워요.”
“혜영이 말이 맞아. 사더라도 스텝 지역은 토르구트 족에게 맡겨야 할 텐데 그쪽도 땅이 너무 넓어서 관리하지 못할 거야.”
볼가 강 동쪽 스텝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선사시대에 이 지역에서 몇 가지 중요한 문화가 시작돼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고, 사르마트와 켈트 족, 슬라브 족 등의 발원지 역할도 했다.
“카스피 해 북쪽에 강이 둘 연결돼 있는데 서쪽은 볼가 강, 동쪽은 우랄 강이야.”
“우랄 강이라면 우랄산맥에서 가까워 지키기에도 좋아요. 자연적인 영토 경계로 삼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곳도 노가이 족이 거주하는 곳이야. 지금 루스 차르국은 노가이 족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강제력도 없어.”
“이 기회에 폴란드-리투아니아나 스웨덴이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정도여요.”
루스 차르국이 영토를 판다고 했으니 우랄 강 동쪽 지역에 사는 노가이 족을 밀어내고 그 지역을 차지할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다. 그러나 인구가 적은 노가이 족은 문제가 아닌데 나중에 힘을 회복한 루스 차르국이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나설까봐 골치가 아팠다.
고산국 입장에서 스텝 지역 땅은 별로 필요가 없었다. 전쟁을 해가면서 빼앗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시베리아에서 완충 지대 방어를 맡은 토르구트 족에게도 가축을 살찌울 충분한 초원이 있었다.
고산국이 만약 초원에 욕심을 냈다면 몽골 고원이나 카자흐 족의 영역을 모두 차지했을 것이다. 이민호는 그저 시베리아 철도를 흑해로 연결하기 위해 카스피 해 북쪽 스텝 지역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고분고분하다면 유목민이 아니겠지.”
“노가이 족을 치려고요?”
북미 순행 외에는 원정을 자제하는 이민호가 다시 움직이려 했다. 혜영은 이민호가 순행이나 원정을 나갈 때마다 쌓이는 업무를 걱정하면서도, 젊은 국왕이 너무 왕궁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우려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그 동안 토르구트 족에서 노가이 족의 국경 침입 사례를 축적해두고 있어.”
“키르기스 족은요?”
“그쪽은 뭐, 쳐봤자 이익이 없으니까.”
이민호가 얼버무렸다. 사실 토르구트 영역에 대한 침범 사례는 노가이 족보다 카자흐 족과 키르기스 족이 훨씬 더 많았다. 특히 키르기스 족은 걸핏하면 국경선을 침범해 가축을 약탈해갔다.
토르구트 족이 카자흐 영역 깊숙이 들어가 키르기스 족의 본거지를 몇 번 토벌하기도 했으나 도적떼가 반성한 것 같지는 않았다. 키르기스 족은 토르구트 족의 영역이 원래 자기들 영토였다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노가이 족 토벌에 대한 명분이 부족해요. 노가이 족을 치려면 먼저 키르기스 족과 카자흐 족부터 쳐야 해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조정 회의를 열어서 국경 침범을 이유로 키르기스 족을 대대적으로 토벌하고 카자흐 족은 더 남쪽으로 밀어내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노가이 족을 도모하기로 했다.
우랄산맥 남동부 스텝에 완전히 정착한 토르구트 족은 이제 웬만한 작전은 단독으로 수행할 역량이 충분했다. 하지만 노가이 족의 영역이나 드넓은 카자흐 족의 영역을 완전히 정복해버릴까 두려워 고산국에서 직접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동맹이나 복속된 부족이라도 유목민에게 단독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토르구트 족의 영역과 인구가 늘어나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직접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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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과 1603년에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러시아는 동란의 시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