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22화 (671/1,000)

00722  79. 1601년의 일상  =========================================================================

“최 선생! 구주의 학교 교사들이 일본인 맞지요?”

“맞습니다, 전하. 고산국에 노예로 팔려왔던 처녀들 중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이들 일부를 왕도의 교육대학에서 1년 단기 교사 과정을 수료하도록 했습니다. 이 처녀들이 구주에 파견돼 교원학교 교사로서 일본인 교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계속 배우면서 가르친다면 괜찮을 것 같소.”

현재 큐슈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교사 수천 명이 이런 방식으로 단기간에 양성됐다. 큐슈의 일본인 교사들은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 때는 교원학교에서 교수법을 배우고 있었다. 고산국 본토에서 건국 초에 써먹었고 여진 땅과 북미에서도 원주민 교사가 극도로 부족할 때 실행하고 있는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건너뛰고 고등학교도 단기과정으로 마친 큐슈 처녀들이었지만 교원학교 교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교원학교 교사들은 학기 중에 왕도에 돌아와서 교육을 받아 4년제 교육대학 졸업자격을 갖출 예정이었다.

고산국도 건국 초기이며, 큐슈는 근대교육을 처음 적용받는 시점이었다. 이런 전환기에는 임시방편이 필요했다.

“구주 사람들은 구주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조만간 전문대학이라도 세워야겠어요. 여진 지역에도 세워요, 전하.”

“그렇게 해야겠소. 학교 설립 예산을 짜고 최 선생이 산업별로 전공과목을 정하시오. 농업, 수산업, 목축, 광업, 그리고 교육. 이 정도요?”

“보육과 조리, 간호조무사 과정도 추가해주세요.”

“최 선생이 살펴서 정하시오. 과 수석과 차석은 고산국 왕립대학에 유학 갈 수 있는 특전을 주겠다고 입학 전에 공고하시오.”

“그렇게 하면 유학생들이 구주로 안 돌아가고 고산국에 남으려고 할 거여요. 구주에서 상류 계층이 되느니 차라리 고산국 평민이 살기가 나으니까요.”

그 전에 일본에서는 잡곡밥이나 잡탕죽에 된장국과 채소절임, 정어리 세 마리면 아주 훌륭한 식사였다. 그러다 큐슈가 고산국에 점령된 이후부터 쌀밥을 하루 두 끼, 고등어나 청어 한 마리를 먹게 됐다. 건설 노동자들은 총독부나 건설회사에서 하루 세 끼 제공하는 쌀밥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었고, 임금을 충분히 받아 가족도 그렇게 먹였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교원학교 여교사들이 먹는 식단은 그 자체로 큐슈 사람들에게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여진족 기병부대나 총독부 관리들이 먹는 양을 확인한 큐슈 사람들은 어째서 고산국이 큐슈를 점령하고 일본을 망하게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큐슈 사람들은 잘 먹어서 힘이 센 고산국 사람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무 일 안 하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고산국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바로 그거요. 외국에서 인재를 약탈하는 방법이오. 흠! 너무 솔직히 말했소?”

“아닙니다, 전하.”

최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금방 평소 표정으로 돌아갔다. 현대 미국이나 유럽에서 제3 세계의 유학생들을 받아들여 그 중에 뛰어난 일부 졸업생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방식과 같았다.

“총독! 본주 서부는 문제가 없소?”

“예. 지금도 수시로 수색해서 왜인이 정착할 경우 내쫓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00명 이하는 탐사대가 바로 쫓아내고 그 이상은 여진 기병 부대를 투입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은 조용합니다.”

“사국은 요즘도 조용한 모양이오.”

혼슈 서쪽이 텅 비고 관동에서 일본인들끼리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별 것 아니었던 섬 시코쿠(四國)가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큐슈에 비하면 형편없는 약체이기 때문에 시코쿠의 영주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예, 전하. 영지 경계선까지 그어놨으니까 자기들끼리 전쟁할 엄두를 못 냅니다. 다만 정략결혼을 통해 서로 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양녀들을 서로 시집보내는 방식으로 말이오?”

“왜인들은 정략결혼을 위해 키운 양녀도 딸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유지하다가 두 세력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파혼을 하거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적국 출신의 왕비나 그 사이에서 난 왕자의 혈통을 우려하면서도 계승권 분쟁에서 손해를 안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가차 없이 목을 치거나 쫓아내는 경향이 강했다.

“전하! 모처럼 순행을 오셨으니 사국의 영주들을 소환하시지 않겠습니까?”

“평소에 총독이 자주 소환한다면서요? 내버려두시오. 이번 순행 일정이 짧아서 바로 출발할 것이오.”

