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4 78. 교육과 연구 =========================================================================
현재 아프리카 왕국은, 물론 자기들은 제국이라 부르지만, 서쪽과 남쪽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서쪽으로 날루발레 호수, 현대 지명 빅토리아 호를 지나 콩고 강을 발견한 이후 강 연안을 따라 빠르게 서진 중이었다. 조만간 1, 2년 이내에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달할 것 같았다.
다만 날루발레 호수 북쪽 백나일 강의 지류를 통해 수단이나 에티오피아로 확장하지는 못했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적도 있는 에티오피아는 물론이고, 수단도 기원전 3천 년부터 농경을 시작하고 이집트와 교류한 나라라서 전혀 만만치 않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북 수단에는 청 술탄국이라 불리는 센나르 술탄국, 즉 푼지 제국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프리카 왕국에도 기병이 있었지만,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채로 브로드소드를 휘둘러대는 수단의 귀족 출신 중장기사들과 대결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또한 남 수단에는 기독교나 유사 기독교를 믿는 부족들이 청 술탄국에 저항하고 있어서 완충지대를 형성했다. 이민호는 이 시대에 아프리카 흑인 중장기사와 기독교를 믿는 흑인 부족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북쪽 대신 므부투는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프리카 왕국의 남서쪽, 탕가니카 호수 연안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너비가 좁은 대신 길이가 660km나 되는 기다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사는 어민이 10만, 탕가니카 호수와 그 호수로 흘러드는 여러 강의 유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수백만에 달했다. 현대에 들어서면 천만 이상이 사는 지역이었다.
“기병이 탕가니카 호수 주변에 사는 여러 부족들을 돌아다니면서 순조롭게 복속시키고 있어요. 다만 가끔 전투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남의 밑에 들어가고 싶은 부족이 얼마나 있겠소.”
대내적으로 12번째 황후 타이틀을 갖고 있는 므부투의 142번째 왕비는 이번에 처음으로 고산국을 방문했으면서도 조선말을 아주 능숙히 구사했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서 전개상황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독도법을 제대로 이해했다.
“예. 하지만 저희들은 예하 부족을 확실히 보호해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곡식 종자와 국왕전하께서 주신 몇 가지 약이 확장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확장이 아니라 정복이오. 결국에는 다른 부족들을 돕는 일이라고 변명하지 마시오. 남의 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침략자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시오.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야 일이 편할 것이오.”
“예, 전하. 명심할게요. 하지만 기존의 침략자들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므부투 황제폐하는 고산국에서의 경험을 소중히 하고 계세요. 고산국에 정복당한 부족들이 순순히 복속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해요. 아프리카 제국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고 있지 않아요.”
“훌륭하오.”
므부투가 이민호 밑에서 배운 게 있어서 다른 부족들을 순조롭게 복속시켜나가고 있는 듯했다. 정복하는 중에 병력을 소모하면 빠르게 망하는 경우가 흔했으니 가급적 전투는 피해야 했다.
왕비를 많이 맞아들인 것도 이민호에게 배운 것이라고 해서 열이 좀 받았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흰 바탕에 빨간 십자가 깃발을 단 배들이 세 척 단위로 아프리카 서해안을 지나 남단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몇 년 전에 이어 올해에도 발견됐어요. 우리와 교역하는 서해안 부족에서 알려준 거여요.”
“잉글랜드 배들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예. 에스파냐 때문에 지중해 항로를 피하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 남단에 병력을 파견하기 싫어서 수에즈 운하를 일찍 개통했는데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에스파냐 함대를 피해 잉글랜드 탐험선들이 여전히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배라도 완전히 상선이라면 지브롤터를 지나 지중해로 진입하지만, 그때도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통과했다. 당연하다시피 이 시대 상선들은 여러 나라 국기를 배에 보관하고 다니다가 필요한 국기를 마스트에 게양했다. 물론 지브롤터를 지키는 에스파냐 함대에서도 다 알아보고 모르는 척 손을 내밀었다.
“아프리카 왕국에 해군이 없으니까 결국 고산국 해군이 가든지 해야겠소. 지상군도 주둔해야 하고. 골치 아프오.”
