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15화 (664/1,000)

00715  78. 교육과 연구  =========================================================================

“금강석을 연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저번에 알려준 적이 있었소.”

“예, 전하. 전하께서 가르쳐주신 덕택에 금강석을 상하 58면으로 연마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상부의 각도는 35도, 하부는 41도일 때 빛을 가장 잘 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방법으로 금강석을 아름다운 모양으로 절삭하면서도 남는 원석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브릴리언트 컷이 실제 역사보다 조금 빨리 나왔다. 이민호는 연마면이 이루는 정확한 각도를 기억할 수 없었으나 유대인 보석세공사들이 다양한 각도로 깎은 다음 정밀한 관측을 통해 정확한 각도를 찾아냈다.

“이것이 그 견본입니다, 전하.”

“괜찮군요.”

유대인 보석세공업자가 새로운 방법으로 커팅한 다이아몬드 몇 개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실내조명 아래에서 비쳐보자 은은하고 화사한 광채가 어렸다. 혜영과 혜진에게 넘겼더니 작고 반짝이는 물건을 몹시 좋아했다.

“전하! 혹시 그 보물을 저희에게 맡기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게 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다이아몬드를 평가할 때 무게와 색, 투명도 외에도 커팅 방법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졌다. 원석이 아무리 크더라도 제대로 커팅하지 못하면 값어치가 떨어졌다.

다이아몬드를 제대로 연마할 경우 윗면에서 다이아몬드 내부로 들어온 빛이 절단면을 따라 두 번 반사되면서 다시 윗면으로 100퍼센트 반사되는 것은 물론, 다른 각도에서 내부로 들어온 빛도 윗면으로 반사한다. 이로써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영롱한 빛을 발할 수 있다. 브릴리언트 컷으로 연마하게 되면서 고산국 유대인들이 세공하는 다이아몬드와 보석들의 가치가 최소 3할은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

“인도에서 보유했던 유명한 금강석 두 개가 얼마 전에 유럽으로 갔다면서요?”

“전하!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청색과 황색의 인도 다이아몬드보다 더 크고 호화롭게 만들겠습니다.”

인도의 청색 다이아몬드는 나중에 호프 다이아몬드로 불린 저주 받은 물건이었다. 인도의 황색 다이아몬드는 이미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로 넘어갔으며, 곧 피렌체 다이아몬드라고 불리게 되는 역시나 저주 받은 물건이었다.

“진정하시오. 무작정 깎지 말고 먼저 원석의 모양과 결을 분석해서 완성품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해야 할 것이오. 일단 대표들이 원석을 가져가서 정밀하게 측정한 다음 가장 이상적으로 연마할 방법을 연구해보시오. 그리고 연마 설계도를 작성하시오. 실제 연마는 그 다음이오.”

“모든 과정을 신중히 진행하겠습니다, 전하. 하온데 저희들이 원석을 그냥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물론 제작 중에 병사들이 유대인 마을을 지킬 것이오.”

이민호가 작은 금고를 열어서 원석을 넣은 다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작은 금고를 큰 금고 안에 넣었다. 그 다음 열쇠 다섯 개를 대표들 중에서 보석세공업을 하는 자들에게 맡겼다.

“세 분이 열쇠를 꽂고 동시에 돌려야 큰 금고가 열리오. 작은 금고는 두 분이오.”

“저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커다란 금고가 수레에 실렸다. 그리고 유대인 대표들이 왕성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감시병 30여 명이 따라붙었다. 지금은 원석에 불과하지만 연마 후에 제대로 주인을 만나면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판매될 수도 있는 보석이었다.

“주인님~ 세공해서 저한테 주시려고요?”

“인도나 오스만 제국에 팔려고. 혜영이한테는 원석을 깎고 나서 생기는 자투리로 만들어줄게.”

“히잉~ 작은 반지 정도나 되겠어요?”

혜영이 애교를 부리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혜영에게 나랏일을 맡긴 다음부터 직책상 돈을 지독히 밝히게 됐으나, 보석이 비싸다는 사실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했다. 보석의 값을 제대로 안다면 죄다 팔아서 관리를 더 많이 채용하자고 할 여자였다.

“그것만 해도 50캐럿이 넘을 걸? 목걸이나 왕관 중심에 장식해도 될 거야.”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아요.”

“루비나 다른 보석도 좋지만, 금강석은 다른 의미로 특별하지.”

