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27화 (676/1,000)

00727  80. 1601년 순행  =========================================================================

“비올레타! 아일랜드에 대한 지원 준비는 해놓았소?”

“예. 가톨릭과 연계해서 아일랜드 서부에 근거지를 마련하기로 했어요.”

북미 여공작 비올레타는 북미의 개척과 행정만 맡은 것이 아니었다. 비올레타의 직속 에스파냐 시녀들과 베네치아 시녀들을 동원하고 유럽 국가 주재 대사관들을 통해 유럽 전체의 정보망을 관장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비올레타가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의 종교박해에 반발해서 가톨릭에 민족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신교도로 개종한 잉글랜드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포함해 에스파냐 신부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최소한 자금과 무기만큼은 에스파냐에서 더 많이 지원해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젊은 아일랜드 독립군 전령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소?”

“로리 오도넬이요? 북미의 아일랜드 이주민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용군을 모집하고 있어요. 하지만 귀족 청년들의 전쟁 놀음에 희생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여요. 게다가 패전 직후잖아요. 지원자가 거의 없어요.”

“이름이 참.”

26세 청년 귀족에게 게일어 이름이 따로 있었으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웠다. 잉글랜드를 비롯한 외부에는 로리 오도넬로 알려졌다.

“젊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그의 형은 아일랜드 북부 티르코넬의 왕이며 오도넬 씨족(clan)의 수장인 휴 오도넬이에요. 와병 중인 휴 오도넬이 만약 이번에 죽는다면 로리 오도넬이 형의 지위를 상속할 거여요. 왕이 될지도 모를 사람이에요.”

“코딱지만 한 땅에 왕은 무슨. 아일랜드 귀족들이 잉글랜드에 쉽게 항복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소.”

그러나 티르코넬의 왕이 되는 로리 오도넬과 티론 백작 휴 오닐은 1603년 잉글랜드에 항복한다. ‘9년 전쟁’의 종말이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가 아일랜드 섬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민호는 9년 전쟁의 자세한 전개 과정을 몰랐지만 아일랜드 전체가 잉글랜드에 점령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아일랜드를 지원해줄 의향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귀족들이 하는 짓을 보니 이미 틀렸고 고산국 이주민 출신이나 평민으로 조직된 독립군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셰이 쇼 하사에게 정말로 유격전을 시키실 것은 아니죠? 그렇게 적은 병력으로는 무리잖아요.”

“상황을 봐서 결정하겠소. 소규모 유격부대라도 시간이 흘러 민중의 지지를 얻으면 대규모 부대로 성장할 수 있소.”

유격대원, 즉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평민 독립군들은 힘겨운 유격훈련 위주로 단련되고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사실은 저녁식사 후에 받는 실내교육이 핵심이었다. 교육은 전투가 아닌 활동지역 내 주민 선무 공작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선무 공작 대상이 같은 아일랜드인이라서 어렵지 않을 것으로 평가됐으나, 아일랜드도 지역마다 특성이 천차만별이라 단순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유격대원들이 아일랜드에서 잘 해내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원이 너무 적어요.”

“나는 아일랜드 사람들 전체가 봉기하길 원하고 있소.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기 때문에 단합이라도 돼야 앞으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소?”

모택동의 홍군이나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소수의 유격부대로 시작했다. 그리고 힘겨운 유격전 과정을 버티다가 막판에 군세를 대규모로 불렸다. 인원이나 장비보다는 유격대가 전체 아일랜드인들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평민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물론 유격전은 성공 가능성이 낮았다. 아일랜드 귀족 독립군이 무너진 지금은 누가 봐도 잉글랜드가 이긴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독립군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적절히 지원해준다면 성공 가능성을 급격히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전체가 잉글랜드군에게 정복되기 직전이에요. 셰이 쇼 하사는 당분간 훈련소에 입소해야 하고요.”

“대안이 있는 모양이구려? 언제든 제안해보시오.”

“전하! 네덜란드 독립군이 고용했던 용병부대를 셰이 쇼 하사나 적당한 인물에게 맡기면 어때요? 네덜란드인과 독일인으로 구성됐는데 군기가 아주 바르다고 정평이 났어요. 지금은 고용주를 찾고 있어요.”

군기가 잡힌 용병단이라니, 이민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시대에 관리는 부패해야 하고 용병은 민가를 약탈해야 한다. 그런 짓을 해도 되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고, 부패와 약탈을 하지 않으면 관리나 용병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마우리츠는 정확히 봉급날에 맞춰 정확한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용병들이 민가를 약탈하지 못하게 막았다. 약속된 금액을 제 날짜에 지급한다는 것은 이 시기 유럽의 행정 수준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 관리나 장교들이 용병들의 봉급을 착복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된다.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적이 아니었소?”

