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20화 (669/1,000)

00720  79. 1601년의 일상  =========================================================================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오랜만에 이민호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30대 후반이 된 갈릴레오는 몹시 들떠 있었다.

갈릴레오가 재작년 말에 목성에서 위성 네 개를 발견했을 때도 이 정도로 들떴었다. 그 발견으로 지동설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좋은 발견이라도 했나? 기대되니까 얼른 말해보게.”

“전하! 태양의 흑점이 이동하거나 새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태양이 자전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원래 역사인 1610년보다 9년이나 빨리 흑점의 이동을 발견했다. 태양의 흑점은 흐린 날에 맨눈으로 보여서 오래 전부터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5세기에 태양 안에 세 발 까마귀가 있다고 중국 학자가 주장한 것은 전설이 아니라 흑점의 관측 결과였다.

그러나 지동설에서 하늘에 고정됐다고 여겼던 태양의 자전 자체만으로도 천체물리학상 대단한 발견이었다. 우주에서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가 이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태양과 목성의 자전을 확인함으로써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더욱 강력히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오! 축하하네. 실명 안 하게 제대로 관측하고 있겠지?”

“물론 여광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도의 자전 속도가 고위도보다 2할 정도 빠른 것을 관측했습니다. 회전체가 차등 회전을 한다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하께서는 혹시 아십니까?”

갈릴레오는 태양의 자전 속도를 적도에서는 25일, 위도 60도에서는 29일로 측정했다.

“회전체가 고체가 아니라는 거지. 온도가 매우 높을 테니 아마도 기체겠지.”

“역시 국왕전하께서는 모르시는 게 없군요.”

“설마 자네만 하겠나? 아주 의미 있는 발견을 했네. 드디어 천문학의 봉인이 해제됐어.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인류가 진리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게 됐어. 그래서 갈릴레오 자네에게 과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내리겠네.”

“얼토당토않게 과분하고도 낯 뜨거운 칭호입니다. 국왕전하의 지원과 동료 교수, 대학원생들의 도움 덕택입니다.”

2년 전에 갈릴레오가 발표한 지동설은 세계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부 가톨릭 성직자와 대부분의 신교도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지지를 받아 연구 논문을 유럽에서 계속 발표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는 고산국 국왕의 호위들이 지켜주는 첫 번째 과학자였다. 유럽의 신교도들이 갈릴레오에게 지속적으로 암살 위협을 한 탓이었다.

“갈릴레오 자네에게 상을 내리겠네. 고산국 단승 백작 작위와 세습 자작 작위, 그리고 천문대 주변 산을 세습 영지로 주겠네. 물론 영지민이 없으니 연구비 외에 매달 고산국 백작에 걸맞은 녹봉을 지급하겠네. 고산국에서는 단순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는 확실히 백작 대우를 받을 걸세.”

“과도합니다, 전하! 저는 연구만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자넨 부인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야. 가장의 의무를 등한시하지 말게. 그리고 매달 적지 않은 돈을 음악가인 동생에게 송금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됐네. 사정이 어려웠으면 진작 내게 말하지 그랬나?”

갈릴레오는 6남매 중의 장남이었다. 부친이 70대까지 장수했음에도 불구하고 44세에 첫째를 낳았기 때문에 갈릴레오는 장남으로서 오랜 기간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야 했다.

미켈란젤로 갈릴레이라는 막내 동생은 유럽에서 유명한 류트 연주가 겸 작곡가였는데 젊을 적 갈릴레오에게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지웠다. 그리고 이복동생인 여동생 두 명은 사생아 신분이라서 결혼할 때 많은 지참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연구 외에 돈을 벌 목적으로 다른 분야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습니다, 전하. 하지만 고산국에 와서 받은 것으로 연구비와 생활비는 충분했습니다.”

“시끄럽네! 그리고 자네 가족 문제에도 개입 좀 하겠네. 베네치아의 마리나 감바 부인에게 단승 백작부인의 작위를 주고 어명으로 이름을 마리나 갈릴레이로 개명하겠네. 첫째 딸 비르기니아는 세례를 받았나?”

“황공하옵니다, 전하. 세례는 받았으나 부끄럽게도 비르기니아의 아버지 항목은 공란으로 비워뒀습니다. 리비아는 세례를 아직 안 받았습니다.”