1591년에 제임스 랭커스터 경이 지휘하는 배 3척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 동해안과 말레이 반도를 조사한 것이 아시아에 대한 잉글랜드의 첫 탐사였다. 1596년에 보낸 배들은 모두 난파했다.
향신료 교역에 관심이 많아진 잉글랜드의 상인과 귀족, 기사들은 1599년에 자본을 모아 배를 사고 동인도회사 설립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내내 여왕의 재가만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잉글랜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면서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부터 남미 남단 마젤란해협 사이를 독점적 영업 범위로 인가받았다. 인도양과 태평양 전체가 해당했다.
제임스 랭커스터 경은 동인도회사의 첫 번째 함대 지휘권을 맡아 1600년 내내 토베이 항에서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인도양에 들어온 잉글랜드 배들은 동인도회사 소속이 아니라 해적에 가까웠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원래 역사보다 2년 빨리 설립된 다음 현재 맹렬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역사와 달리 식민지 정복보다는 북미 동해안 도시들과의 교역에 충실했다. 거래소를 통해 이미 이 회사의 대주주로 등극한 이민호는 덴마크 서인도회사를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업무 지시를 내렸다.
“잉글랜드도 다른 서양 배들처럼 무역만 하지 않겠어요?”
“이놈들이 무역만 하면 좋겠는데, 문제는 잉글랜드에 상품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이오.”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배들도 돈이 없이 오잖아요. 오스만이나 인도와 달리 유럽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탈이에요.”
“포르투갈은 삼각무역이라도 해서 돈을 번 다음 향신료나 비단을 사오. 잉글랜드는 남의 것을 빼앗는 것에 워낙 익숙해서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소.”
사실 인도양에서 오만의 배 두 척의 소식이 끊겼다는 보고를 며칠 전에 받았다. 그리고 유럽의 배 세 척이 아체 술탄국의 해안 요새를 공격하다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고, 여제독이 함대를 몰아 추격하자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제발 잉글랜드 사람들이 무역만 하면 좋겠어요. 서해안처럼 노예 무역을 하면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소. 해군 분견대를 아프리카 남단에 파견하고 최소 한 곳에 육상 기지를 건설해야겠소.”
아프리카 남단까지 순양함 2척에 보급선 한 척씩 교대로 파견하려면 근무기간 제한 때문에 총 9척이 아니라 12척이 매달려야 했다. 차라리 인도양 함대를 창설해서 호주와 아부다비, 잔지바르, 희망봉까지 작전권에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순양함을 보낸다 해도 그 넓은 바다에서 잉글랜드 함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해안 높은 곳에 육상 전파탐지기를 가동하고 순양함 두 척이 횡으로 늘어서더라도 탐지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행기를 매 시간마다 다른 해역에 띄운다면 잉글랜드 함대를 발견할 확률은 절반 정도였다.
“아아! 황제께 큰 도움이 될 거여요.”
“어서 아프리카 남단까지 진출하고 해군을 창설해서 스스로를 지키시오.”
“물론이에요. 아프리카에 시간을 주셔서 고마워요, 전하.”
142번째 왕비가 커다란 눈 한쪽을 찡긋했다. 다시 보니 왕비는 마치 연회에 참가한 듯 가슴과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동아프리카 몇몇 유목민 부족에는 가장이 친구나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관습이 있었다. 므부투가 보낸 국서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돌려서 말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이민호가 기억해냈다.
“왕비는 혹시나 외롭더라도 바람을 피우지 마시오.”
“다른 왕비들은 모르겠지만 저희 부족 여자들은 정숙하답니다. 황제께서 지정한 분이 아니라면 신경도 쓰지 않아요.”
“지정한 사람도 신경 쓰지 마시오. 알겠소?”
“예, 전하.”
주어를 뺄 수 있다는 점은 조선말의 장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혜영과 혜진이 눈치 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왕비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알현실을 떠났다.
“노골적으로 유혹하네요. 저러다 사고 나는 것 아니에요?”
“정숙하다니까 믿어 보자. 그건 그렇고, 왕비가 있는 자리에서는 큰소리쳤지만 배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아프리카 남단에 함대를 계속 파견할 수는 없어. 자그마치 순양함 1개 전단이야.”