이민호가 보기에 내버려둬도 상관없다고 판단했지만 고산국 관료들은 시코쿠의 영주들에게 절대로 자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 넉 달에 한 번씩은 영주들을 불러 갖가지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수시로 감독관을 시코쿠에 파견했다.

그러나 그만큼 지원을 해주기에 영주들의 불만은 없었다. 시코쿠에도 학교가 생기고 최소한 백성들이 굶어죽을 염려는 사라졌다.

“어쨌든 요즘 들어서 구주와 사국의 인구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아직 배분할 농지는 충분하지만 한 세대에 두세 배씩 늘어난다면 겨우 몇 십 년 만에 농지가 부족해질지도 모릅니다.”

“아직 여유는 있지요?”

“물론 개간 예정지를 준비해놨습니다만, 이 추세대로 인구가 늘어난다면 황무지를 개간하더라도 금방 부족해질 것 같습니다.”

“본주의 인구가 줄어서 걱정을 더나 했더니 구주와 사국이 문제구려. 사실 좀 부담스럽소. 만에 하나 구주와 사국에 대한 통제가 약해질 경우 먹고 살기 힘든 자들이 왜구가 되어 이곳저곳 분탕질을 칠지도 모르오.”

“인구를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전하. 농지 개간을 금하고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과 부역을 부담시키는 것입니다. 자고로 훌륭한 목민관은 적고 탐관오리는 많은 법입니다. 목민관이 되기는 어렵고 탐관오리가 되기는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탐관오리들을 양성해서 파견하고 싶지는 않소.”

사실 전쟁 기간에 전투나 학살을 통해 직접 죽는 사람은 얼마 안 됐다. 보통은 전쟁 과정에서 힘겨워진 생활 때문에 병이나 기근으로 죽는 사람들이 몇 배나 더 많았다.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하느라 국가에서 백성들을 쥐어짜고 부역과 군역에 내몰면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항상 인구와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함경도가 딱 그런 꼴이었다.

“우리가 지배하고 있다면 먹고 살 길도 마련해줘야 하오. 정 농지가 부족해진다면 호주로 보내든지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서 농업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게 하면 될 것이오.”

“본토에서 농민 비율이 인구의 3할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이 적은 비율이지만 생산력이 충분해서 놀랍습니다. 기계 영농과 비료가 결정적인 원인 같습니다.”

현대 웬만한 나라에서는 총인구의 1할 이하가 적정 농업 인구 비율이었다. 한국은 2012년에 농업 인구가 6퍼센트 이하로 떨어졌고 노령인구가 많아 더 줄어드는 추세였다. 현대 미국의 농업 인구는 2퍼센트 이하였다.

“그렇소.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구주에서도 다른 직업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여러 가지 산업을 육성하도록 합시다. 구주 정도의 땅이라면 지금 인구보다 못해도 열 배는 부양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만약 전하께서 구주를 조선보다 잘 살게 만들어줄 경우 반발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조선 잘못이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렇게 합리적이겠습니까? 조선 사람이나 조선 출신자들이 전하께 원망을 품을 것입니다.”

“어휴! 욕하고 싶으면 욕하라고 하시오.”

현재 조선 조정은 고산국과 꾸준한 교역을 통해 자금력이 풍부한 편이었다. 예전 임금이 황금 동상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일에 집착했다면 현 임금은 조정의 예산을 확보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서 백성들에게 부를 나눠주는 일에 전력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예산 집행을 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는 경제효과가 매우 컸다.

조선에서 경제규모가 커지자 조만간 화폐제도를 도입할 모양이었다. 화폐제도 시행만으로 상업을 활성화시켜 경제규모를 성장시킬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조선 조정에서는 고산국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검토해 적당히 바꿔서 조선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모범 답안이 바로 옆에 있기에 개혁이 의외로 쉬웠으며, 광해군은 잘하면 조선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과 광해군은 고산국과 이민호에 항상 비교되는 바람에 곤란한 점도 많았다. 느린 개혁에 백성들이 반발했고 양반들은 지나치게 빠른 개혁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선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일상화됐다.

어쨌든 조선은 큐슈에 비해 살기가 훨씬 나았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지방관과 아전들의 토색질과 횡포가 여전해 인세의 지옥이라 칭해지는 지방도 있었다.

나머지 현황 보고를 문서로 받고 이민호는 온천에서 휴식을 취했다. 벳푸는 큐슈에서 가장 큰 관광지로 성장해 고산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온천 도시라는 벳푸 전체에 묘하게 음탕한 기운이 흐르는 듯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불법인 매춘행위가 총독부 몰래 행해지는 듯했다. 일본 하층민들은 여자의 정절을 중요시 하지 않았기에 여자들이 좀 더 쉽게 매춘에 나섰다. 물론 왕실 전용 온천에는 그런 여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이번 순행에 동행한 최 선생과 시녀들, 호위들이 전용 온천에 몸을 담갔다. 알몸으로 이민호의 품에 안긴 최 선생의 앙탈이 심했다.