“맞아요. 하지만 지금 네덜란드는 자국민 위주로 군을 편성해서 잘 싸우고 있어요. 네덜란드에 고용됐던 용병단 몇 개가 실업자가 됐어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도 1601년 벽두부터 한창 싸우고 있었다. 연초의 오스텐드 포위전에서 시작된 전쟁은 점점 각지로 확장되는 추세였다.

두 나라는 오래도록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수시로 재정적 위기나 파산을 겪고도 잘만 싸웠다. 고산국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두 나라 모두와 거래를 유지했다.

약한 나라가 중립을 선언하면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거나 침략을 당하겠지만, 고산국이 중립을 선언했더니 고맙다고 양쪽에서 선물을 바쳤다. 옛날부터 국제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용병단도 결국 외국인이오. 일단 아일랜드 사람들이 스스로 나라를 회복하도록 기회를 줍시다. 정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동원하겠소.”

“어려운 시기를 자기들 힘으로 극복하면 더욱 값지게 여길 거여요. 하지만 머스킷과 화약은 충분히 지원해줘야 해요.”

“물론이오. 그런데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그리 큰 이익도 아닌데 아일랜드에 욕심내는 것 같소.”

“그러게 말이에요.”

북미 대륙이 고산국에 통째로 넘어가면서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에 더욱 집착하게 된 면이 분명히 있었다. 잉글랜드는 농사짓기에 불리한 토질이라 곡물과 육류 생산지가 필요했고, 예전처럼 동유럽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아일랜드에서 직접 수탈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북미 내륙으로 진입할수록 원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어요.”

북미 원주민들이 무조건 고산국의 지배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평원 원주민 부족 일부가 탐사대를 100km나 추격해 몰살 위기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결국 이리에서 출격한 여진 기병대에 의해 평원 원주민 전사들이 큰 타격을 입고 항복했다.

북미 남부에서도 일부 부족들은 여전히 고산국에 호전적이었다. 고산국은 강온 양면 전술을 구사해 차례로 원주민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반항하는 원주민을 군사력으로 응징하되, 절대 멸족시키지는 마시오.”

“예. 전사들 숫자가 줄어서 세력이 약해진 부족은 시에서 보호하고 있어요.”

그래도 고산국에 호의적인 부족들이 훨씬 많아 다행이었다. 원주민들은 상업적인 농업에 관심이 없기에 곡식은 적당한 면적에만 경작했다. 고산국 농가 하나가 경운차를 동원해 경작할 만한 면적 정도면 부족 전체가 만족하는 경우가 흔했다.

북미 여러 시청에서는 사냥과 채집 위주로 이동하며 살아온 원주민 부족들을 정착시키고 농업과 목축으로 빠르게 전환시켰다. 원주민들이 강점을 가진 담배농사와 면화농사를 짓게 해서 다른 생활필수품과 교환하는 식으로 북미의 경제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고산국 행정체계에 들어온 북미 원주민들의 직업이 빠르게 분화됐다. 학교가 세워지면서 교사들이 가장 먼저 생겼고 전사들은 마을을 지키는 자경대원이 되어 봉급을 받고 일했다. 고산국에서 건설한 도시나 농가에 가서 일하는 원주민들도 흔했다.

“원주민들이 고산국의 지배에 만족하는 것 같소?”

“물론이에요. 원주민들의 재산이나 노동력을 수탈한 적이 없잖아요. 하는 일에 비해 과도한 대가를 받는다고 미안해하고 있어요. 원주민이 한 달 중에 며칠만 일해도 최소한 자식들을 굶길 일은 없어요.”

“그럼 다행이오. 계속 확장시키시오.”

현재 북미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쪽 해안 지대는 확고한 고산국의 지배 영역이었다. 산맥 고원지대나 계곡에 사는 원주민 부족들도 경제적으로 새원산과 새강릉 등 도시에 크게 의존했다.

당면한 문제는 미시시피 강 유역을 따라 남쪽 새진주에서, 그리고 북쪽 이리에서 시작해 차차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만나는 모든 원주민 부족들을 복속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미주리 강을 따라 북서쪽을 개척하는 것이 두 번째 할 일이었다.