미안하게도 혜영에게 진짜 다이아몬드나 루비를 준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작으나마 천연 다이아몬드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물론 큰 덩어리는 모두 돈 많은 제국에 비싸게 팔아치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커다란 보석에는 그럴 듯한 이름과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리 소설가들을 시켜서 준비했다. 가장 크게 만들어질 이른바 ‘시베리아의 별’을 위해서는 멸망한 고대국가의 왕자가 살아남은 유민들을 인도해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왕관에 장식하는 이야기가 창작됐다.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에는 ‘태평양의 눈물’이라는 이름과 함께 바다에 몇 번이나 빠지고 심지어 고래에 삼켜졌다가 다시 인간의 손에 들어오는 스토리가 붙을 예정이었다.

유대인 대표 7명 중에서 2명이 다시 알현실로 돌아왔다. 최근에 고산국으로 새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대표들이 이민호에게 제시한 것은 자칭 선진 금융 기법과 보험이었다.

“저희들은 강대국이며 부국인 고산국에 아직도 민간 은행과 보험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매달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어서 웬만한 일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소.”

의료와 교육이 무료인 고산국에서 의료보험이나 학자금 대출 제도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본소득 제도 때문에 실업보험과 노령연금 등은 별로 의미 없는 제도였다.

“보험이란 위험에 대비하는 제도입니다. 보험으로 인해 안심하고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익을 얻지요?”

“그야 당연히 가입자가...... 사실 가입자야 큰 손해를 안 보는 것뿐이고, 이익은 보험사를 차린 자본가가 얻습니다. 권력자도 이익을 나눠받습니다. 물론 국왕전하께서는 세계제일의 부자라서 별로 필요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민호가 지긋이 노려보자 유대인 대표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화재보험과 해상손실보험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집이 국가의 것이거나 불이 나도 다른 집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화재보험은 필요 없소. 해상보험은 비싼 화물 때문에 필요할 것도 같지만, 그것이 보험사기인 줄 어떻게 판단하겠소? 해상보험이 시행되면 일정 비율로 선박사고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알고 있소?”

유대인 대표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다시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보험은 분명히 필요한 제도이지만 고산국 같은 경우에는 필수가 아니었다.

“예금과 대출 영업을 하는 민간은행이 생기면 자본을 더욱 쉽게 활용할 수 있어서 사업가나 자본가 양쪽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그렇겠지요.”

“유대인들은 고산국에서 금융업을 금지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유대인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2천 년 넘게 금융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은행은 국가와 국왕전하께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은행을 설립하도록 허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은행이라. 필요하긴 하오. 금리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

이 시대에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에서 은행이나 대부업은 유대인만이 할 수 있었다. 유대인의 특권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신자들에게 대부업을 금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대부업을 금할 이유는 없었다.

“예금 금리는 연리 1퍼센트, 대출 금리는 1.2퍼센트로 정할 예정입니다. 수수료는 제외합니다.”

“그것 갖고 은행이 유지될 수 있겠소?”

“사실 은행은 예금과 대출 외에 다른 투자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일정 기간마다 돌아오는 경제 불황 때 대출대상자가 제공했던 담보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큰 이익을 얻습니다.”

“안됐지만 고산국 사람들은 부동산을 보유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담보대출을 해줄 수가 없소. 신용대출을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무자의 기본소득을 차압할 수가 없소. 고산국 백성들이 소득은 높은데 갖고 있는 재산은 많지 않다오.”

아직 건국 초기라서 그런 면이 있었다. 나라가 오래 되면 아무리 평등했던 나라라도 부자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일부 상인이나 농민들은 큰 부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에 빈민이 생길 가능성은 적었다. 고산국의 조세 및 경제제도는 백성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빈민을 안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유대인 대표 두 명이 툴툴거리며 돌아갔다. 고산국은 금융제도가 자리 잡기 어려운 야만국으로 인식될 것 같았다.

왕도의 백성들이 놀다 지쳤는지 1600년의 마지막 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음력과 이슬람력, 유대력 등 다양한 달력이 통용돼서 그런지 그 흔한 세기말 현상도 없었다.

16세기 후반부터 기후 변동이 심해 풍년과 흉년이 매년 번갈아서 왔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매년 농지 면적이 급격히 늘어 곡물 수확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덕택에 고산국 백성들은 항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전선 두 척이 잉글랜드 범선 세 척을 아리수 항까지 예인해 왔다. 구경꾼들이 몰린다기에 그 동안 심심했던 이민호도 호위들을 데리고 구경 갔다.

범선 세 척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상부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돛대에 붙은 작은 천 조각만이 돛의 흔적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해안경비대 남해 전대장이 이민호에게 와서 보고했다.

“자바 섬의 스마랑을 공격했다가 반격을 받고 도망가는 배들을 추격해 붙잡아왔습니다.”

“수고했네. 포로는 몇 명인가?”

“세 척을 다 합해서 82명입니다. 전투 중에 다섯 명이 죽고 일곱 명이 부상인데 오는 중에 거의 완치했습니다. 물론 저희들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다행이야.”