“맞아요. 탐사선 한 척만 교대로 배치해요. 그래도 지상군은 아프리카 남단에 조금이라도 파견해야겠죠?”
“아프리카 왕국의 진출이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내야겠어. 탐사대 하나에 구르카 용병 1개 중대를 보내자. 말라리아나 황열병이 그 지역에 유행하는지 확인한 다음 의료반도 지원해야겠어.”
괜히 잉글랜드가 희망봉 근처 아프리카 남단을 점령해 보급기지라도 세운다면 골치 아파질 우려가 있었다. 고산국이 아프리카 남부 일대를 선점해서 잉글랜드가 기지를 세우기 전에 몰아내는 편이 가장 간단했다.
만에 하나 고산국과 잉글랜드가 전쟁을 벌인다면 패할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대서양 무역로가 한 순간 봉쇄될 걱정을 해야 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충분한 고산국 수송선들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해 덴마크와 네덜란드, 발트 해 여러 나라가 대서양 무역에 참가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배의 안전도 고산국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했다.
병조에 적정 파병 인원 산정을 맡겼다. 그 결과 아프리카 남단 해안에 항구를 겸한 육상 주둔지를 하나 세우고 전파탐지기 운용 요원들과 탐사선 한 척, 1개 지상탐사대, 그리고 구르카 용병 1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 해안포로 운용할 5인치 야포 1개 포반 2문을 배치하기로 했다. 보급은 잔지바르나 아부다비에 들르는 보급선이 맡기로 결정했다.
예전에 탐사대가 아프리카 남단을 조사했을 때는 원주민 인구밀도가 극도로 희박했다고 보고했다. 다만 탐사대가 유목민 부족과 농경을 하는 부족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 갈 탐사대는 원주민들을 만나 교역을 하면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연말에 여러 종족의 대표들을 차례로 왕성에 초청했다. 진상품을 받으며 선물을 하사하고, 어려운 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원주민 대표들은 불만이 거의 없었다. 다만 원주민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살려고 하는 최근 풍토를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족과 묘족, 브루나이인과 필리핀인 등 종족 대표들은 이민 문호를 좀 더 개방해줄 것을 건의했다. 조선인 외에는 일정 기간 이상 일을 해야 영주권을 주는 것은 건국 초부터의 정책이었지만 가족을 데려오는 문제가 생겼다.
직계 가족에 한해서만 초청 형식으로 이민이 가능했지만 다른 나라의 호적을 믿을 수가 없어서 문제였다. 가족이라는 사람을 며칠 붙잡아두고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왕성으로 유대인 대표들을 불렀다. 중년에서 노인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이민 전에는 명나라 옷을 입더니 이번에는 조선식 한복을 입고 입궁했다.
“축제기간인데 유대인들은 조용하군요.”
“저희야 달력도 다르고 종교도 달라서 말입니다. 보통 성탄절 기간과 겹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하누카라는 명절이 있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보름 전에 이미 지나갔습니다.”
유대력은 태음태양력이라 조선의 음력과 거의 비슷했다. 왕도 전체가 시끌벅적한 것과 달리 유대인 공동체는 아주 조용하게 보냈다.
유대인 인구 절반, 특히 젊은이들 위주로 북미로 이주한 다음이라 유대인 마을은 활력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나 성지순례자들을 위해 메카와 예루살렘을 오가는 고산국 여객선을 통해 유대인들이 조금씩 이주해왔다. 이들 중에 랍비가 있어서 기존 명나라 유대인들이 정통 유대교 신앙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대표들을 왕성에서 보자고 한 것은 특히 이것 때문이오.”
“아! 금강석입니다. 엄청나게 큽니다.”
대표 7명 중에 5명이 보석세공인들이라서 탐사대원들이 시베리아 빌류이 강 유역에서 사거나 채집한 돌멩이 열한 개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1위에서 4위, 그리고 나머지는 아마도 20위 이내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명나라에서 이주한 유대인 세공업자들이 최근 이주한 동족들 덕택에 새로이 유럽과 중동의 정보를 획득한 것 같았다. 이스탄불이나 예멘의 사나에서 왕도로 이주한 보석세공업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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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