“비르기니아의 아버지 칸에 자네 이름을 올리라는 어명을 교회에 전하겠네. 그리고 둘째 딸 리비아를 정실 소생으로서 세례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네. 나중에 태어날 자네의 자식들도 모두 정실로 인정하겠네. 앞으로 이 문제로 시비를 거는 자나 나라는 고산국의 분노를 맞닥뜨리게 될 거야.”

“크윽! 고맙습니다, 전하!”

나중에 고산국에 온 마리나 감바는 갈릴레오의 부인이 아닌 동거녀였다. 정식으로 혼인한 부인이 아닌 동거녀에게서 낳은 자식은 모두 사생아였다.

이 시대 유럽에서 유일하게 정확한 인구센서스이며 세례를 받을 때 작성하는 가톨릭교회의 기록에, 아버지 이름을 공란으로 비워두는 경우가 흔했다. 교회의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사회적 비난을 의식해 사생아를 둔 아버지들이 이름을 밝히길 꺼렸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사생아는 어이없게도 악성 채무자처럼 해군에 강제로 끌려가는 범죄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갈릴레오의 이복 여동생들 사례처럼 이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정실 소생이어야 제대로 시집갈 수 있었고, 아니라면 큰 액수의 지참금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 두 딸은 아버지 갈릴레오의 권유에 따라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을 보냈다. 1606년에 태어난 아들 빈센초는 1619년 갈릴레오가 토스카나 대공에게 청원하여 정실 소생으로 인정받았다.

“하오나 저는 고산국 백성이 아닙니다.”

“전에도 국적은 상관없다고 했었네.”

“그래서 이번에 국왕전하를 저의 주군으로 모시고 고산국 백성이 되겠습니다. 전하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갈릴레오가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정식으로 고산국에 귀화했다. 그리고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고산국에서 새로운 세습 귀족이 탄생했다. 그 동안 계복과 감동, 감불, 그리고 국방연구소 몇몇 선임 연구원들이 세습 귀족 작위를 받았었다.

“국적은 상관없지만, 고맙네. 그만 일어서게, 과학의 아버지여!”

“전하! 저는 제 딸들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제발 낯 뜨거운 칭호는 거둬주십시오.”

사흘 후 고산국의 모든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수업을 전폐한 다음 왕립대학교에서 작위 수여식이 열렸다. 고산국과 마카오의 모든 교수와 대학원생들, 그리고 천문학과 물리학 전공 학부생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줬다. 갈릴레오가 답례로 비파 비슷하게 생긴 류트를 식장에서 능숙하게 연주했다.

태양 흑점 이동의 발견으로 인해 이번에 작위를 받은 자는 갈릴레오와 단승 남작이 된 동료 교수 4명, 그리고 기사가 된 조수 대학원생 6명과 학부생 3명이었다. 명예직이지만 그래도 녹봉이 고정적으로 지급돼서 평생 연구만 해도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됐다.

“어머, 전하! 어떻게 매일 오세요? 제가 혜영님께 듣던 것과 많이 달라요.”

“신혼 때는 한동안 매일 찾게 된다오. 몇 년 늦게 혼인한 것에 대한 사죄나 보상이라고 생각하시오.”

이민호는 오늘 밤에도 최 선생의 침전을 찾았다. 그 대신 초저녁에 다른 후궁들을 안는 숙제를 미리 해둬야 했다.

“배란일도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아프고 부끄럽고 두려운데요.”

“그래서 내가 오는 게 싫소?”

“아니요.”

“아직도 아프오?”

“이젠 아니에요.”

최 선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초야에 최 선생의 본명을 물어봤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집요하게 캐물으면 예의가 아니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최 선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최 선생도 준비를 한 것 같은데, 너무 빼지 마시오.”

“이건 그냥 시녀들이 준비해준 거란 말이에요.”

최 선생에게 갈라티아 궁녀 두 명, 조선 출신 궁녀 두 명을 붙여줬다. 그런데 패션쇼에 모델로 나서는 갈라티아 궁녀들이 어제는 검은 스타킹, 오늘은 흰 스타킹을 최 선생에게 신겼다. 이민호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 분명했다.

“자! 이리 오시오. 스타킹은 벗지 않아도 된다오.”

“어제처럼 제 온 몸에 침을 바르시게요?”