제법 커다란 범선 세 척에 겨우 82명만 탔다면 선원들 절반 이상이 항해 중에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게 병 때문인지 반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인도양에 진입한 이후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원주민들과 싸우면서 인명피해가 누적된 탓이라고 했다. 해안도시에서 약탈을 시도했다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고산국 국왕폐하! 저희들은 향신료를 사러 온 잉글랜드 상인들입니다.”

“영어 통역이 휴가 중이다. 스페인어로 말하라.”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 하얀 바지와 원색이 강한 외투를 입은 선장 세 명이 이민호에게 끌려오자마자 항의했다. 그러나 동남아의 작은 무역도시와 교전을 했는데 어째서 고산국에 잡혀 와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몹시 당혹스런 모습들이었다.

“저희들은 단순한 상인입니다. 오해가 생겼는지 저희들 배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해안요새와 정상적인 교전을 했을 뿐입니다. 유럽에서 공정한 무역을 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고산국의 국왕폐하께서 어째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간섭하십니까?”

“너희들 얼마 전에 아체 술탄국하고도 싸웠지? 이번에는 스마랑을 공격했고. 다 고산국의 동맹국이거든. 내 동맹국을 상대로 전쟁을 했단 말이지?”

“전쟁이 아니라 오해로 인한 단순한 교전이었습니다.”

선장들이 다급하게 변명하면서도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잉글랜드 왕실에서도 고산국과 자그마한 갈등이라도 생길까봐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판이었다. 소규모 투자자들을 모집해 간신히 동방으로 항해한 모험선 3척 따위로는 고산국을 상대할 엄두도 못 냈다.

“억울합니다! 고산국에서 동맹국들 위치를 미리 알려주셨다면 그 작은 나라들을 공격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만한 나라라고 생각해서 다짜고짜 해적질한 게 잘못이란 건 생각 안 하나? 인도양에서 오만의 배는 어떻게 했어? 오만은 고산국의 속국이야.”

“어? 설마 인도양과 동인도제도 전체를 고산국에서 장악한 겁니까?”

결국 인도양에서 실종된 오만의 배 두 척도 잉글랜드 범선들과 싸우다가 침몰했다고 선장들이 실토했다. 아체와 스마랑에서는 대포를 쏘아 잉글랜드 범선들을 쫓아내서 피해가 없었고, 실질적인 인명피해는 오만에서 입은 60여 명이 전부였다.

고산국에서 지원해준 대포와 화승총 덕택에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서양 범선들을 상대로 제법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 특히 해안 언덕 높은 곳에 콘크리트 요새를 쌓고 그 안에 숨어서 대포를 쏘면 범선들은 대응하기 몹시 난감해졌다.

“너희들의 배와 화물을 경매로 처분해서 억울하게 죽은 오만의 선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정식 재판을 받아 죄 값을 치르도록 해라.”

“저희들은 피해자입니다! 제임스 랭커스터 그놈이 동인도에 가면 향신료든 황금이든 뭐든 마음대로 재물을 빼앗을 수도 있다고 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얼씨구!”

“저는 여왕폐하의 기사입니다! 명예롭게 잉글랜드에서 재판을 받도록 보내주십시오.”

“잉글랜드와는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았어. 재판을 받고 순순히 광산으로 가도록 해. 아! 오만의 배에 교전을 지시한 선장들은 아마도 교수형을 당할 거야”

요즘 석탄 사용량이 늘어나는데 비해 국내 범죄자들이 줄어들어 탄광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했다. 가끔 이렇게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해적들이 설치고 다니다가 탄광에 충원된다면 기쁠 일이었다. 그리고 정 인원이 부족하면 베트남과 명나라 국경 근처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붙잡아 탄광으로 직행시켰다.

그러나 더 이상 강제노동으로는 급증하는 석탄 소요량을 맞출 수가 없었다. 가정용 난방은 보통 전기제품이나 석유류로 하는데 제철소나  식당에서 소요하는 양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고산국 본토인들에게 일을 시키자니, 철광이라면 몰라도 탄광에서 일하는 것은 거부했다. 결국 필리핀이나 명나라에서 석탄을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무연탄이라면 조선에서 살 수도 있지만 괜히 지방관이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키면 고산국만 욕을 먹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시멘트만 매입했다.

조선에서의 시멘트 산업은 채굴과 분쇄, 운송 등 여러 가지 작업이 분업화되어 제법 현대적인 산업의 특성을 갖췄다. 이익도 왕실부터 지방관, 백성들까지 고루 분배되는 편이었다.

조선 민간에서도 고산국을 따라 건축자재로 시멘트를 조금 사용했다. 평안도의 산성에는 시멘트가 대규모로 사용돼 몇몇 산성은 요새나 다름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교육은 잘 몰라서... 한 회만 더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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