서부 로키산맥 쪽은 당분간 내버려두기로 했다. 새인천 쪽에서 탐사대를 여러 차례 파견했지만 산악지역은 투자한 인원과 시간에 비해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탐사대가 로키산맥 산록에서 무 만한 거대한 산삼 열 뿌리를 발견해 큰 충격을 주었다. 탐사대가 진상한 산삼을 본 이민호는 한참 고민해야 했다. 명나라에 보내면 삼국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19세기에 미국 산삼을 대한 청나라 사람들처럼 무시할 게 뻔했다. 말로는 환자의 체질에 따라 고려인삼과 미국 인삼을 따로 처방한다고 하지만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 자체가 달랐다.

북미 산삼의 약효는 종 자체가 아예 달라서 일반적으로 고려인삼에 비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산삼으로 깍두기를 담가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명나라 경제가 엉망인 와중에 인삼 유통량마저 많아지면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하. 참치 통조림을 진상하옵니다. 올해 여름부터 냉동선이 지중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제르 어민들이 잡은 지중해 참치를 가공해서 아이슬란드에서 만든 알루미늄 깡통에 담았습니다.”

“오! 역시 비키 당신은 워낙 똑똑해서 유럽과 많이 다른 고산국 궁중예절을 금방 익히는구려. 어디, 봅시다.”

헤드비히가 해실거리며 웃었고, 최 선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민호의 신경은 온통 은빛이 나는 주먹만 한 깡통에 머물러 있었다.

원통형의 통조림 깡통 주변을 두른 종이에 참치 그림과 함께 참치를 이르는 여러 나라 말이 인쇄돼 있었다. 한글로는 참다랑어 뱃살이었다. 현대 한국에서 참치 통조림에 넣는 가다랑어나 날개 다랑어가 아니라 비싼 참다랑어였다.

“참치는 부위에 따라 맛이 많이 다르니까, 잘했소.”

“헤헤!”

“여왕님!”

최 선생이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자 헤드비히 공주가 얼른 표정을 바꿨다. 최 선생이 분명히 헤드비히를 상전으로 모시는 것은 맞으나, 마치 유럽의 예절 선생처럼 상대가 귀부인이든 귀족 영애든 상관없이 예절 문제에서만큼은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 톡!

고리를 반대로 돌리고 잡아당겨 위 뚜껑을 간단히 땄다. 현대 참치 통조림처럼 제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민호는 내용물보다는 깡통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맛을 보세요, 전하.”

헤드비히가 건네준 젓가락을 잡고 살점을 떴다. 참다랑어는 현대에 고급 음식점에서 회로 먹는 비싼 음식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비교적 흔해서 이렇게 살이 익혀서 통조림 깡통에 담기는 신세가 됐다.

“역시 참치는 이름처럼 명불허전이오. 산해진미 중에서 첫 번째에 놓고 싶소.”

“기쁘옵니다, 전하. 가격을 어떻게 정할까요? 알제르 어민에서 구입한 가격과 냉동선, 통조림 제작비용, 판매비용까지 합해서 원가는 작은 통조림 하나에 은 한 푼이에요.”

“100분의 1냥이라면 꽤나 비싸구려.”

자그마한 통조림 하나가 고산국 왕도의 식당에서 사 먹는 식사 한 끼에 해당했다.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경매로 낙찰되는 참다랑어의 무지막지한 가격을 대충 아는 이민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참치 종류 중에서 이 참다랑어는 그리 흔한 물고기가 아니오. 부위별로 두 푼에서 특별히 맛있는 부위는 한 냥까지 여왕과 여공작이 협의해서 정하시오. 그리고 깡통 작은 것을 한 푼, 큰 것을 세 푼으로 정해서 반드시 회수하도록 하시오.”

“예. 부위에 따라서는 깡통 값이 더 비싸요.”

드디어 알루미늄을 항공기 제작 외에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게 됐다. 깡통 값을 높게 정한 것은 재활용을 위해 회수하기 쉽도록 하는 면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알루미늄을 군사용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알루미늄 통조림을 가급적 국내소비에만 활용하도록 지시하더라도 유럽 상인이나 귀족들의 요구에 의해 조만간 유럽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비싼 깡통 값에 경악해서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기대했다.

“알루미늄 깡통을 활용할 만한 곳이 더 있을까요?”

“물론이오. 열대 과일이나 해산물을 다른 지역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됐소. 통조림은 냉동하지 않고도 음식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오.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오.”

건조시킨 곡물 외에 다양한 식품을 전 세계로 유통할 수 있게 됐다. 군대의 보급문제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전쟁 한 번에 몇 년 혹은 몇십 년씩 걸리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80년 전쟁이라죠. 매년 전쟁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꽤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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