“전하! 너무 부끄러워요. 조명이라도 조금 어둡게 해주세요.”

“나는 국왕으로서 항상 암살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에 사위를 어둡게 할 수는 없소.”

“사람들 많은 곳에서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오?”

이민호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최 선생의 몸에 결합을 시도했다. 물속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민호가 열두 번을 실패했으나, 그 다음에 성공했다.

열두 번을 막았더라도 단 한 번을 못 막으면 방어하는 입장인 최 선생의 패배였다. 이민호가 최 선생의 엉덩이를 잡고 움직였고, 최 선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헐떡거렸다. 주변에서 호위와 시녀들이 한 마디도 안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다.

“너희들 뭘 봐? 고개 돌려. 아니, 뒤로 돌아서 엉덩이 올리고 있어.”

“히잉~ 주인님은 최 선생님만 좋아하세요.”

민정이 항의했지만 이민호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열 명이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채 엎드려 있었다. 쭉 훑어보면 가관이었지만, 품에 안겨 눈을 감은 채 색색거리는 최 선생이 훨씬 도발적인 것 같았다.

“저희들은 안 안아주실 건가요?”

“말 걸지 마라. 우리 예쁜 최 선생이 먼저다.”

“너무하세요~”

밤이지만 야외에서, 그것도 밝은 온천에서 호위와 시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민호에게 안긴 최 선생은 몹시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동시에 꽤나 흥분하기도 했다.

최 선생의 몸과 결합된 이민호는 내부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이민호는 억지로 견디려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오래 참지 못했다.

“당신은 참 대단하오.”

“힘들어 죽겠어요.”

몸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극적인데 숨결이 닿자 더욱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이민호의 그것이 최 선생의 몸 밖으로 밀려나오기도 전에 다시 커졌다. 최 선생이 화들짝 놀라 떨어지려 했으나 이민호가 꽉 붙잡았다.

“제발! 힘들어요. 다른 분들도 안아주세요.”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하는 수 없이 최 선생의 몸을 풀어주었다. 최 선생은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수건을 몸에 두르고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쿡쿡! 닭 쫓던, 아니에요.”

“웃지 마! 그럼 꿩 대신 닭이다. 다 모여 봐.”

호위와 시녀 열 명을 모아 엎드리게 하자 그럭저럭 웅장한 모습이 연출됐다. 민정이 달뜬 표정으로, 그러나 걱정스럽게 물었다.

“주인님. 너무 많지 않아요? 자신 있으세요?”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도전의식을 가져야 한단다.”

물에 젖은 호위와 시녀들의 허리와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이민호의 것이 불끈 치솟았다. 곧 2차전이 시작됐다.

다음 날 일찍 출항해서 일본 남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시코쿠나 혼슈의 왜인들이 보라고 일부러 함대가 수평선 안쪽으로 항해했다. 거대한 군함과 수송선 10여 척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경은 위압적이었다.

가끔 일본 어선들과 마주쳤으나 돛을 단 배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거대한 배가 나타난 것을 발견한 일본 어민들은 그물을 끊고 황급히 육지로 도주했다. 관측실에 오른 이민호는 최 선생을 뒤에서 꼭 껴안고 있었다.

“일본인들을 섬에 가둬두고 사육하는 것 같아요. 전하께서는 설마 본주의 일본인들을 모두 굶겨 죽이시려는 것은 아니죠?”

“물론 아니오. 사국을 통해 교역할 공간을 마련해줬소. 자기 백성을 굶겨 죽인다면 고산국이 아니라 순전히 본주의 왜인 위정자들 탓이오.”

그러나 혼슈에서 세력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영지를 통과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뜯어내거나 심지어 약탈할 생각만 하는 세력가들 때문에 상업이 번창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대규모 선박을 운송에 동원할 수 없기에 혼슈 주민들은 당장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너무 불쌍해요. 왜인들이 나라를 들어 전하께 바치길 원하시나요?”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소.”

혼슈의 인구가 그 동안 많이 줄어들어 고산국이 군사력으로 통제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보다는 무기체계를 비롯한 군사력의 차이가 더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혼슈의 왜인 세력가들은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올해 초에도 자칭 세계 천황이라는 자가 큐슈 총독부에 사신을 보내 입조하라는 둥 공물을 바치라는 둥 건방진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사신과 무사들을 금광으로 보내고 통역과 아랫사람들은 큐슈의 발전상을 확인시킨 다음 돌려보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중간에 편을 끊기가 애매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