“흐흐! 최 선생도 이제 밤일에 적응하시오.”

평소에 최 선생이 긴 스커트나 한복치마 입은 것만 보다가 새하얀 알몸을 보니 감동적이었다. 옷을 입었을 때는 그저 자태가 곱다고만 생각했는데 벗기고 보면 평소 자립심(自立心)이 부족했던 이민호의 그것이 스스로 벌떡 일어섰다.

이민호는 최 선생의 안경을 벗긴 다음 느긋하게 온 몸을 만졌다. 목에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최 선생에게 꽤나 가혹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여자의 기쁨을 알기 어려운 최 선생에게 이 정도는 배려해줘야 했다. 그리고 충분히 이완시키지 않으면 최 선생의 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첫날밤에 최 선생은 물론 이민호도 몹시 고생했다.

“읍! 으읍!”

초야를 치른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최 선생은 초반에 여전히 힘겨워 했다. 이민호도 바짝 긴장하면서 서서히 움직였다. 밤일이 노련한 이민호였지만 최 선생을 안을 때는 아차 하는 사이에 끝날 위험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계속 최 선생을 찾게 됐다.

“최 선생. 여기 잠깐 보시오.”

눈을 감고 고개를 젓던 최 선생이 애처로워 일부러 말을 시켰다. 그리고 이민호가 며칠 후에 북미로 가야 하는데 최 선생을 왕궁에 남기고 가기 싫었다.

“네, 전하.”

“혹시 북미로 출장을 가보지 않겠소? 당신은 항상 궁에만 있지 않았소? 이 기회에 북미의 교육 현장을 점검하시오.”

“어명이라면 따르겠어요, 전하. 앗!”

눈을 가느다랗게 뜬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있는데도 힘이 절로 들어갔다. 이민호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최 선생하고는 정상위 말고는 아직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체위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9월 초에 출항해서 구주 사쓰마에 도착했다. 히시카리 금광에서는 여전히 매년 7~8톤, 20만 냥 정도의 금이 산출됐다. 필리핀 바기오의 금광 다섯 곳과 조선의 금광 두 곳에서 생산되는 순금의 양을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조선에서는 일지금맥이라 해서 손가락 굵기 이상의 금맥이 이어져야 채산성이 있다고 봤는데 히시카리 금광의 금맥은 폭이 상하 좌우로 몇 미터씩이나 됐다.

최근 칼굴리의 노천 금광이 생산을 시작했으나 아직 히시카리 금광의 생산량에 미치지 못했다. 주변에서도 금광을 여럿 발견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표시만 하고 일단 묵혀 두었다. 실제로 골드 필드라 이름 붙여진 이 지역에서 슈퍼 핏이라는 대규모 노천광 외에도 금광이 24개나 발견됐다.

현재 고산국 영토에서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이 히시카리 금광이었다. 그러나 몇 십 년 후에 금맥이 다할 것이고, 칼굴리 노천광에서 더 많은 금이 더 오래 생산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슈퍼 핏에서 매년 28톤의 순금이 생산되어 히시카리의 4배나 되는 산출량을 나타냈다. 남아프리카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도 기대됐으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최 선생! 금으로 가득 찬 방에 들어온 소감이 어떻소? 금괴 하나 들어보시오. 가져도 좋소.”

“눈이 너무 부셔요. 얼른 나갔으면 좋겠어요.”

금괴 보관실에 함께 들어온 최 선생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황금빛에 물든 얼굴로 멍하게 서 있는 호위들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최 선생은 반짝이는 것에 관심이 없단 말이오? 혹시 그 반지가 얼마나 하는지 아시오?”

“몰라요. 전하께서 주셨으니 아마도 비싸겠죠?”

“그러니까 어느 정도겠소?”

“은 열 냥 정도 되나요?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이민호가 다이아몬드 반지의 값을 가르쳐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못해도 최 선생이 예상한 가격의 천 배는 넘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사회 교과서 경제 분야를 다시 자세히 검토해야겠소.”

“너무 걱정 마세요. 경제 분야 교수님 세 분이 쓰시고 김수공 학생이 감수했으니까요.”

교육부 장관이 모든 과목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최 선생이 경제 분야 전문가까지 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경제관념이 조금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최 선생이 교육예산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일본 들렀다 북미에 가겠습니다. 이번 순행은 길게 묘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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